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왠지 불안했지만 일단 맡겨 보는 천룡이었다.
“너 정말 뭐든지 다 알아?”
“그럼요!”
“그럼, 사람 체질도 맞출 수 있어?”
“하하, 전문입니다!”
“좋아. 조방 들어와!”
무광의 말에 조방이 들어왔다.
그런 조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얘 신체가 뭐야?”
무광의 말에 제갈군은 조방에게 다가가 유심히 살폈다.
제갈군의 머릿속에서 저장된 모든 신체와 체질의 특성이 검색되고 있었다.
‘흐음, 딱히 특별한 것은 없는데?’
조방은 천룡이 강제로 개조를 했기에 화룡지체 특유의 특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자들이 나를 시험하기 위해 평범한 자를 내세운 건가?’
내공도 그다지 강한 것 같지 않고, 아무리 봐도 별 특이점을 찾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입니다.”
“진짜? 확실해? 장담할 수 있어?”
“네!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특성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땡! 뭐 알기는 개뿔이 알아! 맞히지도 못 하는구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게 무슨 체질인데요?”
“그건 네가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거 보십시오! 평범한 사람이 맞으니 우기시는 것 아닙니까!”
“아닌데?”
“맞습니다!”
“이게 그냥!”
무광이 주먹을 쥐자 제갈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지금 주먹 쥐셨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드렸을 텐데요? 저 무공도 강하다고.”
그 말에 무광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신의 앞에서 무공 이야기를 한 것인가?
“너 지금 내 앞에서 무공 이야기를 한 거야?”
제갈군은 무광이 왜 이러는지 당연히 이해를 못 했다.
무황인지 모르니까.
그저 허세가 좀 많은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저리 발끈하는 거로 생각했다.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잘나다 보니 예의가 조금 없었군요. 저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그게…… 사과냐?”
얼굴이 붉어진 무광을 제쳐 두고 천명이 물었다.
“그래. 자네가 공명 선생의 현신이라고?”
“그렇습니다. 물론 이 얘기는 제가 하는 말이 아니고 주변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하하하.”
그 주변 놈들 주둥아리를 모두 꿰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얄미웠다.
“그럼 공명 선생처럼 날씨도 바꿀 수 있겠네?”
천명의 말에 처음으로 제갈군이 표정을 굳히며 반발했다.
“그거는 잘못 전해진 내용입니다! 저희 선조님께서는 날씨를 부리신 게 아니라 천문을 보시고 미리 예견하신 것뿐입니다.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동남풍을 불게 했느니 마느니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보는 사람마다 날씨 좀 바꿔 보라 했나 보다.
열변을 토하는 것 보니.
천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여기 우리 장주님은 바꾸실 수 있는데?”
그 말에 천룡이 화들짝 놀라며 천명을 쳐다봤다.
-에이, 사부님 살짝 보여 주시지요. 저놈 기죽이는 게 먼저 아닙니까?
천명의 말에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천룡이었다.
그런 천룡의 모습을 제갈군은 다르게 인식했다.
“저 보십시오. 장주님도 화들짝 놀라며 안 된다고 고개를 저으시지 않습니까! 이제 적당히 하시지요?”
천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야! 따라와. 이제 엄청난 것을 보여 줄 테니.”
제갈군은 설마 하며 따라나섰다.
운가장 뒤편에 있는 연무장에 도착한 그들.
제갈군은 연무장을 유심히 살폈다.
‘무슨 장치를 해 놓은 건 아니겠지? 진법이라든가?’
유심히 살펴보는 그를 보며 천명이 말했다.
“진법이나 그런 거 없으니까 안 봐도 돼.”
“하하, 습관입니다. 주변을 항상 관찰하는.”
말은 청산유수다.
“거기 말고 하늘을 봐야지.”
천룡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는 제갈군이었다.
“뭡니까?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기만 하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수증기들이 몰려오더니 순식간에 먹구름이 생겼다.
“헉!”
그러더니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쏴아아아아-!
입속으로 빗물이 왕창 들어가고 있었지만,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벌린 채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제갈군이었다.
그러다가 입안에 물이 꽉 차며 숨이 막혔는지 기침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커컥! 쿨럭! 쿨럭! 이, 이게 무슨?”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날씨를 다룬다니?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자신이 아는 상식선에서는 절대 불가능했다.
천룡이 웃으며 손을 내리니 먹구름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다시 화창한 날씨로 변했다.
