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203화 (203/239)

#203화. 5분 전입니다.

“일이 정말 이렇게도 벌어지네?”

디데이 뮤직의 정 실장은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금별을 신뢰하지만, 공연 전날까지 티켓 판매 상황을 보고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 대책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마지막엔 초대권을 뿌릴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하루 만에 완판이라니.

“방송국 돌다 보니까 수철 씨가 노래한다는 소식에 일찌감치 팬들이 들끓었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민 팀장은 방송국에서 자신이 들은 소식을 전했다. 이때 유 팀장이 끼어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앨범이 잘나가서 그렇죠.”

티켓이 대박 난 것은 앨범 홍보를 열심히 한 자신들의 공이 컸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타이틀 곡 ‘The 끼’가 발매 일주일 만에 탑 3에 올랐으니 그런 말을 할 만하다.

“이 분위기면 다음 주엔 탑을 찍지 않을까요? 제 생각엔 노래를 들은 사람들의 궁금증이 폭발해서 앞다투어 티켓을 예매한 거 같아요.”

유 팀장의 주장이 가장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보도 자료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키워드는 많았다. 오디션, 사라진 천재, 하린, 하준, 드라마, 히트곡 제조기, 얼굴 천재, 칸 음악상 등 차고 넘쳤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오디션 빼고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사람들이 궁금증에 앞다투어 티켓을 구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수철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 게 가장 큰 이유죠.

이 부장도 같은 분석을 내놨다.

―신비로움을 가진 음악가가 첫 공연에서 실패한 사례는 없었어요.

공연의 흥행을 호언장담한 근거를 꺼내놨다.

―인제 와서 말씀드리는 거지만 사실 저희도 이렇게까지 빨리 매진되리라고는 예상을 못 했어요. 그동안 쌓여 있던 궁금증의 폭발력이 기대 이상이었어요.

“그래, 그건 팀장들이 방송국을 다니면서도 많이 듣는 모양이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도 이번 쇼케이스가 끝나면 바로 다음을 준비해야죠. 그래서 이 분위기를 쭉 이어 가야죠.

“하하, 그래. 그건 쇼케이스부터 끝내 놓고 얘기하자.”

두 회사 간의 좋은 분위기가 끊이질 않았다.

예스!

이 부장의 팀원들도 예상을 넘어서는 티켓 파워를 보인 것에 한껏 고무되었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계산기 두드려 보고 자신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변수에 가슴을 졸였었다. 이 부장은 바로 팀원들을 이끌고 회식을 했다.

* * *

“금별이 이번에도 또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네요.”

“……?”

“빠른 쇼케이스가 앨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거요. 쇼케이스가 매진됐다는 소식에 음원 판매가 두 배로 뛰었다잖아요.”

방송가에서도 이번 흥행을 놓고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디데이 뮤직의 매니저들은 방송국을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방송 관계자들과 친분을 쌓고 홍보를 부탁해야 하는 매니저들에게 오히려 그들이 다가와 먼저 친한 척을 했다.

방송국에서는 스타를 누가 먼저 섭외하느냐를 놓고 피디와 작가의 능력을 따진다. 그걸로 프로그램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자신이 수철과 더 친하다는 경쟁을 하듯이 앞다투어 음악을 틀어 댔다. 그러니 음원 판매가 두 배로 뛸 수밖에.

“축하해, 민 팀장. 요즘 디데이 뮤직에 좋은 소식이 끊이질 않아? 회사 분위기 좋겠어?”“하하, 감사합니다. 모두 피디님 덕분이죠.”

팀장들은 일이 끝났음에도 굳이 방송국 복도를 돌아다니며 기분 좋은 소리를 들었다.

* * *

“여기예요!”

공연이 가까워지자 멤버들이 한두 명씩 입국하기 시작했다. 일찍 와서 관광하고 싶다는 사람은 며칠 일찍 들어왔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리허설 이틀 전에 모두 도착했다.

금별기획에서는 엘진 호텔의 스위트 룸을 숙소로 제공했다. 이미 흥행이 결정됐으니 편의를 제공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을 알고 싶다며 이틀 일찍 도착한 루카스와 존 형제, 그들의 관광 가이드는 다혜가 맡았다. 지난번에 일찍 헤어진 아쉬움을 덜고 이번 기회에 멤버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다혜는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관광을 위해선 통역이 필요했다. 수철과 레베카가 교대로 따라붙으며 그 역할을 했다.

