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70분.
<원티드> 1 화의 방송 시간.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숨 막히는 전개가 진행되었다.
“오~”
어떤 때는 환호를,
“아….”
어떤 때는 탄식을.
오성철의 연기로 포문을 연 1 화의 스토리는 환호와 안타까움, 기쁨과 슬픔, 분노와 침착을 넘나들며 시청자들의 감정선을 자극했다.
그리고,
- 오줌보 터질 것 같은데, 화장실 좀 갔다 와서 합시다~ 슝!
여태껏 한국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신개념 캐릭터.
천재와 괴짜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사나이.
최규보의 등장 씬마다,
“푸하하하!”
“와~ 진짜 또라이다, 또라이.”
사람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우진 씨가 진짜 잘 살리네.”
“이미 본 연기인데도 또 봐도 터지네요. 푸핫!”
다들 우진과 화면 속 최규보를 번갈아 보면서 웃음을 빵빵 터트렸다.
“진짜 우진 씨 아니면 누가 저 캐릭터를 표현하겠어?”
배우로서 들을 수 있는 극찬이 이어졌다.
이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이 이렇게 달짝지근할 수가 없다.
- 떴어요, 떴어!
1 화의 클라이맥스.
다급하게 수사본부 회의실로 달려오는 고현수의 얼굴이 클로즈업 된다.
- 백골 사체, 발견됐답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앉아있는 주연 캐릭터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 총 9구, 발견 장소는 사건 발생 추정 지역에서 반경 1km 이내입니다!
캐릭터들의 표정이 차례대로 교차하면서, 화면이 멈췄다.
이내 BGM과 함께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
뒤이어 예고편이 등장했다.
- 출입국 사무소에 연락해서 출국 금지하고, 당장 알리바이부터 확보해!
카리스마 넘치는 서준모와,
- 잡았다, 요 녀석!
부검대 위에 놓인 백골 사체의 머리 부분에 움푹 팬 자국을 토대로 흉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낸 최규보의 살짝 올라간 입꼬리.
20초 남짓한 예고편에서 두 캐릭터가 가진 정반대의 매력이 강렬하게 부각 되면서,
[내일 밤 10시에….]
자막과 함께 끝난 예고편.
1 화의 방영이 최종 마무리된 직후,
“진짜 재밌네.”
“와, 편집해서 보니까 확실히 다르네요.”
“역시 작가님 필력이 아주 그냥….”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빠른 전개 속도를 가진 범죄물의 장르적 특성 위에 캐릭터들이 가진 각기 다른 매력이 더해지면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흐름을 선보였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1 화 하나만으로 섣부르게 얘기할 순 없지만, 확실히 캐릭터들이 죽고 사는 게 보이네.”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던 오성철이 묵직한 팩트를 날렸다.
비단 그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 1 화를 본 모두가 같은 생각일 터.
“그렇네요. 기사 한번 확인해봐야겠는데?”
조금 전까지 TV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면, 지금은 각자의 핸드폰에 시선이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려면, 드라마 방영 중에 올라오는 실시간 기사보다 드라마가 끝난 직후에 올라오는 종합 기사를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니까.
[tvKR <원티드>, 첫방부터 숨 막히는 전개 선보여… 백골 사체 대량 발견 ‘충격 엔딩’(종합)]
[베일을 벗은 <원티드> 1 화부터 눈을 뗄 수 없는 美친 스토리… 한국형 CSI가 기대된다]
[<원티드> 김예찬, 검찰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며 정의 검사로 거듭날까]?
[악역 전문임에도 미워할 수 없는 배우 오성철, <원티드>에 그 이유 있었다]
[<원티드> 박수현, 첫방부터 강렬한 인상과 함께 기존과 180도 다른 이미지 선보여]
연예 뉴스란에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품에 대한 평부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평까지, 대부분 좋은 기사들이 이어졌다.
[<원티드> 백우진이 선보인 최규보, 역대급 캐릭터 탄생이 기대되는 이유]
[<원티드> 제작진의 비밀병기 백우진, 첫방부터 하드캐리… 이 캐릭터, 대체 뭔가요?]
[<원티드> 백우진, 미친 존재감… 신인 맞아?]
우진에 대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었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그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기사 지분율이 오히려 주연 배우들보다도 많을 정도였다.
“다들 맛있게 드시고, 내일 시청률 한번 확인해봅시다!”
“건배!”
통상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은 방영 다음 날 오전 9시에 집계된다.
아직 정확한 시청률은 모르지만, 기사와 댓글의 반응을 보니 대박의 조짐이 느껴진다.
“갈 길이 아직 멀지만, 다 같이 으쌰으쌰 해보자고!”
“넵, 선배님!”
“화이팅~!”
성철이 잔을 들자 이미 빨개진 얼굴을 한 수현이 잔을 들었고, 예찬도 살짝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 짠.
우진도 웃으며 그들과 잔을 부딪쳤다.
* * *
1 화의 시청률은,
‘13.2프로.’
2010년의 케이블 드라마 특성상, 마지막 회에 기록해도 ‘대박 드라마’라고 평할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했다.
[‘tvKR, 꼴지의 반란!’ <원티드>, 1 화부터 시청률 10프로 돌파]
[<원티드> 지상파·케이블 포함 동 시간대 시청률 1위… 2위와 압도적인 격차]
시작과 동시에 <원티드>는 넘볼 수 없는 자리에서 위엄을 뽐내고 있는 셈이었고.
나아가 케이블 드라마의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었다.
“15프로, 20프로까지 쭉 달려봅시다!”
촬영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동 시간대 첫 방송이었던 경쟁작 MBS <너의 발걸음>은 8.1프로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가장 큰 경쟁작이라 여겨졌던, 기존의 금토 드라마 시청률 패왕 <여우비>는 9프로를 기록했다.
