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00)

134화

***

운가장이 며칠째 암울했다.

천룡이 방 안에 들어가 며칠째 두문불출(杜門不出)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 역시 안절부절못하며 며칠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지?”

“그러게 말입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않으신 적이 없는데.”

“이런 적은 처음인데.”

“그러니까요. 갑자기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하시더니 저렇게 방 안으로 들어가서 지금 며칠째 안 나오고 계시잖아요.”

“억지로라도 들어가 볼까요?”

태성의 말에 무광과 천명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라. 혹시 모를 일이다. 아버지께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고 계시는데 우리가 방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아, 그건 그러네요. 사부는 왜 말도 없이 들어가셔서…….”

무광의 말에 천명이 두려운 얼굴로 말했다.

“설마…… 아니겠죠?”

천명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말을 하자 무광과 태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무언가 아는 것이라도 있는 것이냐?”

“천명 사형. 뭐라도 생각났습니까?”

두 사람의 재촉에 천명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설마, 우화등선……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무광이 버럭 화를 냈다.

“이 자식이! 재수 없게!”

“맞아요! 천명 사형! 생각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너무 나가셨어요!”

천명 역시 그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나, 나도 모르게 그만…… 걱정이 돼서…….”

“자, 자. 우리끼리 이런다고 아버지가 나오시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묵묵히 지켜보자.”

“네.”

“맞아요. 뭐 큰일이야 있겠어요?”

태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천룡이 있는 전각을 바라보았다.

한편 방 안의 천룡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또 보세. 나의 벗이여.’

마진강이 마지막에 한 말.

그것이 계속 뇌리에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마진강을 보았을 때 그 친숙한 기분.

그것은 자신의 몸이 그자를 기억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벗이라고? 정말로 그는 나의 친구였을까?’

세상에 나온 이후로 적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마진강은 자신과 동급의 무인이었다.

‘호적수였나?’

그와 기세 싸움을 잠깐 했을 때 그 흥분.

아직도 짜릿하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다시 한번 느껴 보고 싶은 충동이 자꾸 샘솟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무엇보다…… 세상에 나를 아는 자가 있었어. 그는 나를 알고 있다.’

그게 무엇보다 기뻤다.

자신과 친구였든, 아니면 적이었든 상관없었다.

자신을 아는 유일한 자.

다시 만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어디 사는지 물어나 볼걸.’

하지만 또 보자고 했다.

‘그래. 또 보자고 했으니 다시 오겠지.’

모든 생각을 정리한 천룡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두둑-!

“으윽! 아이고.”

온몸에서 뼈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뭐지? 어? 탁자에 먼지가 왜 이리 많이 쌓여 있어?”

공기도 탁한 것 같았다.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밖으로 나가자 제자들이 휘둥그레 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여기서 뭐 하느냐?”

천룡의 말에 울 것 같은 얼굴들로 우르르 다가와 자신을 살피는 제자들.

“아,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뭐가? 나 아무렇지 않은데?”

“휴, 다행입니다. 별일이 아니시라니.”

“뭔 말이야? 그게?”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사부! 닷새 동안 밖으로 안 나오시고 방 안에만 계셨다고요!”

“뭐? 닷새?”

오히려 천룡이 놀란 표정으로 되묻자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래서 뼈마디가 그렇게…… 아니, 잠깐 생각한 것 같은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고?”

천룡의 말에 무광이 물었다.

“깨달음이라도 얻으신 거예요?”

무광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다. 정리할 것이 있어서. 마침 잘되었다. 너희들에게 할 얘기가 있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자.”

꼬르르륵-!

꼬르륵-!

천룡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들려오는 꼬르륵 소리.

“서, 설마. 밥 안 먹었냐?”

천룡이 묻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야, 이놈들아! 밥은 먹고 기다렸어야지!”

천룡이 버럭 대자 제자들 역시 한마디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는데 어찌 밥을 먹습니까?”

“맞습니다! 사부님께서 나오시질 않는데 어찌 저희끼리 식사를 할 수 있습니까?”

“사부가 굶는데 밥을 먹으라고요? 그럴 순 없죠!”

화난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걱정이었다.

천룡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했다.

제자들 역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밥 얘기했더니 배고프다.”

