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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화 (128/200)

128화

무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적풍이 천룡을 만나러 왔을 당시에 조방은 천룡이 준 비급을 가지고 수련하고 있었고, 남궁건이 만나러 왔을 때는 유가연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저들은 운명처럼 자연스레 모인 것이다.

“그것참 신기하네. 사부, 정말로 인연이라는 게 존재하나 봐요.”

“그러게 말이다. 하하. 아무튼, 다행이네. 조방 혼자서 외로이 있을까 봐 찾았는데.”

“우리 아들놈도 아는 놈이 없어서 혼자였을 텐데 잘되었네요.”

천룡과 제자들은 조방과 용적풍, 남궁건이 환하게 웃으며 떠들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한 무리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어라? 딱 봐도 시비 걸러 가는 모습인데? 그러지 않고서야 저리 한적한 곳에 일부러 가진 않겠지.”

“하하, 시비가 아니라 죽으러 가는 길 아닙니까?”

“쟤들이 알고 저러겠냐? 어찌 처신하나 지켜볼까?”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보는 천룡 일행이었다.

“거기 좀 비키지? 거긴 우리 자린데?”

그 말에 조방과 용적풍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아닌가.

“뭐라? 하하, 이곳이 어찌 자네들 자린가?”

“하하, 자린가? 말이 짧구나?”

“너야말로 혓바닥이 절반이구나. 어떻게 내가 좀 늘려 줄까?”

용적풍의 말에 시비를 건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딴 말에 화내는 걸 보니 수행이 부족한 놈이네. 가서 수행이나 더해라.”

그리 말하고 다시 신경을 꺼 버리는 용적풍이었다.

“딱 봐도 약해빠진 놈들이 주둥이만 살았구나!”

부르르 떨면서 계속 시비를 거는 남자였다.

그 소리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무런 연관도 없는 자신들에게 와서 왜 저 지랄이란 말인가.

그러다 용적풍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너 지금 나한테 시비를 거는 거였구나? 미안. 미안.”

“뭐?”

“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어요. 너는 나한테 시비를 거는데 내가 상대를 안 해 줬으니 얼마나 기분이 상했겠어. 그치?”

“이놈이…… 얼마나 대단한 놈들이길래 이러는지 보자. 어디 문파냐?”

“왜? 어디 어디 문파면 어쩌게? 응? 내가 유명한 문파면 꼬리 말고 도망가게? 그러는 넌 어디 문파인데?”

“나는 혈호방의 소방주다!”

“아항! 사파의 오문육방 중의 한 곳이구나?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저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어진 혈호방의 소방주였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아무리 정파라도 꼬리를 말고 자리를 피했다.

그만큼 혈호방의 명성은 대단했다.

소방주는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우월감을 즐겼다.

그래서 딱 봐도 약해 보이는 자들만 골라서 이렇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약해 보이는 무리를 발견하고 이렇게 시비를 건 것이다.

어찌 알았냐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런 외진 구석에서 숨어 있는 애들이 강하겠는가?

당연히 약하니 이렇게 숨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웬걸?

무서워하긴커녕 너무 당당했다.

오히려 너무 당당해서 본인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런 소방주를 보며 용적풍이 말했다.

“너는 내가 어디 문파인지 알면 진짜 큰일 나. 지금 내가 기회 주는 거야. 꺼져.”

‘뭐지? 사룡방인가? 아님 용문방? 아씨, 어디 놈이길래 이리 당당하지?’ 그래도 뒤에 자신을 따르는 중소 문파의 후계자들이 있기에 여기서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강하게 나가도 혈호방의 소방주인 자신을 공격할 거란 생각은 안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나름 무공에도 자신이 있었다.

“닥쳐라! 입만 번지르르 하구나. 하마터면 거기에 넘어갈 뻔했다.”

소방주의 말에 용적풍의 표정이 변했다.

“입만 번지르르한 거 아닌데? 보여 줄까? 다른 것도 번지르르한 거?”

“그래! 어디 한번 보여 봑……. 컥!”

계속 말로 떠드는 소방주의 목을 순식간에 잡아채 조르는 용적풍이었다.

몸이 허공에 뜬 채로 버둥거리는 소방주였다.

