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D―프로젝트의 시작
수철은 이번 작업에서 가청 주파수를 벗어난 소리를 넣기로 결정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많은 고민을 했다. 인탁과 어울리면서도 머릿속엔 내내 그 생각을 담고 있었다.
인탁과 시간을 보낸 건 어쩌면 그런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정확히 어떤 소리예요?
다른 질문엔 답해도 이 질문에는 선뜻 답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과 맞닿아 있었다. 들리지 않는 그 소리는 바로 아이들의 신음 소리였기 때문이다. 들리진 않지만, 아이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가 음악에 담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철은 확신이 설 때까지 고민에 고민을 끝없이 했다.
그런 소리를 넣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맞는 건가?
내 생각을 알리기 위해서 감정을 증폭시키는 게 맞는 건가?
죄책감이 들지 않겠는가?
만약 그런 소리를 넣는다면 어디까지 접근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했다. 고민을 넘어 수철에게 던져진 숙제였다. 아니, 수철이 스스로 달려든 벽이었다.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는, 가장 첫 번째 벽이었다.
인탁이 음악성의 벽을 넘고 있을 때 수철은 갈등의 벽을 넘고 있었다.
* * *
“그래서, 계속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네.”
“그런 이유로 결국 집어넣기로 선택한 거고?”
“네.”
수철은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박 대표의 사무실에 마주 앉았다. 수철은 갈등이 많았음에도 그런 소리를 집어넣기로 한 이유를 박 대표에게 말했다. 판단이 서지 않아서 계속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편에 서려면 확실하게 서자는 판단이 섰다는 얘기를 전했다.
박 대표는 대화를 멈춘 채 수철을 바라봤다. 시선은 수철에게 둔 채 생각에 잠겼다. 조용한 사무실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렸다.
수철은 방해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박 대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박 대표의 시선이 의식되지만 그래도 모른 체 곶감만 뜯었다.
“알았어.”
수철이 마지막 한 조각의 곶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릴 때쯤 박 대표는 입을 열었다.
“내가 충격을 받은 건 너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야. 난 항상 널 지지해. 이번엔 지지를 넘어서 존경하는 마음까지 들었고.”
“…….”
“내가 충격적이라고 말한 건 좋은 의미에서야. 신선한 충격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거야.”
“감사해요, 쌤.”
수철은 자신의 판단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우려했었는데 박 대표의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
“난 그것보다 네가 혼자서 힘들게 고민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 무척.”
수철을 보는 박 대표의 눈빛이 갑자기 깊어졌다. 수철이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역시 박 대표는 수철의 마음 한구석까지 꿰뚫고 있다.
“우시게요?”
하지만 수철은 박 대표의 그런 눈빛을 오래 놔두지 않았다.
“뭐? 하하, 녀석. 감정을 못 잡게 하네.”
수철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자 박 대표는 웃음을 보이며 몸을 세웠다. 고개를 몇 번 젓고는 다시 입을 뗐다.
“오케이, 음악은 그렇게 하고. 공연을 크게 늘리자고?”
“네.”
그동안 스테파노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스테파노는 수철이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아무래도 수철을 만나려면 자신이 한국에 와서 공연해야겠다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사라 제이는 한국팬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서 공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전했고, 제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수시로 밝혔었다. 전혜미 소프라노도 한국에 돌아오면 콘서트부터 할 계획이라고 했다. 수철에게 받은 곡으로.
―요즘 다들 그러네?
수철이 사람들의 소식을 전했을 때, 박 대표는 뮤지컬과 오페라 또한 한국에서의 공연을 희망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수철은 이번 기회에 공연을 확대해서 크게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번 앨범의 쇼케이스와 사람들의 공연을 묶어서 다 같이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일이 너무 커질 거 같은데?”“전 오히려 재밌을 거 같은데요?”
둘은 마주 보며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이건 직원들과 상의를 좀 해 봐야 할 거 같다. 회사 스케줄도 봐야 하니까.”“네, 회의하시고 결과를 알려 주세요.”“그래, 알았어. 어쨌든 녹음은 쇼케이스 시기에 맞춰서 하겠다는 거지?”“네,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녹음하고, 앨범 출시하고, 바로 쇼케이스 하면 좋을 거 같아요.”“멤버들이 모였을 때 한 번에 하는 게 좋긴 하겠지. 앨범은 좀 늦어지겠지만.”
