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SEE U SOON
그들은 바로 앨범 ‘SUNSET’에 참여했던 6명의 보컬들이었다.
이번 호주에서의 공연은 모두 1,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앨범 ‘SUNSET’의 보컬들이, 2부는 ‘ASN’이 맡는다. 처음엔 깜짝 이벤트를 하자고 수철이 제안했었다. 그런데 호주의 공연 에이전시에서 수지타산을 따져보고는 독립적인 공연으로도 충분히 흥행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에이전시에서는 1, 2부로 나눠서 아예 하나의 공연으로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디데이 뮤직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에이전시는 20,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두 배 이상으로 넓혀서 지금의 공연장으로 잡은 것이다. 엄청난 모험이었다. 아무리 6인 6색의 보컬이 호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을 망치면 에이전시가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 참여하는 스탭만 100명이 넘는다. 디데이 뮤직에서도 경비와 출연료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도 있다.
박 대표는 심사숙고 끝에 호주에서 수철이 만든 세 장의 앨범이 모두 빅히트를 했다는 것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의 과감한 선택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수철의 명성을 프로모션에 활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에이전시는 발 빠르게 홍보에 나섰고, 이 소식을 접한 팬들은 티켓 판매를 시작하기도 전에 언제부터 예매할 수 있는지 폭발적으로 문의해 왔다.
예스!
에이전시의 예상대로 티켓은 일찌감치 동이 났다.
박 대표의 결단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에이전시는 티켓이 모두 팔리자 신이 나서 박 대표가 브리즈번에 도착하자마자 호텔로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 공연의 1/3은 ‘SUNSET’ 앨범에서 노래한 6명의 보컬을 보러 오는 사람들입니다. 이 앨범이 호주에서 엄청난 히트를 했기 때문이죠.
이들은 이미 몇 번의 이벤트성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몇 명은 방송에서 활약하며 꽤 유명인이 되어 있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무대는 서로 다른 분위기에 서로 다른 장르,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의 모습에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모여든다고 했다.
―나머지 티켓은 물론 용수철 뮤지션의 명성 때문이죠. 슈퍼 팀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고요.
에이전시 관계자는 호주 안에서의 수철의 명성에 대해서 한 소절 쭉 읊었다. 한국에서도 많이 듣던 이야기지만 수철이 히트한 세 장의 앨범이 모두 호주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중에 두 장은 호주 보컬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런 작곡가가 가수로 변신한 것이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찌 됐건 이번 호주 공연은 더블 공연이 되었다. 덕분에 이번엔 ‘ASN’ 팀들도 러닝 타임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100분만 채우면 된다.
수철―!
반가움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 6명의 보컬은 돌아가며 수철을 껴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특히 제시와 비슷한 목소리로 ‘레인’을 부른 미아, ‘퍼스 날라리’를 불렀던 앨렌, 그리고 ‘밤사이 친 거미줄’을 부른 샤우팅이 매력적인 터프 가이 맥스는 반가움에 수철을 껴안고 놓을 줄을 몰랐다. 마치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난 것처럼 기뻐했다.
수철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다 함께 대기실로 가서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정작 두 달 만에 만난 ‘ASN’ 멤버들과는 가벼운 인사만 나눴다. 수철은 6명의 보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들은 마치 팬클럽인 것처럼 수철을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수철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수철에게 궁금한 얘기가 많았다. 호주에서도 수철의 소식을 다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소식은 여러분이 아시는 그대로예요. 저는 여러분이 어떻게 지냈는지가 궁금해요. 얘기해 주세요.”
수철은 자신의 얘기보단 그동안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가 더 궁금했다. 수철도 들은 바가 있다.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리던 사람들은 한 명이 먼저 자신의 근황을 얘기하자 봇물 터지듯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저는 그 이후로 작정하고 팀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어요.”
몇몇은 본격적으로 팀을 만들고 다운타운 뮤지션으로 나서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과 다르게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연예인의 느낌이 났다.
“저는 아직도 수철 씨를 처음 만났을 때랑 똑같이 살고 있어요. 단지 우리 동네에선 내가 스타죠. 하하.”
