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오, 신이시여!
박 대표는 스피커의 볼륨을 높였다. 두툼한 헤드폰을 쓰고 의자에 기대 수철이 보내온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잠시 멈추고 수철이 보낸 가사를 찾아서 손에 들고는 다시 음악을 들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세상엔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곳엔 평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수철의 낮은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음악.
수철이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얘기였다.
수철은 자기가 경험한 그들의 모습을 다섯 개의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서 음악에 담아 놓았다.
‘손가락이 세 개인 아이’
타이틀곡이다.
제목과 다르게 음악엔 부드러움이 넘쳤다.
흥겨운 보사노바 리듬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그렇게 웃어 줘서 고마워.
너에게서 진짜 미소를 봤어. 세상에 없는 미소를.
너를 안고 싶지만 바라만 볼게.
때를 묻히고 싶진 않아.
박 대표는 휴지를 집어서 눈가를 훔쳤다.
헤드폰을 벗어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야.”
창밖을 바라보는 박 대표의 눈빛도, 미소도, 동시에 깊어졌다.
창밖엔 작은 딱새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고 있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박 대표의 시선은 아련해졌다.
* * *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수철이 보내온 마스터링 트랙을 들어 본 직원들은 박 대표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수철에 대한 우려가 순식간에 해소됐다.
“미룰 이유도, 시기를 맞출 필요도 없으니까 서둘러 진행하자.”
“네,”
박 대표의 결정이 떨어지자 직원들은 맡은 바 업무를 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번에도 자켓은 윤천화 미술가가 맡았다. 수철의 자켓을 만드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녀는 마치 수철의 속내를 꿰뚫기라도 하듯이 그림을 만들었다.
수철이 미술가라면 저렇게 그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앨범은 빠르게 진행되고 출시됐다. 하지만 그뿐, 쇼케이스도 없고 대대적인 방송 홍보도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 앨범은 금별기획에서도 관여하지 않는다.
물론 디데이 뮤직만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국내에서 홍보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문제는 주인공이 없다. 노래를 부른 수철이 한국에 없다. 그래서 기본적인 홍보만 했다. 보도 자료 내보내고, 음악 사이트에 앨범을 소개하는 정도.
그런데도 앨범과 음원은 사람들을 골리기라도 하듯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대표님, 앞으로 이 방식도 고민해 봐야겠어요. 너무 편하지 않으세요?”
직원들이 신기해할 정도였다. 박 대표도 대충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쇼케이스 하고, 공연을 진행했을 때보다도 판매량이 더 늘고 있었다.
하하,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번 앨범에선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정확히는 귀가 있음에도 듣지 못하는 소리였다.
이 놀라운 젊은 천재는 이번에도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려져 있던 사람들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평화를 발견했다.
우리 모두가 꿈꾸던 평화를.
용수철은 타이틀곡 ‘손가락이 세 개인 아이’를 통해서…….]
“이 기사 마음에 드네.”
박 대표는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났다.
“이걸로 노출하는 게 좋겠어.”
모니터를 정 실장에게 돌렸다.
어느 평론가의 얘기처럼 가려져 있는 사람들에 관한 앨범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흥행을 거듭하더니, 도대체 그 열기가 멈추질 않았다.
“가려진 얘기가 아니라 자기 얘기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대요. 그래서 감동받는다고요.”
정 실장의 얘기를 들은 박 대표는 잠시 생각하다 끄덕였다. 어쩌면 소외된 사람들을 얘기하면서 소외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수철이 그것까지 의도를?
잠시 생각하다 머리를 저었다.
어찌 됐건 흥행에 성공한 앨범답게 군침 돌 정도의 매력적인 제안도 계속 쏟아졌다. 물론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당사자가 없는데 어떡하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음악은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권까지 전곡이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수철이 나타나지 않아서 음악이 더 잘 팔린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때가 되면 공연을 시작하겠지. 기다려 보자고.”
