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피날레(1)
박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1969년 8월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우드스탁 같은 축제 분위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공간과 시기는 다르지만, 사람들이 음악에 푹 빠져 마법 같은 2주를 보내길 기대했다.
그래서 해외에서 오는 관객을 위해 여행사와 협조하여 숙박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게스트하우스와 연계하여 할인 티켓도 제공했다. 사람들이 공연을 즐기고 모여서 공연에 관해 얘기하고 열기를 이어 가길 바랐다.
뮤지컬을 시작으로 2주간의 공연이 막을 올리자, 박 대표의 기대대로 축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공연장 주변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공연에 맞춰 오픈한 특별 사이트에서 사람들은 왕성하게 공연 후기를 공유했다. 디데이 뮤직은 시시각각 갖가지 이벤트를 제공하며 관객들의 흥을 돋구었다.
“비슷한 분위기가 나는 거 같지 않아?”
박 대표의 기획대로 사람들은 공연장 근처의 숙소를 점령하고, 공연이 끝나면 서로 뭉쳐 술잔을 기울이며 분위기를 이어갔다. 음악을 주제로 파티를 열며 마음껏 축제를 즐겼다.
그렇게 어느덧 이 주일간의 열정적인 시간이 지나고 상암에서의 이틀간 공연.
와―!
짝짝짝!
제시와 하린, 하준, 은주, 마이클, 그리고 디데이 뮤직의 소속 가수가 참여한 첫날의 2회 공연은 세 단어로 함축됐다.
거대하고, 화려하고, 엄청난.
특히 제시와 하린은 멈추지 않는 환호와 뜨거운 열기 속에 공연을 끝냈다. 해외에서 찾아온 팬들은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무대에 박수와 환호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첫날 공연이 지나가고 드디어 프로젝트의 피날레인 수철의 마지막 공연이 시작됐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출연진들도 수철의 피날레 무대를 보기 위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들리진 않지만, 존재하는]
피날레 공연의 타이틀은 앨범 타이틀과 동일했다.
“우리 에너지가 어디까지 가나 한계를 한번 테스트해 볼까?”
공연을 앞두고 마커스는 대기실에서 농담 같은 말을 던졌다.
“하하, 그거 좋지. 나는 오케이!”
마커스의 말뜻을 알아들은 루카스는 두꺼운 손을 내밀어 마커스와 손을 맞잡았다.
몇몇 멤버들의 꽉 깨문 입에도 힘이 들어갔다. 긴장과 의지가 뒤섞여 있었다.
“후회하지 않게,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자고!”“오케이! 신나게 한번 달려 봐요!”
‘ASN’은 손을 모아서 소리친 후 대기실을 나섰다. 무대로 향하는 그들의 등 뒤로 자신감이 흘러내렸다.
공연장은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긴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할 주인공을 맞이하기 위한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와―!
무대 위에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초대형 무대, 거기에는 이미 스테파노와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 공연은 ‘ASN’와 스테파노의 오케스트라가 같이 협연한다.
이 무대를 위해 수철은 스테파노와 3일간 리허설 하며 손발을 맞췄다.
저벅저벅.
멤버들이 각자의 자리를 찾아서 악기를 잡자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와―
맨 먼저 수철을 발견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러자 그 소리는 순식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거대한 함성이 되었다.
와―!!
함성은 계속 더 두꺼워졌다. 수철이 마이크 앞에 서서 입을 열 때까지 계속됐다.
스테파노는 수철과 눈을 마주친 후 포디움에 서서 오케스트라를 향해 등을 돌렸다. 그가 지휘봉을 올렸다가 내리자 바로 음악이 시작됐다.
쿵! 쿵!
이번 스테파노의 오케스트라는 타악기 구성이 눈에 띄게 많았다. 수철의 음악 특성상 그렇게 구성한 것이다. 그리고 첫 곡부터 그것을 여과 없이 모두 보여줬다.
오케스트라의 타악기가 총출동했다.
연주자가 두툼한 공 모양의 북채로 팀파니(Timpani)를 두드리기 시작하자 큰북이 ‘두둥!’ 소리를 울리며 합류했다.
심벌즈는 기다렸다는 듯이 원반 두 개를 서로 맞부딪혀 경쾌한 소리를 냈고, 탬버린은 작은 방울을 흔들며 리듬과 리듬 사이를 파고들었다. 트라이앵글은 맑고 높은 소리를 냈고, 작은북은 아랫면 막에 스네어라를 대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게다가 우드블록까지 합세해 음정과 음색을 덧붙인 공명감을 만들어 냈다.
사람들은 오케스트라가 만들어 내는 웅장한 그루브에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조성되자 ‘ASN’도 곧장 합류했다.