잘하면 눈이 빠질 것 같은 모습으로 천룡을 쳐다보는 제갈군이었다.
“봐! 가능하지? 뭐야, 넌 할 줄 아는 게 뭐냐? 신체도 못 맞춰. 날씨도 못 바꿔. 순 맹물이네.”
그 말에 제정신을 차리고 발끈하는 제갈군이었다.
방금 엄청난 광경을 보고도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에 정신을 차리는 것을 보니 이놈도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제갈군은 심기일전하고 말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진법에서 제가 최고 맞습니다.”
“진법?”
“네! 제가 만든 진법에선 그 누구도 탈출하지 못합니다.”
“정말?”
“네! 만약 탈출에 성공하신다면 제가 이 집 하인이 되겠습니다!”
“진짜? 너 그거 후회할 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취소해라.”
“하하, 이제 겁이 나시는 겁니까?”
제갈군은 고개를 한껏 치켜들며 우쭐해했다.
조금 전까지 천룡이 한 신기에 놀란 것은 전부 잊은 듯했다.
“좋아. 만약 우리가 못 빠져나와서 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하지.”
“오! 약속하신 겁니다? 하하하.”
제갈군은 팔을 걷어붙이더니 연무장 끝에 있는 화살들을 빼 왔다.
그러더니 연무장 이곳저곳에 박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이리저리 다니면서 화살을 바닥에 꽂고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화살을 꽂으면 진이 발동됩니다.”
“응. 꽂아.”
“살려 달라고 울고불고하시면 안 됩니다.”
“응. 그래.”
시큰둥한 반응에 제갈군은 발끈하며 그래 한번 당해 보라는 표정으로 마지막 화살을 바닥에 꽂았다.
마지막 화살이 꽂히자 신기하게도 풍경이 변했다.
“오오! 세상에…….”
“우와! 정말이네? 신기하다.”
“세상이 바뀌었어.”
다들 신기해하며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만상역변진(萬狀逆變陣).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함정이 그 안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하하, 얼마나 버티는지 한번 보지요.”
제갈군의 말처럼 진 안에서는 수많은 함정이 발동해서 천룡과 제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그런 건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뭐지? 왜 가만히 서 있지? 진이 발동이 안 되었나?’
그런데 여기저기 둘러보는 것이 발동은 되었다.
‘그럼 내가 뭘 잘못했나?’
다시 한번 진을 살펴보는 제갈군이었다.
이상이 없었다.
제갈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들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깜짝 놀랐다.
엄청난 두께의 강기로 연무장 전체를 덮고 있었다.
저 호신강기를 믿고 전혀 겁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진이란 그 사람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환상으로 나타내어 공격하는 수법이다.
하지만 저들에게 두려움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대단…….’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감탄만 하고 있는 제갈군이었다.
지금까지 자기 잘난 맛에 살아왔지만, 이들을 보니 다른 분야에서 자기와 같은 천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저 진을 빠져나오진 못하리라 생각을 하며, 언제 열어 달라고 할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무덤덤했다.
안에서 천룡이 말했다.
“이제 재미없다. 나가자.”
“네!”
천룡은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쾅-!
사방이 흔들렸다.
쩡-!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퍼석-!
바닥에 꽂아 둔 화살들이 전부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날렸다.
제갈군의 정신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간단히 깬다고? 내 진법을?”
경악하는 제갈군과 다르게 천룡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거 없네. 진법도.”
쩌적-!
제갈군의 자존심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 우리 집 하인이네?”
무광의 말에 제갈군이 정신을 차리고 항변했다.
“무, 무효입니다!”
“뭐래는 거야?”
“문서로 작성하지도 않았고 수결도 하지 않았으니 무효!”
“…….”
얼굴까지 빨개져서 항변하는 제갈군이었다.
그 모습에 다들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너 그냥 가라. 군사고 나발이고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
“그래. 머리 쓰는 게 골치 아파서 군사를 뽑는 건데, 널 군사로 뽑으면 더 골치 아플 거 같다.”
다들 가라고 하자 제갈군이 더욱 발끈하며 말했다.
“이대로는 못 갑니다!”
“아, 쫌! 그냥 가라고! 우리가 고용 안 할 거라고!”
“아직 저의 진면목을 못 보여 드렸습니다!”
“아냐. 충분히 본 거 같아. 가서 제갈현한테 안부 잘 전해 주고.”
“저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
“네! 삼세 번은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기억이 안 나니? 너 천재라며. 삼세 번 기회 줬어.”
