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204화 (204/239)

#204화. The Showcase

제일 먼저 등장한 사람은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드럼에 앉자마자 두꺼운 다리로 힘 있게 페달을 밟았다.

쿵! 쿵!

베이스 드럼의 두껍고 둔탁한 소리가 적막한 공연장을 울렸다. 그리고 등 뒤에서 굵은 스틱을 꺼내더니 두꺼운 손으로 잡고 스네어 드럼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스네어 드럼의 경쾌한 소리가 또다시 밤하늘을 울렸다. 그리고 곧바로 ‘츠, 츠’ 소리를 내는 하이햇을 두드리며 리듬을 만들어냈다.

쿵! 츠, 츠 탕! 츠, 츠.

쿵! 츠, 츠 탕! 츠, 츠.

루카스가 본격적으로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마커스가 등장했다. 베이스를 메더니 루카스의 박자에 맞춰 긴 손가락으로 베이스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무대 위의 그림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언과 존과 다혜와 영준이 형이 동시에 등장했다.

와―

짝짝짝!

사람들은 그제야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시작했다.

이언은 서둘러 기타를 메고 아래위로 손을 흔들며 일렉기타 특유의 펑키리듬을 만들었다. 다혜는 신디사이저 앞에 서서 기타에 맞춰 코드를 누르며 리듬을 더했다. 존은 퍼커션을 두드리며 악기들이 만들어 내는 리듬 사이를 헤집고 다녔고, 영준이 형은 어둠 속에서 몸을 들썩이는 관중들을 향해 트럼펫 소리를 길게 내뿜었다. 순식간에 멤버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하나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며 관객들을 들썩이게 했다.

빠밤! 빰빠바― 빠암!

빠르게 절정으로 치닫던 모든 악기가 동시에 멈췄다.

순간 무대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잠시 후 높은 곳에서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그 빛은 어둠을 뚫고 무대 중앙을 비췄다. 그곳에는 긴 머리 사이로 눈빛을 반짝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수철이 보였다.

와―!

와―!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수철은 하늘을 향해 마이크를 든 손을 높이 치켜올렸다.

그러자 잠시 멈췄던 음악이 다시 시작됐다. 음악은 잠시 격렬해지더니 느려지고 단순해지면서 레게 리듬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공주였어요. 우리는 그녀를 그리워해요.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워요. 우린 그녀를 기다려요.

첫 곡은 아프리카 여신을 뜻하는 시바(SIVA)였다. 가사도 리듬도 단순했다. 수철이 레게 리듬에 맞춰서 노래를 시작하자 거대한 스크린에는 수철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등장했다.

와―

탄성을 내며 수철의 노래를 듣던 관중들의 탄성이 더 커졌다. 관중들은 원주민들의 동작을 따라 하며 몸을 들썩였다.

원 투 쓰리 포!

곧바로 이어진 곡은 바로 이번 앨범의 제목이자 타이틀곡인 ‘The 끼’였다.

수철의 함성으로 음악이 시작되자, 관중들은 수철의 함성에 대답하듯 함성을 넘어 괴성을 질렀다. 수철은 그 괴성을 뚫고 입을 열었다.

―이것이 눈을 뜨면, 난 다시 세상에 혼자가 돼.

아무도 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너도 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네 마디를 흘려보낸 수철이 노래를 시작하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관중들이 동시에 다음 부분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린 하나야. 처음부터 그랬어.

둘이 아니라 하나였어.

내 안에서 눈을 뜬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어.

이 모습을 지켜보던 관계자와 스탭들의 입이 벌어졌다. 박 대표와 이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장면에 움찔하기까지 했다.

관객들은 발매된 지 고작 2주밖에 안 된 곡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딱딱 맞춰서.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부르는 노래는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을 압도했다. 사람들은 경직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수철은 어느새 관중을 향해서 마이크를 내밀고 있었다.

멤버들은 이 모습에 흥이 더 올라서 미친 듯이 그루브를 뽑아냈다. 펑키한 리듬을 두드리는 루카스는 리듬을 조였다 풀었다 했고, 마커스도 루카스와 함께 리듬을 쥐락펴락하며 현란하게 베이스 줄을 두드렸다. 빠르게 기타와 건반을 누르는 이언과 다혜의 손에도 리듬감이 넘쳐 났다.

관객들도 손뼉을 부딪치며 흥을 타기 시작했다.

