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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129/200)

129화

모용혜의 말에 조방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모습에 남궁건과 용적풍이 조방을 대신해 대답했다.

“하하, 좋지요. 이런 게 신룡지회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

“환영입니다. 하하.”

“감사해요! 조방 소협도 저 환영하시는 거죠?”

모용혜가 자신을 콕 집어 지목하며 물어오자 크게 당황한 조방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 그럼요. 다, 당연한 말씀을…….”

자꾸 조방이 쑥스러워하며 말을 더듬자, 보다 못한 용적풍이 전음으로 말했다.

-좀 당당해지게! 그래서야 어디 여자가 자네를 듬직하게 생각하겠는가?

그 말에 조방이 화들짝 놀랐다.

맞는 말이었다.

이래선 안 되었다.

처음으로 좋아하는 여인이 나타났는데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조방은 용기를 내었다.

남자답게 당당해지기로.

조방은 고개를 들어 모용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모용 소저 좋아합니다!”

“엥?”

“헐…….”

갑작스러운 고백.

용적풍과 남궁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조방을 바라봤다.

중간 과정이 완전히 삭제된 고백이었다.

특히나 용적풍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당당해지라니까 바로 고백이냐?’

“네? 그, 그게 무슨…….”

크게 당황한 모용혜.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첫 만남에 이렇게 호감이 간 남자도 처음이지만, 첫 만남에 곧바로 고백을 들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당황스러운 모용혜였다.

생각해 보니 이곳에 온 것도, 그리고 조방을 만난 것.

그리고 첫 만남에 그 남자에게 호감이 갔던 것 모두 인연인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방의 고백은 숙명과도 같게 느껴진 것이다.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숙인 모용혜를 보며 용적풍과 남궁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화가 난 것 같았다.

세상 어느 여자가 저런 고백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자신을 우습게 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불쌍한 친구.

-아이고, 왜 저런…….

이제 모용혜의 입에서 거절과 함께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는 말이 나오겠거니 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상심에 빠진 조방을 어찌 달래 줘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그런데 웬걸?

“네…… 저도요…….”

엄청 작은 목소리로 전혀 상상도 못 한 답변이 흘러 나왔다.

“엥? 진짜?”

“……말도 안 돼…….”

상상도 못 한 고백에 이어 예상을 뛰어 넘은 답변.

모용혜는 귀까지 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세상에 저게 먹히네.

-그러게. 우리가 그동안 잘못 안 것이 아닐까?

용적풍과 남궁건이 전음으로 대화했다.

멍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연인 탄생을 지켜보는 둘이었다.

***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용적풍과 남궁건, 그리고 조방과 모용혜는 조용히 친목을 다지기 위해 외곽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손에는 고기와 술이 잔뜩 들려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던 중에 산 한쪽 구석에 있는 전각을 발견했다.

“어? 저런 곳에도 전각이 있네?”

“수행하시는 분이 계신 곳인가?”

무당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생각보다 큰 전각.

가까이 가 보니 누군가가 급하게 수리한 흔적이 역력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방이 부족할까 싶어 급하게 수리한 모양인데?”

“그렇군. 그런데 이런 곳에 배정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기 짐들을 보아하니 이미 배정을 받은 모양이군.”

“말하지 않았는가. 이곳은 소리 없는 가문들의 위세장이라고. 분명 이름 없는 가문일걸세.”

“천하의 무당이 이렇게 사람을 차별한단 말인가?”

“무당은 뭐 사람 사는 곳이 아닌가?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지.”

이들은 이런 전각에 머무는 자들을 마음속으로 위로했다.

그나마 다른 곳보다 크고 넓다는 것에 위안으로 삼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왠지 자신들과 같은 처지 같아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러지 말고 여기서 기다렸다가 저 전각의 일행과 술이나 한잔하세.”

“그래도 되려나? 우리는 불청객이 되는 거 아닌가?”

조방의 말에 용적풍이 답했다.

“허허, 이 친구. 여기는 친목 도모를 위한 신룡지회네. 친목 도모를 하러 왔다 하면 되지.”

“맞네. 싫다고 하면 그때 이동해도 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 앞에 바위 등에 걸쳐 앉아 경치를 구경했다.

“그래도 여기 경치 하나는 끝내주는군. 하하.”

“그러게 말일세. 어찌 보면 여기가 제일 명당이군. 조용하고 경치 좋고. 하하.”

“이곳 사람들과 친해지면 아예 이쪽으로 옮기세. 보아하니 방도 여러 개인 것 같은데.”

“그러세. 하하하.”

