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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가 돌아왔다-233화 (233/239)

#233화. 천재로 사는 건

수철은 이제 시간이 넉넉지 않다. 앨범 작업을 마무리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앨범을 발표하고 나면 계획한 일들이 많다.

그래서 그전에 인탁이 그렇게 목말라하는 앨범 한 장을 프로듀싱해 줄 생각이다. 다른 건 없고 프로듀싱만. 그것도 인탁이 그동안 열심히 해서 꾸준히 성장했기에 가능한 얘기다.

앨범을 발표하고 안 하고는 그다음 문제다. 우선은 노래를 녹음하는 과정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지난번에 네가 만들었다는 곡 있지?”

“네.”

“그 곡 계속 연습해 봐. 녹음해 보게.”“곡이 너무 짧다면서요?”

“그럼 늘려 봐.”

“어떻게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혼자서 다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

“일주일 줄게. 그 안에 완성하면 녹음하는 거고, 아니면 없었던 얘기로. 나도 이제 바쁘거든.”

녀석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수철이 엄포를 놓자 미친 듯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가 잘 안 풀릴 때면 쿵쿵 소리를 내며 카라반 모서리에 머리를 박기도 했고, 반쯤 정신이 나가서 중얼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박 대표가 옆에 앉아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사우나에서 땀을 빼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직원들이 인탁에 대해서 수군거리기 시작할 무렵, 인탁은 수철이 말한 마감 시간에 딱 맞춰서 악보를 내밀었다.

“다 했어요.”

“몇 곡?”

“두 곡이요.”

“오케이, 5층으로 올라가자.”

* * *

수철은 인탁이 만든 음악을 몇 번 들어 보고는 바로 녹음을 시작했다.

인탁은 수철이 자신의 음악에 대해서 평가해 주길 기대했지만, 수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사도, 작곡도, 편곡에 대한 평가도 일절 하지 않았다.

수철은 처음부터 음악 작업에는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물어보는 것만 알려 줄 뿐 평가할 생각도 없었다. 수철은 오직 프로듀싱만 해 줄 생각이다.

“마이크 세팅했으니까 준비됐으면 들어가서 시작해.”

“네, 알겠어요.”

수철이 평소와 다르게 낮은 목소리로 얘기하자 인탁은 주섬주섬 악보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보는 왜 들고 들어가?”

“그냥요.”

“놔두고 가. 네 곡인데 악보가 왜 필요해?”

“……네.”

인탁은 악보를 내려놓고 쭈뼛하며 돌아섰다.

“인탁아.”

“네?”

“파이팅!”

“네, 파이팅!”

노래하러 들어가는 녀석의 어깨가 너무 처져 있어서 주먹을 쥐며 응원해 줬다. 덕분에 녀석의 표정이 좀 밝아졌다.

“시작할까?”

“네.”

인탁이 부스 안에서 헤드폰을 쓰고 마이크 앞에 서자 수철은 인탁이 만들어 온 반주를 플레이했다. 그리고 인탁이 노래하는 모습을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대서 바라봤다.

인탁은 긴장하고 있었다. 지난번 녹음실에서 안 좋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너무 잘 부르려고 해서, 자기 노래를 남의 노래 부르듯이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철은 끊지 않고 끝까지 다 녹음했다.

노래가 끝나고 인탁이 수철을 바라보자 수철은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네가 부른 거 틀어 줄 테니까. 잘 들어 봐.”

“네.”

수철은 방금 녹음한 인탁의 노래를 다시 틀어 줬다. 예상대로 노래를 듣는 인탁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수철이 굳이 듣게 한 것은 첫 번째 부른 노래가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불렀는지 알아야 더 나은 녹음을 할 수가 있다.

노래가 끝나자 수철은 다시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다시 녹음해 볼까?”

“네.”

바로 녹음 버튼을 눌렀다. 반주가 다시 플레이되자 인탁은 아까보다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철은 다시 인탁이 노래하는 모습을 살폈다. 노래하는 인탁의 마음이 어떤지 살폈다. 잠시 그렇게 지켜보다가 몸을 세웠다. 마이크 버튼을 눌렀다.

“잠깐 끊을게.”

