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제갈군은 천룡에게 인사를 하고는 저만치 앞서가는 황보강 일행과 양위 일행과 합류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천룡이 말했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구나.”
처음에 세상에 나왔을 때 옷차림새로 사람을 판단하던 것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지요. 그래서 다들 명성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그래도 직접 당하니 씁쓸하네요.”
다들 씁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됐다. 우리는 느긋하게 구경하며 올라가자.”
“네.”
다시 무당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한 천룡 일행이다.
***
무당파로 가는 길에는 무당산이라는 글이 새겨진 산문이 있다.
그곳에서 무당파의 도인들이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천룡 일행도 도인들에게 자신들의 소속을 말하고 온 목적을 말했다.
“그러니까 저기 저분은 신룡지회에 참석하러 오신 분이고, 나머지 분들은 현진 도장을 뵈러 오신 분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은 적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 말에 천룡 일행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도인이었다.
“현진 도장께서는 지금 안 계십니다.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
“네? 분명 여기 계신다고 했는데.”
“하하, 그분 이름을 대고 오는 사람이 한둘인 줄 아십니까? 다음에 그분이 계실 때 오십시오.”
“그럼 저희도 저기 저 사람 일행이니 같이 올라가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조방을 가리켰다.
도인은 이들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워낙에 유명한 자들이 몰려오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한둘씩 나왔다.
복장을 보아하니 그래도 있는 집 자식들 같았다.
이런 자들에겐 특효약이 있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곳을 배정받으면 난감해하며 다음을 기약하고 내려갔다.
“알겠소. 그럼 나를 따라오시오.”
“하하, 고맙소.”
도인이 안내한 곳은 허름하다 못해 무너져 내리기 일보 직전의 전각이었다.
“자, 여기서 쉬고 계시오.”
“아니, 이게 무엇이오! 이건 폐가잖소!”
집 상태를 보고 무광이 버럭 화를 냈다.
“싫으면 나가시면 됩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무광을 바라보는 도인이었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신들은 정말로 초대를 받아서 온 것인데 이런 대접이라니, 마음 같아서 무당산을 통째로 뒤집어엎고 싶었다.
-참아. 그냥 온 김에 경치 구경하고, 조방이 신룡지회 하는 거 구경하다 가자.
-네.
천룡이 괜찮다는데 어쩌겠는가.
“고, 고맙소.”
무광의 말에 오히려 도인이 놀랐다.
‘헉! 이걸 감내해 낸다고? 뭐 하는 놈들이지? 아씨, 어쩌지? 다시 배정할 수도 없고……. 에이 별일이야 있겠어? 자기들이 좋다고 한 거니 나도 모르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들은 지금 산문을 지나 하산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웬걸 당당히 여기서 머물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 이곳은 버려진 곳이고,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안내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딱히 유명한 애들도 아닌 것 같고 큰일이야 있겠냐 싶어서 그냥 넘어가려 하는 것이다.
“하하. 그, 그럼 편히 쉬시오.”
도인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그 모습에 무광이 말했다.
“저 봐, 저 봐! 일부러 우리 여기에 배정한 거라니까?”
“지금이라도 잡아 올까요?”
태성이 이를 갈며 도인이 내려간 곳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서라. 됐고 여기 청소나 좀 하자. 그래도 먹고 자고 하려며 치워야지.”
천룡의 말에 전각을 보니 먼지가 그득했다.
못해도 몇 년은 사람 손길을 전혀 타지 않은 것 같았다.
“원래 무당이 이랬던가?”
“아니오! 무당 하면 얼마나 광명정대하고 욕심 없기로 유명한데요. 뭘까요? 여기 장문인이라도 잡아 와서 물어볼까요?”
무광이 태연하게 말하자, 천룡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어. 그래도 여기 보니 예전 생각나고 좋네. 기억나지?”
천룡의 말에 다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네요. 저희 수련할 때 아버지가 임시로 사셨던 그 집과 비슷하네요.”
“사부님, 옛날로 돌아온 것 같고 좋네요.”
무광과 천명의 말에 태성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제가 멧돼지라도 잡아 올게요.”
태성의 말에 무광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뭐? 야! 여기 도문이야.”
무광이 안 된다고 하자 천명이 나섰다.
“사형, 저번에 그 현진이라는 아이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요즘 무당도 고기 먹는다고. 무인들은 고기를 먹는다고 했으니 먹어도 될 거 같습니다.”
“맞아요, 대사형. 그리고 여길 보세요. 완전 외진 데다가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요.”
