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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138/200)

138화

그 말을 하며 촌장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민도 없이 아이의 목을 치더이다…… 아,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그때 그 남자의 눈은…… 잊을 수 없소.”

“뭐라? 그런…… 빌어먹을 놈들이 있단 말이오!”

“이런 빌어먹을 천벌 받을 새끼들! 거기가 어디요!”

촌장의 말에 무광과 태성이 분노하며 벌떡 일어났다.

“일단 앉아라. 끝까지 들어 보자.”

천룡의 말에 무광과 태성은 분이 가라앉지 않아 앉지도 못하고 씩씩거리며 촌장의 말을 계속 들었다.

“나는 겨우겨우 그곳을 빠져나왔소. 그리고 마을로 왔는데…… 그자들이 와서 마을의 모든 아이와 식량을 전부 털어 갔소. 반항하는 자들은 몰매를 놓고…… 나도 그때 심하게 맞아 지금 이렇게 된 거요.”

그러면서 자신의 다리를 바라봤다.

기형적으로 틀어진 다리였다.

그 모습에 다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관에 신고를 해 보셨습니까?”

“허허허, 관이라…… 그들도 같은 놈들이오.”

“네? 그게 무슨?”

“그놈들이 마을을 다 털어 가고 며칠 뒤에 관군이 왔었소. 마을 장정들은 반색하며 달려 나가 관군들에게 우리의 사정과 억울함, 그리고 그들을 벌해 달라고 사정했지요.”

“그들이 안 도와주었습니까?”

“도와줘요? 허허, 오히려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며 귀찮아하더군요. 그러더니 세금을 걷으러 왔다며 그나마 남아 있던 식량까지 모두…… 크흐흑.”

얘기하다가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왔는지 울음을 터트리는 촌장이었다.

“크으흐흑-! 관도 똑같은 놈들이오! 우리 같은 백성들은 관심이 없소! 도대체 나, 나라님은 무엇을 하는 것이오! 이렇게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 있는데! 천자께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오! 흐흐흑!”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하는 촌장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무엇을 그리 잘못하였길래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오! 공자님들…… 세상은 왜 이리 불공평한 것이오. 하늘은 또 무엇을 한단 말이오. 악인들은 언젠가 벌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게 도대체 언제요! 그게…… 언제란 말이오…….”

울분에 쌓인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천룡과 제자들은 주먹을 꽉 쥔 채로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촌장은 한참을 그렇게 울고는 숨을 골랐다.

“미, 미안하구려. 내가 잠시 감정이 격해졌소…….”

“괜찮습니다. 저희가 괜한 것을 물었군요. 죄송합니다.”

“아니오. 이렇게라도 말하니 속이 좀 후련해지는구려. 허허.”

그런 촌장에게 무광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그놈들 정체가 무엇인지 아시오? 그 절벽이 어딘지도 알려 주시오.”

“무슨?”

갑작스러운 말에 촌장이 당황했다.

“천벌이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오. 악은 언젠가 벌을 받는 것도. 그러니 상심하지 마시고 그놈들 정보와 위치를 말해 주시오.”

촌장은 당황하여 눈을 굴리다가 이내 미소를 짓고 말했다.

“공자께서 안다 해도 별수가 없을 것이오. 그들은 몇 년 전에 이곳에 자리를 잡은 문파요. 정확한 이름은 나도 모르오. 어디에 있는지도……. 그 절벽은 해가 뜨는 방향으로 십 리 정도 가면 산이 하나 나오는데, 그 산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협곡이 나타나오. 그 협곡을 쭉 따라 들어가면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공터가 나오는데 바로 거기요.”

촌장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중얼거리는 태성이었다.

“관군은 어디 놈들이오?”

“요녕성 성주의 군이오.”

“성주? 아니, 한 성을 다스리는 놈이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아마도 그럴 것이오. 성주의 명에 의해 세금을 걷으러 왔다고 했으니……. 그래도 공자님들은 다른 자들과 다르군요.”

촌장은 천룡 일행이 너무도 고마웠다.

“이 노인네 하소연 듣느라고 고생하시었소. 밤도 깊었는데 이만 쉬시오.”

그러면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혹여라도 그들과 상대하려 하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가시오. 이건 고마움에 공자들에게 주는 충고요. 몇몇 무인들이 도와주겠다며 갔다가 시체도 못 건졌소.”

그러면서 촌장이 나갔다.

방 안은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쾅-!

파스슷-!

무광의 주먹에 탁자가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이, 이런 찢어 죽일 새끼들이……!”

“사부! 어찌하실 겁니까?”

천룡이 눈을 감고 있다가 조용히 말했다.

“너희들은…… 그 절벽을 찾아라. 찾아서……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해라. 그리고 거기 있는 버러지 같은 놈들은…… 너희가 알아서 하고.”

천룡의 말에 무광이 물었다.

“아버지는요?”

