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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 (125/200)

125화

그 모습을 보던 네 사람은 의외로 놀랐다.

“어라? 예상외로 잘하네?”

“그러게요? 영약만 죽어라 부어 만든 내공인 줄 알았더니. 진짜배기였네요?”

“천재는 천재 맞네.”

쿠쿠쿵-!

쩌정-!

제갈군의 무공은 정말로 강했다.

“저 정도면 칠왕십제급에 조금 못 미치겠는데?”

“그래도 아직 어리고 똑똑하니 더 강해지겠죠.”

“제갈에서 저런 무인이 나올 줄이야.”

다들 감탄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무공도 깔끔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제갈가의 무공을 자신의 몸에 맞게 변형했어. 훌륭하다.”

“약점으로 보이는 부분도 상당히 보완한 것 같네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네요.”

퍼억-!

그러나 최근에 급격하게 강해진 조방을 이길 수는 없었다.

“크흑!”

바닥에 무릎을 꿇고 겨우 버티고 있는 제갈군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가, 강하다니…….”

“그대 역시 강하오.”

“하하하,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제갈군은 처음으로 좌절을 맛보았다.

자신 또래의 남성에게 처음으로 진 것이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졌다.

“내가 졌소.”

의외로 패배 시인은 깔끔하게 하는 제갈군이었다.

“어라? 이번은 안 우기네?”

그 말에 제갈군이 말했다.

“무공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합니다.”

“반대……여야 하는 거 아니냐?”

“제갈가라서 그럽니까? 아니요. 이제 제갈가도 변해야지요.”

“그렇군.”

어찌 보면 대견했다.

“승부는 승부. 제가 졌으니 오늘부터 이 집의 하인입니다.”

너무도 깔끔하게 인정하는 제갈군이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안쓰러웠던지 천룡이 말했다.

“너는 재능에 진 거니 너무 크게 상심하지 마라. 조방의 재능에 그 정도로 싸웠으면 대단한 거다.”

오히려 그 말이 더욱 자조감이 들게 했다.

저들이 자신을 위로한다고 생각했다.

“안 믿는군. 조방, 보여 줘라.”

“충!”

무엇을 보여 준단 말인가?

고개를 들어 조방을 바라보았다.

조방이 제갈군에게 말했다.

“나는 화룡지체요.”

“……?”

“이제 보여 주겠소.”

“뭐, 뭘?”

“화룡현신!”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조방의 몸 안에서 거대한 화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에 많은 부분을 흡수한 터라 이제 고분고분하게 조방의 말을 듣는 화룡이었다.

그 덕에 위력이 더욱더 강해진 화룡현신이었다.

온 세상을 녹일 듯한 열기가 제갈군의 피부로 느껴졌다.

“마, 맙……소사…….”

충격. 경악. 허탈.

이 모든 감정이 제갈군을 덮쳤다.

“화, 화룡지체라니? 그, 그럴 리가. 내가 아는 화룡지체는…… 이러지 않는데?”

분명 화룡지체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하지만 조방의 몸에서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알겠지? 왜 재능에 졌다고 하는 것인지.”

천룡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화룡지체를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이건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그만.”

천룡의 말에 순식간에 사라지는 화룡이었다.

열기만이 방금 이곳에 화룡이 현신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멍하니 앉아 있는 제갈군에게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겠지? 잘 지내보자. 우리 하인.”

천룡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 제갈군이었다.

“헉! 저 그, 그게!”

“하인 주제에 말이 많네?”

“하, 하인은 좀 그렇고 집사나 총관 정도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도 명색이 제갈세가의 미래라고 불리던 몸인데…….”

“응, 안 돼. 넌 이제 하인이야.”

그러면서 수결한 종이를 눈앞에서 흔드는 천룡이었다.

“안 돼! 내가 하인이라니! 내가 하인이라니!”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하는 제갈군이었다.

***

제갈군이 운가장에 온 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운가장에 완벽 적응을 한 그였다.

비록 하인이지만 천룡과 제자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은 그를 하인 취급은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하인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반항도 하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의 정체를 알려 주겠다며 인적 없는 깊은 산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날 그들의 정체를 듣고 제갈군은 태어난 이래 가장 크게 놀랐다.

너무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무황이 자신에게 말했다.

“우리 정체가 무림맹이나, 너네 세가에 알려지면 그땐 어찌 되는지 알아?”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고개를 좌우로 저으니 천룡이 갑자기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 저기 제갈세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이들이라면 혹시? 하는 생각에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 둔덕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크기가 제갈세가 저택의 넓이와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피식거리며 천룡을 쳐다보며 말했다.

