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가 돌아왔다-236화 (236/239)

#236화. 끼, 흥 그리고 피날레

출연진 확정, 공연장 계약, 프로그램 구성까지 끝난 후, 일은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됐다.

협찬하겠다는 회사가 줄을 이었고, 손을 떼고 구경만 하던 금별도 이 이사의 푸시와 함께 지원사격을 했다.

디데이 뮤직 전 직원이 몇 달 동안 이번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덕분에 처음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디데이 뮤직 단독으로 전체를 다 기획하고 진행했다.

어려울 땐 금별기획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다른 회사에 프로젝트를 넘기진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의 공식적인 타이틀도 정해졌다.

[끼, 흥 그리고 피날레]

모두 수철의 음악과 연관되어 있어서 디데이 뮤직에서는 수철의 앨범 타이틀을 노골적으로 갖다 붙였다.

총 공연 기간 2주, 예술의 전당, 샤롯데씨어터, 세종문화회관, 엘지 아트센터, 상암 월드컵 경기장 등 7개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리고 참여하는 출연진만 150명이다. 내로라하는 음향 업체와 조명 업체 3곳이 참여하고, 진행을 위해 동원된 스텝들만 200여 명이 넘는다. 과히 축제라고 해도 될 정도의 규모다.

그래서 기획만 두 달 걸렸고, 출연진 확정하고 프로그램 구성에 또 한 달이 걸렸다. 앞으로 2주의 연습 기간과 1주의 리허설이 남아 있다. 그것이 모두 끝나면 본격적으로 D―프로젝트 ‘끼, 흥 그리고 피날레’의 막이 열린다.

“이제 끝이 보이네요.”“끝이라니? 공연이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마지막까지 긴장 늦추지 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넵!”

* * *

[‘끼, 흥 그리고 피날레’라는 3가지 컨셉으로 3개 구역에서 시작하는 이번 디데이 뮤직의 공연프로젝트는 뮤지컬 ‘AMERICAN RADIATE’을 시작으로…….]

D―프로젝트 한 달을 앞두고서 본격적으로 보도 자료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모든 언론매체에서 대대적인 홍보가 시작됐다. 동시에 티켓 예매도 오픈됐다.

티켓은 빠르게 매진되어 버렸다. 전체 공연을 다 볼 수 있는 2주 오픈 티켓이 가장 빠르게 매진되었는데,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티켓 예매에 열을 올렸다.

“헤이! 수철!”

홍보가 시작될 무렵 ‘ASN’ 멤버들도 녹음을 위해서 한국에 입국했다. 덩치 큰 마커스는 캐리어를 밀고 나오다 수철을 발견하고는 팔을 번쩍 벌렸다.

“오랜만이야! 한번 안아 보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시작해 볼까요?”

“오케이, 고!”

멤버들은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곧장 녹음에 돌입했다. 수철이 미리 데모를 보내고 서로 이견을 조율한 탓에 녹음은 순탄하게 진행됐다. 벌써 네 장의 앨범을 같이했다. 수철이 어떤 사운드를 원하는지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리가 잘빠지네. 마음에 들어.”

멤버들은 디데이 뮤직의 녹음 환경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게 3일간 디데이 뮤직에 머물며 카라반에서 자고, 바비큐 파티도 하면서 녹음을 모두 마쳤다.

박 대표가 우려했던 눈꼴신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영준이 형과 다혜는 알아서 박 대표의 시선을 잘 피해 가며 데이트를 즐겼다.

짜식들.

박 대표가 의심의 눈초리를 날렸지만 둘은 시선을 다른 곳에 뒀다.

그리고 얼마후 윤천화 미술가가 귀국하자 박 대표의 관심은 그녀에게로 쏠렸다. 다른 사람의 데이트에 관심을 가질 틈이 없었다.

“오빠, 방금 쌤이 미술가 선생님께 자기라고 한 거 들었어요?”“진짜? 선배님이 진짜 그랬어?”

“네.”

“아이 오글거려.”

“…….”

* * *

“웰컴!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공연을 앞두고 출연진들이 속속 입국하기 시작했다. 리허설을 하기 위해서다.

