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자신의 가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파라는 허울을 뒤집어서 쓰고서는 지금 하는 행동들을 봐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제갈군은 무황 담무광을 가장 존경했다.
그런 담무광을 배척하고 무림맹을 세운 무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의 가문이 섞여 있었다.
그 후로 제갈군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가문을 크게 키우는 데는 도움을 주겠지만 적극성은 사라진 것이다.
집에 있는 것조차 싫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그러던 찰나에 운가장에 가라는 얘기를 들었고, 기분 전환이나 할 겸 온 것이다.
제갈군은 그 결정을 자신이 지금까지 한 것 중에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보라.
자신이 모시기로 한 장주님의 인품을 말이다.
저것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었다.
점점 천룡에게 빠져들어 가는 제갈군이었다.
‘저분의 품속에 있으면 나도 저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조방이 너무도 부러운 제갈군이었다.
***
무당파에선 신룡지회의 준비로 분주했다.
중원 각지에서 오는 중요한 손님들을 위해 객방과 전각들을 새로이 보수하고 청소하고 있었다.
다들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시름에 빠진 채 즐기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군……. 무당검수 애들은 정신이 나태해졌다며 수련동에 끌려갔고…….’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동안 장난을 너무 쳤구나. 다들 장난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현진은 밖에서도 유명했지만, 무당파 내에서도 유명했다.
바로 엄청난 장난기로 말이다.
툭하면 장난치고 거짓으로 속이고 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무당파 분위기가 유하게 변했기에 적당한 장난은 봐줬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아무리 항변하고 애원해도 믿지 않았다.
“업보로다, 업보야…….”
현진의 말에 누군가 뒤에서 받아쳤다.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준수한 얼굴의 청년이 현진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 진천 사질이구나.”
진천.
어느 문파든 아끼는 제자가 있는 법이다.
아끼는 이유는 바로 그 사람이 그 문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진천은 바로 무당의 미래였다.
현 장문인인 현허진인이 진천을 제자로 삼고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원시천존에게 감사의 백 일 기도를 드렸다는 설이 있었다.
무당을 위해 원시천존이 보내 준 아이라 굳게 믿을 정도로 뛰어났다.
어린 나이에 이미 무당의 양의무극신공(兩儀無極神功)과 태극신공(太極神功)을 구 성까지 익힌 기재였다.
거기에 하늘이 내린 신체라는 천무지체(天武之體)였다.
자신의 재능과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잘 아는 그였다.
그리고 성격이 활달해 누구나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무당의 신룡.
암튼 그런 진천이 현진을 찾아왔다.
“여기까지 무슨 일이냐?”
“사부님께서 사숙께 전하라는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장문인께서?”
“네.”
“말해라.”
“제자 현진은 일주일간 면벽을 하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면벽이라…….”
“사숙, 사부님께서 이번엔 정말로 화가 나신 모양입니다. 장난이 과하셨습니다.”
자신의 사질까지 저리 말하고 있었다.
이제는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자포자기하는 현진이었다.
“그래. 복잡한 이 마음…… 달래는 데는 면벽만 한 게 없지. 알겠다고 전하거라.”
“네. 사숙.”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장문인 처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진천을 보며 현진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웃었다.
“저놈은 알까?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그러고는 일어나 바지를 탈탈 털고는 면벽동으로 걸음을 옮기는 현진이었다.
현진이 면벽에 들어가는 그날 무당산 아래 원시현(?西?)에 천룡 일행이 들어오고 있었다.
신룡지회가 다가와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이 현 내에 모여들고 있었다.
“와, 젊은 열기가 느껴지네요.”
태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제갈군이 보며 웃었다.
“뭐야? 너 왜 웃어?”
“웃겨서 그럽니다.”
“뭐가?”
“다들 지금 모습을 보십시오. 생김새로 보았을 때 제일 후기지수 같은 모습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갈군의 말처럼 천룡과 무광, 천명과 태성은 누가 봐도 신룡지회를 참석하기 위해 온 후기지수였다.