수철은 몇 마디 지나지 않아 노래를 끊었다. 인탁은 눈을 감고 집중하다 수철의 목소리에 놀라서 눈을 떴다.

“인탁아.”

“네.”

“너무 의식하면서 노래하는 거 같아. 네 노래인데 남의 노래 부르는 거 같거든?”

인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수철은 빠른 진도를 위해 이 부분은 바로 집어 줬다.

“심호흡 한번 하고, 어깨에 긴장 풀어. 네가 지금 너무 연습법을 의식해서 그런 거야. 노래할 때는 그런 거 다 잊어버리고, 느낌을 따라가. 네가 좋아하는 필을 따라가라고.”

“네.”

수철은 본격적으로 보컬 녹음에 관여하며 프로듀싱을 시작했다. 인탁이 만든 음악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녹음을 대충 할 수는 없다. 컨트롤 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시 가 보자.”

“네.”

인탁은 어깨를 몇 번 앞뒤로 돌리고 숨을 크게 내쉬고는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음악이 시작되자 아까와는 다르게 부르려고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큰 변화는 없었다.

소리는 계속 부자연스럽게 들어왔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못한 느낌이었다.

“다시 갈게.”

“네.”

“다시.”

“네.”

“다시!”

“네!”

노래는 몇 마디를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반복됐다.

인탁은 정신을 집중하려고 볼을 두드리고 심호흡을 계속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잠시 쉬었다 하자.”

결국 수철은 인탁을 부스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시원한 주스를 한 잔 건넸다.

“그렇게 앉지 말고 편하게 앉아. 다리도 쭉 뻗고, 탁자 위에 올려도 괜찮아.”

수철은 인탁을 최대한 편한 자세로 만들어 주고, 어깨도 주물러 줬다. 마치 종이 울리고 코너로 돌아온 복서를 대하는 트레이너처럼.

“긴장하지 마,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긴장해?”“모르겠어요. 저도 왜 그런지.”“알면서도 잘 안 되지?”

“네.”

“잘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너무 잘 부르려고 그래서 그런 거야. 평소 연습할 때처럼 부른다고 생각해. 오케이?”

“네, 알겠어요.”

“그리고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예전의 그 패기는 다 어디 갔어? 힘있게! 자신감 있게 불러 봐. 할 수 있지?”

“네, 파이팅!”

“그래, 파이팅!”

인탁은 다시 부스 안에 들어가서 마이크 앞에 섰다. 녹음이 시작되자 노래에 집중했다.

이야기를 나눈 덕인지 긴장이 많이 풀린 거 같았다. 목소리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소리는 다소 거칠어지고 음정과 박자도 아슬아슬했지만 수철은 끊지 않고 끝까지 녹음했다. 인탁만의 느낌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케이! 수고했어!”

수철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인탁은 한껏 입이 벌어졌다. 부스 안에서 환호하며 점프까지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어진 두 번째 곡에서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자신이 만든 곡을 자책할 지경에 이르렀다.

“괜찮아. 다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야.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네가 아는 모든 보컬이 다 이 과정을 겪었어.”

녀석이 붉으락푸르락하길래 수철은 다독여 줬다. 녹음은 끝마쳐야 하니까.

그렇다고 좋지 않은데 오케이를 할 수는 없었다. 계속해서 녹음을 끊는 상황이 이어졌다.

“다시!”

“다시!”

“열세 번째 마디부터 다시 가 볼게, 쭉 듣다가 그때부터 따라 들어와.”

“네.”

녹음이 반복될수록 녀석의 목소리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다. 얼굴색도 계속 바뀌어 갔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으악!

머리를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눈을 부릅떴다.

“형! 저 너무 답답해요! 좀 나갈게요!”

수철도 더는 밀어붙일 수 없었다.

“그래,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수철은 녹음한 걸 저장하고 장비의 스위치를 모두 내렸다. 휴식한다고 해서 녹음을 계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 *

“타!”

“어디 가게요?”

“바람 쐬러.”

수철은 어디론가 달려가려던 인탁을 태우고 무작정 달렸다. 달리다 보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시드니가 생각났다. 답답할 때 막 달리던 그 해안 도로가 떠올랐다. 잠시 그곳을 생각하며 말없이 운전대만 잡았다.

