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0화 (130/200)

130화

모용혜를 달래던 조방은 자신을 향한 뜨거운 눈빛이 느껴지자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궁건과 용적풍이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을 향해 오고 있었다.

“친하게 지내세 친구. 하하하.”

“우리 우정 변하면 안 되네! 알겠는가?”

갑자기 엄청 다정하고, 친한 척을 해 오는 그들이었다.

“왜, 왜들 이러나? 갑자기!”

“하하, 왜 이러긴! 미래의 중원 일인자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게지.”

“맞네! 우리 버리면 안 되네. 알겠지?”

농인 거 같은데 진지하게 말하는 둘을 보며 조방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렇게 대한 자들은 이들이 처음이었다.

정말로 진실한 친구를 얻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하는 거 봐서.”

조방 역시 상상도 못 한 대답을 한 것이다.

“뭐? 뭐라고?”

“이 사람! 우리가 한 방 먹었네. 하하.”

“왜? 잘 보이겠다며?”

그 모습에 모용혜 역시 마음을 진정시키며 조방을 바라보았다.

비록 놀라긴 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것이 운명일지도.’

그 후로도 한참을 서로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는 저 멀리서 고기 먹으라는 천명의 부름에 다들 힘차게 대답하며 달려갔다.

***

천명이 구운 멧돼지 구이를 아주 배불리 먹고 다들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을 마시며 조방이 모용혜에게 밑도 끝도 없이 고백한 것과 신룡지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모용세가의 일을 물었다.

“저런…… 아버님께서 몸이 편찮으시다고?”

“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환에 거동이 많이 불편하십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어?”

“네. 중원에서 날고 긴다는 의원들을 다 불렀는데 아무도 모른다며 고개를 흔들고 갔어요…….”

“흠, 천의문에도 문의를 해 보았나?”

“그분께서는 황궁에 가셨다고…… 그래서 결국 못 모셨어요.”

천룡과 함께 황궁에 갔을 때 왔었나 보다.

그것보다 천의문 전체가 초지의문으로 개명하고 상락으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깜박했다.

“아…… 그렇구나. 마침 우리가 그 천의문주를 잘 알거든? 신룡지회가 끝나거든 함께 가 보자.”

“네? 저, 정말이세요? 정말…….”

“하하, 뭘 그렇게 감동하고 그러느냐.”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모용혜는 계속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모용혜에게 천룡이 말했다.

“그렇게 고마우면 우리 조방이 잘 부탁해.”

천룡의 말에 모용혜와 조방이 화들짝 놀랐다.

“네?”

“주, 주군.”

그런 둘의 반응은 무시하고 말을 계속하는 천룡.

“내가 아끼는 수하다. 수하이기 전에 내 가족이다. 그러니 잘 부탁한다.”

천룡의 말에 모용혜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방은 그런 천룡의 말에 감격해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용적풍과 남궁건이 누군가 하면서 그곳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제갈군이었다.

“하하, 다들 여기 계셨군요. 겨우 찾았네요.”

“어? 여기는 어찌 알고 왔어?”

“아! 아까 안내하겠다고 같이 간 도인 찾아서 물어봤죠. 그랬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죄지은 사람처럼 숨김없이 얘기해 주던데요?”

“죄지은 사람?”

“네. 뭐라더라? 아, 현진 도장을 찾아온 사람들은 주로 여기로 안내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 허물어져 가는 전각을 보고 알아서 다음에 오겠다며 간다고.”

“아…… 그래서 우리가 여기 머문다고 했을 때 그렇게 당황을 했군.”

천룡과 제갈군이 서로 아는 사이처럼 편하게 대화를 하자 용적풍과 남궁건의 눈에 궁금증이 일었다.

“저, 조부님, 저분은 제갈세가에…… 소와룡이라 불리는 제갈군 아닙니까?”

용적풍의 물음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적풍의 말에 그 옆에 있던 제갈군이 포권을 하면 자기소개를 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소개를 했어야 했는데……. 저는 말씀하신 대로 제갈세가의 제갈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방금…… 조부님이라고?”

그리 말하고는 천룡을 다시 바라보았다.

“걔 내 아들이야.”

태성이 답해 줬다.

“네?”

고개를 태성에게 홱 돌리며 놀라는 제갈군이었다.

“내 아들. 용적풍. 현재 구룡방 소방주.”

“세상에. 하하, 이거 반갑습니다. 사해를 진동하는 구룡방의 소방주님을 만나 뵙다니. 영광입니다.”

“아, 네. 네. 그런데 어찌 아는 사이이신지?”

용적풍의 물음에 남궁건과 모용혜가 고개를 돌려 집중했다.

자신들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된 것이 이 일행은 파도 파도 숨겨진 무언가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아! 저, 저는 그러니까…….”

제갈군은 난감했다.