누구는 예전과 같은 일상을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동네에서는 대단한 스타라며 껄껄 웃었다.
“앨렌과 저는 에이전시가 생겼어요.”
미아와 앨렌은 에이전시에 스카우트 돼서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에이전트가 따라다니고 있었다.
“저는 하던 일 다 때려치웠어요. 살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자는 락스피릿으로 지금은 시드니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맥스는 아예 시드니로 가서 락밴드를 결성했고 지금은 앨범을 내고 영국을 오가며 공연 중이라고 했다.
모두 ‘SUNSET’이 가져다준 변화였다.
“앨범 ‘SUNSET’이 내 인생을 SUNRISE 하게 했어요. 하하.”
맥스는 앨범이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6명이 다 모인 것은 처음이에요.”
이들은 몇몇이 함께 공연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6명이 6인 6색의 테마로 공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자신들의 음악을 하며 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앨범 ‘SUNSET’이 여전히 호주인의 사랑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철의 볼에 입을 맞췄다. 이런 앨범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며.
‘SUNSET’의 가사는 수철이 호주를 여행하며 쓴 것이기에 스토리텔링이 녹아 있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앨범은 대박의 지름길이죠.
ECM의 이사인 해리의 말이다. 수철은 이번 앨범의 인기가 계속 지속되는 이유는 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수철은 무엇보다 지난 앨범에서 잘한 일은 서로 모르는 보컬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철이 여행을 떠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고, 그러면 가사도 쓰지 못했을 테고, 당연히 앨범도 없었을 것이다. 새삼 재규어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떠난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들이 생겼으니.
“이번 투어 공연은 정말 기대돼요. 또 한 번 인생의 큰 에피소드를 만들게 될 테니까요.”
첫 공연의 리허설도 하기 전인데도 다음 공연을, 공연 이후를 이야기하며 한껏 들떠 있었다.
* * *
공연 날은 아침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조금이라도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일찌감치 모여들었다. 하지만 이들은 급할 게 없어 보였다. 줄을 서서 공연을 기다리는 것도 이들에겐 하나의 문화 같았다. 공연장 주위에 모인 관중들의 모습은 이색적이었다. 루카스같이 덩치 크고 덥수룩한 수염에 팔뚝까지 털이 잔뜩 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같이 있으면 누가 루카스일지 모를 정도였다.
게다가 갖가지 헤어스타일에 몸에 가득한 문신은 대체 누가 관중이고 누가 뮤지션인지 모를 정도였다.
―게이트 오픈하겠습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사람들이 드디어 입장을 시작했다. 공연을 세 시간 남겨 놓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드넓은 공연장에 자리를 잡을 때쯤엔 해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무더웠던 하루의 열기가 식어 갈 무렵, 무대에 조명이 환하게 켜졌다.
드디어 6인 6색의 1부 공연이 시작됐다.
―다시 시작해. 나를 가뒀던 기억을 벗어 버리고.
첫 번째 곡은 호주에서 가장 히트한 미아의 ‘레인’이었다. 미아는 마지막에 앙코르를 한 번 더 할 생각에 첫 번째 순서로 노래를 하고 있었다.
1부 공연의 특이한 점은 세션맨들이 반주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컬들은 마치 각자의 공연을 하듯 자신의 팀과 함께 등장해서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보컬들에겐 자신의 팀을 알릴 기회가 돼서 좋고, 관중들은 다양한 색깔의 팀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마지막 무대는 맥스가 거친 샤우팅으로 ‘밤사이 친 거미줄’을 부르며 끝을 냈다. 맥스의 무대에서 사람들이 보인 열광은 대단했다. 몸에 문신을 새기고 갖가지 피어싱을 한 터프 가이들은 모두 맥스를 보러 온 것 같았다. 그들이 하늘을 향해 두 손가락을 세우며 지르는 함성은 킹콩이 가슴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 같았다. 공연장을 넘어 도시 전체를 들썩일 것 같았다.
1부는 이렇게 1명에 두 곡씩 총 12곡, 100분의 시간으로 끝이 났다. 잠시 조명이 꺼지고 무대는 다음 100분을 채울 뮤지션을 기다렸다.