인탁이 만든 멜로디와 편곡은 모두 단순하고 원색적이었다.

다듬어 주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절대 도와주지 않았다.

설령 흑역사가 돼서 나중에 원망을 듣더라도 지금은 자신의 민낯을 봐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한번 감추기 시작하면 영원히 감추게 된다. 자신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하다.

만약에.

만약에 자신의 본색을 깨닫고 음악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이 관문은 꼭 마주해야 할 벽이다. 어차피 못 넘을 벽이라면 질질 끌지 말고 지금 포기하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된다.

둘은 서로 말이 없었다. 굳이 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 이럴 땐 조언보다는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 먼저 말을 걸어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좋다. 수철도 입을 굳게 닫은 채 강원도를 향해 무작정 밟았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멍하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표지판을 보던 인탁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어디 가는 길이에요?”

“강원도 양양.”

“양양은 왜요?”

“특별한 이유는 없어. 기왕 나왔으니까 멀리까지 가 보는 거지 뭐. 하조대 어때?

“하조대요?”

“거기 바다 예쁘잖아? 바다 보면서 회도 먹고.”

“좋아요. 흐흐.”

녀석, 웃기는.

* * *

인탁은 모듬회를 초장에 듬뿍 찍어서 깻잎에 올려놓고 마늘과 야채를 더해서 한 움큼 입에 집어넣었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상추 쌈을 된장에 푹 찍어서 우걱우걱 씹었다.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한창 성장할 나이에 몇 시간이나 노래를 불렀으니.

허기가 지는 것은 당연했다. 수철은 말없이 잔에 사이다를 따라 줬다.

한참을 그렇게 허기를 채운 녀석은 이제 이성이 돌아오는지 사이다를 홀짝이다가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뭐가?”

“녹음이요.”

“죄송할 게 뭐 있어? 누구나 다 겪는 건데. 그래서 사람들이 첫 녹음에서 많이 배운다고 하는 거야.”

당연히 처음 하는 앨범이고, 자신감만 넘쳤으니 실전에서 깨지는 건 당연하다. 이러면서 성장하는 거고. 뮤지션은 누구나 깨지는 구간이 있다.

“차 한잔하고 갈까?”

“네.”

회를 먹고 나와서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해가 지며 붉게 물들고 있었다.

“천재로 사는 건 어때요?”

어두운 바다 위로 날아가는 갈매기 한 쌍을 바라보는데, 인탁이 대뜸 물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천재라니?”

“형, 천재잖아요?”

“하하, 녀석. 누가 그래?”“인터넷에서 봤어요.”

“…….”

대체 녀석은 거침이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 내가 천재라고 치고. 근데 그게 왜 궁금해?”“당연히 궁금하죠. 나랑은 완전 반대니까요.”

“…….”

잠시 녀석을 바라봤다.

“너, 원래 그런 거 안 궁금해했잖아? 남이 천재든 아니든 관심도 없고.”“지금은 궁금해요.”

수철은 인탁이 차를 타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안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열받고, 자신이 이것밖에 안 되냐는 생각에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호언장담했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을 것이고, 분을 삭이느라 식식댔을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재능 때문에.

“천재로 살면 인생이 편하냐고 묻는 거지?”

“네.”

“솔직히 말해 줘?”

“네.”

“사실 그런 거 몰라.”

“……?”

“그건 다른 사람의 시각이지, 난 그런 거 몰라.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 말에 동의하지도 않아. 그냥 음악이 좋아서 하는 거야. 너처럼.”

그 말에 녀석은 빙그레 웃었다. 주먹을 내밀어 부딪혔다. 마음이 통했다는 뜻이었다.

―안녕히 계세요.

―네, 또 오세요.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어느덧 차가운 바다 위에 밤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곳을 바라보는 수철과 인탁은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이곳까지 달려온 건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생각해 보니까 천재로 사는 건 별로 안 좋을 거 같아요.”

돌아오는 길, 창틀에 팔을 기대고 어두운 창밖을 보던 녀석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

“어딜 가나 시선이 집중될 테니 불편하잖아요.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많을 테고.”

“잘 아네?”

“생각해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하하, 그래. 그 말이 정답이다.”

수철은 크게 웃으며 인탁의 짧은 머리를 휙 한번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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