덕분에 다혜는 언니 언니 하면서 레베카를 잘 따르게 됐다.

수철은 체력 비축을 위해서 수영과 등산을 병행했다. 장시간 공연을 하려면 하체의 힘이 중요하다. 노래 연습보다 체력 관리에 힘을 쏟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에는 체조 종목이 진행되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어요. 그러다가…….”

리허설을 하러 모두 공연장으로 향했다.

올림픽 공원에 들어서자 레베카는 체조경기장의 역사에 대해서 멤버들에게 알려 줬다. 올림픽 이후에는 어떻게 발전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간략하게 설명했다. 역시 실력 있는 에이전트는 달랐다. 한국에 살지 않아서 잘 알지도 못할 텐데, 멤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준비해 놓고 있었다.

“1994년에는 브라이언 아담스가 공연했고, 1997년에는 에릭 클랩튼이. 그리고 1998년에는 메탈리카가…….”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세계적인 뮤지션의 이름도 빼놓지 않았다. 유명 뮤지션의 이름이 나오자 멤버들은 만족한 얼굴로 끄덕였다.

공원 입구에 있는 세워진 예술 조형물을 지나서 몇 분 걸어가자 ‘KSPO DOME’이라고 붙어 있는 선명한 글자가 보였다. 멤버들은 돌아가며 공연장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이만한 크기의 공연장은 오랜만에 와 보네.”“저는 처음이에요.”

공연장에 들어선 마커스와 존은 한창 만들어지고 있는 무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와― 정말 크네.”

뒤이어 들어온 이언도 탄성을 질렀다. 15,0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해 본 건 마커스밖에 없었다. 다들 많은 공연을 해 봤지만, 이 정도로 큰 무대 공연은 야외에서 펼쳐진 페스티벌이 대부분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했는데도 아직도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세팅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공중에 매달려서 조명을 다는 사람이 보였고, 스피커를 쌓아 올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대를 마주 보고 높게 세워진 컨트롤타워에서는 사운드를 체크 하고 있었다.

멤버들은 공연장을 둘러보다가 스탭이 다가와 사운드 체크를 요청하자 무대에 올랐다.

음, 음. 아, 아.

수철은 레베카가 따라준 따스한 물을 마시며 목을 풀고는 무대에 올라갔다.

리허설인 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 큐 시트의 순서에 맞춰서 가볍게 소리를 냈지만, 필요한 부분에서는 에너지를 쓰며 음악의 분위기를 잡았다.

박 대표는 멀리 떨어져서 팔짱을 낀 채 무대 위의 그림을 바라봤다. 멤버들의 그림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공연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어서 자리를 차지하고만 있어도 든든했다. 다혜도 베테랑 사이에서 자신의 색을 잃지 않고, 잘 어우러졌다. 수철도 예상대로였다. 마치 오랫동안 서 있었던 것처럼 무대 중심에서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며 음악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몇 곡을 했을까?

갑자기 수철이 주저앉는 게 보였다.

박 대표는 놀라서 무대로 뛰어갔다.

* * *

수철은 노래하다가 갑자기 휘청했다. 느닷없이 경련이 몸을 휙 한번 훑고 지나갔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았다.

“수철 씨! 괜찮아요?”

제일 먼저 달려온 건 레베카였다. 이미 수철의 상황을 한번 겪어 본 레베카는 두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그녀는 마치 경호원처럼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와 주저앉아 있던 수철이 쓰러지지 않게 잡았다.

이 모습을 처음 본 멤버들은 놀라서 멈춰 있었다. 그러다 한두 명씩 수철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다혜는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신디사이저 앞에 서 있었다.

“하하, 미안해요. 어젯밤에 게임을 좀 했더니 다리에 힘이 빠졌네요. 괜히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수철은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나며 모여든 사람들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멤버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너도 게임을 해?”

리허설을 앞두고 게임을 무리하게 하다니. 프로답지 못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네, 요즘 재미 붙인 게 있어서, 죄송해요. 헤헤.”

수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멤버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다혜는 뒤늦게 수철에게 다가왔다.

“너, 정말 괜찮아?”

“응, 괜찮아.”

“너, 거짓말한 거지? 게임 같은 거 할 줄도 모르잖아?”“하하, 다혜야, 그냥 넘어가자. 좀 피곤해서 그런 것뿐이야.”