용적풍의 손을 풀어 보려고 내공까지 동원해 힘을 주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용적풍의 눈은 이미 빨갛게 변해 있었다.

용적풍은 소방주를 자신의 얼굴로 끌어당긴 후에 나직하게 말했다.

“잘 들어라. 나는 네놈 따위가 겸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마지막 기회다. 조용히 꺼져라.”

방금 한 수로 용적풍과의 차이를 실감한 소방주는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해야지.”

“커컥.”

“아, 미안.”

그러면서 목을 살짝 풀어 주었다.

“아, 알았어. 내, 내가 잘못했어.”

곧바로 사과하는 소방주였다.

의외였다.

“어라? 의외네? 바로 사과를 하고.”

그런데 소방주가 사과를 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용적풍의 내공이었다.

자신은 저 내공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왜냐고?

용태성이 와서 뒤집어 놓고 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모습은 아직도 소방주를 공포에 떨게 했다.

당시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아비가 그 앞에서 손발이 닳도록 빌었다.

근데 방금 이자에게서 그분의 향기가 났다.

소방주는 순간 알았다.

왜 자신의 정체를 알면 큰일 난다고 하는지.

거기다가 저 옆에 나 있는 붉은 머리카락과 용태성과 같은 붉은 눈.

확실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모습에 용적풍이 웃으며 말했다.

“어라? 내 정체 알았구나?”

사악하게 웃는 용적풍을 보며 부르르 떠는 소방주였다.

“어찌할까, 흠.”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하는 용적풍이었다.

그때 뒤에서 남궁건이 말렸다.

“적 형. 그 정도면 되었습니다. 무시하시고 다른 곳으로 가시죠.”

“하하, 남궁 형.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는 오전 내내 저희가 맡았던 자립니다. 안 그러냐?”

그러면서 소방주에게 물었다.

“으응. 마, 맞아.”

“내 정체를 알고도 말이 짧다?”

“마, 맞습니다.”

“하하. 보십시오. 맞다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런 남궁건에게 조방이 말했다.

“적 형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남궁 형. 피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강하게 나갈 때는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강호인이 아닙니까. 약하면 잡아먹힙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환하게 웃는 용적풍이었다.

반면 남궁건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에 용적풍이 소방주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일행이 지금 중요한 순간인 거 같으니까 방해하지 말고 꺼져.”

“네!”

소방주는 자신의 일행을 데리고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남궁건은 한참 동안 조용히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눈을 떴다.

“하아.”

작은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큰 깨달음이기도 했다.

자신을 얽매이던 것을 풀어 버렸으니까.

“고맙습니다. 적 형 덕분에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하, 그것이 어찌 제 덕입니까? 다 남궁 형이 그동안 노력한 결실이지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조 형.”

셋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계속 웃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던 천룡 일행 역시 미소 지었다.

“우리를 보는 것 같아 좋네요.”

천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적풍이는 성격이 완전 지 아비 닮았네.”

무광의 말에 태성이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그쵸? 누가 봐도 제 새끼라는 게 확 표가 나죠?”

무엇이 즐거운지 계속 웃는 태성이었다.

“쟤들끼리 더 놀게 우린 피해 주자.”

“네.”

태성은 용적풍을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천룡을 따라 이동했다.

***

한 여인이 수심에 찬 얼굴로 바깥 풍경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모용혜.

모용세가의 막내였다.

그녀가 이렇게 한숨을 쉬는 이유는 그녀의 혼처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빨리 시집보내려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조금이라도 가문이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 딸을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딸이라도 편하게 살게 하려고.

현재 모용세가의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어 있었다.

남들 눈에만 아직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위기 상황이었다.

가주는 알 수 없는 병환에 누워 있었고, 세가를 이을 소가주 역시 무공에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그녀는 반대했다.

세가가 지금 위기인데 어찌 자신만 빠져나갈 수 있느냐고.

결사반대하며 뛰쳐 나온 것이다.

그러다가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나 쐴 겸 해서 신룡지회에 온 것이다.

막상 이곳에 왔지만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자괴감만 들었다.

다들 저렇게 행복한데 왜 자신만 이런지.

그러다가 우연히 사람들이 한 무리를 비웃는 소리를 들었다.

