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한 방에 다 끝내 버릴까?”
“넵!”
다음 날 다시 녹음이 시작됐다. 인탁은 씩씩하게 대답한 것처럼 노래도 씩씩하게 불렀다.
하루 여행 덕분인지 컨디션이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인탁은 딱딱한 연습법은 잠시 내려놓고, 다시 예전의 패기를 되찾아서 노래했다.
덕분에 바로 녹음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수고했어!”
“네, 형. 수고하셨어요! 그리고 감사해요!”
녀석은 힘들었던 녹음이 끝나자 입이 한껏 벌어졌다.
부스 안에서 나오기 무섭게 수철에게 달려들어서 매달렸다. 수철을 등에 업고 컨트롤 룸을 뛰어다녔다.
* * *
“믹싱 다 했다고?”
“네, 들어 보실래요?”
수철은 인탁이 노래한 트랙을 서둘러 믹싱하고, 박 대표와 정 실장을 녹음실로 초대했다.
둘은 성큼성큼 컨트롤 룸에 발을 디뎠지만 사실 이번 녹음은 박 대표도 정 실장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아직 다 익지도 않았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
되물었었다.
―지금이 적당한 때인 거 같아요. 지금 아니면 앞으로 제가 시간도 없고요.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수철이 인탁의 녹음을 진행한 건 같은 감정을 느껴서다. 끼가 많은데 재능이 부족해서 답답해하는 인탁, 재능은 있지만 트라우마에 갇혀서 답답해했던 과거의 수철. 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인탁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이됐다. 그래서 그 답답함을 해소해 주고 싶었다.
―어디까지 관여하게?
―프로듀싱만 할 생각이에요.
―앨범은?
―믹싱까지만 하고, 그다음은 들어 보고 판단하시면 될 거 같아요.
믹싱까지가 수철이 도울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그다음은 인탁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외롭더라도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이다. 수철이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있지만 더는 끌어 줄 수가 없다.
“하하!”
“하하하!”
음악을 다 들은 박 대표와 정 실장은 크게 웃었다. 컨트롤 룸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껏 웃었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모습이지만 수철은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이건 다 같이 들어 봐야겠어. 하하!”
박 대표는 한 번 더 크게 웃고는 믹싱한 CD와 가사를 들고 아래로 내려갔다.
* * *
“하하하!”
“하하하!”
짝짝짝!
음악을 들은 직원들은 모두 박 대표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자지러지게 웃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인탁이 이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람도 있었다.
“이 곡을 타이틀 곡으로 밀면 대박 날 수도 있겠어요. 하하.”
윤 팀장이 선택한 곡은 단순한 후크 송(hook song) 같은 멜로디에 빠른 댄스풍의 곡,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린 것은 가사 때문이었다.
제목은 왼쪽 엉덩이에 대한 고찰.
내용은 헤어진 전 여자친구가 걸을 때 왜 유독 왼쪽 엉덩이만 씰룩대는지, 끝내 물어보지 못하고 헤어진 것을 아쉬워하는 내용이었다.
수철은 이 가사를 처음 봤을 때 인탁의 경험담처럼 느껴졌다. 수철도 작사하니까 그걸 알 수 있었다.
음악을 다 들은 사람들은 한번을 더 돌려 듣고는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떠세요? 앨범으로 한번 내 봐도 재밌지 않을까요?”“앨범으로 내기는 좀 그런 거 같은데?”“왜요? 논란보다는 사람들이 재밌어할 거 같은데요? 음악으로 웃음을 주는 것도 좋잖아요? 새로운 시도도 되고.”“그래도 이 곡은 너무 장난 같잖아?”
직원들은 의견이 계속 엇갈렸다. 너무 장난스럽다는 얘기와 의외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얘기, 너무 음악을 진지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과 그렇다고 장난 같은 음악을 하는 건 아니라고,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의견까지.
어찌 됐건 수철의 역할은 끝났다. 발매할지 안 할지는 회사가 선택할 문제다.
* * *
사람들이 인탁의 음악을 놓고 내느니 마느니 토론을 벌일 때 수철은 앨범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노르웨이에서 만들어 온 세 곡에 새로운 곡 두 곡을 더 붙여서 총 7곡을 완성했다.
