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자신의 아버지 모용승과 자신의 오라버니인 모용천의 비수 같은 눈빛에 모용혜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그러니까 왜 자꾸 시집을 가라고 하셔서…….”
“뭐? 그게 우리 탓이다?”
“그렇잖아요. 제가 가기 싫다고 말씀드렸는데.”
“아이고, 이놈아. 그래도 가문이 어느 정도 위세가 있을 때 가야 네가 무시를 안 받을 것이 아니냐.”
“아버지, 흥분은 금물입니다. 그만 자중하세요. 의원이 그랬잖습니까. 흥분하면 안 된다고.”
모용천이 자신의 아버지를 달래고 모용혜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편찮으신 걸 아는 것이, 지금 이 사달을 냈느냐? 잠시 아버지를 눕혀 드리고 오마.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그리고 모용승을 부축하여 이동하려고 하는데, 관천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허허, 이거 가정사에 끼는 것 같아 좀 그렇긴 한데…….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가주님의 진맥을 좀 봐도 되겠습니까?”
관천의 등장에 경계하는 모용천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누구시길래 아버지를 진맥한다는 것이오.”
모용천의 말에 모용혜가 재빨리 나서서 말했다.
“오, 오라버니 예의를 갖추세요! 이분은 천공의선이세요. 제가 힘들게 모셔왔다고요.”
“뭐?”
“뭐라고?”
모용혜의 말에 두 부자가 동시에 놀라며 말했다.
“허허, 안녕하십니까. 천의문 문주 관천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놀란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했다.
관천의 인사에 다급하게 둘 역시 포권을 하며 인사를 받았다.
“헉! 이, 이거 죄송합니다! 몰라뵙고……. 저, 저는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승이라고 합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의선께 크나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두 사람의 말에 관천이 허허거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따님이 어찌나 울면서 부탁을 하던지 효심에 감동해서 이렇게 왔습니다. 제가 진맥을 해 봐도 될는지요.”
관천의 말에 새삼 다른 눈으로 모용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재빨리 답했다.
“여, 영광입니다.”
그리고 집무실 한쪽에 자리를 잡고 관천에게 자신의 손목을 넘겼다.
한참을 진맥하던 관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갔다.
모용일가는 초조한 눈빛으로 관천을 바라보았다.
“하하,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치료를 할 수 있는 병환이군요.”
“저,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며칠 동안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는 병환입니다.”
“그, 그런.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거듭 감사 인사를 하는 가주와 소가주였다.
그리고 역시나 천공의선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자신의 병환을 찾아낸 것도 부족해 바로 치료까지 가능하다 하지 않는가.
기쁜 마음에 계속 감사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이었다.
장내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밖에 있던 사람들까지 가주실로 들어왔다.
“저분들이 이번에 같이 오신 분들이냐?”
“네! 저랑 이곳까지 같이 와 주신 고마운 분들이세요.”
모용혜의 말에 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개를 좀 해 주려무나.”
가주의 말에 모용혜가 한 명 한 명을 가리키며 소개를 했다.
“여기 이분은 제갈세가의 소와룡이신 제갈군 공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갈군이라고 합니다.”
“아, 아. 바, 반갑소. 모용승이라 하오.”
제갈군과 인사를 마치자, 소개를 계속 이어 가는 모용혜였다.
“여기 이분은 무당의 신룡이라 불리시는 진천 도사님.”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무당의 진천이라고 합니다.”
“그러시군요. 바, 반갑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조방.
그런데 소개는 안 하고 자꾸 쭈뼛거리는 것이었다.
“무어냐?”
“여긴 상산조가의 조방 공자님.”
“처음 뵙겠습니다! 상산조가의 조방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요. 반갑소.”
딸의 반응이 조금 수상하였지만, 몸이 급격히 피로해져 신경을 끊었다.
사람들과 인사를 마치고 모용승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이렇게 우리 가문을 찾아 주셔서 정말 고맙소. 미안하오만 내가 지금 몸이 좋지 않아 잠시 실례를 해야 할 것 같소.”
“아닙니다. 어서 가서 쉬십시오.”
“고맙소. 의선. 이렇게 먼 길까지 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허허, 아닙니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할 테니 오늘은 편히 쉬십시오.”