“그런가? 그래! 모르겠다. 이딴 곳에 배정해 주고 고기 구워 먹었다고 지랄하면 아주 작살을 내 버리지, 뭐.”
“대사형…… 체통 좀…….”
“뭐, 체통? 내가 언제부터 체통을 챙겼다고.”
“알긴 잘 아시네요.”
“뭐, 인마? 이게 무당산 온 기념으로 한판할래?”
“하하하, 저, 전 멧돼지 잡으러…….”
재빨리 깊은 산 속으로 몸을 날리는 태성이었다.
“어휴! 저게 진짜 요새 아주 기어올라!”
“하하하. 사형도 참. 귀엽기만 한데, 왜 그러십니까?”
“뭐? 너도 미쳤구나? 저게 귀여워? 징그럽지.”
둘이 투덕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졌다.
살짝 뒤를 돌아보니 천룡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인제 그만 떠들고 청소하자. 응?”
“네…….”
고개를 푹 숙이고 청소를 하기 위해 천천히 전각으로 향하는 무광과 천명이었다.
***
조방은 천룡의 명에 의해 신룡지회에 참석을 했다.
하지만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어서 그저 한 곳에 가만히 있었다.
앉아서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 친목 도무지 이건 무슨 파벌 만들기 장소 같았다.
조금이라도 유망한 자가 있으면 끌어들이기 위해 모두가 눈치 싸움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 눈치 싸움에서 조방은 제외되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고 가문도 그다지 좋지 않은 조방은 일찌감치 제외되었었다.
“하아,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소형제는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아서 한숨을 쉬시는 겁니까?”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보니 푸른 경장을 입고, 푸른 영웅건을 두른 청년이 환하게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런 제 소개를 먼저 한다는 것이…… 하하, 저는 남궁세가에서 온 남궁건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포권을 했다.
“아! 전 상산조가 조방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같이 포권을 하였다.
“오, 상산조가! 한때 신창조가라 불리던 명가가 아닙니까? 아직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군요. 하하하.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하하. 잊혀진 이름인데도 그리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산의 신창조가라면 엄청 유명한 가문이 아닙니까? 당연히 그렇게 불러 드려야지요.”
조방은 남궁건에게 커다란 호감을 느꼈다.
한때 세상 사람들이 신의 창을 다루는 가문이라 하여 지칭하던 이름.
그 세가를 존경하는 의미로 부르던 이름이 바로 신창조가(神槍趙家)였다.
자신의 가문을 신창조가라고 불러 주어서 그런 게 아니라 왠지 가족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반면 남궁건 역시 그런 기분이 들어 조방에게 말을 건 것이다.
낯설지 않은 느낌.
친근한 느낌이 그를 조방에게 오게 한 것이다.
사실 이곳에서 남궁건은 불청객이다.
여기 온 대부분의 무인은 무림맹 소속이다.
이곳에서 자신은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남궁세가에서는 남궁건이 이곳에 가는 것을 결사반대했었다.
그러나 남궁건은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나가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남궁세가를 비웃을 거라며 이렇게 참석한 것이다.
자신 하나를 희생해서 가문의 비웃음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다니는 것이 어떻습니까?”
남궁건의 말에 조방 역시 흔쾌히 허락했다.
혼자 다니기 뻘쭘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남궁건이 구원의 손길을 내보인 것이다.
그렇게 둘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다른 이들이 이들을 두고 비웃고 있었다.
“크크크. 어디래?”
“무슨 신창조가?”
“뭐야, 거긴 예전에 망한 곳 아닌가? 하나는 곧 망할 집안이고 하나는 예전에 망한 집안이네. 크크. 둘이 잘 어울리네.”
“하하하하.”
그들의 목소리가 안 들릴 조방이 아니었다.
조방이 그들을 노려보며 창을 움켜쥐자 남궁건이 말렸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으십시오.”
“분하지도 않습니까?”
“하하하, 뭐, 이제 시작인데요. 벌써 그러면 어찌 이 긴긴 신룡지회를 버티겠습니까?”
“네?”
“신룡지회는 더 이상 예전의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이곳도 많이 썩어서 파벌에 들어 있지 않은 자는 우리처럼 소외시키지요.”
“아니! 그게 무슨!”
“그것이 지금의 강호입니다. 그러니 열 내 봐야 다른 놈들이 또 나타납니다.”
“그것참 씁쓸하군요.”
“그러니 상대하지 마시고 다른 곳으로 옮깁시다.”