“크? 못난 놈들끼리 뭉쳐서 잘들 논다.”

“야, 그래도 정의신검은 유명하지 않냐?”

“그럼 뭐 해? 무림맹한테 찍혔는데. 남궁세가도 머지않아 끝날걸?”

“남궁세가는 천검문하고 연이 있잖아. 쉽게 안 망하지.”

“얘가 뭘 모르네. 천검문이 아무리 강해도 무림맹에 척을 지면서까지 남궁가를 감쌀 것 같아?”

“천검문 정도면 가능하지 않나?”

“그 얘기 못 들었냐? 무림맹 초청에 천검문 문주가 직접 갔다는 거? 그게 뭔 얘기겠냐. 잘 보이려고 간 거 아니냐.”

“저, 정말? 문주가 직접 갔다고?”

“그래. 이제 알겠지? 왜 남궁세가가 위기인지?”

“응.”

소문이 퍼지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변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무리를 보니 구석에 세 명이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모용혜는 저들에게 호감이 갔다.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느껴서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저, 실례합니다.”

모용혜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저도 일행이 없어서요. 같이 동참을 해도 될까요? 멀리서 보니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모용혜의 말에 남궁건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하하, 그 무슨 말씀입니까? 사해는 전부 동도 아닙니까. 자, 자. 여기 앉으십시오.”

“감사합니다.”

모용혜는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 남궁건이 말했다.

“저는 남궁세가에서 온 남궁건입니다.”

“하하, 나는 적풍이라 하오.”

“반가워요. 저는 모용세가(慕容世家)의 모용혜라고 해요.”

“모용세가셨군요. 전에 가주님을 한 번 뵌 적이 있는데……. 건강에는 차도가 좀 있으신지.”

“……아직.”

모용혜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남궁건이 재빨리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소생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저희 아버님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신데요. 그런데…….”

말을 하다 말고 한 곳을 바라보는 모용혜였다.

그곳을 바라보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조방이 보였다.

“저분은 소개해 주지 않으실 건가요?”

모용혜의 지목에 조방은 세상 당황하며 허둥지둥했다.

“헉. 그, 저, 아니…….”

그 모습에 남궁건과 용적풍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조방의 모습이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왜 저러는지 깨달았다.

모용혜에게 반한 것이다.

“하하, 이 사람 뭐 하는가? 모용 소저께서 묻지 않는가.”

서로 친구가 되기로 한 세 사람.

친구가 된 이후 첫 장난이 시작되었다.

“앗. 그, 저, 저는 조, 조바, 방이라고 합니다.”

“허허, 이 사람. 자네 이름이 조조바방이 아니잖은가? 제대로 소개를 해야지, 제대로.”

용적풍의 말에 조방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

모용혜는 그런 조방을 보며 웃었다.

엄청 순수한 사람이었다.

모용혜는 아름다웠다.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고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어려서부터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들의 음흉한 시선에 적응이 된 그녀다.

그런데 이 남자들은 자신을 보고 전혀 그런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조방의 시선은 달랐다.

순수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제대로 못 보고 있었다.

“풋!”

웃음이 나왔다.

이런 기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제가 미우세요? 자꾸 저를 피하시는데…… 저 그냥 갈까요.”

모용혜의 말에 조방이 기겁을 하며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헉! 아, 아닙니다! 그,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 절대 아닙니다.”

“그럼? 좋으세요?”

“네……. 아, 아니, 아니 그, 그게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가 다시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는 조방이었다.

얼굴은 붉다 못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하하하! 그 정도만 하십시오. 이 녀석 이러다가 얼굴 터지겠습니다.”

“하하하하. 자네. 하하하하.”

둘의 말에 모용혜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조방에게 사과를 했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장난기가 동해서.”

도대체 자신도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조방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

모용혜의 사과에 다시 격하게 반응하는 조방이었다.

“아, 아닙니다! 계속하셔도 됩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조방을 보며 다시 웃는 모용혜였다.

-아무래도 저 친구 단단히 빠진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일세. 하하, 좀 도와줄까?

-어찌 도와주어야 하나?

-글쎄, 흠.

조방을 돕고 싶었지만, 그들 역시 이런 쪽에는 어떤 경험도 없었다.

그때 모용혜가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저도 같이 다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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