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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120/200)

120화

당금에 천하제일인이라는 무황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왔다.

“저, 정말입니까?”

그 말에 무광이 손가락을 하나 펴 보였다.

“무슨 뜻인지?”

“일 초식! 아버지를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

“…….”

“이제 알겠지? 왜 고금제일인이신지?”

무광의 말에 고개를 사정없이 끄덕이는 유엽이었다.

그렇게 유엽 인생에서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천룡 일행이 빙궁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설풍선제는 급한 일이 있다며 서둘러 떠났다.

천룡 일행은 극진하게 대접을 받고 여기서 더 북쪽으로 가면 하늘에 너울거리는 오색찬란한 비단 물결 현상의 오색극광(五色極光)을 볼 수 있다는 소리에 다들 그곳으로 구경을 하러 갔다.

알아서 다녀오겠다는 것을 소궁주가 자신이 꼭 모시고 싶다며 따라갔다.

천룡 일행과 소궁주, 은여랑까지 모두 구경을 떠나고 조용해진 빙궁이었다.

그렇게 평화롭게 또 하루가 지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북해빙궁을 향해 정체 모를 무인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그 정체 모를 무인들의 중심에 사두마차가 있었다.

그 안에서는 불혹(不惑 : 40세)을 조금 넘긴 듯한 귀족풍 외모의 남성이 가로누워 말을 하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수염, 그리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를 지녔고 새하얀 털옷을 입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지?”

“네. 이제 곧 도착합니다.”

“뭘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이딴 곳에 자리를 잡은 거야?”

“…….”

“하아, 재미없다. 재미없어. 내가 시키는 것 외에는 대답 안 할 거냐?”

“아닙니다!”

“아, 심심하다. 심심해. 어서 도착했으면 좋겠네.”

“속도를 올릴까요?”

“아냐. 그래도 느긋하게 가자. 이 느긋함을 또 언제 즐겨 보겠냐.”

“네!”

남자는 마차 안에서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일단 우리 지부로 만들라 하였으니 다 죽이면 안 되겠지?”

“네! 최대한 살려 두라 하셨습니다!”

“하아, 그럼 재미없는데.”

“사상자 수가 많으면 실력이 형편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다시 수련 동에 집어넣는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뭐? 그게 정말이냐?”

“네!”

“시바! 애들한테 전해. 사람을 많이 죽인 놈은 나하고 면담이라고!”

“…….”

“아, 넌 호응 좀 해라! 아! 새끼들이 재미가 없어!”

참, 말이 적은 수하였다.

그때 밖에서 다른 수하가 보고했다.

“전방에 빙궁의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찌할까요?”

그 보고에 남자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말이 없는 수하에게 물었다.

“다 죽이지 말라고 했지. 아예 죽이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 그치?”

“그렇습니다.”

수하의 대답에 혀로 입술을 핥으며 안광을 번뜩이는 남자였다.

“크크크. 좋아. 좋아. 잡아 와.”

“네!”

***

땡- 땡- 땡- 땡-!

급박하게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빙궁에 비상이 걸렸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무기를 챙겨 들고 다급하게 뛰쳐나오고 있었다.

집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빙궁주 역시 그 소리를 들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빙궁주가 깜짝 놀라고 있을 때 수하가 다급하게 들어와 보고했다.

“궁주님! 습격입니다!”

“뭐라? 습격? 아니 감히 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정찰을 나갔던 저희 빙궁의 무사들의 목을 들고 성 근처로 다가오는 중입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적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수천에 이른다고 합니다!”

“뭐? 아니, 이런 미친! 모든 궁도를 소집하라!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나가는 수하를 보며 궁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선 그의 눈에서는 엄청난 살기가 뿜어 나왔다.

“으드득! 누군지 몰라도 감히 북해빙궁을 건드린 대가가 어떤 것이지 똑똑히 알려 주지!”

그리고 온몸에 세상 모든 것을 얼릴 것 같은 한기를 흘리며 성벽으로 나갔다.

성벽에 올라서자 허둥지둥 대며 이리저리 뛰는 빙궁의 무사들이 보였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것을 본 궁주는 사방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당황하지 마라! 나의 아이들아! 너희는 최강이다! 저들에게 북해빙궁의 무서움을 보여라!”

“와아아아아!”

자신들의 궁주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자 당황하던 빙궁 무사들의 사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궁주의 몸에서 사위를 압도하는 기세가 개방되었다.