박 대표는 머릿속으로 일정을 구상하며 끄덕였다. 수철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회사에서 녹음하면 재밌을 거 같아요. 멤버들도 제 숙소나 캐러밴에 머물면 되고요.”
그 말에 박 대표는 갑자기 묘한 미소를 보였다.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려면 다혜랑 영준이는 분리해 놔야겠지?”
“……왜요?”
“눈꼴 시릴 거 아냐?”“아, 하하. 그건 쌤이 알아서 하세요.”“아무래도 천화 씨가 돌아올 때까진 그래야겠어.”
“천화 씨?”
“……암튼! 내가 둘이 그러는 꼴은 절대 못 봐 주지.”
“쌤!”
“왜?”
“앨범 얘기나 계속하시죠?”
수철이 핀잔을 주자 박 대표는 뻘쭘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흠, 내가 요즘 자꾸 이야기 중에 이탈을 하네…….”“아무래도 나이가…….”“또 뭔 말을 하려고 그런 표정?”“아니에요. 암튼 녹음은 그렇게 할게요.”“알았어. 자세한 일정은 정 실장과 조율하고.”“네, 그리고 멤버들은 제가 직접 연락할게요. 아무래도 그게 좋을 거 같아요.”“그래, 그건 알아서 해.”
“네.”
수철은 마시던 수정과를 내려놓고 휴지로 흘린 자국을 닦았다.
박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배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 하면서 컵라면이나 하나 해치울까?”
“있으세요?”
“당연하지.”
박 대표는 씨익 웃으며 책상 맨 밑 서랍을 열었다. 서랍엔 컵라면이 박스째로 들어 있었다.
“대단하세요, 쌤.”
“하하, 입이 심심할 때 하나씩 꺼내 먹으면 좋잖아? 너도 어서 하나 골라 봐.”
다 똑같은데 고르기는.
수철이 하나를 집어 들자 박 대표는 바로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후, 후―
박 대표는 뜨거운 라면을 불어서 입에 집어넣으며 공연 얘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그러니까, 싹 다 모아서 덩치를 키우자는 얘기지?”“네, 쌤이 말씀하신 뮤지컬과 오페라, 그리고 스테파노, 사라 제이, 제시, 전혜미 소프라노의 공연까지 다 합해서요. 준이 형과 다른 디데이 뮤직 소속 뮤지션들도 참여하면 좋고요.”
음,
박 대표는 마시던 국물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이거, 잘하면 우드스탁(Woodstock)처럼 되겠는데?”
* * *
―실장들, 팀장들. 회의실로 좀 모여 봐요.
박 대표는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수철도 참석했다.
박 대표는 모인 실장과 팀장들에게 수철이 제안한 공연에 관해 전했다.
사람들은 묵묵히 박 대표의 설명을 들었다.
“하게 되면 금별 없이 우리가 다 해야 하니까, 잘 판단하고 시작해야지.”
공연하게 되면 금별기획의 도움 없이 디데이 뮤직이 기획, 진행, 홍보, 정산까지 다 해야 한다. 출연진 섭외와 프로그램 구성까지도.
이번 앨범은 금별이 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큰 조력자였던 이 부장도 한국에 없다.
“이 정도면 공연이 아니라 음악 축제 수준인데, 우리가 하기에는…….”“규모가 크긴 하지만 공연 기획에 관한 경험도 쌓고, 회사의 입지를 올릴 절호의 기회지 않습니까?”“우리가 왜 공연기획의 경험을 쌓아? 음악만 잘하면 되지.”
예상과 달리 의견이 나뉘었다.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다. 몇몇은 소속 뮤지션의 일정까지 운운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몇몇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쇼케이스를 기획한 경험은 몇 번 있지만, 수철이 생각하는 공연의 덩치가 커도 너무 컸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수철이 나섰다.
“너무 부담되시면 클래식 파트는 다른 회사에 맡겨도 될 거 같아요. 우리는 컨트롤만 하고요.”
“…….”