“그럼 앨범에 대한 설명 좀 들어 볼까?”
박 대표는 회의실 탁자에 두 손을 올려놓고 몸을 기울였다. 다른 직원들도 기대감을 갖고 진지한 표정으로 수철을 바라봤다.
수철은 이례적으로 이번 앨범을 박 대표와 몇몇 직원에게 프레젠테이션하기로 했다. 이번 앨범에 대해선 발매하기 전에 설명할 게 좀 많다. 지난 앨범과 접근 방법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앨범의 색깔에 맞춰 보도 자료와 홍보 방향도 정해야 하고 이어질 쇼케이스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다. 그래서 예전에 박 대표에게 배운 앨범 기획안까지 만들어서 가사와 함께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공식적으로 이번 앨범은 다섯 번째 앨범이다. 가사를 쭉 훑어본 정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번 앨범은 세상에 던지는 화두가 있는 것 같네요?”
그는 실장답게 예리하게 수철의 의도를 파악했다.
“네, 맞아요. 정확히 짚으셨어요.”
이번 앨범에서 수철이 시간을 오래 끈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화두를 던지기 위해선 확신이 필요했고, 신중해야 했다. 그래서 음악 곳곳에 고민하고 에너지를 많이 쏟은 흔적이 묻어 있다.
이번 앨범은 지난 3년간 여행의 총정리이자 지난 두 장 앨범의 완결판이다.
“먼저 첫 번째 곡 들려드릴게요.”
수철은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됐는지 쭉 한번 둘러보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수철이 첫 번째 곡을 틀자 사람들은 기대에 찬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집중했다.
첫 번째 곡은 ‘가장 아름답고 싶어서’이다.
이 곡은 수철이 캄보디아에서 만난 한 소녀의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아암을 앓고 있어서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소녀, 그 소녀의 꿈은 슈퍼모델이다. 꼭 슈퍼모델이 돼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들에게 용기를 주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소녀는 어려운 항암치료를 버텨 내며, 매일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색칠했다. 그 스케치북을 꼭 껴안고 잠이 들었다.
수철은 이미 그 소녀가 절반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소녀는 이미 가장 아름다웠다. 그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있었다. 소녀가 누워 있는 병실은 열약함에도 불구하고 항상 빛이 날 정도로 밝았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그 순간조차도.
“…….”
“…….”
음악이 끝났는데도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먹먹한 눈으로 수철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수철의 마음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말은 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느낌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곡은…….”
수철은 사람들이 감정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두 번째 곡은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라는 곡이다. 콜롬비아에서 만난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년은 어렸을 때 난폭한 강도에게 부모님을 잃었다. 그때 소년을 안고 있던 엄마가 쓰러지면서 소년도 한쪽 눈을 잃었다. 이제 소년에게 남은 가족은 연로한 할아버지밖에 없다.
그래서 소년은 할아버지를 꼭 지키고 싶다. 더는 난폭한 일을 당하지 않게 막고 싶다. 그래서 소년이 선택한 꿈은 경찰이다. 진짜 경찰이 돼서 사람들을 지켜 주고 싶다.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아까와 달리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이해된다는 뜻이었다. 수철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음악에서 의도한 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곡은…….”
수철은 계속해서 작업한 곡을 들려줬다.
‘어느 날 문득 눈을 뜨니’라는 제목의 다음 곡은 제목처럼 어느 날 문득 눈을 뜨니 너무 달라져 버린 세상에 놀라 하는 모습을 담았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발전하는데, 그렇지 못한 세상의 사람들은 매일 더 뒤처지게 돼서 눈을 뜰 때마다 놀란다는 내용.
여기까지 보면 지난 앨범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지난 앨범이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그쳤다면, 이번 앨범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향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왜 가장 아름다울 수 없는지, 왜 경찰이 될 수 없는지, 왜 눈을 뜨는 게 두려운지. 그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가치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지난 두 장의 앨범과 연결되는 프로젝트의 완성 같은 앨범이다. 긴 여행의 종결 의미를 갖는다.