그러자 천룡이 눈을 떴다.

천룡의 눈빛을 본 세 제자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나? 나는 성주 새끼 잡으러 가야지. 만약 정말로 성주가 이것을 명령한 것이라면…….”

스산한 얼굴로 이를 가는 천룡이었다.

뒷말은 안 들어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새벽에 그곳을 떠난 그들.

촌장이 집을 찾아왔을 땐 이미 떠나고 없었다.

벽에 글씨를 새겨 둔 채로.

인과응보(因果應報).

***

세 제자는 촌장이 말한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랬더니 정말로 산이 나왔다.

촌장의 말대로 협곡을 따라 쭉 올라가니 거대한 소나무가 보였다.

그곳에 도착해서 보니 정말로 무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사형, 여기인가 봅니다.

태성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상황을 살펴보는 무광이었다.

-일단 지상에 있는 놈들부터 제압한다.

-죽일까요?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니 일단은 살려 둔다.

다들 끄덕였다.

슈웅- 팍-!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간 그들은 지상에서 경계하고 있던 경비 무사들을 순식간에 기절시켜 버렸다.

그 어떤 소음도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삼십 명이 넘는 무사들이 짚단 넘어가듯이 넘어갔다.

경비 무사들을 모두 점혈까지 해서 완벽하게 제압을 한 뒤에 한 곳에 차곡차곡 쌓아 둔 후 절벽으로 다가갔다.

아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절벽이었다.

중간에 안개가 끼어 있어서 안광을 집중해도 아래가 보이지 않았다.

청력을 극대화하자 깊은 곳에서 비명이 끝없이 들려왔다.

“사형, 아이들 비명입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울부짖다니…….”

“나도 들었다……. 그 촌장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니…….”

“으드득! 세상에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런 천인공노한 짓을…….”

“사형들, 저 못 참고 저지를 것 같습니다. 말리지 마십시오.”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눈으로 절벽 아래를 바라보는 태성.

무광이 말했다.

“말려? 그럴 일은 없다.”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될 놈들이다. 네 맘껏 해라.”

끄덕-!

고개를 끄덕이더니 절벽 아래도 뛰어내리는 태성이었다.

그런 태성을 따라 무광과 천명도 아래로 뛰어내렸다.

슈우웅-!

어찌나 깊은지 뛰어내린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짙은 안개를 지나자 그제야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벽 위를 보며 경계를 하던 경비 무사는, 안개를 뚫고 내려오는 세 명의 인영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뭐, 뭐야! 저, 적이다! 조, 종을 울려!”

“적이다! 종을 울려!”

“적이다!”

댕댕댕댕댕-!

댕댕댕댕-!

사방에서 울리는 종소리.

콰콰쾅-!

“크아아악!”

“커억!”

바닥에 착지하면서 주변에 있던 경비 무사들을 공격한 세 사람.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어디냐! 적들이 나타난 곳이!”

“저, 저기입니다.”

얼굴에 커다란 상처가 있는 남자가 먼지가 자욱한 곳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떤 겁 대가리 없는 놈들인지 모를 일이군. 뭣들 하나! 가서 준비하라고 해!”

“네!”

“절대로 여기서 살아나가게 해선 안 된다! 알겠나?”

“네!”

자욱했던 먼지가 걷히고 나타난 젊은 세 명을 보며 남자는 안심했다.

생각보다 젊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고수가 온 줄 알았는데, 치기 어린 정의감에 뭉친 어린 놈들이었군. 다행히 쉽게 처리할 수 있겠어.’

그런 대장의 생각을 읽었는지 옆의 수하가 물었다.

“생각보다 어립니다. 그것들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닥쳐라! 방심해선 안 된다. 최선을 다해! 여기가 절대로 발각되면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세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 고인이신가 했더니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들이었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셨나?”

“네놈 잡으러.”

무광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며 답하자 대장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나를? 그거 오래간만에 듣는 재미난 농담이구나. 애송아,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네가 누군데? 죽기 전에 유언이라면 들어 줄게.”

“하하, 입이 아주 예술이구나? 좋다. 곧 죽을 놈들. 누구에게 죽는지는 알고 죽어야겠지.”

그러더니 품속에서 가죽 장갑을 꺼내어 손에 착용하는 남자였다.

“나는 싸움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사람이다. 그것은 성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비록 애송이들일지라도.”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크크크, 세상 사람들은 나를 백전투왕(百戰鬪王)이라 부르지.”

“뭐?”

“크하하하! 이제야 좀 놀라는구나. 어떠냐, 이제 너희들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감이 오느냐?”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뭐야? 낭왕(浪王)이었어? 난 또 무슨 엄청난 놈인 줄 알았네.”

“그러게요. 저런 거 상대하는데 우리가 가는 것도 좀 그렇죠? 막내야, 네가 처리해라.”

천명의 말에 태성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살려 놔야겠죠?”