그래서 더 위화감이 없이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가? 암튼 일단 배부터 채우자. 배고파 죽겠다.”
천룡의 말에 다들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객잔을 찾았고 그중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객잔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자리가 거의 꽉 차 있었다.
그중에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큰 탁자만 남아 있었기에 그곳에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와서 먹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하하,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무슨 일이신지?”
“객잔에 자리가 전부 차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옆에 남는 자리에 좀 앉아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들어올 때와 다르게 모든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자, 자. 앉으십시오.”
그러고는 음식들을 한쪽으로 몰아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모습에 청년이 포권을 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애들아, 이쪽!”
청년의 부름에 남녀 무리가 다가와서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편하게 식사하시지요.”
그리 말하고 다시 먹는 것에 집중하는 천룡이었다.
잠시 후에 청년 무리가 주문한 음식도 나오고 상이 꽉 들어찼다.
청년은 술병을 들어 천룡에게 권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한 잔 받으시겠습니까?”
청년의 말에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청년이 술잔 가득히 술을 따라 주고는 물었다.
“하하, 통성명이나 하시죠. 저는 해남검파(海南劍派)에서 온 양위라고 합니다.”
“아, 그러시는군요. 저는 운가장에서 온 운천룡이라고 합니다.”
“운가장요?”
처음 들어 본다는 표정으로 갸우뚱하는 양위였다.
“아,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하하. 뭐 어떻습니까? 앞으로 크게 이름을 날리면 되는 것이지요. 자, 자 여기 친구들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랑 같이 온 저희 해남검파의 식구들입니다.”
양위의 말에 한 명씩 일어나 자신을 소개했고, 역시나 운가장 사람들도 자신들의 소개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제갈군의 소개에 다들 놀랐다.
“제갈세가 분이십니까? 오, 영광입니다.”
“하하. 네, 뭐.”
다른 이들이 소개를 할 때는 무덤덤하다가 자신이 소개했을 때 돌변하니 당황한 제갈군이었다.
“제갈군이라고 하면…… 헉! 제갈세가의 미래라고 불리는 분이 아니십니까? 소와룡(小臥龍) 제갈군!”
온 객잔이 떠나가라 소리치며 말하는 양위였다.
제갈군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렸다.
“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만하시죠.”
“그만하다니요? 하하, 여기에 와서 이렇게 유명하신 분을 뵙다니 영광입니다.”
그러면서 자꾸 포권을 하는 양위였다.
마음 같아서는 쥐어박아서 내쫓고 싶었지만 자신 혼자가 아니었기에 참았다.
한편 자리에 앉아 있는 천룡의 제자들 역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사형! 저 새끼들 손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부랑 대화할 때랑 저 뺀질이랑 대화할 때랑 너무 차이가 나는데요?
-맞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아주 사부님 앞에서 고개도 못 들게 만들어 주겠습니다.
-아니, 내가 직접 그렇게 만들겠다!
그렇게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천룡의 전음이 날아왔다.
-하지 마라. 그냥 웃어넘겨라.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천룡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전음으로 대화한 것이다.
-그래도…….
-하지 마.
-네…….
셋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을 본 양위는 다르게 생각했다.
‘흥! 명성에 밀리니 창피한 것을 깨달았나 보군. 쯧쯧. 어디서 그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에서 온 걸 자랑스럽게 얘기하다니…… 이래서 초출 내기들이란…….’
속으로는 이들을 비웃으면서 겉으로는 세상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서로 영양가 없는 대화로 시간을 보내고 식사를 끝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가 전부 계산하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않으셔도…….”
“아닙니다. 하하. 정 부담스러우시다면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지요.”
“무슨 부탁입니까?”
“저희와 동행하시죠.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양위는 제갈군을 이 일행의 대장으로 보았다.
양위는 지금, 이 순간을 제갈군과 친해질 기회라 여겼다.
하지만 실상은 열심히 천룡에게 전음을 보내는 제갈군이다.
-어, 어찌할까요?
-길 안내 받는 셈치고 따라가자.
-네. 알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같이 가도록 하시지요.”
