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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화 (133/200)

133화

조방이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어오자 진천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난 것 같군.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여태껏 무사할 수 있다는 게.”

“좋은 분들은 맞지.”

“자네나 나나 아직 이 힘을 온전히 사용하는 게 아니네. 오행체의 진짜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지. 그런 힘을 제대로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느냐? 아닐세. 까딱 잘못했다간 중원에 재앙이 펼쳐지네.”

그 순간 조방은 신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정신을 잃고 나서 벌어진 일.

신교 전체가 엄청난 화마 속에 잠겨 있었다.

자신은 기억에 없지만, 자신이 한 일이 확실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지금 진천이 하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렇군. 자네 말이 맞아. 내가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생각해 왔군.”

“무엇이 말인가?”

“나는 한 번 그것을 경험했네. 나 자신도 모르게 폭주해서…… 죄 없는 이들을 모두 죽일 뻔한…….”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가? 나는 다행히 아직 없었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친구를 사귈 수 없었네. 하지만 자네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나와 같은 오행체니까.”

진천의 말에 지금 자신은 얼마나 큰 행운 속에 살고 있는 것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주군…… 나의 주군…….’

마음속으로 천룡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다시 되새기는 조방이었다.

“걱정하지 말게! 앞으로 자네에게 위기가 닥치면 내가 도와주겠네!”

“정말인가?”

“하하하, 친구 아닌가?”

“고, 고맙네.”

서로가 환하게 웃으며 다른 일행이 있는 전각을 향해 걸어가는 둘이었다.

***

며칠 뒤, 천룡 일행은 무당을 떠나기 위해 장문인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하하, 장문인 정말 잘 쉬다 갑니다.”

“아닙니다! 장주님. 제대로 대접을 못 해 드려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정말 잘 대접 받고 가니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둘이 한참 서로 인사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장문인인 현허진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외람되지만 제가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는지요.”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장문인의 모습에 천룡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부탁요? 네. 말씀하세요.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천룡의 허락에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는 현허진인이었다.

“어려워 마시고 말씀하시지요.”

천룡의 말에 현허진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진천 도장을 데리고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게 무슨?”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강호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알다시피 저 녀석은 오행체가 아닙니까? 사방이 위험 천지입니다. 하지만 장주님과 저분들이 계시는 운가장이라면 믿고 보낼 수 있어서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현허의 부탁에 난감해하며 진천을 바라보자 애절한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조방 역시 간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를 챈 천룡이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 현허진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 부탁이야 부탁이랄 것도 없지요. 하하.”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꺼내 천룡에게 주었다.

“이건 약소하지만, 감사의 표시입니다.”

현허진인이 준 전낭에는 금화가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것에 천룡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이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사해는 동도라고 하지 않습니까? 남도 아닌데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이래야 제 맘이 편합니다. 받아 주십시오.”

현허진인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천룡은 전낭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진인의 마음이 그러시다면 받겠습니다.”

천룡의 말에 현허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천룡은 받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며 포권을 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부디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도 만수무강하시고 원시천존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무당에서의 모든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산에서 내려가는 진천에게 현허가 전음을 보냈다.

-인석아, 사고 치지 말고, 장주님 말 잘 듣고. 몸 건강히 다녀오거라.

-네! 스승님. 이 못난 제자의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되었다. 그동안 불만 없이 잘 따라 주어 고맙구나. 가서 세상 경험 많이 하고 오너라.

진천은 현허를 향해 절을 하고 다시 천룡 일행을 따라 내려갔다.

일행이 모두 사라지고 현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어찌 되려고 오행체를 저리도 내려 보낸단 말인가? 그래도…… 장주께서 계시니 안심이 되는구나.’

그리고 무당의 모든 장로를 모이게 했다.

앞으로 무당이 무엇을 해야 할지와 절대로 운가장과 척을 지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

모용혜의 아버지를 위해 지체 없이 운가장으로 돌아온 천룡 일행.

도착하자마자 조방은 모용혜를 데리고 초지의문으로 향했다.

“어? 이런 인적드문 곳에 의문이 있네요?”

“아, 하하. 이곳의 원래 이름은 천의문입니다.”

“네? 제가 알고 있는 그 천의문 아니죠? 천공의선께서 계신다는…….”

“그 천의문 맞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이곳으로 왔지요.”

자신이 알기론 천의문은 산서성 태원에 있는 것으로 들었다.

수백 년간 그곳에 터를 잡아온 의문이 하루아침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전했다니.

순간 조방이 자신을 속이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허허, 그러니까 우리 조방이의 여인이라 이거지?”

“아,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면 소저에게 실례입니다.”

“아니긴. 딱 봐도 맞구먼.”

능글거리며 말하는 관천.

하는 행동이 소문과 너무도 달랐다.

항상 진중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라고 알려진 천공의선이었다.

그에 잔뜩 경계하는 모용혜였다.

“그런데 왜 저리 경계를 하고 있는 게인가? 오다 싸웠나?”

관천의 말에 조방이 돌아보니 잔뜩 움츠러든 채로 경계를 하고 있었다.

“모용 소저, 왜 그러시오?”

“이, 이곳이 정말 천의문이 맞나요?”

“그렇소. 왜 그러시오?”

“조 소협. 조 소협은 속고 계신 거 아닌가요? 제가 알기론 천의문은 태원에 있다고 알고 있어요.”

모용혜의 말에 관천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전에는 그곳에 있었지.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오.”

“그게 말이 안 됩니다! 천의문은 일천 년간 그곳을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 혈천교에 의해 커다란 피해를 보았을 때도!”

“오! 우리 천의문에 대해 아주 줄줄이 꿰고 있구려. 허허.”

