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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137/200)

137화

천룡은 어제 지휘사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를 모두 황제에게 말했고, 정말로 국경을 순방하실 것인지 의견을 물었다.

“그렇소. 이번 기회에 나의 군사들이 어떤 환경에서 있는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이 두 눈으로 봐야겠소. 가는 길에 겸사겸사 백성의 생활도 좀 보고 말이오.”

이미 마음은 벌써 순방길에 나서 있는 상태였다.

그런 황제를 보며 천룡은 조용히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저 역시 반대이옵니다. 폐하, 이번은 신에게 맡겨 주시지요.”

“상국마저 반대하시는 것이오?”

“제가 생각하기에 그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백성들의 생활이 궁금하셔서 암행을 나가신다면 신이 차후에 중원으로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천룡의 말에 황제는 침울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사실 궁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이번 기회에 세상 구경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든 대신이 만류하고 거기에 믿었던 천룡까지 반대하고 나서니 할 말이 없었다.

“상국 역시 그리 생각하시오?”

“네, 폐하. 신도 인간인지라 자칫 방심하여 폐하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도 있사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황제는 천룡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마음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그 약속 꼭 지키시오. 후에 중원에 나를 데리고 나가 준다는 약속.”

“물론이옵니다, 폐하. 훗날 신이 꼭 폐하를 중원으로 모실 것입니다.”

“그럼 이번 일은 모두 상국에게 맡기겠소. 그대가 하는 말이라면 나는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있소.”

“신을 그리 높게 평해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높다니요. 이것도 짐이 너무 낮게 평하고 있는 것을. 마음 같아서는 항상 내 곁에 두고 싶은데…….”

황제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는 천룡이었다.

천룡의 말에 마음을 돌린 황제는 그다음 날 국경을 순방하는 것을 백지화한다고 말했다.

온 대신이 환호하며 ‘망극합니다’를 외쳤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환호를 지른 자들은 바로 장수들이었다.

애초에 황제에 대한 충심도 그리 높지 않았을 뿐더러 황제가 등극하고 있을 때 이들은 전장에서 원의 잔당과 싸우고 있었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왔는데 황제가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황실이 어수선했고, 이들에게 그 어떤 포상도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군비에 손을 대게 된 것이다.

병참을 담당하는 자들이 모두 자신들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일을 처리하기는 쉬웠다.

거기다 황제가 등극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반도 없고 위엄도 없었던 때라 더 수월했다.

그 후 원의 잔당이 또 내려왔다는 얘기에 또다시 출정했고, 그사이 역모가 있었다.

어찌 됐든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아직 크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들의 비리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이들은 대신들을 선동하여 순방을 결사반대한 것이다.

이들은 최악의 상황에는 자신들이 이끄는 군부를 가지고 협박을 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닌 병력과 힘이면 충분히 북경을 점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경우엔 정말로 황궁을 장악하고 황제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했다.

황제에 대해서도 이리 생각하는 자들이 상국의 지위에 있는 자를 무서워하겠는가?

아니었다.

한 무리의 장수들이 투덜거리며 궁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제길, 그 상국인지 뭔지 하는 놈은 어디서 나타난 놈인지 알아?”

“나도 모르네. 전에 역모 사건에 큰 공을 세웠다고만 알고 있네.”

“아니, 그런 거 말고. 정확한 정보를 아는 자가 없냔 말일세.”

“상국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기겁을 하고 난리가 나는 통에 자세히 물어볼 수가 없었네. 다만…….”

“다만? 뭔가? 뭔가 들은 게 있는 것인가?”

“내 지기 중의 한 명이 나에게 신신당부를 하더군.”

“신신당부? 무슨?”

“상국 전하를 보면 무조건 엎드리고 그분이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하라고. 엄청 무서운 분이시라고 꼭 명심하라더군.”

이 장수의 말에 다른 동료 장수들이 코웃음을 쳤다.

“자네도 참.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단 말인가?”

“하하하, 그러게 말일세. 궁 안에서 냄새나는 서책이나 파는 인간들이야 겁이 많아서 조금만 무섭게 해도 벌벌 떨지 않던가. 하하하.”

“그러게 말일세. 하하하.”

