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배우의 다이어리-173화 (173/333)

173화

공연 일주일 전, 오전 11시.

극단 ‘배우 마당’의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창작극 <꿩 보시었소?>의 티켓 예매가 시작되었다.

7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예정된 공연 횟수는 총 43회차.

이 중에서 A팀에 24회차, B팀에 19회차가 할당된 공연이었다.

‘배우 마당’은 여타 지정 예매처를 두지 않고 오직 극단 공식 홈페이지, 또는 현장에서만 예매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운영을 해온 터라.

티켓 예매를 위해 접속한 방문자 수가 폭등하면서, 홈페이지에는 일시적인 접속 장애가 발생하였다.

일명 유명 아이돌 가수 콘서트의 ‘티켓 예매 전쟁’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었다.

우진의 공식 팬 카페인 ‘백우진家’를 비롯해 ‘갤러리 팜-백우진 갤러리’ 등에서는,

└ 계속 화면이 안 바뀐다 ㅠㅠ

└ 예매 성공하신 분 계세요?

└ 첫공 10초 만에 매진됨….

└ 앗싸! 맨 앞자리 성공!

└ Re : 와, 승리자… 왜 내 화면은 안 넘어가는 건데!!!

└ Re : ㄷㄷㄷ 어케 했누?

예매에 성공한 기쁨을 만끽하며 자축하는 이들과 예매에 실패할까 전전긍긍하는 이들의 두 가지 감정이 뒤섞인 반응들이 이어졌다.

└ 아… 예매 끝났다ㅠㅠ

└ 미친;; 10분도 안 지났는데 예매 벌써 끝났어….

└ 아니, 다들 무슨 콘서트 보러 가는 거냐고욬ㅋㅋㅋ

└ Re : ‘배우 마당’ 공연에 투톱이 이강식에 백우진이면 웬만한 콘서트 이상급이죠.

└ 님들, A팀 첫공부터 막공까지 전부 매진이랍니다ㅠㅠ 다들 수고하셨슴당….

평일은 월수금, 주말엔 저녁 7시 타임인 A팀 공연이 전부 매진될 때까지는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진한 아쉬움이 가득한 글과 댓글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그러나,

└ 포기하긴 이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에게는 현장 예매가 남아있어요!

예매에 실패한 팬들에게는 아직 충분히 기회가 남아있었다.

티켓 판매 비율이 온라인 예매 70프로, 공연 당일 현장 예매가 30프로이기 때문.

물론 어느 회차든 상관없고 A팀 공연 티켓이라면 무조건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글도 심심찮게 보였으나,

└ A팀 공연 티켓, 최소 2배 이상 가격으로 사겠습니다. 성공하신 분들, 저한테 파십쇼!

└ Re : 이분 대학로 공연 처음 보는 티 팍팍 내시네;; 다른 데면 몰라도, ‘배우 마당’은 절대 암표 안 통합니다~

└ Re : 입구에서 무조건 예매자 이름하고 신분증 일일이 대조함. 틀리면 가차 없이 입장 거절당함. 그래서, 공연 시작 3~40분 전부터 관객 입장 시작하는 곳이 ‘배우 마당’임.

└ Re : 헐, 진짜요?

└ ReRe : …진짜 현장 예매밖에 답이 없네요, 이젠.

‘배우 마당’은 대학로에서 암표 근절에 가장 앞장서는 극단이었다.

암표 근절은 정재민과 오태협이 지금의 시스템 정립을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는 과정에서, 몇 번이고 끊임없이 논의해 온 메인 이슈 중 하나였으니까.

이 때문에, ‘배우 마당’의 예매 시스템에는 여타 극단들에서는 보기 힘든 확고한 운영방침들이 존재하였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있었다.

- 1인 1매 판매 원칙 고수.

- 현장 입장 시 철저히 신분증 확인.

- 예매자 이름과 관객의 신분이 다를 시, 입장 불가 및 환불 조치.