퍼커션을 두드리는 존의 손바닥이 빨라지고, 트럼펫의 버튼을 누르는 영준이 형의 손가락에도 힘이 들어갔다.

멤버들이 움직이는 손끝 하나하나에 그루브가 묻어 나왔다. ‘The 끼’는 그루브의 향연이었다. 앨범과는 또 달랐다. 앨범에서 절제했다면, 무대에서는 거침없이 터뜨려 버렸다.

이 모든 게 관중들이 내뿜는 열기 때문이었다.

이 열기는 차가운 밤공기를 뜨겁게 바꿔 놓았다.

관중들이 비트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머리를 흔들자, 형형색색의 레이저 조명은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열기를 고조시켰다.

우― 빠르게 달아올랐어.

아― 네가 눈떴을 때.

음악이 절정에 다다르자 관중들은 코러스의 화음까지 넣기 시작했다.

덕분에 수철의 뒤에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화음을 넣는 코러스의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스피커를 통해 그녀들의 소리가 크게 나오는데도 얼마 나가지 못하고 관중들의 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래도 코러스는 소리를 멈추지 않고 몸동작을 크게 하며 수철의 뒤에서 한껏 흥을 끌어 올렸다.

수철은 자신의 소리를 받치고 있는 관중들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난, 나난, 나나난!

―우후― 둡뜨두둡!

수철은 관중의 함성을 배경으로 미친 듯이 소리를 내뿜었다.

숨을 쉬지 않나?

착각이 들 정도로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무대에서 뿜어내는 그루브의 파도가 관중들을 향해 계속 밀려왔다. 관중들은 기꺼이 수철이 지휘하는 파도에 올라타 수철이 내뿜는 끼를 같이 즐겼다.

―우린 같은 곳을 보고 있어.

둘로 나뉘어 있던 소리는 마지막에 하나로 합쳐졌다. 수철과 코러스가 아니라, 수철과 관중의 소리가 합쳐졌다. 둘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있었다.

와― 와―

짝짝짝!

관중들은 신이 나서 함성을 지르고 박수를 쳤다. 그들은 벌써 두 번째 곡에서 오늘 준비해 온 에너지의 절반을 써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수철은 고개를 들어 관중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내뿜는 열광의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조명을 향해 다시 손을 뻗었다.

수철의 신호가 떨어지자 루카스는 곧바로 챙! 챙! 챙! 드럼의 탑 심벌을 세 번 두드리며 리듬을 시작했다.

―우린 서로 만날 수가 없었어. 마치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처럼.

수철이 ‘하늘 아래 두 생명체’를 부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환호성은 금세 괴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다시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분위기는 다음 곡, 그다음 곡으로 계속 이어졌다.

박 대표는 눈에서 힘을 풀 수가 없었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힘이 들어갔다. 계속해서 관중들의 놀라운 반응에 집중했다.

사람들은 무대 위의 수철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다. 무대를 향해 손을 내밀다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소녀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카메라에도 비췄다. 한 명은 울고 한 명은 껴안고 위로하는 모습이 공연장 곳곳에서 목격됐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갈구하게 했을까?

공연을 지켜보는 박 대표의 머릿속엔 의문이 맴돌았다. 음악과 노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번에 부를 곡은 앨범에 없는 곡이에요.”

무대에서는 수철이 새로운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디데이 뮤직과 금별기획은 이번 쇼케이스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만으로 공연을 채우기에는 러닝타임이 너무 짧다는 것.

앨범에 실린 7곡의 전체 러닝타임은 43분이다. 보통의 앨범보다는 긴 시간이지만 공연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 곡 수도 늘려야 하고, 시간도 늘려야 한다. 멘트를 많이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수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 시작을 연주로 하고 앙코르곡을 좀 길게 해서 시간을 재 봤더니 1시간 20분이 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시간.

수철이 작곡한 다른 곡을 다시 편곡해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건 이번 쇼케이스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

회사의 고민이 커질 때쯤 수철은 이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The 끼’의 어쿠스틱 버전을 만들었다. 앙코르 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수철은 금세 새로운 곡을 한 곡 더 만들었다. 이번 공연에서 깜짝 공개할 생각으로.

제목은 히피(Hippie).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수철의 모습이 히피 같다는 박 대표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은 수철은 새로운 곡을 만들었었다. 그걸 이번 쇼케이스에서 공개한 것.