“처음 것은 인정 못 합니다!”
처음 조방의 체질을 맞히라는 것은 절대 인정을 못 하겠다고 버티는 제갈군이었다.
“하아, 그래? 정말로 쟤가 평범해 보여?”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중원에 출현한 모든 신체를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그 어떤 것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럼 붙어 봐. 어떤지.”
“네?”
“붙어 보라고. 너 무공도 강하다며.”
“하하하, 이거 제가 두 번이나 미끄러졌다고 절 너무 무시하시는데…… 저 무공 진짜로 강합니다!”
“알았다고! 그냥 좀 주둥이 닥치고 붙어 봐!”
“그냥요? 에이. 제가 이기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로 하시죠?”
“허허허허, 뭐 이런…….”
이제 화낼 기운도 나지 않았다.
천룡이 조용히 서류를 들이밀며 말해다.
“수결해.”
이게 뭔가 싶어 봤더니 조방에게 지면 운가장에서 평생을 하인으로 살겠다는 계약서였다.
“수결 안 할 거면 저기 문으로 나가면 되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손바닥에 먹을 묻히고 종이에 찍었다.
그리고 그 옆에 수려한 필체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었다.
“자! 이제 됐지요? 저도 하나 적어 주셔야죠.”
“응. 자, 여기.”
미리 준비해 놨다.
아까 제자들이 제갈군과 말다툼하고 있을 때 뒤에서 적어 뒀다.
“자, 그럼 이제 불만 없지?”
“네! 하하하. 좀 심하게 하면 어찌 됩니까? 저에게 불이익 그런 거 없겠죠?”
“응! 없어. 저놈이 사경을 헤매도 너에게 조금의 책임도 없으니 전력을 다해.”
“네? 하하, 전력이라니요. 이거 아직 저의 경지를 잘 모르셔서 그러는 겁니다. 전력 다하면 저 사람 큰일 나요.”
“닥치고…… 이제 좀 하면 안 되니?”
그러다가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아, 맞다! 아버지! 계약서 내용을 저걸로 하시면 어찌합니까!”
무광이 무언가 번뜩 떠올랐는지 천룡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응? 왜?”
“하인이 아니라 다신 이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적으셨어야죠!”
“아…….”
아차 싶은 천룡이었다.
아까 하인이 되겠다고 우긴 것만 생각이 나 고대로 적은 것이다.
머리를 감싸고 후회하는 천룡이었다.
이겨도 골치 아프게 생긴 것이다.
져도 문제고 이겨도 문제다.
이런 걸 진퇴양난이라고 하나?
천룡은 유가연의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게 났다.
“하하하, 절 이리도 원하시니 제가 한번 살살 해 보겠습니다. 하하하.”
저 주둥아리를 꿰맸으면 바람이 없겠다고 생각하는 운가장 사람들이다.
한편 옆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던 조방은 분노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감히 주군께 심려를 안기다니…….’
제갈군으로 인해 천룡의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자 분노가 일어난 것이다.
“주군, 제 힘을 맘껏 사용해도 되겠습니까?”
조방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라. 죽이진 말고.”
“충!”
둘의 대화에 다시 제갈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절 너무 경계하시는 거 아닙니까? 살살 한다니까요.”
“죽을 만큼…… 밟아.”
“충!”
조방은 연무장 가운데로 가서 창을 겨누며 말했다.
“나의 주 무기는 창이오. 괜찮소?”
“하하하, 나는 이것이면 되오.”
그러면서 자신의 우선을 들어 보였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있는 무기를 드시오. 자만은 독이오.”
이왕 대련할 거면 정정당당하게 하려고 제갈군에게 조언을 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한 번도 자만하지 않았소.”
조방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가겠소.”
“오시오.”
파앙-!
순식간에 제갈군의 눈앞으로 창날이 들어왔다.
“허억!”
깜짝 놀라며 재빨리 고개를 돌려 피하는 제갈군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우선으로 조방의 몸을 공격했다.
하지만 제갈군이 공격한 것은 몸이 아니라 조방의 잔상이었다.
“느리군.”
뒤에서 들려오는 조방의 목소리.
제갈군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리고 포권을 하더니 말했다.
“사과하오. 내가 자만했었소. 사죄의 뜻으로 이제 전력으로 가겠소.”
“훗, 바라던 바요. 오시오.”
“하앗!”
콰콰쾅-!
퍼펑-!
둘이 격렬하게 격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