“허허허, 알겠소. 천아, 이분들을 극진히 대접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모용승은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건너갔다.
그 후 모용천은 저녁을 대접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관천은 내일 있을 치료를 준비하기 위해 먼저 자리를 떠났고, 모용혜는 아버지를 돌보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남은 남자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나이가 비슷해서 통하는 부분도 많고 해서 금방 친해진 네 사람이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혜아가 그랬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런데 자네 아무렇지 않은가?”
“무엇이 말인가?”
“아니, 동생이 정인을 데리고 왔는데 크게 당황하는 기색이 없어서 말이네.”
“뭐가 어떤가. 저기 조방 저 친구와 연이 되어서 서로 빠졌다면 그것이 다행이지. 생판 모르는 남자한테 시집가는 것보다 낫지 않는가.”
모용혜가 모용천에게 먼저 조방을 소개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시원하게 받아들이는 모용천이었다.
어차피 시집을 보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자기 맘에 드는 남자를 찾았으니 고민거리가 하나 준 것이 아닌가.
“조방, 이 친구 내가 봤을 땐 머지않아 중원을 호령할 것이야. 그러니 오히려 내 동생이 부족하지.”
모용천의 말에 조방이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닐세. 내, 내가 한참 부족하네. 그런 말 말게.”
그 모습에 다 같이 웃었다.
모용천은 정말로 오래간만에 크게 웃었다.
그동안 집안도 어렵고 무공도 안 풀리고 거기에 아버지까지 병환에 저리 힘들어하시니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힘들었었다.
그러던 차에 동생까지 가출을 해 버려서 정말 돌아 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런데 웬걸?
가출했던 동생이 용들을 데리고 왔다.
거기에 데려오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천공의선까지 모시고 왔다.
천덕꾸러기가 가문의 행운을 가져다준 복덩이가 되었다.
거기에 이렇게 마음에 맞는 친구들까지 생기지 않았던가.
오늘따라 자신의 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였다.
“그나저나 그동안 맘고생이 정말 심했겠구먼.”
“하하, 이제 의선께서 아버님을 치료하시면 한결 나아지겠지.”
“아니, 어쩌다가 모용세가가 이렇게까지 기울었는가?”
제갈군의 물음에 모용천은 이마를 찡그렸다.
“미, 미안하네. 내가 실례를 하였네.”
그 모습에 재빨리 사과하는 제갈군이었다.
“하하, 아닐세. 잠시 빌어먹을 놈들이 생각나서…….”
“응? 빌어먹을 놈들?”
“하아, 사실 오래전에 이상한 놈들이 요녕에 나타났네. 요녕땅 전부 우리 영역도 아니고 그래서 그냥 지켜만 보았지. 그런데 이놈들이 점점 세를 확장하더군.”
모용천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을 요녕의 패자라고 선포했네. 마영문(魔靈門)이라 문파 이름까지 지었더군.”
“마영문?”
제갈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갑자기 등장했음에도 엄청 강한 놈들일세. 사사건건 우리와 부딪쳤지. 그 결과…… 지금 이 상태라네.”
“그 정도인가? 천하의 모용세가가 힘겨워 할 만큼?”
제갈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용천이었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력으로 불리고 있네. 사실 언제 여길 쳐들어올지 그게 가장 걱정이네. 지금 쳐들어온다면…… 우리 가문은 끝이겠지.”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래서 혜아를 빨리 시집보내려 한 걸세. 세가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일세.”
모용천의 말에 다들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우리가 돕겠네.”
제갈군의 말에 모용천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하하, 이 사람. 친구 좋다는 게 뭔가? 서로 돕고 그래야지.”
“맞네! 자네 말이 맞아! 돕고 살아야지. 나도 돕겠네!”
“나는 뭐 한 가족이니 당연히 도와야지.”
“자, 자네들.”
친우라고는 하지만 오늘 만나 오늘 사귄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은 관계였다.
그런데 죽을지도 모르는 일에 기꺼이 돕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그동안 맘고생 했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크윽. 고, 고맙네.”
억지로 울음을 삼키며 대답하는 모용천이었다.
“자, 자, 침울한 분위기는 그만하고 술이나 드세. 오늘은 아무도 못 나가네. 밤새워 마셔야 하니.”
