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빙궁주가 다급하게 빙궁탄비를 연속으로 쓰며 날아오는 검들을 피했다.
그러나 검들은 피하는 궁주를 따라 방향을 전환했다.
“빌어먹을! 이기어검술(以氣馭劍術)이라니!”
인정하기 싫었지만, 진호림은 자신보다 강자였다.
그것도 훨씬 윗줄의 강자.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빙백천살강(氷白天殺?)!”
궁주의 몸에서 하얀 광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쩌저저정-!
궁주를 향해 날아오던 얼음 검들이 깨져 나갔다.
“오오, 아름답구나!”
그 모습을 본 진호림의 감상평이었다.
쩌저저저저적-!
사방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다른 이들이었으면 이곳에서 얼음 조각상이 된 채로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진호림이었다.
빙궁주의 회심의 일격은 진호림에게 어떤 타격도 주지 못했다.
그는 빙글빙글 웃으며 궁주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빙궁주는 방금 전의 한 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고 심력에 타격을 입었다.
그 충격으로 급격하게 지쳐 갔다.
진호림이 바로 앞에까지 다가왔지만, 궁주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하,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뭐, 기대한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쿨럭-!
진호림의 말에 궁주의 내기가 흔들리며 피를 토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공격했건만 상대방은 그저 유흥거리였다고 하니 정신적 충격이 온 것이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제 소개를 해야겠지요. 아니지. 제 소개가 아니라 제가 속한 곳을 소개해야겠지요.”
진호림의 말에 궁주가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혈천. 어떠십니까? 저희 밑으로 오시겠습니까?”
“서, 설마…… 혀, 혈천교?”
“하하, 잘 아시는군요. 자! 이제 선택의 시간입니다. 다 죽일까요? 아니면…… 저희 밑으로 오시겠습니까?”
떨리는 궁주의 동공을 보며 즐거워하는 진호림이었다.
그때 하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혈천교 놈들이었군.”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
진호림이 깜짝 놀랐다.
자신의 이목을 숨기고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고수라는 얘기였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내려 오고 있었다.
“드디어 세상에 나온 것이냐?”
남자의 물음에 진호림이 웃으며 답했다.
“후후, 그렇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저희를 잘 아시는 것처럼 말하시는군요?”
그런 진호림의 말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나? 담무광.”
“담……무광?”
“세상 사람들이 무황이라 부르지.”
“서, 설마!”
“그리고 네놈들의 철천지원수라고 해야 하나?”
“저, 정말입니까?”
“그래.”
무광의 답에 진호림이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그러더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무광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설적인 무황을 이렇게 뵙는군요. 그 모습은…… 과거보다 경지가 더 강해지셨군요.”
“어쩌다 보니…….”
“이거 반갑습니다.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인물을 이리 직접 영접하다니, 감개무량합니다.”
“뭐 딱히 니들한테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데…….”
“하하하하! 들어도 됩니다. 저희 교를 풍비박산을 낸 장본인이 아니십니까? 솔직히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무황이십니다.”
“네가 왜 날 존경해? 그러면 안 되지.”
“크크크크. 그리고 제가 가장 맞붙고 싶었던 분이기도 하지요.”
말을 마치자마자 땅에 착지한 무광을 향해 돌진하는 진호림이었다.
“전설의 무황께 제 무공을 보여 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앗!”
진호림의 몸에서 수백 개가 넘는 주먹의 잔상이 날아왔다.
슈슈 슈슝-!
파파 팍-!
무광은 그것을 뒷짐을 진 채로 무덤덤하게 피했다.
“한설극빙장!”
진호림의 손에서 차가운 냉기를 품은 장력이 무광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갔다.
쩌저저적-! 퍼펑-!
무광은 자신의 오른손을 반원 모양으로 돌리며 장력을 막았다.
휘리릭-! 휙-!
그리고 반탄지기를 이용해 장력의 일부를 진호림에게 돌려보냈다.
무광의 반탄지기에 튕겨 나와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장력을 재빨리 왼손으로 막는 진호림이었다.
퍼펑-!
자신의 무공에 손이 얼어 버린 진호림은 새하얀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쩡-!
손에 있는 얼음을 박살 내고는 말했다.
“역시 명불허전이십니다. 하하.”
무광은 그런 진호림에게 관심을 주지 않고 빙궁주에게 말했다.
“이곳은 제가 맡을 테니 어서 들어가 정리하십시오.”
“고, 고맙소!”
궁주는 포권을 하고 재빨리 안쪽으로 들어갔다.
궁주가 사라지자 무광이 진호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제대로 덤벼 봐.”