“모용 소저, 괜찮겠지요?”

“네? 네. 저는 뭐 상관없어요.”

그러면서 조방을 바라보았다.

조방만 곁에 있으면 된다는 눈빛 같았다.

“아휴, 뜨겁다. 뜨거워. 이거 질투 나서 같이 못 있겠네.”

“하하하, 자네도 후딱 내려가서 맘에 드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오시게. 혹시 아나? 하하.”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여기서 이렇게 떠느나 했더니 네놈들이었구나?”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

다들 화들짝 놀라며 거리를 벌리고 경계했다.

그런데.

“어?”

“헉!”

“서, 설마, 여기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태성이었다.

“아, 아버지?”

용적풍의 말에 모용혜와 조방이 깜짝 놀랐다.

조방은 새로 사귄 친구의 아버지가 용태성이라는 사실에 놀랐고, 모용혜는 자기 또래로 보이는 자에게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 놀랐다.

질투 난다고 자신을 놀리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모용혜였다.

“수, 숙부님.”

남궁건의 입에서 나온 말에 이번엔 모든 이가 고개를 홱 돌리며 놀랐다.

“엥? 숙부님?”

전에 만남에서 숙부님으로 부르기로 한 남궁건이었다.

그리고 조방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도, 도련님.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아드님요? 그리고 숙부님요?”

허둥대며 물어오는 조방이었다.

그 말에 전부 다 조방에게 고개를 돌리며 합창을 했다.

“도련님?”

조방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제일 충격이었다.

도련님이라니?

아니, 상산조가의 유일한 계승자라 하지 않았었나?

그 모습에 태성이 웃으며 말했다.

“니들도 인연은 인연인 것 같다. 알아서 이렇게 모이고. 크크큭.”

무엇이 그렇게 재밌는지 그냥 웃기만 하는 태성이었다.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들.

“우리가 여기 있는 줄 어찌 알고 와 있다냐?”

“그러게 말입니다. 허허.”

뒤를 돌아보니 천룡을 선두로 해서 무광과 천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용적풍과 남궁건이 재빨리 달려가 천룡에게 인사를 했다.

“소손 용적풍! 조부님을 뵈옵니다!”

“어르신. 남궁건이 인사 올립니다.”

용적풍과 남궁건은 인사를 하고 서로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조, 조부님?’

‘어르신?’

그리 생각하며 무광과 천명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대망의 조방.

달려가 부복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주군! 이 어찌 된 일입니까? 서, 설마 주군께서 머무시는 곳이 이곳입니까?”

조방의 모습에 용적풍과 남궁건은 경악을 하며 놀라고 있었다.

“하하,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다.”

천룡의 말에 분노하는 조방.

“감히 주군을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다니! 소신이 당장 가서 항의하고 오겠습니다!”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 무당을 불살라 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조방을 천룡이 달랬다.

“여기가 맘에 들어서 온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그나저나 어쩌다 너희들이 이렇게 모인 것이냐?”

천룡의 물음에 다들 서로를 바라만 볼 뿐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마음이 가서 친구 하기로 한 것인데 이렇게 인연이 연결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거기 아리따우신 분은 누구시고?”

천룡이 자신을 지목하자 멍한 얼굴로 있던 모용혜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네? 저, 저는…….”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정리도 안 되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말을 걸어오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린 모용혜였다.

그 모습에 조방이 나서서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여인입니다.”

조방의 말에 천룡의 얼굴이 환해지며 엄청나게 기뻐했다.

“오오! 그것이 정말이냐? 하하하하, 이것 참 경사로고.”

조방은 자기 일을 저리도 기뻐해 주는 천룡을 보며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옆에 있던 무광이 물었다.

“어디 가문이신가?”

“네? 저, 저는 모, 모용세가의 여식 모용혜라고 합니다. 저, 어찌 불러 드려야 할지……. 아니, 그 전에 지금 이게 무,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여전히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설명을 해 줘야 할 동료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호, 모용세가! 모용승 가주는 잘 있는가?”

모용승은 자신의 아버지 성함이다.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의 성함을 마치 동네 친구 부르듯이 부르고 있었다.

“하하, 자네 부친과는 친분이 있으니 그리 경계 안 해도 된다. 아무래도 너희들끼리 정리를 좀 하고 와야겠구나. 이대로는 대화가 안 되겠어.”

“그래라. 가서 상황 설명도 하고 너희들끼리 우리와 어떤 사이인지 정리도 좀 하고 그러고 와라.”

천명이 자신의 어깨에 들려 있는 멧돼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리하고 오면 내가 아주 맛있게 멧돼지 구워 주마.”

