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화
불필요하거나 지루하게 늘어지는 장면은 하나도 없는 60분이었다.
독특한 소재와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한 전개는, 일회성 단막극의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각인시켰다.
첫 방송 만에,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외면받기 일쑤였던 실험적인 시도들.
그것들을, <드라마 스테이지>에서는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단막극 시장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신인 작가들과 배우들에게 기회의 장이 열렸다 등등의 호평이 뒤따랐고.
나아가, 국내 드라마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충만한 예측들도 무수히 쏟아졌다.
어느 TV 프로그램이든, 공개된 시점에서 직면하는 평가가 그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법.
첫 화 에피소드였던 <드리머>는 자그마치 31프로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단막극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적이었다.
그야말로….
토요일 11시 10분부터 익일로 넘어가는 12시 10분까지의 시간대에서 1위 타이틀이 무슨 의미냐, 그건 어떤 프로그램이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백우진 거품 드디어 걷히겠다며 태클을 걸었던 일부 악플러들의 입을 ‘꾹-’ 다물게 하는 수치였다.
<드라마 스테이지>는 당초 tvKR 내부에서 예상하던 것보다도 훨씬 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었으며, 거기에.
[tvKR <드라마 스테이지>는 시청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켰다. 이 글에서 말하는 ‘니즈’라 함은, 오직 상업성… 다시 말해서, ‘수익성’을 좇기 바쁜 방송사들이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려는 행태에서 비롯된 시청자들의 빼앗긴 ‘시청권’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필자는 tvKR의 <드라마 스테이지>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문득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다.
올해 초, <드라마 헤븐> 폐지를 선언한 MBS와 기존에 단막극을 방영했다가 폐지한 다른 방송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유명한 문화 평론가들이 내놓은 긍정적인 평가까지 더해져, 더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단막극 장르는 <드라마 스테이지>가 국내 방송 역사상 처음 선보이는 형식이 절대 아니었고, 앞선 사례들을 살펴봐도 결국은 모두 폐지되며 ‘실패’의 기운들만 남아있었던 영역이거늘.
어떻게 첫 방송 시청률이 30프로가 넘는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으로,
[과거 기사를 찾아보았다.
과거, 단막극 폐지를 결정했었던 방송사들의 인터뷰였다.
그들은 주로, 시장 논리에 따라 폐지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은 엄연히 시대와 미디어가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드라마 스테이지>를 통해 확실하게 단정할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단막극 시장은 애초에 시청 층이 탄탄하지 못했던 게 아니라, 그저 많은 수의 시청자 유입이 없었던 것뿐이었던 거다.
tvKR은 이러한 단막극 시장의 가장 큰 약점을 정확한 시선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들이 세운 전략.
즉, ‘백우진과 서민경의 조합’이라는 카드는 단막극 시장의 유일한 단점을 없애버렸으니.
시청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평론가들은 대체로 위와 같이 분석했다.
[성공적인 첫걸음.
그다음으로, 김수림 작가가 바통을 이어받을 예정이다.
제자가 단단히 해놓은 기초공사를 스승이 마무리 지으려는 모양이고, 필자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진작부터 다음 주 토요일만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서민경이 그린 백우진이라는 하나의 세계관을, 김수림은 과연 어떻게 그릴까.
사제 관계로 잘 알려진 두 작가의 전혀 다른 스타일을 비교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글을 마치려는 이 시점에, ‘백우진과 김수림’이라는 또 하나의 전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강타하겠다는 <드라마 스테이지> 2화.
<플레이그(Plague)> 예고편 영상을 플레이하려 한다.
필자는 부푼 기대감을 안으며, 글을 마치는 바이다.
@이동준, 문화평론 칼럼니스트]
└ 이동준 평론가님, 필력이 장난 아니시네요. 글이 꽤 긴데,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 이 분, 우진이 작품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평론 쓰시는 분임 ㅋㅋ 이미 구독 중.
└ 잘 보고 있습니다~
└ 나도 예고편 또 보고 와야지. 우진이도 우진이지만, 작가진들이 진짜 미쳤음. 스승과 제자의 대결 아님?
└ 방송국에서도 다음 주 방송 끝나고 홈페이지에 투표란 만든다고 함 ㅋㅋ 글 내용 말마따나 전략 제대로 세운 듯.
그랬다.
정확한 분석과 체계적인 준비, 그리고 참신한 전략의 조화가 만들어낸 승리였다.
프로젝트성에 가까운 느낌이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백우진이 국내 무대로 복귀한다는 화제성.
국내 최고의 드라마 작가들이 합류했는데, 이들과 백우진 사이에는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거머쥔 전작’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다.
이미 눈부신 성공을 거뒀었던 전작이 주는 힘이란, 그런 것이다.
‘무엇무엇의 재림’이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뒤따라오니, 기대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올라가는 게 당연했고.
이전의 단막극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첫 화부터 유입되는 시청자들의 수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배우나 작가나 방송사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박민재 국장의 안목이 정확하게 들어맞은 결과였다.
고작 60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 동안, 1인 7역을 완벽하게 소화한 우진의 연기는 <드라마 스테이지> 성공의 일등공신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
그러나,
“극본과 연출이 뛰어났기에, 제 연기가 빛을 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민경 작가님과 우승현 PD님 이하 스태프분들과 아낌없이 지원해주신 tvKR 방송국에 감사드립니다.”