그래도 명색이 제갈세가의 미래로 추앙받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소와룡이라 부르며 치켜세워 주는데 거기다가 대고 운가장의 하인이라고 말하기가 그랬다.

그래서 머뭇거렸다.

그때 천룡이 말했다.

“우리 군사다. 앞으로 잘 부탁하고, 무슨 일 있어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면 제갈군사와 얘기하면 된다.”

“아, 운가장의 군사셨군요. 하하. 그럼요! 머리하면 제갈세가 아닙니까. 거기에 소와룡이라 불리는 희대의 천재분이 군사시라니. 역시 조부님은 대단하십니다!”

“대단하십니다!”

남궁건도 따라서 외쳤다.

모용혜는 다시금 운가장이라는 신비한 곳에 놀랐다.

천하에서 가장 깐깐하고 다루기 힘들다는 천재.

그가 바로 소와룡 제갈군이었다.

오죽했으면 제갈세가의 가주조차도 포기했다고 했을까.

그런 자가 자신의 가문도 아니고 다른 가문의 군사로 들어간 것이다.

한편 제갈군 역시 놀라고 있었다.

천룡의 말에.

제갈군은 천룡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제갈군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는 천룡이었다.

그 모습에 제갈군은 웃으며 속으로 답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마음 한쪽에 따뜻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

시간이 흘러 어느덧 신룡지회의 꽃, 친선비무의 날이 밝았다.

친선비무는 누군가 한 명이 올라가 자신과 가문, 그리고 익히고 있는 무공을 소개하고 한 명을 지목하여 대결하는 방식이었다.

지목받은 사람 역시 올라가 자신의 가문과 무공을 소개하고 비무에 응하면 된다.

비무에 응하지 않더라도 가문과 무공은 소개해야 한다.

문제는 비무에 응하지 않고 가문과 경지를 소개하는 것은 우리 가문은 겁쟁이라는 소리기 때문에 약해도 어쩔 수 없이 비무에 참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선비무이기 때문에 크게 다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고, 실수로 크게 다쳐도 그 주최를 한 문파에서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었다.

그 전에 주최 측에서 준비한 고수가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차단하겠지만.

이번 주최 측은 무려 무당이었다.

그러니 더욱더 안심되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였다.

처음에 참석하는 가문들은 주로 이름 없는 가문들이었다.

반나절이 넘는 동안 수많은 문파가 자신들의 소개를 하며 열심히 친선비무를 하였다.

많은 사람이 비무를 즐기며 구경하고 있을 때, 한 일행이 누군가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라? 저놈 그때 그놈 아냐?”

“누구요?”

“저기 저 창 든 놈.”

“아! 그때 뭐랬더라? 어디에 몸담고 있다고 한 거 같은데.”

“운가장.”

“아, 맞다. 그런데 저놈은 여기 왜 있대요?”

“설마, 신룡지회에 참석한 것은 아니겠죠?”

“하하하, 설마. 아니지……. 운가장으로 참석할 수도 있겠네. 가만있어 보자…….”

무언가를 생각하며 턱을 긁는 자.

바로 해남검파에서 온 양위였다.

그 뒤에 있는 일행 역시 해남검파의 식구들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크크크, 재밌겠어. 저놈 가지고 놀아야겠다.”

“네?”

“나를 지목하기로 한 놈은 언제 나오지?”

“이제 곧 나옵니다.”

“알았다. 너희는 여기서 잘 봐라. 이 대사형이 아주 재밌는 광경을 보여 줄 테니.”

그러면서 혀로 입술을 핥으며 먹잇감을 보는 눈빛으로 조방을 바라보았다.

다시 시간은 흐르고 양위가 지목되었다.

“하하하,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해남검파의 대제자 양위라고 합니다. 제 무공은 해남무쌍검(海南無?劍)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섭외하고 지목하게 한 자를 가뿐히 이기고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인사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양위에게 심판을 보던 도인이 다가와 말했다.

“자, 이제 다음 상대를 지목해 주시지요.”

도인의 말에 양위는 한참을 고민하는 척하며 사방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정말로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조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 저분을 지목하겠습니다. 하하, 여기서 또 뵙는군요.”

양위의 말에 아는 자인가 보다 하며 도인은 조방에게 다가갔다.

한편 지목을 당한 조방은 당황했다.

설마 이 많은 사람 중에 자신을 콕 집어 지목할 줄은 몰랐다.

“하하, 이보게, 나가서 잘하고 오시게.”

용적풍이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조방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적당히 해야 하네. 무조건 힘 조절. 알았지?”

남궁건은 조방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무엇을 염려하는지 잘 아는 조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모든 사람에게 각인시키고 오시게나. 신창조가가 세상에 다시 나왔다고.”

용적풍의 말에 조방의 눈빛이 변했다.

목표가 생긴 것이다.