“네!”

“당장 가서 진수성찬을 차리라고 하겠습니다!”

천명이 후다닥 달려갔다.

“저는 맛있는 술을 챙겨 올게요.”

태성이 달려 나갔다.

“야! 대낮부터 술…….”

이미 사라진 태성이었다.

천룡의 모습에 무광이 실실거리며 말했다.

“아버지, 지금 좀 적극적이지 않으셨어요. 솔직히 술…… 당기시죠?”

“큼. 가, 가자.”

무광의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천룡.

그런 천룡을 보며 무광은 자신들이 생각한 것이 기우였음을 깨닫고 환한 미소와 함께 따라갔다.

“아버지, 같이 가요!”

***

밥을 다 먹고 제자들과 술 한잔하면서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털어놓는 천룡이었다.

“세상에 나를 아는 자가 있었다.”

천룡의 말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를 정확하게 아는 자가 있었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를 알다니요?”

“과거의 나. 오래전의 나. 그리고 천마대제 시절의 나. 그 시절의 나를 아는 자.”

천룡의 말에 다들 손에 든 술잔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손이 떨려서 술들이 다 흘러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그, 그럼 그 사람도…….”

“그래. 나처럼 긴 시간을 살아온 자다. 나를 삼백 년 동안 기다렸다고 했어.”

“정말로 그렇게 말했단 말입니까?”

제자들의 물음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듣고 사기를 치러 온 자는 아닐까요?”

그 말에 천룡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뒤이어 나온 천룡의 말에 다들 경악했다.

“무위도 나와 비슷했다.”

“……!”

“……!”

“네에에?”

이건 진짜 충격이었다.

세상에 천룡과 같은 무위를 가진 자라니.

“확실해. 잠시나마 기세를 나누었으니까.”

심지어 천룡과 기세를 나누었단다.

“그, 그런 자가 왜 여태…… 조용히 살았을까요?”

무광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천룡과 같은 무력이라면 이미 중원은 그자의 손에 떨어져 있어야 했다.

중원인들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도 따라갈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으니까.

그 예로 자신들을 봐라.

무림에서 삼황이라 불리며 절대자 소리를 듣고 있지만, 천룡에게는 일 초도 상대가 안 된다.

그런데 그런 천룡과 비슷한 무위를 지닌 자가 세상에 있었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큰 위기가 닥치면 그것을 막기 위해 오행체를 내려보낸다는 전설.

‘서, 설마.’

이미 셋이나 세상에 나왔다.

하나만 나와도 세상이 들썩인다는 오행체가 셋이나 나왔으니 그 위기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천룡의 말을 들으니 실감이 났다.

천룡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그 남자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것이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어지는 천룡의 말.

“그는 세상에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나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을 것이다.

세상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조용히 살지 않았을 테니.

“일단 알아 두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나 같은 자가 어딘가에 또 숨어 있을지 모르니 항상 자만을 버리고 조심 또 조심하라는 말이다.”

천룡이 걱정하는 것이 이것이다.

지금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만심에 빠져 있다.

절대자로 살아온 인생에 자신까지 있으니 이들은 위기감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는 것이다.

천룡이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는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또 말했다.

“수련도 다시 시작하고.”

“…….”

“대답!”

“네…….”

수련은 싫었는데 억지로 대답하는 제자들이다.

***

대막에 위치한 혈천교 본단.

은마성은 자신의 수련동에서 기혈을 회복하고 있었다.

‘후, 간신히 원상복구를 시켰군.’

그러면서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심이구나.”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니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헉! 여,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은마성의 말에 남자가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왜? 오면 안 되는 곳이냐?”

그 말에 은마성이 재빨리 부복하며 말했다.

“아, 아니옵니다. 시, 신은 그저.”

“쯧. 되었다.”

남자의 말에 은마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고개만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고생했다. 하하하. 덕분에 찾았다.”

남자의 말에 은마성이 고개를 들었다.

“운천룡. 맞더군. 오늘은 고생했다고 말해 주러 온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고생했으니 선물을 하나 줄까 한다.”

“네?”

남자는 바로 마진강이었다.