“다음 곡은…….”
수철은 계속해서 쭉 일곱 곡을 모두 들려줬다. 사람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집중해서 음악을 들었다. 음악을 다 듣고 난 사람들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다 본 듯한 모습이었다. 뒤늦게 스트레칭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사람도 있었다.
수철은 사람들의 모습을 쭉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앨범 기획안을 집어 들었다.
“음악을 다 들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이번 앨범의 전체 제목을 ‘Can't hear, but exist’로 정했어요.”
Can't hear, but exist?
몇몇은 의미를 파악하고 눈을 반짝였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했다.
“들을 순 없지만 존재한다는 뜻이에요. 정확히는 ‘들리진 않지만, 존재하는’이란 표현이 맞겠죠. 이번 제 앨범에서는 그래요. 그런 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으니까요.”
그제야 사람들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가사집을 뒤적였다. 가사에 수철이 말한 ‘들리진 않지만, 존재하는’ 이야기가 다 녹아 있으니까.
사실 이 제목은 지난 ‘영웅과 쏟아지는 평화’ 앨범에서 어느 한 평론가가 비슷하게 수철의 의도를 찾아낸 적이 있었다. 그때 그 평론가도 수철과 비슷한 표현을 썼었다.
이번에 수철은 그동안 감춰져 있던 생각을 드러내 놓고 제목으로 삼았다.
“제목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
이미 제목의 의미를 파악한 사람들은 두 가지라는 말에 다시 궁금한 눈으로 바라봤다.
“가사는 아시다시피 너무 작아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에 관한 얘기를 담았고, 음악에도 마찬가지로 그런 소리를 담았어요.”
“……?”
“들리진 않지만 존재하는 소리. 지금 여러분들이 들은 음악에는 그런 소리가 담겼어요. 존재하지만 귀로는 듣지 못하는 소리가요.”
“……?”
영문을 모를 말에 사람들의 눈엔 점점 힘이 들어갔다.
“정확히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예요. 가청 주파수(audio frequency, 사람의 귀가 소리로 느낄 수 있는 음파의 주파수 영역)가 낮아서요.
……!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정 실장은 물론이고 묵묵히 음악만 듣고 있던 박 대표의 눈까지 덩달아 커졌다. 수철은 그런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사람들이 묻기 전에 먼저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음악을 들을 때 공감이 잘되고 감정이 증폭되는 거 같지 않았나요?”
수철은 남들보다 가청 주파수의 폭이 넓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는 소리를 수철은 들을 수 있다.
어릴 적 부모님에게 안겨 있던 수철의 머리가 휙휙 돌아간 것도 그 때문이고, 틱 장애가 있는 줄 알고 부모님이 놀랐던 것도 그런 이유다.
부모님에겐 들리지 않는 소리가 수철에겐 들렸기 때문이다.
수철은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를 이번 음악 안에 집어넣었다.
들리진 않지만 느낄 수는 있는, 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분명 들리는.
수철은 그 소리를 집어넣었다.
“정확히 어떤 소리예요?”“그렇게 한 이유가?”“넣고 안 넣고 어떻게 확인할 수가 있죠? 들리지 않는데?”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인터뷰장에 몰려든 기자 같았다. 가사는 쉽게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음악에서는 사람들의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렇게 한 건 들리지 않는 음역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들리지는 않지만, 그 소리가 사람에게 영향을 주거든요. 마음을 움직여요.”
“…….”
“연출이라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하실 거예요. 이런 연출은 영화에서도 많이 쓰거든요. 원리는 간단해요, 영화에서는…….”
영화에서는 편집할 때 프레임(Frame)과 프레임 사이에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는 장면을 집어넣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장면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봤다고 인식하진 못하지만, 갑자기 햄버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보진 못했지만 존재해서 영향을 미치는, 수철이 들리진 않지만 존재하는 소리를 집어넣은 이유와 같다.
영화에서는 광고주들이 써먹었지만, 수철이 앨범에서 이런 시도를 한 건 사람들의 감정을 증폭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문제가 많았다. 이렇게까지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