무광의 말에 진호림의 눈이 반달로 휘었다.
“네! 제가 지금까지 배운 모든 것을 보여 드리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진호림의 몸에 서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극저온의 온도가 그의 몸을 얼리고 있었다.
그때 진호림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이게 문제야. 준비 과정이 너무 길어.”
“헉! 무, 무슨?”
퍼어억-! 쩌적-!
“크으윽! 비, 비겁한……!”
무광이 내공을 모으는 진호림에게 고속 이동한 후에 공격했다.
“비겁? 하하하. 미친놈.”
실소하며 자신의 팔 전체에 강기를 두르고 다시 진호림에게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접근하는 무광이었다.
파앙-!
진호림은 진탕하는 내공을 다스리며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늦었다.
강기를 머금은 무광의 주먹이 진호림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진호림은 고개를 꺾어 피한 후에 다시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러나 뒤이어 날아온 무광의 무릎은 피하지 못했다.
퍼억-!
“크헉!”
얼굴 전체가 크게 꺾이며 몸이 휘청하는 진호림.
그리고 이어지는 타격.
퍼퍼퍼퍽-!
무광이 만든 무극육연격(無極六連擊)이었다.
쿠당탕탕-!
진호림은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쿨럭! 쿨럭! 카악, 퉤!”
피가래가 섞인 침을 뱉어 내고 무광을 노려보는 진호림이었다.
“정파의 수장이라는 분이 이리도 비겁하면 되겠습니까?”
엄청 억울한 표정으로 무광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너희들이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들과 싸울 때 정의, 정정당당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아니야. 나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더니 제대로 안 들었구나.”
무광의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 가만히 있는 진호림이었다.
“그리고 너희들 무공에 대한 단점을 알려 줬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냐?”
“크크큭! 그건 확실히 고맙군요. 이런 크나큰 단점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인제 그만 끝내자.”
“그럴 순 없죠! 저 역시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다 보여 준다고.”
“하하, 뭐 준비하는 걸 기다려 달라는 소리냐?”
무광의 말에 진호림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요. 단점을 극복하겠다는 뜻이지요.”
부아아아아-!
순식간에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는 진호림이었다.
쩌저저저적-!
진호림의 눈은 새하얗게 변했고, 몸 주변으로 수천 개의 얼음 검들이 생성되었다.
그 얼음 하나하나에 엄청난 기운이 담겨 있었다.
“극빙천살강(極氷天殺?)!”
수천 개가 넘는 얼음 검들이 무광을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거대한 공 모양으로 무광을 향해 쏟아지는 얼음 검.
무광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무극무심권(無極無心拳)”
쩌저저저저저정-!
쩌저정-!
무광을 향해 날아오던 검들이 갑자기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것들을 부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뭐야! 뭐가 어찌 된 거지?”
그 모습에 놀란 진호림이 재빨리 그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퍼억-!
“커헉!”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무언가에 맞고 성벽 쪽으로 날아가는 진호림이었다.
슈우웅-!
콰콰쾅-!
너무도 강한 위력에 성벽을 뚫고 바깥으로 튕겨 나간 진호림이었다.
“우웨엑! 쿨럭!”
피를 한 웅큼 토해 낸 진호림이 고개를 흔들었다.
‘크흑! 역시 무황인가? 들었던 것보다 더하군. 과연 교가 절대적으로 정한 이유가 있었군. 패천강기(覇天?氣)에 모든 내공을 쏟아부어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그러면서 부들거리는 손을 불끈 쥐고 일어서려 했다.
그런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하늘에 누군가가 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진호림.
오싹-!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자신이 지금까지 보았던 고수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종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진호림의 눈에 그가 말하는 입술 모양이 보였다.
“만뢰(萬雷)”
번쩍-!
쿠콰콰콰쾅-! 콰르르르릉-!
천벌이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진호림의 눈에 보인 광경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수하가 있는 곳에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리는 뇌전들을 보았다.
“끄아아아악!”
“끼에에엑!”
“아아아아악!”
그 어떤 고통에도 절대 소리를 내지 않는 자신의 수하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혈천교가 원하는 세상이 이런 세상일까?
이런 괴물 같은 자가 있는 곳을 공격해서 지부로 만들라니.
“군사 이 미친 새끼가!”
군사가 제정신이 아닌가 보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무황이 있는 거지?”
이해가 안 되었다.
중원에 있어야 할 무황이 여기에 있고 정보조차 없는 괴물이 깽판을 치고 있었다.
멍한 상태로 주저앉아 있는데 무광이 옆으로 와 말했다.