네 사람은 그 말을 따라 정리를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자, 자. 우리 정리를 좀 해 보세. 자네…… 아버지가 숙부님이셨나?”

“저분을 말하는 거면 맞네. 근데 자네는 어찌 우리 아버지를 아는가?”

“저기 계신 분이 우리 아버지의 매형 되시네. 조방 자네는…… 저분의 수하였나?”

“그, 그러네. 자는 운가장 장주님의 수하네.”

세 사람의 대화에 전혀 끼어들지 못하는 한 명.

모용혜가 말했다.

“지금 뭐라는 거예요. 저도 좀 알려 줘요!”

모용혜의 말에 용적풍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실 구룡방의 소방주 용적풍이라고 합니다. 저기 계신 저분은 저희 아버지. 그러니까 구룡방의 방주이시며 삼황의 일인이신 사황이시죠.”

“네? 뭐라고요? 응?”

모용혜가 놀라든 말든 계속 소개를 하는 용적풍이었다.

“저기 멧돼지를 굽고 계시는 분은 검황이시고, 그 옆에서 군침을 흘리시는 분이…… 바로 무황이십니다.”

설명하라고 했더니 이해가 안 되는 말들만 나열하는 용적풍이었다.

“그리고 저기 가운데에 앉아 계시는 저분. 저분이 저기 계시는 저 세 분의 스승님이십니다.”

“…….”

용적풍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천룡이 제자들과 웃으며 무언가를 대화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자신 또래의 남자들이었다,

그런데 뭐?

삼황이고 그 스승이라고?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하는 것인가?

거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역시 이들과 합세하여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았다.

“저기요. 제가 우스워요? 그렇게 놀리면 제가 믿을 거 같아요? 제가 바보로 보여요?”

점점 언성이 올라가는 모용혜였다.

“아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믿지! 뭐라고요? 삼황? 그리고 삼황의 사부님?”

“이, 이보시오. 소저. 정말이오.”

용적풍이 당황한 얼굴로 말하자, 모용혜가 잘 걸렸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그 표정! 내 이럴 줄 알았어. 걸리니까 지금 당황하시는 거잖아욧! 여기로 오자고 한 것도 다 이렇게 절 놀리시려고 준비한 거예요?”

모용혜는 허리에 손을 얹은 뒤에 잔소리를 시작했다.

“다 큰 남자들이 이런 장난이나 치고 정말!”

그 말에 조방이 나섰다.

“어찌하면 믿겠소?”

“흥! 몰라요!”

“그럼 이건 어떻소. 나는 화룡지체요. 그것을 보이면 믿겠소?”

조방의 말에 모용혜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갑자기 거기서 화룡지체가 왜 나온단 말인가?

자신이 아무리 무림 쪽 정보에 약하다고는 하나 화룡지체를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나 참나! 이제 하다 하다 화룡지체예요? 진짜 저 화내요! 그만하세요!”

그 말에 용적풍과 남궁건이 말렸다.

“그러네. 자네, 그건 좀 과했어. 아무리 믿지 못한다 해도 그건 너무 갔네.”

“모용 소저가 믿지 않는다고 그렇게 마구 지르면 어찌하나. 어서 사과하게. 지금 그런 장난을 칠 때가 아닐세!”

다들 안 믿었다.

“하아, 기다리게.”

그리고 터덜터덜 한 곳으로 이동하는 조방이었다.

“어허, 이 사람 우리가 편 안 들어 줬다고 그러는…….”

화르르륵-!

용적풍은 말을 하다 말고 입을 쩍 벌렸다.

거대한 화룡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화룡에게 인정을 받아 이제 자유자재로 화룡을 다룰 수 있는 조방이었다.

“이게 화룡일세. 내 안에 잠재되어 있지.”

“……!”

다들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특히 모용혜의 눈은 찢어질 듯이 커졌다.

“지, 진짜……였어요?”

모용혜의 물음에 조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저분들도…… 지, 진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털썩-!

모용혜가 바닥에 주저앉자, 조방이 화룡을 집어넣고 다급하게 달려왔다.

“모용 소저! 괜찮소?”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

조방을 보며 그래도 좀 진정이 되는 모용혜였다.

한편 그 옆에서 화룡을 목격한 둘은 여전히 경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 맙소사!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저, 정말로 존재하는 거였다니. 미친!”

“그럼 차기 절대자는 조방인가?”

“화룡지체는 절대자의 운명을 타고났으니 그렇겠지.”

그 말과 함께 부담스러운 얼굴로 조방을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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