쿵! 쿵! 쿵!
탕! 탕! 탕! 탕!
루카스가 두꺼운 다리로 힘 있게 페달을 밟아서 베이스 드럼을 가격했고, 뽀빠이 같은 팔뚝으로 스네어 드럼을 내려쳤다.
쿵! 츠, 츠 탕! 츠, 츠.
쿵! 츠, 츠 탕! 츠, 츠.
하이햇까지 두드리며 오케스트라의 리듬에 리듬을 얹어서 공연장의 밤하늘을 울렸다.
곧이어 마커스가 춤추는 인형처럼 몸을 움직이며 긴 손가락으로 베이스 줄을 튕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모든 멜로디 악기가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마이크 앞에 서 있던 수철이 얼굴을 들었다.
―이것이 눈을 뜨면, 난 다시 세상에 혼자가 돼.
아무도 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너도 날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The 끼’였다.
‘The 끼’로 수철은 피날레 무대의 포문을 열었다. 관객들은 리듬에 맞춰 손뼉을 부딪치며 흥을 타기 시작했다. 모두 하나 되어 수철의 노래를 따라불렀다.
우린 하나야. 처음부터 그랬어.
둘이 아니라 하나였어.
내 안에서 눈을 뜬 건 네가 아니라 바로 나였어.
존은 손바닥으로 바쁘게 퍼커션을 두드리며 흥을 끌어 올렸고 영준이 형은 경쾌한 트럼펫 소리를 6만 관중들의 머리 위로 쭉 뻗어 냈다.
우― 빠르게 달아올랐어.
아― 네가 눈떴을 때.
음악이 절정으로 치닫자 여섯 명의 코러스는 몸을 흔들며 한껏 입을 벌려서 화음을 만들어 냈다.
―난, 나난, 나나난!
―우후― 둡뜨두둡!
수철은 그들을 배경으로 미친 듯이 소리를 내뿜으며 넓은 운동장을 갈랐다.
―우린 같은 곳을 보고 있어.
수철과 코러스와 관중의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며 엔딩으로 향했다. 하지만 음악은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북소리가 잦아들 무렵 ‘ASN’과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이 다시 빨라졌다. 곧바로 펑키한 리듬으로 연결됐다.
‘까딱까딱’이었다.
이번에도 거대한 스크린에 소년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머리를 까딱까딱하며 춤을 추는 모습이 나타났다.
6만 명의 사람들은 소년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까딱까딱하다가 양손을 옆으로 쭉 편 채 손가락을 튕기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면서도 머리는 계속 까딱까딱 흔들었다.
공연 실황을 녹화 중이던 카메라맨들은 카메라에서 눈을 뗀 채 이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두 곡을 연달아 부르는 수철은 마치 지난 2주간의 공연 동안 쏟아진 끼와 흥을 다시 퍼뜨리는 느낌을 줬다.
와―! 와―!
짝짝짝!
관중들은 수철의 노래에 화답하듯 목이 터지라 함성을 지르고 신이 나서 박수를 쳤다. 초반부터 흥을 마구 분출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세 번째 곡에서 사람들의 감정은 뒤바뀌었다.
서정적인 바이올린의 선율이 8마디를 채우자 수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매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사람들은 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다고 수군대죠.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거든요.
수철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가장 아름답고 싶어서’였다.
―꿈을 꿨어요.
천사를 만났죠.
거기서 세상엔 없는 아름다움을 봤어요.
없다고 믿었던 아름다움을.
다짐했어요.
나도 그렇게 되겠다고.
그래서 다시 눈을 떴죠.
사람들이 날 지켜보고 있었어요.
내가 눈뜨자 그들의 입가엔 미소가 번졌어요.
내가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돌아왔으니까.
난 가장 아름답고 싶어서 이곳에 섰어요.
난 가장 아름답고 싶어서 꿈을 꿨어요.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난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거든요.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어요.
난 이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요.
…….
음악이 끝났는데도 사람들은 박수 칠 수 없었다. 먹먹한 표정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수철의 노래가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렸다.
수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더 자극해 눈물샘을 폭발시키려는 듯, 연이어 다음 노래를 불렀다.
한쪽 눈을 잃은 소년의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였다.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소중한 사람 지킬 수 있다면.
경찰이 되고 싶었어요.
내가 꿈꾸는 세상 만날 수 있다면.
소년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자 곧이어 코러스가 아이의 꿈에 화답했다.
마치 아이의 기도에 천사가 화답하듯이.
―네가 꿈을 펼칠 때 우리가 너의 디딤돌이 되어 줄게.
네가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게 우리가 너의 바람이 되어 줄게.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였다.