주연 여배우의 촬영 거부 사태를 극복하지 못했는지, 종영까지 단 2회를 앞둔 상황에서 그나마 유지하던 마지노선 10프로대의 시청률이 깨진 것.
“힘내서 달려봅시다. 파이팅!”
사전 제작 드라마가 아닌 탓에 촬영 일정은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할 뿐.
박민재 PD는 출연진과 제작진을 다독이며 현장을 체계적으로 지휘했고, 촬영 일정은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촬영에 매진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4월 중순이다.
“선배님, 오셨어요?”
대본을 보며 촬영 순서를 기다리던 우진은 때마침 도착한 성철에게 90도로 인사를 건넸다.
“어. 밥 먹었어?”
“네. 선배님은요?”
“오자마자 먹었지. 밥차 죽이더라.”
“그러게요. 저 이제 현장 밥차 아니면 밥을 못 먹겠어요.”
“그치? 이래서 배우 한다, 내가.”
어느새 작품의 절반 가까이 촬영된 시점.
배우들과도 이젠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우리 둘이 감정 씬이지?”
“네. 마지막 씬부터 촬영한대요.”
10 화의 엔딩 장면이기도 한 두 사람의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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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장기미제사건 중 하나인 ‘수원 연쇄살인 사건’이 해결된 후, KCFS는 범국민적 지지와 관심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규보는 자신의 과거와 연관된 사건.
바로, ‘사랑 보육원 사건’의 진실과 해결을 원하고 있다.
수사본부의 일원인 동시에, 자신은 이 사건의 피해자이자 목격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 사건에 대해 수사본부장 이종부는 ‘공소권·수사권 없음’이라는 이해하지 못할 결정을 내린다.
이에 분노한 최규보는 그를 찾아가 실망감과 분노를 쏟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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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되네요.”
“잘할 거면서 벌써 밑밥 깔기야?”
“하하하. 아닙니다.”
“대사 한번 맞춰보자.”
“넵.”
오늘 촬영 예정인 장면은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었다.
그걸 잘 알기에, 두 사람은 촬영 직전까지 합을 맞추는 데에 집중했다.
“오성철, 백우진 배우님. 슛 들어가겠습니다.”
앞선 예찬과 수현의 촬영이 끝난 후, 연출부 스태프가 대기실에 찾아와 말했다.
우진과 성철은 세트장으로 향했다.
“46씬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박 PD가 스탠바이 지시를 내렸다.
그와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스텝들.
촬영 준비 완료 신호가 떨어졌다.
“10 다시 46.”
- 탁.
슬레이트가 쳐지고.
“레디.”
“카메라 롤.”
“사운드 오케이.”
현장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우진과 성철을 향하고 있었다.
“액션!”
박 PD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그들의 연기대결이 펼쳐졌다.
두 배우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실로 대단했다.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는 풀샷 화면에서 마치 성난 짐승 두 마리의 신경전이 보이는 듯했다.
“수사권, 공소권 없음이라고요? 뭐 하자는 겁니까?”
“자네랑 입씨름할 기운 없어. 나가.”
“지금 내 어이가 나갔으면 나갔지, 뭘 또 나가요? 말씀하십시오. 뭐 하자는 거냐니까?”
최규보는 늘 천재와 괴짜가 공존하는 매력으로, 능글맞고 밉상인 것 같지만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유쾌함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다.
무겁고 진지한 장르적 특성에서, 깨알 같은 재미와 밝은 분위기를 선사하는 분위기 메이커.
그것이 그의 본질이다.
그런 그가, 10 화까지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았던 최규보가 처음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씬이다.
“뒷돈 드신 겁니까?”
“할 말, 못 할 말 안 가려!”
“말싸움하러 온 거 아니니까 이유가 뭔지 말씀하시라고요!”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었다.
카메라 프레임 속 두 배우는 각자의 인물에 완벽히 빙의된 상태였다.
얼굴 근육 하나까지 씬의 목적과 부합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관두라고 했을 때 관뒀어야지! 들춰내서 좋을 거 없는 진실도 있는 법이야. 모르는 척하는 거야, 정말로 몰라서 그러는 거야?”
“뭐, 뭐라고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 갇혀서 굶주림과 학대에 시달리다가 인체실험용으로 넘겨진 어린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의 심정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셨다면, 지금 하신 말씀 못 하신다고요!”
“야, 최규보!”
오성철의 발성이 어찌나 탄탄한지,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세트장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장기미제사건 수사본부가 네 개인적인 원한 풀어주려고 만든 곳인 줄 알아?”
“…….”
“네 심정 모르는 거 아니야. 당사자니까 오죽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잠깐만요.”
최규보의 얼굴과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제가 거기 출신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종부의 시선이 흔들렸다.
이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그리고, 싸늘하다.
“전 아무한테도 말한 적이 없는데.”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종부를 강타했다.
이종부의 눈이 커졌다.
“말씀하십시오.”
최규보의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빨개지고, 이마에는 핏줄이 선명하다.
“저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그의 꽉 잡은 주먹이 클로즈업 되면서.
“컷! 오케이!”
박 PD의 컷 소리가 들리자마자 우진과 성철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두 번은 반복하지 못할 만큼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기분.
컷 이후에 폭풍처럼 몰려오는 감정.
우진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런 그를 성철이 토닥여주었다.
“완벽해요. 아주 좋았어!”
박 PD는 매우 만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제야 우진과 성철은 서로 웃어 보였다.
“고생했다. 아주 잘했어.”
성철이 우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몰입이 잘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우진과 성철은 다시 대기실로 향했다.
“대본 한 번 더 수정해야겠네요.”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던 서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박 PD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