바로 빙백마제(氷白魔帝) 은백광(恩白光)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에게 사기를 심어 주고 성벽 위로 올라가니 하얀색 무복을 입은 수천에 달하는 무리가 빙궁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기괴하고 감정 없는 표정으로 접근을 하는 그들.

그들의 손에는 순찰을 나갔던 빙궁 무사의 머리가 들려 있었다.

궁주의 눈에 분노가 일었다.

“네놈은 누구냐!”

내공을 실어 다가오는 적에게 외쳤다.

“…….”

하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여전히 변함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기운.

궁주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보통 놈들이 아니다…… 어디서 저런 놈들이……? 아니지. 기세에서 밀리면 안 된다.’

“네 이놈들!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우르르르릉-!

내공을 더 주입해 외치자 성벽이 울렸다.

그러나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그들.

그때 누군가가 마차 밖으로 나왔다.

마치 산책을 하듯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인물.

“거참, 노인네 목청도 좋네.”

그러더니 포권을 하며 내공을 실어서 외쳤다.

“하하하! 이거 명성이 자자하신 빙백마제님을 직접 뵈오니 감개가 무량하옵니다! 소생은 아직 별호는 없고 이름은 진호림이라고 합니다.”

진호림이라는 자의 인사에 궁주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네놈의 이름 따윈 궁금하지 않다! 이곳에서 나의 수하를 해치운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겠지?”

“하하하, 그럼요. 아주 잘 알고 있지요. 마제의 수하를 해치우면 마제의 분노를 사 그 문파는 멸문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감히 나의 수하를 죽이고 그리도 당당하게 이곳에 왔단 말이냐?”

“당당하게 와야지요. 어차피 다 우리 사람이 될 곳인데요.”

“뭐라?”

“크크크크. 아, 오늘 정말 즐거운 날입니다. 제가 그동안 쌓인 게 많거든요. 그런데 오늘 그것을 맘껏 풀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비록 다 죽이진 못하지만…….”

말을 끝냄과 동시에 돌변하며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는 진호림이었다.

계속 입술을 핥으며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일부 정도 죽이는 건 허락하셨거든요. 크크크.”

그러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

진호림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성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는 적들이었다.

거대한 학익진(鶴翼陣)을 만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궁주가 자신의 수하들에게 외쳤다.

“보여 줘라! 저들이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인지!”

“충! 화살을 쏴라!”

그와 동시에 빙궁 성벽에 있는 무사들이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피피피- 핑-!

슈아아아아-!

화살이 하늘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적들에게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두두두둑-!

파파- 파팍-!

그러나 달려오는 적들은 화살이 날아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쳐 내며 전진했다.

그 모습에 궁주가 다급하게 여기저기에 외쳤다.

“설궁대(雪弓隊)는 계속 화살을 날리고, 북풍대(北風隊)는 나가서 적들을 섬멸하라! 빙호대(氷虎隊)는 후방을 방비하라!”

궁주의 명에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며 움직이는 그들이었다.

북풍대는 성문을 열고 적들을 향해 달려갔다.

“우와와와!”

크게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북풍대와는 달리 아무 표정 없이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조용히 달려오는 적들이었다.

그런 무리를 보며 북풍대에서 외쳤다.

“재수 없는 놈들! 가자! 저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주자!”

“와아아!”

까가깡- 까가가가가강-!

채챙- 차차차차창-!

두 세력이 충돌하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콰쾅- 콰콰쾅-!

사방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고 비명이 들려왔다.

“끄아아악!”

“으아악!”

북풍대는 열심히 싸웠다.

하지만 적들이 너무도 강했다.

“저, 저럴 수가! 북풍대가 저리 쉽게 밀리다니!”

궁주는 충격에 빠졌다.

세상 어디에 내놔도 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부했던 빙궁의 주력 부대였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하얗던 대지가 새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뭣들 하는가! 우리 아이들이 죽어 가고 있다!”

궁주는 다급하게 장로들을 향해 외쳤다.

궁주의 말이 끝나기 전에 빙궁의 장로들이 뛰쳐나갔다.

장로들이 가세하자 그제야 상대가 되기 시작했다.

전세가 비등해졌다고 생각하는 찰나, 다시 한번 전장을 바라보는 궁주였다.

그리고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뭔가를 놓친 이 기분은?’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적들.

한눈으로 봐도 수가 적어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저, 적들의 수가? 나, 나머지는 어디로 갔느냐!”