이번 공연에서 ‘ASN’의 연주 스타일은 지난번 공연과는 다르다.
추운 날씨에 진행됐던 한국의 공연과 무더운 날씨의 호주 공연은 편곡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리허설에서 팀은 새로운 편곡에 빠르게 적응하며 출격 준비를 마쳤다.
웅성웅성.
1부가 끝나고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 몇 분이 흘렀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무대에 조명이 환해졌다.
와―!
짝짝짝!
사람들은 무대에 등장하는 수철과 슈퍼 팀을 보며 기대에 찬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수철은 무대 중앙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이들의 열기를 더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더운 하루가 끝나고 이 자리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1부에서 느끼지 못한 또 다른 감동을 심어 주고 싶었다.
수철은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한껏 목소리를 키웠다.
“ARE YOU READY―!”
―YE―
마치 정글의 거대한 동물들이 내뿜는 듯한 함성이 들려왔다.
수철은 또다시 열광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ARE YOU READY TO GO CRAZY―!”―YE―!
사람들의 거대한 함성이 계속해서 스타디움을 흔들었다.
“HERE WE GO!”
쿵! 쾅! 타타타타탕!
수철이 내리쬐는 조명을 받으며 마이크를 힘차게 들어 올리자, 루카스가 굵은 팔뚝을 들어 올려서 허공에 스틱을 세 번 부딪치더니 울퉁불퉁한 어깨를 드러내며 신나게 드럼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곳은 루카스의 주 무대다. 거칠 것이 없다. 루카스는 관중들을 다 휩쓸어 버리겠다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펑키하면서도 거친 드럼을 두드려 나갔다.
이번 호주 공연에선 국악팀이 함께하지 않는다. 한 곡을 위해서 많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며 공연하는 것은 비용면에서 감당하기 어렵다. 호주의 공연 에이전시에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디데이 뮤직에서도 수익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덕분에 ‘Radiate’가 주는 고유한 맛이 사라져서 아쉬웠다. 하지만 멤버들은 슈퍼 팀답게 그 빈 공간을 잘 채워 넣었다. 특히 루카스와 존은 수시로 리듬을 바꿔 가며 한국 타악기가 주는 리듬의 맛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관중들의 반응은 극에 달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리듬에 쾌감을 느끼며 환호성을 쳤다.
와―!
와―!
이들이 지르는 함성의 굵기는 한국과 매우 달랐다. 한국이 락이라면 이들은 헤비메탈이었다. 그것도 데스메탈 수준.
사람들의 손목에 찬 케미컬 라이트 팔찌가 빛을 내며 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5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철의 노래에 맞춰서 손을 흔드는 모습은 장관을 넘어 경이로웠다. 벅찬 감정으로 다가왔다. 박 대표는 호주의 공연 스케일과 관중의 공연 관람 문화에 감탄했다. 인구가 적다며 농담을 던졌던 말들이 무색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켜지자 한국과 달리 사람들은 앙코르는 한 번만 하고 서둘러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공연의 열기는 52,000명이 내뿜는 숨결만으로도 뜨거웠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는 빨리 식었다.
* * *
“재밌는 여행 하세요.”“시드니에서 봐요.”
이번 호주 공연은 3주간의 일정이다. 한 개 도시에서 1주일씩을 소비하는 것이다. 주말 공연을 잡다 보니까 일정이 그렇게 됐다. 이동 거리가 멀다 보니까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하루 2회 공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박 대표는 계획을 세웠다. 팀원들은 비행기로 이동하지만 박 대표는 차를 타고 이동하며 여행할 계획.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박 대표의 이번 호주 방문은 휴가 겸 여행이다.
“수철, 컨디션 관리 잘해.”“알았어. 시드니에서 봐.”
이번 여행에 수철도 동참하게 됐다. 박 대표는 수철의 컨디션을 고려해 다른 멤버들과 비행기로 가도 괜찮다고 했지만, 수철은 미뤄 왔던 여행을 같이할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박 대표와 다혜 둘이서만 보낼 수도 없고.
“SEE YOU SOON―!”
결국, 수철과 레베카까지 합류했다. 밴을 빌려서 4명이 국도를 따라서 내려가면서 여행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