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긍정의 에너지
“곧 죽어도 자기 가사는 자기가 노래를 불러야 한대. 그래야 느낌이 산다고 말이야. 음악도 직접 만들어야 하고. 하하.”“아, 그럴 수 있죠. 하하.”
박 대표를 따라서 웃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자신이 쓴 가사에 멜로디를 붙이고 노래까지 부르는 게 느낌을 가장 잘 살리는 방법이 맞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그 불치병이라는 음악성 부분이다. 박 대표와 수철이 웃는 건 그것 때문이다.
“더 재밌는 건, 자신이 불치병이 있으니까 잘 파악해서 유명한 뮤지션이 될 수 있게 이끌어 달래. 성공하면 의리를 지키겠다고 말이야. 하하!”
“하하하!”
알면 알수록 재미난 구석이 많은 녀석이었다.
박 대표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던 게 너무 공감됐다.
스스로 불치병이라고 부를 만큼 음악성은 없고, 그런데도 노래와 작곡은 하겠다고 하고, 그러면서 이론은 배우기 싫어하고, 발성을 가르쳐 주려고 해도 락커는 고음이 중요하다며 소리만 지르고 있고.
박 대표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다른 데 같았으면 바로 쫓아냈을 일이다.
“그런데 청소는 왜 시키는 거예요?”
수철은 그게 좀 이상했다. 박 대표가 누굴 부려 먹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시키는 게 아니야, 자기가 하는 거지. 할머니가 나물 캐고 곶감 팔아서 돈을 버시는데, 저 녀석은 그런 할머니를 돕고 싶었나 봐. 그래서 여기서 알바를 안 주면 노동판에 나가서 일할 거라고 하기에 마지못해서 하라고 한 거지.”“아, 그런 거였군요.”“그래, 여기서 청소하면서 돈을 버는 거야. 일을 열심히 하길래 돈을 올려 줬는데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게 반복되다 보니 지금은 아예 회사 관리인이 됐어. 돈도 그만큼 주고 있고. 하하.”
수철은 알바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수철도 지금 인탁의 나이와 같았었다.
“저 녀석, 음악을 정말 미칠 듯이 좋아해. 봐 봐, 지금도 저렇게 헤드폰 끼고 소리 지르며 돌아다니잖아.”
박 대표는 창가에 서서 빗자루를 마이크 삼아 소리 지르는 인탁을 가리켰다.
“인탁이 제가 좀 데리고 다녀 볼까요?”
“네가?”
“네.”
“너도 네 작업 해야 하지 않아?”“하면서 하면 되죠.”
* * *
다음 날부터 수철은 인탁과 함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인탁아, 드라이브 갈래?”
“넵!”
인탁은 수철이 부르자 바로 빗자루를 팽개치고 따라왔다. 그동안은 박 대표만 따라다니던 녀석이 이제 수철을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대상이 바뀐 것이다.
수철은 인탁이 흥미로웠다. 인탁에겐 수철의 관심을 끄는 것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음악적인 재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음악에 미쳐서 빠져 산다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칠지만 임팩트 있는 가사를 쓴다는 말도 뇌리에 남았다. 그래서 수철은 인탁에 대해서 좀 더 알기로 했다. 관심을 가지고 어울리기 시작했다.
“네가 쌤에게 같이 음악 한번 해 보자고 그랬다며?”“네, 선생님은 제 진가를 알아보실 거라 생각했으니까요.”“그런데 잘 안 됐어?”“네, 아직은 절 잘 모르시는 거 같아요.”
수철은 웃음을 뿜을 뻔했다. 입술에 힘을 주며 애써 억눌렀다. 운전에 집중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도 쌤은 네 가사를 많이 칭찬하시던데?”“알고 있어요. 눈빛이 그러시더라고요.”
갈수록 더 재밌어졌다.
가사를 칭찬하는 건 당연하다는 투로 말하는 녀석을 보니 흥미가 솟구쳤다.
녀석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술 더 떴다.
“얼른 제 진가를 깨달으셔야 하는데, 너무 가사에만 관심을 보이는 거 같아요. 제가 한국의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될 걸 아직 모르세요.”
풉.