‘ASN’ 멤버들도 이제 수철에게 적응했다. 그래서 남는 시간엔 자신들의 앨범에 힘을 쏟았다. 이들이 다급하지 않고 수철을 믿고 기다리는 이유는 ‘ASN’의 흥행 탓에 연주 앨범만으로도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큰 불만이 없었다.
게다가 마커스는 제2의 전성기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베이스 연주 앨범이 흥행하고 있었다. 매출 상위권을 달렸다.
수철은 없지만 디데이 뮤직 사람들의 분위기는 훈훈했다.
계속해서 앨범과 음원 수익이 발생하고 있기에 박 대표는 그만큼의 보너스를 직원들에게 챙겨 줬다.
* * *
수철은 작업을 마치자마자 다시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다시 1년이 훌쩍 지나갔고, 수철은 한 장의 앨범을 더 만들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방식으로 앨범이 진행됐다.
수철이 마스터링해서 보내오면 윤천화 미술가가 자켓을 만들고, 디데이 뮤직에서 앨범을 발매하는.
그리고 한가지 굿 뉴스도 있었다.
“올해는 돌아올 거래요!”
한 번 더 수철을 만나러 갔다 온 레베카는 박 대표가 묻기도 전에 다가와 말을 했다. 수철이 멀지 않아 한국에 다시 돌아올 거라는 소식을 알렸다.
박 대표는 캐리어를 끌고 와서 당당하게 말하는 레베카를 보며 이번에도 묘한 미소를 보였다. 레베카는 갸웃하며 바라보다 물었다.
“대표님, 제가 수철 씨 만나러 갔다 올 때마다 그런 이상한 미소를 보이시네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의미는 무슨 의미? 별거 아냐.”
박 대표가 시큰둥하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레바카는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대표님, 그러시면 저 너무 신경 쓰입니다.”
레베카가 등 뒤에서 소리치자 박 대표는 다시 등을 돌려서 빙그레 웃었다.
“레베카는 나보다 수철과 훨씬 많이 연락하는 거 같던데? 지난 몇 년 동안 말이야?”
“…….”
“회사 업무와 상관없이.”
“……!”
레베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굳은 채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그러게 묻지 말라니까.
박 대표는 피식 웃으며 다시 돌아섰다.
* * *
“말이 필요 없네요.”“바로 업체 컨택할까요?”“저는 보도 자료 만들게요.”
음악을 들은 직원들은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젠 말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자기 역할을 착착 했다.
“이렇게 전 세계를 다 돌아다닐 줄 알았으면 가는 곳마다 공연 스케줄을 잡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누군가는 머릿속으로 공연 수익을 따져 보며 농담을 던졌다.
공식적인 네 번째 앨범인 이번 앨범의 제목은 ‘오, 신이시여!’였다.
사람들은 수철의 제목이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 간다며 투덜거리다가도 음악을 듣고 나서는 입을 다물었다.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그 제목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앨범 제목에 맞게 타이틀곡은 ‘한줄기 빛이었다.’움푹 팬 동굴에 들어오는 한줄기 빛에 관한 얘기.
물론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얘기가 있었다.
한줄기 빛을 잡기 위해 손을 뻗는 사람들의 얘기.
박 대표는 음악을 들으면서 수철이 떠나기 전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곡은 더 이상 수철의 얘기가 아니었다. 타인의 얘기를 말하고 있었다.
소외, 희망, 평등, 평화 같은 거시적인 주제를 담고 있었다.
사람들에겐 거시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건 수철이 눈앞에서 본 현실임이 분명했다.
세상을 떠돌며 본 사실이었을 것이다.
수철은 그것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음악에 담고 있었다.
평등과 평화, 한줄기 빛으로.
* * *
같은 시각, 이탈리아의 한 산장에서 스테파노와 로렌조도 수철의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음악을 통해서 자신이 느낀 아픈 현실에 도전하는 거 같지 않나?”