- 입장 시, 환불 조치된 티켓은 현장 예매분으로 전환

이는 극단의 수익과 직결되는 부분이었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모든 걸 확인해야 하므로 엄청난 불편함이 따르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단원들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귀찮은 일을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으나.

정재민과 오태협은 이 부분에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고 소신대로 밀어붙였다.

장단점이 분명한 정책의 결과는,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이었다.

티켓 가격은 일반 대학로 공연들과 거의 차이가 없으나, ‘배우 마당’의 공연은 뭔가 특별하다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생성되었다.

긍정적인 측면이 좀 더 많았기에, 지금도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

“하아….”

한 여자가 책상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쥐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녀는 울상인 표정을 하고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박미영 팀장이었다.

얼마 전까지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프로젝트가 끝난 김에 오랜만에 연차를 썼고, 그 덕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했었다.

타이밍도 참으로 좋았다.

휴식도 취하고, 무엇보다 예매도 차질없이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습니다.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노트북 화면에는, 야속하기 그지없는 문구만 떠 있었다.

‘내가… 이 박미영이 실패를 할 줄이야!’

알람까지 맞춰가며 5분 전에 딱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그 순간 울린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

업무상의 후속 조치와 관련해서 부장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어제 혹여나 이런 일이 발생할까 봐 사후 보고서까지 작성해서 부장님 책상에 올려놓고 퇴근을 했었거늘.

식은땀이 절로 나는 통화를 끊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서 보니, 이미 11시 정각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급히 예매 버튼을 눌러보았으나, 기대했던 ‘예매 성공’은 개뿔.

지금 보고 있는 화면에서 수분 째 멈춰있는 것이었다.

“이런 염병할… 휴가 중인 사람한테 왜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질하고 난리냐고!”

어머니가 워낙 트로트 가수 나 모 씨(?)의 열광적인 팬이신지라,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예매 경쟁을 치러온 그녀였다.

당연히, 단 한 차례의 실패도 경험한 적이 없었고.

매크로 예매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말 그대로 AI조차도 막을 수 없는 민첩함을 자부했었는데….

박미영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알고 보니,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막내 직원이 출근 후 부장님 책상을 정리하다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서류철을 별생각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옮긴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내일 출근하면 곧장 막내 직원 개인 면담부터 하리라 굳게 마음 먹었다.

그녀는 그렇게나마 슬픔을 달래는 와중이었다.

그때였다.

- RRRRR.

박미영의 핸드폰이 한 번 더 울렸다.

미간이 찌푸려진 그녀는 발신자도 확인하지 않고 홧김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내,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댄 그녀가 설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 박미영입니다! 또 무슨 일이십니까!”

- 여, 여보세요?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응?

박미영은 그제야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그리고,

“우왁, 잠시만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발신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

바로, 우진이었다.

‘크흐흠-’

그녀가 목을 가다듬고서 다시 말했다.

“어머, 배우님! 진짜 오랜만이네요.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창피… 아니, 너무 쪽팔려서 텐션이 더욱 올라간 음성이었다.

- 네, 팀장님이 도와주셔서 잘 다녀올 수 있었어요. 팀장님도 잘 지내셨죠?

“그럼요! 저는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답니다!”

- 좋네요. 제가 혹시 바쁘신데 전화 드렸나요?

“네? 아니요.”

- 뭔가 처음에 약간 화가 난 것 같은 목소리셔서….

“아하하하! 아닙니다. 전혀 아니에요! 저 오늘 연차라 집에서 쉬고 있어서 정말 괜찮습니다!”

박미영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배, 배우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에요오….”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끓어오르던 분노는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잊힌 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세요?”

-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이번에 연극을 하거든요.

“네, 알고 있어요! 좀 전에 예매가 시작… 크흡.”

아, 잊고 있었던 슬픔이여!

박미영이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우진의 깜짝 놀란 물음이 이어졌다.

그녀가 천천히 상황을 설명했다.

구구절절한 사연, 그러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결국 ‘예매 실패’.

이야기를 들은 우진이 호쾌하게 웃었다.