이번엔 정말 참기가 어려웠다. 입술까지 뿜어져 나온 웃음을 억지로 억누르느라 얼굴이 빨개졌다. 개그 지망생을 태우고 드라이브하는 기분이었다.
수철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고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근데, 인탁아.”
“네.”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는 알겠는데, 예가 좀 지나친 거 같아.”“왜요? 제가 커트 코베인처럼 되지 말란 법 있나요?”
인탁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거센 반항의 눈빛을 보이며 목소리를 키웠다. 수철은 그런 인탁의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게 아니라, 그분은 자살하셨잖아……. 나랑 비슷한 나이에…….”
“…….”
뭔가 깨닫는 게 있는지 인탁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수철은 사람들이 예를 들 때 커트 코베인을 거론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젊은 나이에 자살했기 때문이 아니다.
천재는 사회와 타협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찍 죽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천재의 그런 모습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철은 커트 코베인의 가족이 자살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삼촌 두 명도, 어머니의 할아버지도 모두 그렇게 돌아가셨다. 성공하지 못했어도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많았다. 우울증은 그들의 가족력이었다.
우울한 감정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태우는 에너지가 된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거장들 중에는 우울증을 앓은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수철 자신도 한때는 그랬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몸 안에서 불타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서 요절해 버린 천재들은 많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내와 어린아이를 남기고 간 그는 그저 도피한 것이다.’
인탁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섣부른 거 같아 다음으로 미뤄 두기로 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철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먼저 웃음소리를 냈다.
“하하! 암튼 재밌네.”
“……?”
“쌤이 원래 사람들의 진가를 잘 알아보는 분이시거든. 그런데 어떻게 네 진가는 몰랐을까?”
“…….”
“네 진가는 너무 꼭꼭 숨겨져 있어서 알아보기 힘드셨나 보다. 그치?”“네, 뭐. 그럴 수도.”
인탁은 떨떠름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래도 잠시 딱딱해졌던 녀석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수철은 드라이브하는 동안 인탁의 긍정 에너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박 대표의 말대로 거칠지만 그랬다.
―내가 선택한 게 아니야. 그 녀석이 날 선택한 거지. 어느 날 녀석이 묻더라고, 자신의 스승이 될 생각이 없냐고. 하하.
박 대표의 말대로 넉살도 지나치게 좋은 녀석이었다.
긍정을 넘어서 ‘음악 재능 따위는 개나 줘 버려’ 하는 눈빛도 보였다.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은 갈구하지 않았다. 영리한 녀석이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도 보였다.
음악 결핍이 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결핍을 메우려고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음,
재능이 없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작곡하고 노래하겠다는 건 이제 더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처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어려운 길이다. 남들을 따라가려면 걷지 말고 뛰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가 많을 것이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남들과 다른 길을 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람들이 가는 길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면 된다.
음,
그러려면 가사에 비중을 싣고 음악은 그걸 지탱하는 버팀목 정도에서 만족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이 되지 않게 좀 더 유심히 지켜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음악은 이래라저래라 누가 설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어보면 방향을 알려 주는 정도가 최선이다. 박 대표가 그랬듯이.
어찌 됐건 그런 면에서 인탁이 한국의 커트 코베인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건 다행이었다. 방향 설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트 코베인도 뇌리에 박히는 가사를 많이 썼다.
특히 ‘Smells Like Teen Spirit’ 같은 가사는 사람들이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할 정도로 영혼을 자극했다.
커트 코베인을 얘기할 때 작곡이나 노래보다 가사에 힘이 많이 실리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넌 누구 부러워하고 그러진 않지?”
한동안 말없이 운전대만 잡고 가다가 고개를 돌렸다.
“네, 뭐. 별로.”
인탁은 시큰둥하게 끄덕였다.
“커트 코베인은?”
“정말 대단하죠. 최고예요.”
혀를 내두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하하, 녀석.”
인탁은 그를 천재라고 했다. 가사는 예술이고, 음악의 깊이는 세계에서 최고라고 했다.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그의 열정과 끼를 사랑한다고 했다. 인탁에게 커트 코베인은 롤모델이 확실했다.
“음악성은 어떤 거 같아?”
“최고죠.”
“그래?”