은마성은 마진강의 말이 고생했으니 이제 목숨을 거둬 가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소, 소신은 그저 주군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하하하, 누가 뭐라 하더냐? 선물을 준다는데 왜 이리 긴장을 하는 것이냐?”

“아, 아니옵니다.”

“왜? 내가 너를 어찌할 것 같으냐?”

그러면서 기세를 올리는 마진강이었다.

“크크윽! 아, 아니옵……니다.”

“앞으로는 의심하지 말거라. 알았느냐?”

“추, 충!”

은마성의 대답에 만족한 남자가 기세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쑤와악-!

“커헉!”

은마성의 모든 내공을 빨아들였다.

순식간에 평생 모은 내공을 모두 잃은 은마성.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동공만 이리저리 굴리는 그였다.

“이런 잡다한 기운 말고, 제대로 된 기운을 불어넣어 주지.”

그리고 은마성의 단전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우웅-!

마진강의 손에서 칠흑같이 까만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마기다. 크크크크. 영광으로 알아라.”

“크어어어억!”

“내가 오늘 기분이 매우 좋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하던 친구를 만나고 왔으니.”

격한 고통에 흰자위로 변한 은마성의 동공.

“참아라! 큰 힘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 크크.”

잠시 후, 은마성의 단전에서 손을 뗀 마진강.

“잘 쓰도록 하거라. 크크크.”

기절한 은마성을 뒤로하고 그곳에서 자취를 감추는 마진강이었다.

한참 뒤에 눈을 뜬 은마성은 자신의 몸속에서 넘실거리는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 이것이 진정한 마기?”

온몸에 힘이 샘솟았다.

“이것이구나. 그분의 진정한 힘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자신의 힘이 전보다 배는 강해진 기분이었다.

“이런 선물이라니…….”

자신이 모시는 그분은 신이 분명했다.

은마성은 마진강이 사라진 곳을 잠시 바라보다가 벅찬 표정을 지으며 수련동을 빠져나갔다.

***

요녕성 모용세가(慕容世家).

“아가씨! 어딜 갔다가 이제 오시는 겁니까?”

집에 돌아온 모용혜를 보자마자 달려와 말하는 한 노인.

“양 숙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이고! 아가씨! 지금 제 걱정하실 때입니까? 가주님과 소가주님께서 크게 노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노하셨다고요? 다행이네요. 아직 정정하신 것 같아서.”

오히려 안심하는 모용혜였다.

“네?”

“그렇잖아요. 정정하시니 화도 내시고 그러는 거잖아요. 전 또 다급하게 저에게 달려오시길래 아버지에게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놀랐잖아요.”

“아니, 그게…….”

“아버지 어디 계세요? 가주실?”

모용혜의 말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들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저, 아가씨 이분들은?”

노인의 물음에 모용혜가 웃으며 말했다.

“이분은 천공의선이시고요. 저기 저분은 제갈세가의 소와룡이라 불리시는 제갈군 공자님.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은 무당파의 신룡 진천 도장님. 그리고 여기 이분은…… 제 정인이요.”

‘천공의선? 제, 제갈세가와 무당의 신룡?’ 그리고.

“네? 정…… 뭐라고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후비는 노인이었다.

“몰라요! 다시 설명 안 할 거예요. 의선님 이쪽이에요. 조 가가 어서 오세요. 다른 분들도요.”

이곳으로 오는 동안 조방과 완전히 연인이 되었다.

“허…… 이것 참. 이게 무슨 일인지…….”

고개를 흔들며 재빨리 모용혜의 뒤를 따라가는 노인이었다.

세가의 중심부에 있는 가주실에 도착하고, 모용혜가 모습을 드러냈다.

벌컥-!

“아버지 저 왔어요!”

갑작스럽게 들어온 자신 딸의 모습에 두 눈만 끔벅끔벅하며 쳐다보는 가주 모용승이었다.

그 옆에서 가주인 모용승을 보필하던 소가주 모용천도 황당한 표정으로 모용혜를 쳐다보았다.

“너, 너…….”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의 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모용승이었다.

“죄송해요.”

“뭐? 죄, 죄송? 이, 이놈의 기지배를…….”

부들부들하며 힘겹게 일어서려는 모용승.

그런 모용승을 소가주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하며 모용혜를 노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