그러면서 자리를 옮기려 하는데, 저쪽 구석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이곳으로 오시오. 나도 혼자이니 나도 끼워 주시겠소?”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니 붉은색 경장을 입은 청년이 이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특이하게 옆머리의 머리카락 색이 붉은색이었다.
“하하하,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그대들의 사문은 아까 들었으니 나만 소개하면 되겠군요. 나는 적룡문의 적풍이라하오.”
“아! 적 소협이셨군요. 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그런데 제가 견식이 얇아서 적룡문이라는 곳은 처음 듣습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아니오.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소.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남궁건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런 남궁건을 보며 환하게 웃는 적풍이었다.
“하하하, 정말 남궁 소협은 대단하시군요. 천하의 정의신검(正義神劍)이 저처럼 이름도 없는 자에게 사과라니. 이 적모 정말로 감탄하였소.”
그러면서 포권을 하는 적풍이었다.
“아닙니다. 허명일 뿐입니다. 하하.”
“자, 자. 우리끼리 서로 금칠하다가는 끝이 없겠소. 이동합시다. 내가 배정받은 전각에 곡차를 좀 숨겨 두었소.”
“곡차요?”
남궁건의 말에 적풍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했다.
“하하하하, 그렇군요. 곡차라…… 좋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이 웃으며 자리를 뜨자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던 팽강이 비웃으며 말했다.
“흥! 정의신검 좋아하시네. 이번 친선비무에서 내 반드시 네놈을 때려눕히고 말겠다.”
그러면서 남궁건을 바라보며 이를 가는 팽강이었다.
“오라버니, 같은 육룡사봉(六龍四鳳)이면서 왜 이리 싫어하시는 거예요?”
“소소, 너는 모른다. 저 가문과 우리 가문이 얼마나 오랫동안 앙숙이었는지. 거기에 우리 할아버님께서 무림맹의 맹주이신데 저놈들은 가입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어찌 이쁘게 보겠느냐.”
백리소소의 말에도 이를 갈며 남궁건을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뒤에 지켜보던 제갈군이 고개를 흔들며 생각했다.
‘멍청한 놈. 너희 가문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남궁세가를 이길 수 없다. 아니…… 절대로 건들면 안 되는 가문이지. 거기다가…….’
조방을 바라보는 제갈군이었다.
‘화룡지체가 신룡지회에 참석한 걸 알면 한바탕 난리가 나겠지? 이번 신룡지회는 재밌겠군.’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제갈군이었다.
천룡 일행이 무당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천룡 일행은 무당산 곳곳을 아주 원 없이 탐방하고 다녔다.
역시 명산으로 불리는 산이니만큼 볼 것이 많았다.
실컷 구경을 다하고 이제 신룡지회를 구경하러 장내로 이동했다.
천룡 일행이 떠나고 텅 빈 전각을 면벽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던 현진이 발견했다.
“응? 저기 폐가가 언제 수리가 되었지?”
그랬다.
도인이 안내해 준 폐가는 어느새 수리까지 다 된 상태로 말끔해진 상태였다.
무광과 제자들이 천룡을 이런 누추한 곳에 재울 수 없다며 수리를 한 것이다.
“거참, 신령지회 때문인가? 장문인도 참. 이런 거에 신경을 다 쓰시고.”
현진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본문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후기지수가 모여서 바글거리고 있었다.
넓은 무당의 곳곳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특히나 친선비무가 열릴 예정인 연무장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곤 현진이 미소 지었다.
“얼마 만이냐, 이렇게 무당이 활기찬 것이. 하아, 그래 내가 그동안 너무 걱정만 하고 살았던 거지.”
그러면서 장문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현진이 장문인을 만나러 사라질 때 천룡 일행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사람 많네? 이렇게 많은 후기지수가 있었나?”
“하하, 아버지도 참. 중원에 문파가 몇 개고 무인이 몇 명인데요. 이름 없는 문파들에겐 이곳이 명성을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장소입니다.”
무광의 설명을 들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천룡이었다.
그때 천룡의 시야에 조방이 들어왔다.
조방은 사람이 없는 구석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웃고 있었다.
“하하, 방이 녀석 벌써 친구들을 사귀었…… 엥?”
“왜요?”
“저거 태성이 아들 아니냐?”
천룡의 말에 조방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용적풍이 환하게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그러네요? 이야, 우리 아들이 참석했을 거라곤 상상 못 했는데요?”
“그 옆은 제 처조카군요. 남궁건.”
“어? 그러네? 어쩌다 쟤들이 뭉쳐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