“이길 거라 확신했던 싸움에서 지는 충격이 이렇게나 큽니다….”

- 아, 팀장님. 진짜 너무 재밌으세요.

“웃지 마세요… 저는 지금 심각하단 말이에요.”

- 하하! 다행이네요.

우진이 말을 이었다.

- 팀장님께 마침 드리고 싶은 선물이 있었거든요.

음?

박미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말을 덧붙였다.

-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 * *

‘배우 마당’ 3층 대극장의 규모는 총 545석.

좌석의 위치에 따라 명칭과 가격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무대와 가장 가까운 맨 앞쪽 열의 세 구역을 VIP 좌석이라 불렀다.

VIP 좌석은 전체 좌석 중 약 30프로를 차지했으며,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15프로까지의 좌석이 초대권으로 전환되었다.

배우들을 비롯한 공연 관계자들에게 역할 비중에 따라 수량이 할당되었는데, 투톱 주연인 우진은 이강식과 함께 회차별 10장의 초대권을 할당받은 상태였다.

24회차니까 총 240장이 주어진 셈이다.

우진은 곧장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와 누나.

자신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하는 회사 식구들.

오성철·신다희·윤맑음새·권혁진 배우, 류창민·라호찬 감독, 김수림·서민경 작가, 박민재 국장, 우승현 PD, 박미영 팀장 등등 데뷔 후 쌓아온 소중한 인연들까지.

혹여나 빼먹거나 겹치는 인원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강식과 함께 초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공유하면서 정리했다.

“와… 명단 보니까 긴장되는데요, 갑자기?”

“하하하! 아들 데뷔 무대라고 떨려서 실수하는 거 아니야?”

“에이, 그건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선배님께서 오랜만에 복귀하시는 거라 긴장하실까 봐 염려를….”

이강식의 농에 능청스럽게 맞받아치던 우진의 볼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우욱-’ 늘어났다.

“아, 아아! 아아아!”

“잘하자는 의미로, 오래간만에 주는 선물이다!”

“아아! 선배님!”

익살이 넘치는 논의 끝에 완성한 VIP 초대 명단은 그야말로 어벤져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우진과 이강식은 정성스러운 메시지와 함께 티켓을 보냈고, 소식을 들은 이들은 각자 관람이 가능한 날들을 선택했다.

꼭 공연을 보러 오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연습을 더 죽기 살기로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하지만,

‘음… 너무 많이 남는데.’

웬만한 지인들한테 초대권을 돌렸지만, 아직 수량이 한참 많이 남아있었다.

남는 수량을 그냥 극단의 수익을 위해 판매 수량으로 돌리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재할당해달라고 할까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뭔가 ‘나는 남으니까 네가 가져가라’라는 식으로 들릴 수도 있을까 봐 괜스레 망설여졌다.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에 마침 박미영 팀장과 통화를 했던 것이었고, 우진은 그녀의 말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박미영과 통화를 끊자마자 우진은 누군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저예요.”

- 어, 우진아. 왜?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같은 팀장, 그러나 다른 사람.

김태곤 팀장이었다.

우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 * *

그리고, 그날 저녁.

우진의 팬 카페 ‘백우진家’와 ‘갤러리 팜-백우진 갤러리’에.

[플라워엔터테인먼트입니다.]

동일한 제목의 공지 사항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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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 소속 백우진 배우의 첫 연극 데뷔 무대에 관해 팬 여러분께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극단 ‘배우 마당’과 함께하는 연극 <꿩 보시었소?>에서 백우진 배우가 출연하는 회차 수는 총 24회차입니다.

백우진 배우에게 늘 열화와 같은 애정을 보내주시는 팬 여러분들 중, 추첨을 통해 총 100분에게 VIP 초대권을 드리는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1인 1회 지원, 중복 불가)

아래 링크를 통해 이벤트 내용 확인 부탁드리며, 공연 날짜는 추후 수정이 불가하오니 이 점 유념하여 선택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티켓 양도 역시 불가하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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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이 폭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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