한 연예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우진은 연신 두 손을 휘저으며 공을 돌렸다.
시시각각 돌변하는 그의 탄탄한 연기력이 희미한 틈 하나 없는 개연성을 만들었다는 MC의 말에는, 수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화답했다.
<죽음의 도시> 촬영 때문에 탈색했었던 금발의 머리는, <드라마 스테이지> 촬영 때문에 다시 흑발로 바뀌어있었다.
“할리우드 첫 작품인 <죽음의 도시>는 개봉 예정일이 언제인가요? 기다리시는 국내 팬분들이 많아요!”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과 미국 동시 개봉이라는 것만 알고 있어요. 아, 영국도 그렇고요. 저를 포함한 주연 배우들의 국적인 나라들이요.”
“크랭크업이 작년이었잖아요? 지금이 벌써 5월이거든요! 얼른 개봉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첫날 바로 보러 갈 겁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올해 하반기에 개봉 예정이라서, 저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또 미국으로 가야 해요. 후시 녹음이 있거든요.”
“아… 많은 팬분들께서 이 말을 들으신다면, 가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팬분들께는 늘 감사하고, 죄송하죠. 많은 작품을 제안받았었는데, 정말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시나리오들도 많거든요. 저도 아쉽지만, 그래도 <드라마 스테이지>라는 좋은 기회를 접해서 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러고 보니, 2화까지 출연하시죠! 예고편이 지금 장안의 화제입니다. 시청 포인트에 대해 살짝 소스를 주신다면요?!”
“음, 글쎄요… <드리머>에서는 제가 1인 7역으로 찾아뵈었었잖아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렸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시간에 너무 많은 역할을 짤막짤막하게만 보여드린 건 아닐까 싶어 개인적으로는 살짝 아쉬운 감도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하지만, <플레이그>에서는 오로지 한 역할만 깊게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드리머>와는 다른 느낌의 백우진,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여유가 넘치는 인터뷰였다.
평범한 얘기들이 오고 갔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할리우드 에피소드와 더불어 <드라마 스테이지>가 확실하게 장기 프로젝트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멘트들이 우진의 입에서 나왔다.
이윽고, 돌아오는 토요일.
똑같은 시간에, 우진은 두 번째 에피소드인 <플레이그>로 안방극장을 두드렸다.
* * *
김수림 작가의 <플레이그>는 제작 기간이 <드리머>보다 일주일 정도 더 길었다.
소재 자체가 거의 모노 드라마다시피 했었던 <드리머>와 달리, <플레이그>는 우진 외에도 다수의 배우가 등장해야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외국인 배우로 말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주석태로, 의료 시설이 낙후된 환경인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전문의.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로 하루에도 수십·수백 명이 죽어 나가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의료진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현장 최전선에서 어떠한 대가도 없이 오직 사명감 하나만으로 한 몸을 바치는 이들의 땀과 눈물을 그린 휴먼드라마 <플레이그>는, 촘촘한 구성에 충격적인 반전을 가미해 자극적인 소재보다 뛰어난 작품성을 뽐낸 <드리머>와 정반대였다.
각각의 인물보다는 대체로 꼼꼼한 고증을 거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을 선호하는 작가인 서민경과 인물 개개인의 서사에 더 초점을 맞춰 작품의 공격점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등장인물들의 전사(前史)를 녹여내는 전개를 사용하는 김수림의 스타일 차이가 1·2화 간격으로 극명하게 드러났다.
<드라마 스테이지> 제작진들에게는, 더 좋은 구성이었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이야기들을 주 단위로 방송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기본 특성인데, 실험적인 소재나 충격적인 반전만 강조하는 류의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인다면.
시청자들로서는 금세 흥미를 잃기 쉽다.
그런데, ‘스릴러’라는 장르 다음에 진한 ‘감동’ 코드를 선사하는 작품을 내보낸다면?
신선함은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이다.
언제나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것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때로는, 우리네 일상적인 이야기.
때로는,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
또 때로는, 일명 ‘병맛’이라 불리는 B급 감성 이야기.
때로는, 언급하는 것조차 불편한 우리 사회의 이야기.
그 외, 등등.
다양한 소재들이 나와줄 필요가 있다.
그게, 단막극이 가진 힘이고.
* * *
“하아….”
주석태는 자신의 다리 길이보다 키가 작은 아이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방호복을 입고 있어 몸이 살짝 부푼 감이 없지 않아 있으니, 아이의 신장은 어쩌면 자신의 팔 길이보다도 짧을지 모르겠다.
그의 두 손이 아이의 가슴을 연신 눌러 보지만, 아이는 여전히 미동이 없다.
이틀 전에 고열인 상태로 긴급하게 치료 센터에 실려 온 아이였고, 힘들게나마 숨을 쉬고 있었다.
주석태는 전날 밤, 똑똑히 보았다.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자신과 잠시 눈이 마주쳤던 아이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던 것을.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살리겠다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거늘.
그 다짐은 무색했다.
아침 해가 밝자마자, 아이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갔기 때문이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달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치료 센터에 머무는 내내 고열로 몸이 뜨거웠던 아이의 전신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웠다.
주변에서 그만하라며 만류를 하지만, 주석태는 멈출 수 없었다.
“……!”
그는 소리쳤다.
방호 헬멧에 메아리치는 주석태의 외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시야가 희미해졌다.
[]
<드리머>와는 또 다른 의미로, 강렬한 오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