긴 가사가 스크린 화면에 몽땅 떴다. 가사의 배경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담배를 물고 환하게 웃고 있는 흑백 사진이 보였다. 수십 년 전, 한 방송에 출연해서 ‘So What’을 연주하다가 잠시 쉬는 동안에 다른 사람의 연주를 지켜보며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한 손에 들고 있는 트럼펫이 그가 마일스 데이비스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수철의 눈에는 이 모습이 히피로 보였다. 담배 때문이 아니라 딱딱한 방송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 수철은 그 모습을 가사로 옮겼다.

대단하다고 쳐다보지 마.

난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야.

자랑하려고 나팔을 부는 게 아니야.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떠내려온 것일 뿐.

사실 난 방향도 목적지도 없어.

누군가 내 방황을 끝내 주길 기다리고 있을 뿐.

짙은 담배 연기를 들이마셨어.

난 사람들이 피하는 것에 끌려.

다른 세상에 있어.

같이 있지만, 다른 세상에 있어.

방향을 정해 놓지 않은 건, 의미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난 오늘도 우주를 떠돌아.

그것이 삶의 법칙이니까.

생명은 의미 없음이야.

의미는 너희가 붙이는 거지.

떠나기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넌 무슨 말이냐며 놀라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무거워서 떠날 수가 없었어.

남겨진 네가 괴로워하지 않을 걸 알아.

넌 날 사랑하지 않으니까.

인생이 뻔하게 끝날 걸 깨달았어.

살아 있다는 이유로 껴안고 있는 불안.

어디서 온 걸까?

엄마가 떠넘긴 걸까?

답을 찾았지만 10분도 버티지 못했어.

더 커지기만 했어.

늘 그렇듯 오늘 밤도 현실을 외면하고 술집에서 나팔을 불 거야.

그리고 또다시 벼랑 끝에 서게 되겠지.

내 삶의 끈을 부여잡고.

놓을 건가?

계속 붙잡고 있을 건가?

아아, 히피의 노래,

아아, 히피의 광시곡.

날카로운 칼끝에 서서, 전부를 걸고 도박을 했어.

불안을 잊으려 더 큰 공포에 날 몰아넣었어.

꽤 효과가 있었지.

하지만 그뿐, 불안은 사실 내 욕망이었어.

처음부터 버릴 수 없는 거였어.

오늘도 난 히피가 되고, 방랑자가 되어 네 앞에 사랑을 던져 놓고 떠나.

멀리서 들려오는 광시곡을 들으면서.

아아, 히피의 노래.

하하하, 히피의 광시곡.

마지막 수철의 자조적인 웃음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씨를 던져 넣었다. 사람들은 박수 칠 생각을 잊은 채 먹먹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몇몇은 가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정이었고, 몇몇은 자신도 모르게 소멸되어 버린 마음속의 자유, 마음속의 히피를 떠올리며 머나먼 곳으로 시선을 쫓았다.

실제로 가사를 내보내기 전에도 말이 많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걱정했고, 가사가 너무 냉소적이고 허무한 느낌을 준다고 우려했다. 그런데도 박 대표는 수철의 손을 들어줬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 남겨 놓지 말고 다 꺼내 놓으라고.

수철은 이 곡을 만들 때 마일스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수철은 마일스야말로 영원히 자유로운 영혼, 영원한 히피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런데.

수철의 가사를 지지했던 박 대표가 정작 노래를 듣는 순간은 얼어붙어 있었다. 관중들은 처음 보는 가사와 노래를 경청하며 여운에 잠겨 있었지만 박 대표는 그러지 못했다. 리허설 때와는 완전히 다른 소리 때문이었다. 리허설 때 수철은 락커의 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소리에 격조가 붙어 있었다. 히피스러운 락커가 아니라 클래식 무대에 선 팝페라 가수처럼 불렀다. 가사와 상반된 목소리 때문에 가사와 소리는 두 개로 완전히 분리돼서 들렸다. 덕분에 사람들의 귀는 자연스레 수철의 소리보다는 가사의 의미에 쏠렸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지?

아니,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박 대표는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수철이 어떤 의도를 갖고 저런 소리를 내는지를, 노래보다 가사를 들려주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물론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어둠이 짙어질수록 조명은 더 화려해졌다.

마지막 곡을 남겨 놓고 수철이 고개를 드는 순간, 무대 앞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무대 앞에 세워져 있던 ‘Another Secret November’ 글자에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와―! 와―!