“감사합니다. 하하.”
그렇게 객잔을 나와 무당산으로 이동을 시작한 천룡 일행이었다.
가는 길 동안 양위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제갈군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지만 양위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떠들기 바빴다.
-야, 야, 저거 봐라. 크크. 저 녀석 표정 썩어 들어간다.
-그래도 대단한 인내심이네요. 저 같으면 벌써 주먹 날아갔습니다.
-저놈 진짜 눈치 없다. 저러고 어찌 강호에서 살아 나가려고.
세 명의 대화처럼 참다 참은 제갈군의 인내심이 폭발하려고 하는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제갈군을 불렀다.
“제갈 아우! 제갈 아우 맞지?”
제갈군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푸른색 경장을 입은 남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갈군은 반갑게 외치며 그에게 달려갔다.
“황보 형님!”
“하하, 역시 아우가 맞았구먼.”
황보세가의 미래.
황보강이었다.
제갈군은 황보강의 손을 맞잡으며 반가워했다.
그런 황보강의 뒤에는 덩치가 산만 한 남성과 가녀린 여성이 뒤에 따라오고 있었다.
가녀린 여성 역시 제갈군을 보며 반가워했다.
“꺄아! 제갈 오라버니!”
“하하, 백리소소구나. 오랜만이다. 팽형도 간만이오.”
“흥! 뭐, 반갑소.”
“팽욱 오라버니! 말 좀 부드럽게 하세요.”
팽욱이라는 자가 툴툴거리며 말하자 백리소소가 허리에 손을 얹고 잔소리했다.
팽욱이라는 자의 표정을 보았을 때 크게 한바탕할 것 같았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의외로 순순히 사과하는 것이다.
“아, 미, 미안. 제갈 형. 미안하오. 내가 먼 길을 오느라 조금 피곤해서 예민했었나 보오.”
“하하,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제 일행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 자네가 일행이 있어? 하하하, 이거 오래 살고 볼 일이구먼. 그 누구와도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는가?”
“아이참, 형님도. 그게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오라버니 정말이에요? 우와, 오라버니와 일행이 될 정도면 대단한 사람들이겠네요.”
“암! 대단하지. 자, 가시죠.”
제갈군은 황보강 일행을 데리고 와 천룡에게 인사를 시켰다.
“여기는 황보세가의 장남이자 소가주인 황보강 형님이십니다. 그리고 여기는 하북팽가의 차남이신 팽욱, 여기는 백리세가의 막내인 백리소소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반갑소.”
각자가 인사를 하자 천룡 일행도 인사를 했다.
그런데 운가장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리며 표정이 굳었다.
“하하. 그, 그렇군요. 뭐 아무튼 반갑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그들이었다.
반면에 해남검파 사람들을 소개할 때는 다시 활기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오오, 해남검파! 아니, 그곳에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하하, 중원 친목 모임인데 어찌 저희가 참석을 안 하겠습니까?”
완벽하게 천룡 일행은 무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장 난감해하는 것이 제갈군이었다.
자기 딴에는 가장 좋아하는 형님이기에 소개를 해 주려 한 것인데 상황이 이리되자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그런 제갈군에게 천룡이 말했다.
“흠, 아무래도 너랑은 같이 못 가겠다.”
“네? 그게 무슨?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천룡의 말을 오해한 제갈군은 울상이 되었다.
“아니, 아니. 널 내치겠다는 것이 아니고 너랑 같이 가면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 아니냐.”
천룡의 말에 대번에 그 뜻을 파악한 제갈군이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렇지. 반면에 우리는 조용히 구경하러 온 것인데, 계속 이런 식이면 서로 불편하지 않겠냐. 그러니 따로 가자는 거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러고서 무슨 머리를 쓴다고…….”
자책하는 제갈군이었다.
그런 제갈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하하, 이게 머리 쓰는 거랑 무슨 관계라고. 아무튼, 우리는 천천히 갈 테니 저들과 먼저 올라가거라.”
“알겠습니다. 그럼 저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그래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