천의문이 맞냐고 물으며 경계를 하는데 오히려 허허거리며 웃는 관천이었다.

그런 모용혜에게 조방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것입니까! 당장 사과하십시오. 이분은 정말로 천공의선이 맞으십니다. 이게 무슨 무례란 말입니까!”

조방이 화를 내며 다그치자 오히려 관천이 말리고 나섰다.

“이놈아, 여자에게 그리 말을 하면 어찌하느냐. 모용 소저 이해하시오. 이놈이 아직 여자를 잘 몰라 이러는 것이니.”

“문주님!”

“어허! 이놈이 그래도?”

관천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방은 모용혜에게 말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오? 나에 대한 믿음이 고작 그것이었소?”

진중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조방을 보며 모용혜는 깨달았다.

정말로 저 사람이 천공의선이며, 이곳이 천의문이 맞다는 것을.

“저, 정말로 이곳이? 그리고 저분이…… 천공의선?”

그때 뒤에서 다른 누군가가 대신 답해 주었다.

“그는 천공의선이 맞다.”

뒤를 돌아보니 천룡이 웃으며 서 있었다.

“이놈들이 천의문에 가랬더니 여기서 사랑싸움이나 하고 있구나?”

조방을 보며 말하는 천룡이었다.

“소신 그런 것이 아니오라…….”

“되었다. 혜아, 너는 어서 관천이에게 사과하거라.”

이곳으로 오면서 많이 친해진 두 사람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천룡이었다.

“헉!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당장 엎드릴 기세로 사과를 하자 관천이 후다닥 다가가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괜찮다. 뭐 나라도 의심하겠구먼. 허허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과하랴 감사하랴 정신없는 모용혜였다.

그런 모용혜를 대신하여 천룡이 말해 주었다.

“그 아이의 아비가 아프단다. 같이 가 줘야겠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장주님께서 가라면 가야죠.”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천룡이 가라니까 간단다.

천하의 천공의선이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모용혜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새삼 천룡의 위대함을 깨닫는 모용혜였다.

모용혜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그런 모용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방에게도 말했다.

“너도 같이 갔다 와. 가는 길에 진천이란 군이도 같이 가고.”

“네?”

“너희들끼리 다녀와. 이번 기회에 또래끼리 친목도 도모하고 강호 경험도 하고 와라. 여비는 넉넉하게 챙겨 주마.”

“주, 주군. 하오나…….”

“명이다. 즐겁게, 그리고 무사히 다녀올 것.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그런 조방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운가장 쪽으로 사라지는 천룡이었다.

***

운가장의 정문 앞에 한 사람이 계속 미동도 하지 않을 채 서 있었다.

딱히 운가장에 볼일이 있어 온 것 같지는 않은데, 계속 저 자리에 서 있으니 신경이 쓰인 위사가 다가가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운가장의 수문위사입니다. 혹시 저희 운가장에 볼일이 있어서 오신 건지요?”

위사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시군요.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남자는 위사를 잠시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위사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 뭐야!’

“운천룡.”

“네?”

“운천룡. 그가 사는 곳이 이곳이 맞는가?”

“아, 장주님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위사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정문을 주시했다.

그 모습에 위사는 더는 묻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까 눈이 마주쳤을 때 그 공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저 멀리 천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룡을 보자 남자의 동공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 정말이구나…… 살아…… 있었어.”

엄청나게 감격한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는 그였다.

한편 천룡은 오다가 한 곳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자신을 보며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기심에 그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천룡의 물음에 남자는 크게 당황했다.

“왜 그러십니까?”

천룡이 재차 묻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인가?”

남자의 대답에 천룡은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남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그 말에 남자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리고.

후웅-!

남자의 몸에서 거센 기운이 올라왔다.

그 순간 천룡은 경악했다.

앞의 남자는 절대로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그게 정말이냐?”

천룡 역시 경계를 하며 기세를 올렸다.

남자와 같은 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지금 이 둘에게서 일어나는 일들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자신들의 주변에만 기를 뿌리고 있었기 때문에.

“당신은 누구요? 나를 아시오? 나는 과거 기억이 없소. 나를 아는 자요?”

천룡의 물음에 남자가 기세를 거뒀다.

그리고 슬픈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정말이군……. 그래서였어. 그래서 안 보인 것이군.”

남자는 분명히 자신을 아는 눈치였다.

지금의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천룡에게 크게 실망하는 표정.

그때 천룡의 입에서 희망의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요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소.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내 기억 속에 있다면 조만간에 기억이 날지도 모르오. 그러니 사과하겠소. 미안하오. 아직은 그대는 기억에 없구려.”

“오호, 기억이 돌아오고 있다고? 그게 정말이냐?”

“그렇소.”

“하하하, 그건 그나마 희소식이군.”

천룡의 말에 남자는 자신의 턱을 긁으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손을 내리고 천룡을 주시했다.

“알았다. 기다리지. 삼백 년을 기다렸는데 그까짓 몇 년을 더 못 기다리겠는가.”

남자의 말에 천룡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남자 역시 삼백 년의 세월을 살아왔다 하지 않는가.

그럼 자신을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혹시 이름을 들으면 기억이 날 수도 있으니 말해 주고 가겠네. 내 이름은 마진강일세, 마진강. 꼭 기억하시게.”

“마진강?”

천룡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과거를 추억하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

그리고 뒤돌아서며 한마디하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또 보세. 나의 벗이여.”

후웅-!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 천룡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저 남자는 정확하게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세월을 살아온 남자였다.

무력 또한 자신에게 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남자가 한 마지막 한마디.

그것이 천룡의 뇌리를 강타했다.

북해에 갈 때 떠올랐던 얼굴 없는 그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천룡은 복잡한 표정으로 남자가 사라진 장소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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