수철은 다시 한번 멋쩍게 웃었다. 그동안 수철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다혜는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자리로 돌아갔다. 리허설이 끝난 후에 얘기해 볼 생각으로.

수철이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아는 레베카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수철 옆에 남아 있었다. 수철은 레베카를 보며 괜찮다고 끄덕였지만, 레베카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래도 좀 휴식을 취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상태를 좀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지난번 같은 그런 게 아니에요.”

수철의 말대로 이번엔 가벼운 여진이었다. 옛날같이 식은땀이 나고 가슴을 억누르는 듯한 그런 통증이 아니었다. 그리고 금세 좋아졌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잘 안다.

그때 박 대표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너, 왜 그래? 괜찮아?”

“네, 괜찮아요.”

“설마 또 시작된 거 아니야?”“하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가벼운 경련이 좀 있었을 뿐이에요. 지금은 정말 괜찮아요.”

“참는 거 아니지?”

“네, 아니에요. 제 몸은 제가 잘 알아요.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박 대표는 뒤에 서 있는 멤버들과 무대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스탭들을 한번 훑어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무대 아래서 쳐다보고 있는 정 실장을 불렀다.

“30분만 쉬고 진행하겠다고 얘기하고. 음향팀과 조명팀에게 커피와 간식 제공해.”

“네, 알겠습니다.”

박 대표의 말을 들은 정 실장은 허리춤에 있는 마이크를 빼서 버튼을 눌렀다.

―음향 실장님, 조명 감독님, 카메라 감독님. 간식 드시고 30분만 쉬고 하겠습니다.

“레베카는 팀들을 대기실로 안내해. 음료와 간식 제공하고.”

“네, 알겠습니다.”

걱정스러운 시선을 떼지 못하던 레베카는 박 대표의 지시에 등을 돌리고 멤버들을 인솔해 대기실로 갔다.

수철은 괜찮다고 하는데도 자꾸 예민하게 대하는 박 대표를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네가 신경 써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잠시 이동해서 쉬자. 지금은 무엇보다 네 컨디션 관리가 가장 중요해.”

수철은 어쩔 수 없이 박 대표와 함께 밴으로 이동해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링거라도 한 방 맞을래?”“쌤! 진짜 그만하세요. 저 민망해 죽겠어요.”

수철은 박 대표의 걱정이 과하다며 목소리를 키웠다. 박 대표는 수철이 욱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차 안에서 수철의 안색을 살피던 박 대표는 슬쩍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때 어떻게 트라우마를 극복할 생각을 했던 거야?”

“……?”

뜬금없는 물음에 수철이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스테파노의 편곡을 들으면서 무척 힘들어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괜찮아.”

수철은 피식 웃었다.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회?”

“네, 그런 일이 생기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겠다고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계속 도망 다닐 수는 없잖아요?”

박 대표는 새삼 수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렇게 용기를 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무대에서 노래하면 죽을 거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었잖아?”“에이, 이제 그런 거 다 지나갔어요, 그리고 그게 가장 큰 행복 아니에요?”

“행복?”

“쌤이 그러셨잖아요.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죽는 거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딨냐고요.”“아, 하하. 그래, 그렇지.”

박 대표는 뒤늦게 수철의 말뜻을 알아듣고 웃었다. 수철은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죠?”

“……어딜?”

“어디긴요? 리허설 해야죠. 멤버들 기다리겠어요.”

수철은 서둘러 밴의 문을 열고 앞장서 밖으로 나갔다.

* * *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공원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 때문에 오전부터 북적였다. 지정석을 예매하지 못한 사람들은 조금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다. 그런 장면은 무려 10시간이나 연출됐다.

오후가 넘어가자 티켓을 손에 쥔 사람들이 나타나며 공연장 주위는 더 북적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공연장 주위를 삥 둘러싸고 있었다.

공연을 두 시간 남기고 드디어 입장이 시작됐다. 관객들이 물밀듯이 들어오자 안전요원과 스탭들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서둘러 입장해 좋은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쌍안경을 꺼내 들며 무대 위의 모습을 확인했다.

“열기가 확 느껴지네.”

15,000명의 관중이 다 들어차자 그들이 내뿜는 숨소리만으로도 공연장은 벌써 후끈거렸다. 무대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 대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이들의 열기를 느꼈다.

―5분 전입니다.

어둠이 깔리고 공연 시작을 알리는 조명이 켜지자, 무대 양쪽에 세워진 거대한 스크린에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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