“네, 열정과 끼가 예술이잖아요?”“열정과 끼가 예술이면 음악성이 최고인 거야?”“당연하죠! 그게 음악성이죠. 사람들을 터치하잖아요?”
인탁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눈빛이었다. 인탁에게는 폭발적인 열정과 끼, 그것이 음악성이자 모든 것이었다. 그것이 커트 코베인을 천재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그래, 그게 음악성 맞지.”
수철은 천천히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사람들의 가슴을 터치하는 게 가장 큰 음악성이니까. 커트 코베인은 그걸 해냈으니까.
수철은 인탁이 그걸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어떤 방향을 알려 줄지 판단이 섰다.
* * *
“수정과 마실래?”
“아니요, 곶감만 먹을게요.”
박 대표는 자신의 잔에만 수정과를 채우고 수철과 마주 앉았다.
“드라이브는 어땠어?”“재밌었어요. 그리고 얘기해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쌤이 왜 닮았다고 했는지.”
수철은 그날 인탁에게는 자신과 비슷한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꼈다. 박 대표가 왜 그렇게 닮았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치? 내 말이 맞지?”“네, 어느 정도는요.”“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제 둘이 붙어 다니겠네. 하하”
박 대표는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이 말하고는 껄껄 웃었다.
수철은 표현은 안 했지만, 인탁이 마음에 들었다.
재능이 있건 없건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한다.
나는 내 스타일대로 살면 된다.
수철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박 대표의 예언대로 그날 이후 수철과 인탁은 붙어 다녔다. 심지어 인탁은 집에도 가지 않고 수철을 따라다녔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밤새 수철의 공간에 불이 켜 있을 때가 많았고, 어떤 때는 카라반에서 같이 놀고, 어떤 때는 레베카와 셋이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박 대표의 밤낚시에도 따라와서 하라는 낚시는 안 하고 밤새 둘이 수군거렸다.
녀석들, 참.
예상은 했지만, 그 정도로 수철이 누구와 붙어 다니면서 낄낄거리는 모습을 박 대표는 처음 봤다.
물어보면 수철은 그냥 재밌다고만 했다.
일을 미루는 법이 없는 녀석이 일까지 미뤄 놓고 어울리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면 바빠질 거라는 말만 하면서.
―인탁아, 라면 먹을래?
―네, 제가 불 피울게요. 소시지도 꼬챙이에 끼워서 구워 먹어요.
―그래, 그러자!
박 대표는 둘의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비슷한 에너지를 가진 두 녀석, 가득하다 못해 넘쳐흐를 거 같은 끼. 그런데 한 명은 지나칠 정도의 재능을 갖고 있고, 한 명은 지독할 정도로 음악 유전자가 없다.
그런데 둘이 같이 있으면 비슷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박 대표는 팔짱을 낀 채 낄낄대는 수철과 인탁을 창가에서 한동안 지켜봤다.
* * *
“박치는 못 고치는 거죠?”“아니, 고칠 수 있어.”
“진짜요?”
“당연하지. 방법을 알려 줄까?”
“네! 어서요!”
수철은 인탁에게 음악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인탁이 물어오면 알려 줄 뿐이었다.
“머리에 메트로놈을 집어넣으면 돼.”
“네?”
“뭘 놀라? 머리에 메트로놈이 없어서 박자감이 떨어지는 건데. 박자를 잡으려면 당연히 메트로놈을 집어넣어야지.”
“어떻게요?”
“단순해. 메트로놈을 귀에 붙이고 다니면 돼. 머릿속에 자리 잡을 때까지.”“알겠어요. 못 할 거 없죠.”
인탁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바로 전자 메트로놈을 사서 귀에 꽂았다. 그리고 빼지를 않았다. 잘 때도 꽂고 잤다. 마치 본드로 붙인 것처럼 메트로놈은 녀석의 귀에 항상 붙어 있었다.
정말 열정 하나는 무식할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머지않아서 벌어졌다.
녀석이 히죽거리며 다가왔다.
“이제 다 들려요.”
“뭐가?”
“박자가요.”
잔뜩 미소를 머금고 말하는 녀석은 마치 신세계를 접한 표정이었다.
박자라는 신세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