“정말일세. 산을 부수고 하늘에 번개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고 하더군.”

“예끼, 이 사람아. 적당히 하시게, 적당히. 재미없네.”

“자, 자, 잡설들은 그만하고 다들 알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 상국이라는 자가 황제를 대신해서 암행하러 갈 것 같아.”

“알고 있네. 그러니 준비를 해야지.”

“이번 기회에 우리의 무서움을 보여 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겠는가?”

“그렇게는 한데…….”

다들 고심을 하고 있을 때 장수 한 명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내게 좋은 방법이 있네.”

“그게 무엇인가?”

“크크크, 요녕 쪽에 아는 지인이 있는데 그자에게 부탁하면 될 것 같네.”

“지인?”

“마영문이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문주와 내가 친분이 좀 있네. 그자에게 부탁해 보면 어떻겠나?”

“마영문? 그런 문파도 있는가? 내가 강호에 대해 좀 아는데 그런 문파는 처음 듣네.”

“최근에 생긴 문파일세. 거기 문주가 날 찾아왔더군.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하하.”

“오호, 그래서?”

“뭘 그래서인가?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지.”

“하하, 이 사람. 정천호(正千戶) 지위를 그리 사용하고 있었구먼.”

“뭐 어떤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닌가? 하하하.”

“좋네. 그럼 그자들에게 부탁하자 이거군.”

“그렇지. 무림인이니 우리와 연관도 없고, 자연스럽게 저들에게 혼쭐을 내줄 수 있네.”

“자네가 진행해 보게. 우리는 자네만 믿고 있겠네.”

“하하하, 나중에 거하게 한잔 사야 할 걸세.”

“이를 말인가! 하하하.”

***

암행을 위해 북경을 떠나온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천룡과 제자들은 요녕의 한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사방이 조용하고 을씨년스러운 마을이었다.

“뭐지? 기척은 느껴지는데 이 고요함은?”

“그러게요? 느껴지는 기운들이 전부 두려움에 떠는 것 같은데요?”

“이상하네?”

“이 시간이면 한창 농사일을 하고 있을 시간 아닌가?”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요? 어찌할까요?”

천룡은 잠시 고민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이곳은 정상이 아니야. 내가 명색이 상국인데 그냥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 꼬마 아이가 천룡과 눈이 마주치면서 재빨리 도망가기 시작했다.

태성이 순식간에 이동해서 꼬마 아이를 낚아채 왔다.

“으아악!”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꼬마를 조심히 내려놓는 태성이었다.

“우리 무서운 사람들 아니다. 진정하거라.”

그러면서 청량한 내기를 아이의 몸속에 주입했다.

아이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입을 닫았다.

그때 한 무리의 성인 남자들이 농기구를 들고 뛰어나왔다.

다들 오들오들 떨면서도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 아이를 놔주시오!”

“더는 아이들을 보낼 수 없소! 아이들을 데려가려거든 우리를 모두 상대해야 할 것이오!”

보아하니 다들 어찌나 못 먹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천룡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지나가는 과객일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농기구를 들고 경계했다.

그러다 사람들 사이로 한 노인이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대충 깎은 나무에 몸을 지탱하며 힘겹게 입을 여는 노인이었다.

“나, 나는 이곳의 촌장이오. 저, 정말로 그냥 지나가시는 중이시오?”

촌장의 말에 천룡과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은 천룡 일행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금까지 자신들을 괴롭히러 온 자들과는 복장 자체가 달랐다.

귀하게 자란 모습들.

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것 같군요. 공자님들, 이곳은 위험하오니 어서 큰 고을로 이동하시지요.”

낯선 사람을 경계하더니 이제는 자신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촌장님! 저들을 어찌 믿고…….”

촌장이 손을 들어 방금 말한 사람을 제지했다.

“아니다. 저분들은 그 악마들이 아니야. 비켜 드려라.”

촌장의 말에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길을 터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룡은 촌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촌장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천룡의 물음에 촌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그대들이 알아봐야 소용없소. 그러니 그냥 신경을 쓰지 말고 가시오.”

천룡은 다시 말했다.

“혹시 압니까? 저희가 도울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촌장이 고개를 들어 천룡의 눈을 바라보았다.