제일 먼저 뮤지컬 팀이 도착했고, 그다음으로 오페라 팀이 도착했다. 스테파노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입국했고, 전혜미 소프라노와 사라 제이, 제시와 밴드도 입국했다.

디데이 뮤직은 이들의 숙소를 위해서 호텔 한 개를 통째로 빌렸다.

출연진들이 리허설에 한창일 때 수철의 앨범 ‘Can't hear, but exist’가 세상에 나왔다.

[예술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최대의 걸작품. 모든 아티스트의 로망.]

앨범이 출시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가 쏟아졌다.

평론가들이 평을 내놓자 기자들은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겼다.

[용수철과 ‘ASN’은 이번에도 대중성을 일컫는 모든 요소를 거부했다. 비웃기라도 하듯이 모두 벗어 던져 버렸다. 가사와 음악은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제 그들은 하나의 트랜드를 형성했다.]

[아픈 아이들의 꿈을 적고 있는 가사 때문에 음악이 무겁게 느껴질까 우려했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우리의 예상을 배신했다. ‘Can't hear, but exist’에서 용수철은 우릴 음악을 좋아했던 순수한 시절로 되돌려놨다. 그때의 꿈으로 돌아가게 했다. 그의 음악은 그랬다. 평론가들은 귀를 내려놓고 음악을 감상했다.]

[대가들은 그를 완성형 천재라고 표현했다. 소리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명확하고 간결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보다 더 선명하고 심플할 수 있겠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것은 물론, 마치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살린 느낌이라고 평했다.]

앨범이 출시되고 평론가들은 앞다투어 평을 내놨다. 평이 많이 쏟아질 정도로 수철의 앨범에 관한 관심은 뜨거웠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곳곳에서 앨범을 소개하고 평을 내놨다.

“후후, 드디어 나왔군.”

스테파노를 비롯한 공연 출연진들도 리허설을 마치고 다 같이 수철의 음악을 들었다. 그만큼 사람들은 수철이 내놓는 작품에 귀가 집중됐다.

수철의 음악에 대한 팬들의 신뢰는 너무도 굳건했다. 그래서 딴지라도 걸려는 평론가들은 매장당할 분위기였고, 애써 어쭙잖게 평가하려는 평론가들도 대중들에게 무시당했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설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모두 수철과 한마음이 되어 5번째 앨범‘Can't hear, but exist’라는 배에 올라타서 같이 항해를 시작했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야.”

박 대표는 그 모습을 이렇게 평했다.

디데이 뮤직 사람들은 이번 앨범에서 끊이지 않고 칭찬이 쏟아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 바로 그것 때문이라는 것을.

이들의 칭찬에 침이 마르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것을.

그만큼 앨범 ‘Can't hear, but exist’는 사람들에게 빨리 스며들었다.

* * *

“출연진뿐만이 아니라 팬들도 도네이션(Donation,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고요?”

공연을 며칠 앞두고 인터뷰가 있었다. 기자들의 요청에 디데이 뮤직에서는 기자들을 본관으로 초대해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이번 공연에 앞서 수철은 자신의 공연수익 전부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다수의 출연진도 수철과 뜻을 같이하겠다며 기부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제작사들도 비용을 뺀 수익의 50%를 내놓겠다며 동참 의사를 밝혔고, 소식을 접한 팬들의 기부도 이어졌다. 모두가 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네, 맞습니다. 기부금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 실장이 끄덕이며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그러자 기자가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기부금은 어디에 사용되는 겁니까?”

이 질문에는 박 대표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수익금 전부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절반은 소아암 치료에, 절반은 복지 재단에 기부하는 거로, 현재까지는 그렇게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번 공연에 들어가는 출연료, 대관료, 진행비 등 제작비 절반은 우리 디데이 뮤직에서 순수하게 지원하는 겁니다. 저희도 도네이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알려드립니다.”

“아, 그렇군요.”

“네, 그리고 저와 용수철 씨는 별도로 10억 원씩을 더 내놓기로 했습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서요.”

박 대표는 힘을 주어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몇몇 기자는 그의 말에 가볍게 손뼉을 부딪쳤다.

“그럼 마지막 질문받겠습니다. 다음 질문은…….”