“뭡니까? 아무것도 없…….”

고오오오-!

빠지지직-!

천룡의 손에 뇌전을 품은 거대한 구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갈세가라고 말한 둔덕을 향해 던졌다.

쿠콰콰콰콰쾅-!

콰르르르르르-!

퍼퍼퍼펑-!

인간이 낼 수 있는 파괴력이 아니었다.

엄청난 후폭풍이 제갈군을 덮쳤다.

한참이 지난 후 그곳을 다시 바라보니 제갈세가만 한 둔덕은 사라지고 거대한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구덩이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천룡이 웃으면서 말했다.

“제갈세가가 있었는데, 없어졌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알겠지? 무슨 소린지?”

제갈군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좋으면 뭐 하는가? 천재면 뭘 하는가?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다 부질없는 것이다.

그것을 절실하게 깨달은 제갈군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되돌아봤다.

얼마나 자만심에 빠져 살아온 삶이던가.

그리고 지켜야 했다.

어찌 됐든 제갈세가는 자신의 가문이었고, 미래에 자신이 크게 키워야 할 가문이기도 했다.

그런 가문이 이 괴물들이랑 지금 척을 지려 하고 있다.

‘내가 한 몸 바친다, 진짜……. 하아, 가문은 알까? 이런 나의 희생을?’

다시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그렇게 과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인이 세가에서 서찰이 왔다며 주고 갔다.

“무슨 서찰이지? 설마…… 중간보고하라는 건 아니겠지?”

꿀꺽!

‘만약 보고하라는 것이면 어쩌지?’

다행히 보고하라는 서찰은 아니었다.

“신룡지회? 아……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무당에서 열리는 이번 신룡지회에 참석하라는 가문의 서찰이었다.

“무당이라…… 아 씨, 보내 주려나? 미치겠네……. 하인 됐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래도 일단 물어보러 천룡이 있는 처소로 가는 제갈군이었다.

제갈군은 조심스럽게 천룡각 앞에서 천룡을 불렀다.

“자, 장주님. 저 제갈군인데요.”

“들어와.”

“감사합니다.”

천룡의 신위를 본 후로 이렇게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제갈군이었다.

지금 이 모습을 제갈세가 사람들이 본다면 다른 사람 아니냐며 믿지 않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천룡에게 넌지시 물어보는 제갈군이었다.

“저, 저기 제가 이번에 가문의 일로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하는데요.”

“가문의 일? 무슨 일인데?”

“아, 신룡지회라고 후기지수들 모임이 있습니다. 이번에 무당에서 개최한다는데 거기에 참석하라고 하시네요.”

“신룡지회? 그건 뭐 하는 거냐?”

“아, 친목 도모를 하는 자린데요. 말이 친목 도모지 각 문파의 후기지수들 자랑하는 자리예요. 우리 문파의 후기지수가 이렇게 잘났다 하고 자랑하는 뭐 그런 자리죠.”

“아항, 가만……. 어디서 한다고?”

“네? 무당요?”

“오, 무당. 거기 한번 가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같이 가자.”

“네?”

“뭘 그렇게 놀라. 싫어?”

천룡은 그냥 물은 것인데 제갈군은 화들짝 놀라고 말했다.

“아, 아니요! 싫긴요!”

“뭘 그렇게 놀라. 아직도 그때 충격에서 못 벗어났어?”

천룡의 말에 제갈군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걸 어찌 벗어납니까? 웬만해야 잊죠…….”

“내가 너무 심했구나. 미안.”

“아닙니다. 덕분에 우물 안 개구리인 거 알았으니 오히려 저한테 더 잘된 거죠.”

“하하,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네. 좋아. 그렇게만 해. 머지않아 하인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저, 정말입니까? 평생 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천룡의 말에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환하게 웃는 제갈군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 식구가 됐는데 어찌 하인으로 계속 부르냐? 적당할 때에 승격시켜 줄 테니 지금처럼만 해라.”

“감사합니다! 하하.”

“가서 신룡지회 갈 준비하고, 나가면서 우리 애들 좀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가는 제갈군이었다.

***

며칠이 지나고 천룡은 제자들과 제갈군, 조방만을 데리고 무당산으로 떠났다.

여월과 장천은 최근에 새로운 심득을 얻어 폐관에 들어갔기에 데려갈 수 없었다.