“조 소협, 조심하시고 잘하고 오세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모용혜까지.

조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인을 따라 비무장으로 올라갔다.

조방이 올라서자 양위는 정중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이거 제가 큰 결례를 저지른 것은 아닌지요.”

“하하, 아니오. 오히려 감사하오. 덕분에 우리 가문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모습에 양위는 비웃었다.

‘크크크, 멍청한 놈. 그래, 실컷 감사해라. 오늘 너는 멀쩡히 걸어 나갈 수 없다.’

중앙으로 온 조방이 모두에게 포권을 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상산조가(常山趙家)에서 온 조방이오! 무공은 염화혼원창(炎火混元槍)이오.”

조방의 소개에 장내가 시끌거렸다.

“상산조가? 어디였지?”

“그러게.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신창조가(神槍趙家)! 과거에 신창조가라 불리던 가문이다!”

“오오, 신창조가였구나! 창을 귀신같이 다룬다는 가문! 그런데 멸문한 것이 아니었어?”

“신창조가에 염화혼원창이라는 무공이 있었나?”

다들 조방의 등장에 웅성거렸다.

그 모습에 양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야? 운가장의 수하 아니었어? 신창조가라니. 젠장, 나보다 더 주목받고 있잖아!’

조방에게 모든 사람이 시선이 집중되자 심기가 불편해진 양위였다.

이건 자신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필 정체가 과거에 명성을 날렸던 상산조가라니.

세상 사람들은 창을 귀신같이 다루는 가문이라 하여 신창조가로 불렀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겐 신창조가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멸문했다는 가문에 유일한 후계자의 등장.

이것만큼 시선을 끄는 것이 또 있을까.

양위는 이를 갈았다.

멋지게 저자를 눕히고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모두 틀어진 것이다.

‘가만두지 않겠다.’

조방을 향해 이를 가는 양위였다.

그리고 관중석 한 곳에서 한 사람이 놀란 얼굴로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뭐, 뭐야! 저 자식이 왜 여기서 나와!”

“어라? 그러네. 그때 너한테 꼼짝 못 하던 놈 아니야?”

“조방! 네놈 때문에 내가 아버지에게 맞을 걸 생각하면…….”

당가의 소공자 당명이었다.

“그런데 저놈이 왜 여기에 있지? 아니, 무공을 익혔다고? 어찌? 그럴 수가…… 그보다 아버지가 잡으러 가셨는데? 제길. 아버지와 엇갈렸구나. 운도 좋은 놈이군.”

그러다가 무언가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군, 흐흐. 이건 내게 기회군. 저놈을 잡아다가 아버지에게 바쳐야겠다. 크크크크.”

사악한 눈빛으로 비무장을 바라보는 당명이었다.

비무장에서는 심판이 둘을 중앙으로 부르고 있었다.

“자, 규칙은 모두 잘 알고 있겠지?”

무당파 도인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시작!”

까강-!

시작과 동시에 달려든 양위.

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매서운 기세로 조방을 공격했다.

조방 역시 재빨리 자신의 창으로 검집을 막아섰다.

다시 거리를 벌리며 멀어진 두 사람.

“큭, 한 수 재간은 있는 모양이다?”

양위의 말에도 조방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조방은 방금 생각이 났다.

저자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주군에게 한 짓을.

감히 하늘 같은 주군을 모욕한 자.

용서할 수 없었다.

한편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조방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자존심이 상한 양위였다.

“건방진.”

촤촹-!

양위가 쌍검을 뽑아 들고 조방을 향해 돌진했다.

“무쌍이검…….”

퍼억-!

“커억!”

퍼퍽-! 퍽-!

“커컥”

퍼퍼퍽-! 퍼퍼퍼퍽-!

미처 공격을 들어가기도 전에 조방이 휘두른 창대에 사정없이 맞기 시작하는 양위였다.

초식도 없었다.

그저 막 때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양위는 막지 못했다.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고, 맞는 소리만 들려왔다.

한참을 진짜 인정사정없이 패더니 창을 공중에 던져 한 바퀴 돌려받았다.

빠악-!

창을 뒤집어 뭉뚝한 뒤쪽으로 양위의 복부를 강하게 찔렀다.

쿠다당탕-!

비무장 끝까지 날아가서 기절한 양위.

눈동자가 뒤집힌 채로 거품을 물고 기절한 양위를 보며 조방이 나직하게 말했다.

“주군을 무시한 대가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아서 그 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쓰러진 양위를 잠시 바라보다가 군중을 향해 포권을 하는 조방이었다.

“부족한 실력을 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압도적인 차이.

“와아아아아!”

“미친! 엄청나잖아!”

“역시 신창조가라는 것인가? 하하하.”

“기억하겠어! 조방!”

중원 사람들에게 신창조가의 조방이 뇌리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