“대단하지? 너네들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저거다.”
무광의 말에 하늘에 떠서 자연을 부리는 천룡을 같이 바라보는 진호림이었다.
“저분은…… 인간이십니까?”
“아마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좀 자라.”
퍽-!
그게 진호림이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
어두컴컴한 지하 깊숙한 동굴 속.
군사가 그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크크크크! 드디어! 드디어 모든 준비가 다 되었다!”
환희에 찬 얼굴로 방 안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그.
“과거 배교의 흔적을 찾은 것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이야!”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너무 오래되어 백골인지 아닌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뼈 무더기와 낡은 검이 놓여 있었다.
“크크크크큭! 나도 이제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것인가? 이 대법만 성공한다면 말이야.”
군사의 손에는 낡은 책자가 들려 있었다.
-유마회혼대법(維摩回魂大法).
죽은 이의 혼백을 불러내어 자신의 몸속에 넣을 수 있는 대법이었다.
살아생전에 그가 가졌던 힘과 기억을 가져올 수 있었다.
다만 조건이 까다로웠는데, 부를 혼백의 주인이 사후 몇백 년이 지났어야 하고 그 사람의 유골이 있어야 하며, 그가 사용했던 무기나 장신구가 있어야 했다.
자신의 피를 천년독각사의 피로 적어서 만든 부적에 묻혀서 태워야 했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실패할 확률이 구 할 이상이라 사장된 대법이었다.
성공을 한다 해도 그 혼백이 가졌던 기억 일부만 얻고 끝날 수도 있었다.
거기에 도형을 그릴 때 들어가는 재료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싼 재료들뿐이었다.
한마디로 돈은 무지하게 들어가는데 실속은 없는 그런 거였다.
하지만 군사는 성공을 자신했다.
“중원 역사상 가장 강했다는 천마대제(天魔大帝)의 유골도 구했고, 그가 사용하던 검도 얻었으니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그러더니 거대한 도형이 그려져 있는 원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군사였다.
원 가운데 서서 칼로 자신의 팔뚝을 그어 피를 낸 뒤에 품속에 있던 부적에 묻혔다.
그리고 천마대제의 유골과 검에도 자신의 피를 뿌렸다.
“이로써 그동안 무공이 약해서 받았던 설움은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옴 파드마삼바바. 옴 라마타시디 크시나 포드아.”
군사가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자, 도형 한쪽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차 강해지며 도형 전체에 퍼졌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해진 빛 가운데 붉은 구멍이 생성되었다.
그 구멍으로 유골과 검이 빨려 들어갔다.
빨려 들어가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뒤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연기는 주문을 계속 중얼거리는 군사의 주변을 감싸더니 코 속으로 들어갔다.
“크윽!”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연기에 인상을 찡그리는 군사였다.
그리고 엄청난 고통이 머리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군사는 고통을 참으며 주문을 계속 중얼거렸다.
지금부터가 정말로 중요했다.
시간이 흐르자 과거 천마대제의 힘이 군사의 몸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천마대제의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강력한 무공들.
그리고 그가 살아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기운들.
쩌저저저적-!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군사의 옷과 피부가 갈라지며 분해되기 시작했다.
그런 군사의 몸속으로, 끊임없이 붉은 구멍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흡수되고 있었다.
피부가 다시 재생되고 온몸의 뼈들이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우두둑-! 우두두둑-!
그리고 대법이 끝났다.
군사는 한참이 지난 뒤에 눈을 떴다.
그리고 젊어진 자신의 손과 몸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몸 안에 가득 차 있는 마기를 느꼈다.
“크하하하하! 서, 성공이다! 성공이야!”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동굴 내부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차차, 이곳이 무너지면 빠져나가는 데 골치가 아프겠군. 조심해야지. 강해지면 이런 기분이구나. 크크크.”
환희에 찬 얼굴로 성공의 기쁨을 즐기는 군사였다.
“과연. 중원역사상 가장 강한 무인이 맞군. 이런 힘이라니.”
드문드문 들어 있는 천마대제의 기억.
하지만 전부 쓸데없는 기억들이었다.
“무공에 관한 기억들과 힘을 무사히 얻어서 다행이군. 크크크. 쓸데없는 기억들은 필요 없지.”
주변에 널브러진 천으로 몸을 대충 감싸고 지상으로 걸어 올라가는 군사였다.
“이제 내 세상이 온다. 하하하하하. 나를 무시하던 것들 모두 기다려라.”
항상 강한 힘과 젊음을 갈구하던 군사의 염원이 풀리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