가는 길에 천룡은 궁금한 점을 제갈군에게 물었다.

“신룡지회는 정파만 모이는 건가?”

천룡의 물음에 제갈군이 말했다.

“아니요. 명목상 친목을 도모하는 거라 정사 관계없이 모두 모이는 것이 신룡지회의 개최 목적이죠.”

“정사 모두?”

“네. 미래에 강호를 책임질 후기지수들끼리 친목을 도모해서 평화를 만드는 뭐, 그런? 저기 무황께서 만드신 모임입니다.”

“오! 무광이 네가?”

천룡의 시선을 받은 무광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때는 강호의 화합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의외네요. 제가 만든 걸 여전히 개최하고 그것도 무림맹의 주축인 무당에서 한다는 것이 놀랍네요.”

“신룡지회가 무림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는 뜻이죠. 그래도 세월이 오래 지나서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있습니다.”

“왜?”

“일단 정사가 다 모이니 충돌이 자주 일어납니다. 본래 취지는 화합인데 취지와 다르게 그 행사는 정파와 사파 간의 세력 자랑의 장이 되었지요.”

“허. 그러니까 누가 더 잘났는지 그 세력을 과시한다?”

“그렇죠. 거기에 알게 모르게 파벌까지 형성되어 있어서 그 파벌에 속하지 못한 후기지수는 가 봐야 찬밥 신세만 당하다 오죠.”

“이런 썩을 놈들이! 나는 그런 의미로 신룡지회를 만든 것이 아니야!”

무광이 분노했다.

자신은 순수하게 무림의 평화를 위해 노력한 흔적 중 하나인데, 어린 후기지수들은 그걸 자신들의 힘자랑을 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지 허무해지기 시작했다.

“진정해라. 군이 말이 맞는지 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하아, 네. 알겠습니다.”

천룡의 말에 일단 화를 가라앉히는 무광이었다.

“그럼 저 남궁에서도 오겠네?”

“아마도 오지 않을까요?”

“태성이네 아들도?”

“글쎄요……. 저도 잘…….”

“흠, 뭐 가 보면 알겠지.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가도 되려나?”

“에이, 저희는 그 누구냐. 현진인가? 그놈이 초대해서 가는 거잖습니까.”

“하긴. 놀러 오라고 했으니 문전박대는 하지 않겠지.”

천룡의 말에 제갈군이 속으로 생각했다.

‘문전박대? 지금 장주님 말로 유추를 해 보면 현진이라는 자는 이분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전박대? 무당이 그날로 문 닫을 마음이면 그러겠지.’

“넌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냐?”

“네? 하하, 아닙니다.”

“싱겁기는. 너는 신룡지회에 가 본 적 있냐?”

“저요? 딱 한 번 참석해 봤습니다. 뭐 딱히 재미는 없더군요.”

“우리 방이도 신룡지회에 참가 자격이 되지 않나?”

천룡의 말에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던 조방이 놀라 말했다.

“네? 저, 저는…….”

“왜? 우리 방이도 당당한 신창조가의 후예야. 참석 못 할 이유가 없지. 참석 조건 같은 게 있나?”

“없습니다. 말 그대로 친목 도모의 모임이니 가서 자신이 어디 문파인지 밝히면 됩니다만……. 큰 환대는 받지 못할 겁니다.”

“주, 주군. 저는 괜찮습니다.”

“아냐. 이번 기회에 신창조가를 세상에 알리자! 조방! 이건 명령이다!”

“주, 주군…….”

조방은 감격했다.

지금 천룡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만 살아남은 조가다.

언젠가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천룡의 수하가 된 뒤로 그 다짐을 접었다.

오로지 천룡을 위하여.

그런데 천룡이 자신을 위해 나선 것이다.

“너의 꿈이잖아. 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이번 기회에 한번 해 봐. 뒤에서 우리가 지원 다 해 줄 테니.”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자신의 꿈을 알고 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준다고 하였다.

“주군! 시, 신이 어찌 이 큰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지요! 주군의 크신 정을 소신은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흑흑!”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천룡 앞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는 조방이었다.

천룡은 그런 조방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었다.

“너는 누가 뭐래도 내 가족이다. 가족의 꿈을 돕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그런 말 하지 말거라.”

“크흐흐흑!”

그 모습을 보는 제갈군의 표정도 변해 갔다.

자신이 세상을 알기 시작한 후부터 깨달은 것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가식적이라는 것.

겉으로는 선한 척, 정의로운 ‘척’하고 다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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