“응. 그래야 어찌 된 것인지 상세히 들을 것 아니냐?”

“알겠습니다. 흐흐흐.”

투왕은 잠시나마 당황했다.

그리고 태성이 혼자서 자신을 상대할 것처럼 앞으로 나서자 조금 더 당황했다.

“뭐, 뭐냐! 내가 방금 말했을 텐데, 나 백전투왕이라고.”

“응, 알아. 들었어. 칠왕십제 중 하나인 백전투왕. 낭인들의 왕이기도 해서 낭왕이라고도 불리고. 무공 수위는 칠왕십제 중에서 중하위. 권왕한테 뒤지게 얻어맞고 사라졌다더니 거기가 여기냐?”

태성의 신랄한 말에 얼굴이 빨갛게 변한 채 말을 더듬었다.

“너, 너 지금 무, 무슨 말을. 나는 백전투왕이다! 낭왕이라 부르지 마라!”

“아, 맞다. 낭왕이라는 별호(別號) 싫어하지? 그런데 네 좌우명이 승부가 날 때까지 도전한다는 거잖아? 그런데 왜? 권왕은 도저히 안 되겠디? 한 번 싸우고 튀게?”

태성의 말에 무광이 말했다.

“아! 어떤 미친놈이 덤비길래 죽기 일보 직전까지 밟아 준 적이 있다던데 그놈이 저놈이구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응, 웬 미친놈이 자기가 백전투왕이라며 덤볐단다. 천하제일인을 가려 보자며.”

“정말 미친놈 맞네요.”

“그러니 이런 곳에서 저 짓거리를 하고 있겠지.”

투왕의 몸에서 김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로 온몸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

“주둥이만 살아 있는 놈들이…… 네놈들은 절대 죽이지 않겠다. 살려서 두고두고 괴롭혀 주마.”

이가 바스러져라, 악물고는 천천히 걸어 나오는 투왕.

“아, 새끼 더럽게 느리게 나오네. 미안, 내가 성격이 급해서.”

퍼억-!

“커억!”

걸어 나오고 있는데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진 태성이 투왕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주둥이는 네가 살았네.”

“커컥. 이, 이게 무, 무슨…….”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으로 태성을 바라보는 투왕이었다.

“평소였으면 봐주면서 했을 텐데…… 내가 지금 좀 많이 화가 나서.”

뿌아악-!

팔꿈치로 투왕의 관자놀이를 박살이 나도록 가격해 버린 태성이었다.

쿠다당탕-!

방금 그 한 방에 기절한 채로 축 늘어진 투왕이었다.

“야야, 죽이면 안 된다니까!”

“아, 기절만 시켰어요. 저 못 믿어요?”

“정말? 그런 것치곤 소리가 엄청났는데?”

“소리만 컸어요. 소리만.”

그 모습을 지켜본 나머지 무인들이 주춤거리며 경악을 하고 있었다.

“마, 맙소사. 내가 뭘 본 거야!”

“대, 대장이 한 방에…….”

“미,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태성이 뒤돌아서서 경악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조용히 무릎들 꿇어라. 지금 꿇는 놈들은 특별히 살려 주마.”

태성의 말에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크에에엑!

끄아아악!

쿠에에엑.

키이이이익.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크하하, 제때 와 줬구나! 저들을 모두 먹어 치워라!”

“미친놈아, 빨리 피해! 우리도 저놈들 공격 범위라고!”

괴생명체가 나타나자 공포에 질린 얼굴로 혼비백산해서 달아나는 무사들이었다.

“뭐야? 저게 뭔데, 나보다 더 무서워하는 거야? 사형들, 저게 뭔지 아세요?”

뒤돌아보니 무광은 모른다는 표정이었고, 그 옆에 천명은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짝-!

“천령강시!”

“뭐?”

“네?”

천명의 말에 무광과 태성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천령강시다! 저거 맞네. 천령강시!”

“미친, 그게 여기서 왜 나와? 그, 그럼 아이들을 그렇게 모은 것도?”

“이 새끼들 진짜 살려 둬선 안 될 새끼들이었네요! 그나저나 저거 어찌합니까? 저거 죽이지도 못하잖아요.”

“일단 공격해 보자. 뭐라도 걸리지 않겠냐?”

“네!”

비록 네 구밖에 안 되었지만 세 사람이 긴장했다.

천령강시(千靈?尸).

천 명의 아이를 희생해서 그 피와 영을 혼합하여 만드는 강시다.

문제는 이 강시를 죽이려면 말 그대로 천 번을 죽여야 한다.

천 개의 영(靈)이 들어가 있기에 죽여도, 죽여도 계속 부활하는 것이다.

거기에 특이한 대법으로 명계의 힘을 빌려와 안에 불어넣었기에 몸이 잘려도 다시 붙어 재생하기까지 했다.

이 세상에선 존재하면 안 되는 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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