불꽃이 타오르자 관중들의 목소리도 다시 타올랐다. 관중들은 남은 에너지를 다 쏟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스탭들은 두 손을 움켜쥐었다. 리허설 때와는 확연히 다른 수철의 소리에 공연 내내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리허설 때는 수철이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박 대표의 초대로 공연을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무대 위에서 수철이 내뿜는 에너지가 15,000명의 관중을 모두 끌어안고도 남는다는 것을 목격했다. 체조경기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쥐락펴락한다는 것을.

귀를 통해 들어간 수철의 소리는 15,000 관중의 머릿속 곳곳을 훑으며 두개골을 울렸고, 공연장을 빙빙 돌며 울려 퍼지던 소리는 관중들을 향해 날아들면서 사정없이 심장을 두드렸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 대표는 문득 보도 자료의 문구가 생각났다. 마음을 비우고 가서 수철의 소리로 채우고 돌아오라는. 수철을 가장 오랫동안 지켜봐 온 박 대표조차 관객들이 쏟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진 느낌이었다.

“오늘 여러분께 들려드린 이야기는 제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거예요.”

수철이 마지막 멘트를 시작했다.

“제 노래는 이제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거예요. 그럼 우린 같은 곳을 여행하게 되겠죠?”―네! 맞아요!!

수철의 물음에 공연장을 쩡쩡 울리는 함성이 터졌다.

“자, 이제 ‘Another Secret November’가 몰고 가는 배 위에 모두 올라타세요. 준비됐나요?”―네!!

우렁찬 대답 소리가 공연장을 흔들며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꽤괘괘괭 꽹꽤괘괭!

관중들의 함성이 다 사라지기도 전에 요란한 꽹과리 소리를 내며 무대에 사물놀이패가 등장했다. 장구를 두드리고 태평소를 불며 국악기를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무대를 뛰어다니기 시작하자, 곧바로 루카스가 잔뜩 고조된 근육을 세우며 드럼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멤버들은 국악과 어우러지며 연주를 시작했다. 앨범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모든 악기가 총출동하며 긴장을 고조시켰다.

드디어 ‘Radiate’가 시작됐다.

―하늘을 향해 춤을 추다가 꺾였어.

수철이 노래를 시작했다. 이번엔 비장한 표정이었다.

‘Radiate’를 듣는 관중들도 수철과 같은 표정이었다. 이번엔 따라부르지 않고 노래하는 수철의 모습을 바라보며 수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가사의 흐름에 따라 수철도 관중도 같은 감정으로 움직였다.

“……?”

음악이 중반을 넘어갈 때쯤부터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였다. 관중들은 왜 우는지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흘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그냥 툭툭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눈물을 멈추고 내 손을 잡아요. 다시 돌아갈게요.

수철이 긴 호흡을 내뿜으며 마지막 가사를 불렀다.

관중들은 ‘Radiate’가 끝났음에도 아무 반응 없이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무런 함성도, 박수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이 그랬다. 수철과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 곡이 마지막 곡임을 깨달은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앙코르! 앙코르!

멤버들은 관중들의 터질듯한 앙코르 외침에 팀의 연주력을 한껏 드러내는 연주곡을 한 곡 하고, 두 번째 앙코르에서 수철이 준비한 끼의 어쿠스틱 버전을 한 번 더 했다.

이렇게 첫 쇼케이스 공연이 끝이 났다.

공연이 끝나고도 사람들은 쉽사리 공연장을 떠나지 못했다. 아직도 감동을 주체하지 못한 채 마른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모두 수철이 사라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환호성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그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귓가를 울리고 있었다.

수철이 부른 노래의 잔향이 남아서 맴돌고 있었다.

무대의 조명이 하나둘 꺼져 갈 때쯤, 더는 무대에 수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인 관중들이 하나둘 발걸음을 돌렸다.

오늘 공연은 열광의 도가니에서 아련하고 먹먹함을 주는 감정선의 변화로 막을 내렸다.

공연이 어땠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가져온 에너지를 이곳에서 모두 소멸시켰다. 수철은 사람들의 에너지에 불을 지피고, 불꽃을 만들어 터트렸다.

오늘 공연이 어땠는지, 얼마나 좋았는지는 오늘 모인 사람들끼리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열기를 뛰어넘어 소중한 하나의 에피소드가 생겼다. 수철과 그를 사랑하는 15,000명이 함께한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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