사방을 지휘하는 터에 놓친 부분이었다.

그때 성안 쪽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안 돼! 커헉!”

다급하게 성안 쪽으로 달려가 보니 사라진 적들이 이미 성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후방이 뚫린 것이다.

“안 돼! 이놈들! 그만해라!”

안쪽에 있는 자들은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빙백신장!”

성안으로 들어가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궁주의 빙백신공에 의해 얼음으로 변하며 산산조각이 나는 적들이었다.

한 수에 수십 명을 날려 버린 궁주였다.

그러나 적들의 수가 너무도 많았다.

“크윽! 이놈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명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다시 내공을 끌어 올리던 찰나.

“하하하, 안 되지요. 궁주님은 저와 노셔야죠.”

갑자기 하늘에서 나타난 진호림.

그의 등장에 빙궁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지……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네놈을 잡으면 되는 것을!”

“하하하, 그렇죠! 저를 잡으면 됩니다! 그러면 저 녀석들도 공격을 멈출 겁니다.”

“으드득!”

“자! 이제 저에게 집중해야 할 이유가 생기셨죠?”

하얀 이를 드러내고 히죽 웃으며 능글거리게 말하는 진호림이었다.

“오냐! 너의 시체로 내 아이들의 원혼을 위로해야겠다!”

“하하하! 그겁니다! 바로 그 분노! 그 살기! 역시 몇 놈 죽이길 잘했군요.”

“닥쳐라!”

“빙백신장(氷白神掌)!”

빠우우우-!

하얀 빛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진호림을 향해 날아갔다.

푸하하학-!

쩌쩌적-!

빛줄기가 강타한 곳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살짝 옆으로 피한 진호림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 이것이 바로 빙백신공이군요! 역시! 하하하.”

“운이 좋구나! 어디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그러면서 다시 내공을 끌어 올렸다.

“하하,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지요. 우연찮게 저도 빙공을 익히고 있는지라…… 보여 드리지요.”

“뭐, 뭐라?”

진호림이 순식간에 궁주의 앞으로 신형을 이동했다.

궁주가 사용했던 것처럼 새하얀 기운이 진호림의 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한설극빙장(寒雪極氷掌)!”

쐐애액-!

갑작스럽게 자신 앞으로 이동해서 자신과 같은 빙공으로 공격을 해 오자 크게 당황한 궁주였다.

“크윽! 빙궁탄비(氷弓彈飛)!”

잔상을 남기며 그곳을 재빨리 빠져나가는 궁주였다.

하지만 완전히 피하진 못했는지 옆구리가 시려왔다.

그래서 힐끗 보니 옆구리 부분이 얼어 있었다.

파창-!

내공으로 얼음을 깬 후에 진호림을 노려보는 궁주였다.

그런 궁주를 보며 재미난 표정을 짓는 진호림이었다.

“크크크. 역시 그걸 피하시다니…… 대단하시군요.”

“크으윽! 뭐, 뭐냐! 그 엄청난 극음기공(極陰奇功)은?”

“아? 이거요. 왜요? 탐나십니까?”

“닥쳐라!”

이번엔 궁주가 선공을 했다.

“빙백마라강(氷白魔羅?)!”

하늘을 뒤덮는 수많은 강기들이 그물처럼 진호림을 향해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진호림의 전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진호림의 가슴을 향해 빙백신장을 날렸다.

사방을 강기로 에워싸고 달아날 곳이 없는 진호림을 공격하는 것이다.

카카캉-!

그러나 하늘을 메운 강기들은 진호림이 만든 얼음 검에 의해 막혔다.

그리고 진호림의 신형은 순식간에 이동했다.

퍼엉-!

진호림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던 빙백신장도 목표물을 잃고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재빨리 사라진 진호림의 행방을 찾아 사위를 훑어보는 궁주였다.

자신의 뒤쪽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 궁주는 놀라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어찌!”

진호림의 주변으로 수백 개가 넘는 얼음 검이 강기를 머금은 채 궁주를 겨누고 있었다.

진호림이 한쪽으로 입술을 밀어 올리며 웃었다.

“크크크. 이제 제 차례인가요? 이번 공격의 초식 이름은 천패빙어강(天覇氷馭?)이라고 하죠.”

진호림이 손끝으로 궁주를 겨누자, 얼음 검들이 일제히 날아갔다.

쐐애애액-!

“빙궁탄비(氷弓彈飛) 연(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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