로렌조는 음악을 들으며 번역된 가사를 훑어봤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던 스테파노가 그 말에 눈을 떴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나도 그렇게 느꼈네. 그런데 가사는 도전적인 게 맞지만, 음악은 반대로 그 억압을 푸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아무리 봐도 수철은 음악 재능을 감출 수가 없는 모양이야.”
스테파노는 지긋한 눈으로 로렌조를 바라봤다. 로렌조는 희끗한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스테파노의 말에 공감의 눈빛을 보였다.
스테파노는 지난 ‘영웅과 쏟아지는 평화’ 앨범에서 이미 수철이 자신에게 말한 약속을 실현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가사를 보지 않고 음악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수철이 자신의 진짜 꿈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 ‘오, 신이시여!’ 앨범에서 한 번 더 그 사실을 확인했다.
창가에 서서 산장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스테파노는 수철이 그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할 수 없는 걸 수철은 하고 있다.
자신에게도 그런 꿈이 있었는데, 살다 보니 명성에 사로잡혀서 놓쳐 버렸다. 그리고 그걸 다시 깨달았을 때는 이미 백발의 노인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수철은 명성 같은 건 관심도 두지 않고, 물질적인 것도 모두 집어 던진 채 그 길을 가고 있다.
수철의 음악을 듣는 순간 스테파노는 엉덩이가 들썩였다.
당장에라도 수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수철이 가려는 길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몰아쳤다.
진정으로 음악이 가장 가치 있고 빛나는 그곳에 수철과 함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이렇게 여기에…….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스테파노의 마음이 요동쳤다.
* * *
“앨범은 홍보 CD 나오면 먼저 보내 드릴게요. 음원은 죄송하지만 발매하는 날 같이 들으셔야 해요. 노출 위험이 있어서요.”
앨범이 나올 때마다 박 대표는 본의 아니게 수철의 팬 관리도 함께해야 했다.
팬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 3인방, 스테파노, 해리, 필립 윤, 사라 제이, 전혜미 소프라노 같은 사람들과 오페라, 뮤지컬 제작자, 그리고 몇몇 에이전시 관계자와 방송 관계자였다.
이들은 이미 수철의 음악에 중독되어 버린 안타까운 사람들이었다. 공연이라도 있다면 찾아가기라도 할 텐데, 어디에 있는지 잘 알려 주지도 않고 공연도 하지 않으니까 앨범이 나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터링이 끝났으면, 이제 1주 후면 나오겠네요?
이들은 수시로 연락해서 안부를 핑계 삼아 돌아가는 상황을 체크했다.
마스터링이 끝나면 날짜를 세기 시작했고, 시간이 임박하면 문자로 묻기까지 했다.
이들의 마음을 잘 아는 박 대표는 앨범을 풀기 전에 홍보용으로 만든 CD를 우선 이들에게 발송했다. 그리고 음원이 몇 시 정각에 어디에서 노출된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들이 얼마나 간절히 기다리는지, 박 대표 자신도 마찬가지였기에 잘 알고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수철의 골수팬들이다.
수철의 음악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사람들이다.
* * *
―쌤, 저예요.
앨범이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철이 전화를 해 왔다.
―두 달 후에 한국으로 돌아갈 거예요.
레베카의 말대로 이제 긴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계획이라고 했다. 노르웨이 별장에서 쉬며 몇 곡만 더 만들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박 대표는 드디어 긴 시간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쌤, 부탁이 있어요.
“부탁?”
그전에 부탁이 있다고 했다.
―이번 앨범의 저작권료 전부를 아이들에게 쓰고 싶어요.
“아이들? 어떻게?”
―그건 쌤이 방법을 좀 찾아 주세요.
수철은 ‘오 신이시여!’ 앨범의 저작권료 전부를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서 쓰고 싶다고 했다.
―쌤, 부탁이에요. 쌤이 좀 도와주세요.
수철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지이잉.
그리고 몇 장의 사진이 도착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박 대표는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갑자기 머리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띵하더니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