“좋네! 내 오늘 우리 집안의 술 창고를 동내는 한이 있어도 자네들과 함께하겠네.”
“오! 그 말 꼭 지켜야 하네! 하하하.”
모용천에게는 정말 행복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상락 운가장.
천룡은 한가로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하인 한 명이 다급하게 천룡을 찾았다.
“장주님!”
“무슨 일인가?”
“황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뭐? 황궁에서?”
“네!”
“어서 이리로 모셔라.”
“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조천생이었다.
“하하, 조 가주였구려.”
“주군! 신 조천생 주군께 인사드리옵니다.”
그러면서 부복하려고 하였다.
“하지 마시오. 우리 사이에 자꾸 그렇게 하실 필요 없소.”
천룡의 말에 조천생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소신 언제나 주군께 죄스러울 뿐입니다.”
“하하, 무엇이 그리 죄스럽단 말이오? 내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황궁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소신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로 안부를 물으며 보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시오?”
“황상께서 주군에게 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있소?”
천룡의 물음에 조천생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용히 말을 했다.
“국경을 순회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주군뿐이라며 반드시 모셔 오라고…….”
“북방? 아니, 그 험한 곳을 왜?”
“요새 국경 쪽 상황이 수상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보고서를 믿지 못하겠다며 직접 가서 보고 오시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계십니다. 문제는…… 주군께서 단단히 경고하고 가셔서 반대하는 신하들이 없다는 것이지요.”
조천생의 말에 천룡이 이마를 짚었다.
황제 말 잘 들으라고 한 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어쩌겠는가.
가야지.
“알았소. 내 준비하라 이르겠소.”
“감사합니다. 주군.”
천룡은 하인에게 제자들을 불러오라 시키고 조천생과 담소를 나누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제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응. 그래.”
“어? 조 가주님 오셨구려.”
“하하, 반갑습니다. 도련님들.”
“하하하, 이거 간만이오. 혈색을 보니 그간 잘 지내신 것 같아 안심되는군요.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황궁에 좀 가야겠다.”
“네? 또 어떤 놈이 역모를 꾸몄답니까?”
“아니. 황제께서 국경을 순방하신단다.”
그 소리에 다들 놀랐다.
국경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그곳을 순방하신단 말인가?
“그래서 나를 찾으시는 거고.”
이해가 되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우르르 나가자 조천생이 웃으며 말했다.
“여전하시군요. 주군께서 어딜 가시면 꼭 따라가시는 것도요.”
“혼자 간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겁니다.”
“허허허, 그만큼 주군을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저도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그, 그렇지요?”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그저 황궁을 가는 가까운 거리만 가지만 언젠가는 항시 주군 곁에 머무는 그날을 기대합니다.”
“하하하, 마음만이라도 고맙소. 오늘은 우리 오랜만에 만났으니 실컷 마셔 봅시다.”
“알겠습니다. 소신 쓰러질 때까지 마셔 보겠습니다.”
“하하하. 자, 자, 나갑시다.”
***
대막의 혈천교 본단.
천마대제의 기운을 흡수한 후에 강해진 모습의 군사가 폐관에서 나온 은마성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의 걸음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언제 보아도 즐거운 탱탱한 피부와 검은 머리카락.
무려 천마대제의 힘을 흡수했으니 교주도 이제 자신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크크크, 이 몸 안에서 샘솟는 엄청난 마기라니. 이 정도면 교주와도 비벼 볼 만하지 않은가.’
자신이 아는 교주의 경지라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군사였다.
그렇게 도착한 교주전.
역시나 교주는 세상 느긋한 표정으로 누워 있었다.
“신, 방염. 교주님을 뵈옵니다.”
예전처럼 쇳소리가 긁히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이제 중후한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 느긋하게 오침을 즐기려던 교주는 낯선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처음 보는 놈이 자신에게 알은척을 하지 않는가.
게다가 몸 안의 기운이 만만치 않았다.
“누구냐? 내 수하 중에 너처럼 강한 놈은 없었는데?”
긴장한 듯한 교주의 모습에 군사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힘을 갈구한다고 생각했다.
군사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하하, 소신이옵니다. 교주님의 충실한 수하 방염.”
“뭐? 누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