처음 두 곡으로 신나게 소리치며 머리를 흔들던 사람들은 이제 두 손을 가슴에 댄 채 눈물을 훔쳤다.
수철이 연이어 부른 ‘Can't hear, but exist’ 앨범에 실린 두 곡에서 사람들은 4가지 반응을 보였다.
조용히 훌쩍이거나, 훌쩍이다가 감정이 북받쳐 엉엉 울거나,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며 큰 소리로 오열하거나, 그냥 멍하니 눈물을 주르륵 흘리거나.
대부분 그랬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감성에 터치를 받아서.
수철의 노래에 실린 이야기와 들리진 않지만 존재하는 소리 때문에.
수철이 무대에서 바라보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박수 대신 눈물을 터트렸다. 작게 훌쩍이던 소리는 금세 번지더니 엉엉, 6만 명의 울음소리가 되고, 공연장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소년과 소녀의 꿈이 관객들에게 전이되었다.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그때가 되자 다시 스테파노의 지휘봉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공간감과 ASN의 현란한 연주가 뒤섞이며 탄탄한 그루브가 형성됐고, 천장의 조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하게 터지며 빛을 내뿜었다. 무대를 둘러싸며 불꽃도 높이 솟아올랐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은 마치 관객들 전부를 실신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감정을 쥐락펴락했다. 사람들은 수철이 만들어 놓은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올라타고 있었다. 눈물을 닦으며 훌쩍이던 관객들은 다시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수철이 그동안 발표했던 음악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이어졌다. 제시에게 줬던 곡들, ‘SUNSET’ 앨범에 실린 곡까지 잠시의 공백도 없이 연주가 이어졌다. 음악은 지난 공연과는 완전히 달랐다. 새로운 곡처럼 편곡되어 있었다.
이들 음악은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스토리로 탄생했다. ‘끼, 흥 그리고 피날레’라는 스토리로.
관객들은 자신이 알던 음악과 다르게 편곡이 계속 바뀌자, 음악이 시작될 때마다 기대감에 차올랐다. 점프하고 환호하며 흥을 마음껏 내뿜었다.
그렇게 심장을 터트릴 듯이 이어지던 사운드는 20여 분이 지나자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무대 위의 조명도 따라서 어두워졌다.
그리고 스크린이 밝아지더니 손가락 3개가 쓰윽 하고 올라왔다. 이빨이 듬성듬성 빠진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지난 앨범의 주인공임을 알아챘다.
손가락이 3개인 아이는 관객들을 향해 환하게 손을 흔들더니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가 넓은 운동장으로, 또 사람들의 마음으로 울려 퍼졌다.
노래하는 5명의 아프리카 아이들은 모두 몸이 성치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다. 잠시 신이 났던 사람들의 눈가가 다시 촉촉해졌다.
박 대표는 이 모습을 보며 노래 한 곡이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마치 음악으로 움직이는 세상 안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노래가 끝나자 수철은 숨겨 놓았던 곡을 꺼냈다.
이번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곡이었다.
제목은 승화(昇華, sublimation).
수철이 낮은음으로 노래를 시작하자 스크린에 무지개가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과 함께 가사가 나타났다.
―처음 네가 나타나 한 걸음 다가섰을 때, 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버렸어.
난 널 만나면 안 되니까.
난 그곳으로 가면 안 되니까.
하지만 넌 먼저 손을 내밀었어.
안 되는 건 없다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날 보는 너의 눈빛이 소리로 바뀌어 내 머릿속을 울렸어.
네 마음에 새겨진 아픔을 내게 넘겨.
넌 모두 내려놓고 이제 그곳으로 날아가면 돼.
날개를 달아 줄게.
끝없는 자유를 느껴봐.
우린 다시 돌아가는 거야.
기억에서 지워진 그곳으로.
우리가 시작된 그곳으로.
버려도 되는 시간은 없어.
어제의 다짐은 오늘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
욕심이 눈을 가리면 다음을 볼 수 없는 거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거야.
하늘은 다시 태어나라고 오늘의 잘못을 노을로 태우고 있어.
난 무지개 위에 쌓이는 눈을 봤어.
저 눈을 밟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까?
저 무지개 위엔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있을까?
내가 그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네 마음에 새겨진 아픔을 내려놓고 이제 내 손을 잡아.
수철은 마지막 호흡을 길게 끌며 관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관객들도 수철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박수나 환호 같은 건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뻗음으로 하나로 연결되었다.
사람들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고, 시선은 마치 무지개 위에 눈을 보듯이 하늘 위 먼 곳을 좇고 있었다.
수철의 노래는 서로를 하나로 묶어 승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