자신의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한 기자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었다.

“저는 용수철 님께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기자의 말에 정 실장은 한쪽 편에 앉아 있던 수철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수철이 마이크를 받자 기자는 바로 입을 뗐다.

“용수철 음악가님에게도 혹시 스승이 있나요?”

“……?”

공연과 상관없이 난데없는 질문에 수철뿐만이 아니라 박 대표, 정 실장도 기자를 빤히 바라봤다.

흠.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기자는 잠시 멈칫하며 설명을 붙였다.

“용수철 음악가님 같은 분도 가르침을 받은 분이 있으신가 궁금해서 질문드린 겁니다. 없으시면 영향을 받은 음악가라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재에게도 선생이 있냐는 뉘앙스였다. 질문이 생뚱맞다고 생각했던 다른 기자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수철을 바라봤다.

“네, 물론 있죠.”

수철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긴장하며 이어질 수철의 답변에 귀를 세웠다.

“두 분 정도 계세요.”

두 분?

“한 분은 마일스 데이비스 선생님이시고요, 다른 한 분은…….”

수철에게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수철이 마일스 데이비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바로 두 번째 사람이었다. 수철이 누굴 말할지 기대하며 침을 삼켰다.

“바로 제 옆에 계시는 박성준 대표님이세요.”

수철은 두 손을 들어 박 대표를 가리켰다.

아…….

기자들 사이에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잔뜩 기대했는데 회사 대표라니, 수철이 예의상 말한 거로 생각했다. 수철과 박 대표의 관계는 기자들도 잘 알고 있다. 반면에 박 대표는 기자들의 표정과 상관없이 배시시 입이 벌어졌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씰룩였다.

기자들의 실망한 표정을 본 수철은 다시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의상 한 말이 아니에요. 진짜 쌤이 제 선생님이라서 그렇게 말씀드린 거예요.”

“……?”

수철이 박 대표를 쌤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고 하자, 기자들뿐만 아니라 박 대표도 수철을 바라봤다. 수철이 말을 이었다.

“쌤은 저에게 든든한 가족이자 살아 있는 유일한 선생님이세요. 제가 판단이 흐려지거나, 길을 잘못 들어설 때는 항상 바로 잡아 주셨죠. 스승이자 친구이자 최고의 조력자세요.”

박 대표는 금세 왈칵 쏟을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애써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쌤이 없었으면 저는 오늘 여기에 있지도 않았죠.”

수철의 마지막 말에 결국 박 대표는 울컥했다. 손등으로 눈가를 닦았다.

* * *

―자, 관객들 혼을 쏙 빼놓읍시다. 파이팅!

―파이팅!

드디어 D―프로젝트 ‘끼, 흥 그리고 피날레’의 막이 올랐다.

뮤지컬 ‘AMERICAN RADIATE’가 제일 먼저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전용 극장에서 매일 2회씩 2주간의 공연을 시작했고, 곧바로 오페라 ‘IL Radiato’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주 3회의 공연을 시작했다.

그다음 주에는 마에스트로 스테파노가 이끄는 오케스트라가 [누군가 사과를 깨물던 순간부터]라는 타이틀을 걸어 놓고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곧이어 전혜미 소프라노가 수철의 곡들로 엘지아트센터의 공간을 울렸다. 사라 제이도 같은 공간에서 ‘To be near you’를 부르며 2회 공연을 시작했다. 이렇게 서울 곳곳의 내로라하는 공연장에서 지금까지 수철이 쌓아 올린 사운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중음악 뮤지션들이 참가하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의 이틀 공연이 시작됐다.

―브로슈어(Brochure) 받아 가세요!

공연장 입구에서 스텝들이 소책자를 나눠 주고 있었다.

브로슈어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당신은 끼만 들고 오세요. 나머진 우리가 합니다.]

관객들이 오늘 어떤 공연을 보게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맨 뒷장에는,

[끼는 살아 있음이다. 참지도, 감추지도 마라. 흥으로 내질러라!]

끼와 흥이 날뛰는 공연에 참지 말고 뛰어들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브로슈어를 받아 든 관객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관객들은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듯 공연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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