“그리고 섭외는 걱정 마세요. 제가 책임지고 다 할게요.”
수철이 적극적으로 설득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절충안이 나왔다.
“일단 진행하면서 판단하는 게 어떨까요? 하다가 힘에 부치면 금별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고, 그때 가서 다른 기획사에 넘겨도 되잖아요.”
정 실장이 논리적으로 말하자 모두 동의하는 눈빛을 보였다. 박 대표가 나섰다.
“오케이, 그렇게 해 보자. 우선은 우리가 다 하겠다는 생각은 말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은 넘긴다는 생각으로 말이야. 그리고 금별은 내가 이진석 이사에게 미리 도움을 요청해 놓을게.”
박 대표가 결정을 내리자 일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공연 기획이 시작됐다. 박 대표는 사람들에게 파트를 분담하며 상황을 지휘했다.
“윤 팀장은 좌석 수와 시기에 맞춰서 사용 가능한 공연장이 있는지 먼저 알아봐.”
“네.”
“그리고 정 실장은 오페라와 뮤지컬 제작사에 연락해서 일정을 맞춰 봐. 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곳이니까, 시기를 조절하는 게 급선무야.”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철아.”
“네.”
“제시와 사라 제이, 그리고 클래식 파트는 네가 좀 도와줘야겠어. 섭외는 공식적으로 회사가 하겠지만 그래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너와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잖아?”
당연하다. 그런 이유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거니까.
“그건 걱정 마세요. 그분들이 먼저 하겠다고 한 거니까 날짜만 조절하면 될 거예요.”
“굿!”
수철이 대답하자 박 대표는 흡족한 미소를 보이며 사람들을 돌아봤다. 손뼉을 부딪치며 목소리를 키웠다.
“오케이! 다들 어서 움직여 보자고!”
* * *
“하린이도 이번 D―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다는데요?”
D―프로젝트는 디데이 뮤직(D―DAY MUSIC)의 D를 따서 이번 공연 프로젝트에 붙인 이름이다.
“진짜요?”
수철의 말에 정 실장의 입이 벌어졌다.
수철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출연진 섭외에 적극적으로 나섰었다. 덕분에 거론됐던 출연자 모두가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고, 일정까지 완벽하게 조율을 마쳤다.
그런데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하린이가 연락을 해 왔다.
―선생님 지인들이 모두 참여하는 공연이라면서요?
―그래, 그렇게 됐어.
―그럼 저도 참여해야죠!
―너도?
―당연하죠! 저는 지인보다 더 가까운 제자잖아요? 그것도 애제자.
한창 스케줄이 바쁜 하린이다. 대학생이 된 후로는 더 그렇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여신이라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엄청난 팬을 확보하고 있다. 금별의 계획대로 월드 스타의 반열에 한 걸음 다가선 하린이다.
그런 하린이 먼저 참여 의사를 알려 온 것은 기획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프로젝트에 큰 날개를 하나 더 달 수 있으니까.
“하린이는 무조건 오케이죠!”
정 실장은 쌍 엄지를 세웠다. 허락이 떨어지자 수철은 다시 하린이에게 연락했다.
―야호! 감사해요!
하린이는 오디션에 합격이라도 한 듯 환호를 질렀다.
“하하,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아니에요. 제가 선생님과 같이 무대에 서다니, 너무 감격스러워요.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진심으로 좋아했다.
“자세한 일정이랑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우리가 이사님이랑 상의해 볼게.”―네, 말씀 잘 나눠 보세요. 저도 꼭 참가해야 하니까요.
하린은 전화를 끊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의지를 확실히 했다.
그런데, 뒤늦게 공연에 참여하겠다고 연락해 온 사람이 하린이뿐만이 아니었다.
“은주와 마이클도 하고 싶어 한다고?”
“네, 한 곡만 불러도 좋으니까 자신들에게도 기회를 달래요.”“하하, 그 녀석들도 나름 팬이 많은 가수인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음,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하던 박 대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별도의 프로그램을 하나 더 만들어야겠어. 공연장도 하나 더 늘리고 말이야.”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연 규모를 걱정하던 박 대표였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공연을 키우는 데 재미를 붙인 모습이다. 수철은 변해 가는 박 대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