보고만 있어도 안심이 되는 눈빛이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선한 눈빛이구려. 이 얼마 만에 보는 선의 가득한 눈빛인지…….”

“누군가가 마을을 괴롭히는 겁니까?”

천룡의 물음에 촌장은 고민하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야기가 길다오.”

“어차피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러야 할 것 같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천룡의 말에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먹을 것은 없소……. 우리도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 못한 터라…….”

그 말에 천룡이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서 먹을 거 좀 구해 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제자들이었다.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기겁을 하며 주저앉았다.

“허헉!”

“뭐, 뭐야! 사, 사라졌어.”

“귀, 귀신!”

촌장 역시 놀란 눈으로 천룡과 방금 사람이 사라진 곳을 번갈아 봤다.

“저희는 무림인입니다. 그러니 놀라지 마십시오. 저 아이들이 식량을 구해 올 것이니, 오늘은 다 같이 배불리 먹어 봅시다.”

천룡의 말에 사람들은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뭣들 하느냐! 공자께서 말씀하시지 않느냐. 어서 불을 피우고 준비를 하여라. 장 씨는 사람들 데리고 가서 공자님들 주무실 빈집 청소하고.”

“아, 알겠습니다.”

촌장의 말에 사람들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공자님, 잠시 어수선하더라도 이곳에서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정리되는 대로 모시겠소이다.”

“하하, 아닙니다. 그럼 이야기는 여기가 좀 정리되면 그때 듣지요.”

“고맙소.”

촌장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불편한 몸으로 사람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간만에 마을에 활기가 가득 찼다.

***

천룡이 머무는 마을에 밤이 깊었다.

무광과 사제들이 잡아 온 엄청난 양의 멧돼지, 사슴들을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구워 먹고, 오래간만에 배를 든든히 채운 마을 사람들은 천룡 일행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사람들이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조용해진 마을.

깨끗이 청소된 빈 집에 천룡 일행과 촌장이 자리했다.

“오늘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얼마 만인지 모르게 포식했습니다.”

“아닙니다. 배불리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은인분들께 이런 누추한 집밖에 제공해 드리지 못하는 것이 정말 죄스럽습니다.”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노숙하는 거에 비하면 여긴 대궐인데요, 뭘. 그나저나…….”

천룡이 잠시 뜸을 들이자 촌장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궁금하시군요. 잊은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허, 아닙니다. 단지…… 그다지 재밌는 이야기는 아니라서…… 괜스레 마음만 싱숭생숭하게 만들어 드릴까 봐 그러는 게지요.”

“아까 보니 농사를 짓는 마을인데 곡식이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마을에 아이가 아까 그 아이 하나뿐인 것 같더군요.”

“제대로 보셨소이다. 하아…… 사실 저희 마을은 이 근방에서도 규모가 꽤 되는 마을이었소이다. 이곳을 지나는 과객분들도 꽤 많아 나름 유명한 객잔도 있었고.”

입구에 있던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이 그거였나 보다.

“그들이 나타난 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들?”

“그렇소. 어느 날 나타나 아이들을 유혹했소.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며, 강호에 나가서 꿈을 펼쳐 보지 않겠냐고.”

“납치를 한 건 아니군요.”

“네. 알다시피 이런 시골 마을에 사는 아이들은 강호에 동경심이 강하다오. 그런데 정말로 무공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나 무공을 가르쳐 주겠다는데 동하지 않은 아이들이 어딨겠소이까? 어른들도 혹하는 마당에…….”

“그래서요?”

“아이들이 하나둘씩 무공을 배우겠다며 그 사람들을 따라가더군요. 그런데 따라간 아이들이 돌아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호기심에 몰래 따라가 보았소.”

촌장은 그 말을 하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을 어느 절벽 아래 공간으로 데려가는데 일반 사람은 내려갈 수 없는 깊이였소. 줄에 매달아 한 명씩 절벽 아래로 내려보내더이다. 얼핏 절벽 아래에서는 아이들 비명도 간혹 들려왔고.”

촌장이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그곳에 다른 곳에서도 데려왔는지 수많은 아이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소. 그러다가 한 아이가 자신은 집에 가겠다며 다른 곳으로 달려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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