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천명이 분노하며 말했다.
“저주받은 마물을 세상에 나오게 하다니! 사형, 이놈들을 절대로 세상에 나가게 해선 안 됩니다!”
천명의 말에 태성이 말했다.
“아니, 어느 세월에 저걸 천 번이나 죽이고 있어요! 그 전에 저희 내공 떨어져서 큰일 나요.”
“일단 공격해 보자. 뭔가 방법이 나겠지.”
그 말과 함께 무광이 주먹을 날렸다.
푸학-!
무광이 날린 강기에 강시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허허, 이걸 맞고 버티네? 저건 좀 무서운데?”
보통 무인이었다면 공중분해 될 위력이었는데 강시들은 멀쩡하게 버텼다.
“칠검강파(七劍?波)!”
보다 못한 천명이 자신의 검을 꺼내어 공격을 시작했다.
퍼퍼퍼퍽-!
사지가 모두 잘렸음에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잘렸던 신체가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다.
“미친! 이것도 안 된다고?”
키에에에엑!
크르르르.
“머리를 노려봐요!”
태성은 강시들의 머리를 노렸다.
퍼억-!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웬걸 터졌던 머리가 재생하기 시작했다.
“미친! 시발, 이게 뭔…….”
천명과 태성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무광은 강시들을 유심히 살폈다.
저들은 이지(理智)가 없었고 무엇보다 위험했다.
피아식별을 못 하면 저것은 그냥 재앙일 뿐이다.
그런 걸 공들여 만들 리가 없었다.
어딘가에 저것들을 조종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무광이었다.
무광이 수상함을 감지하고 재빨리 사방에 기감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절벽 쪽 작은 동굴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청각을 강화하자 미약하게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옴마니옴무나페홈, 옴마니아르카다르파나.”
“찾았다!”
무광이 동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럼 그렇지. 저런 마물들을 만들었다면 무언가 안전장치도 같이 만들었겠지.”
갑작스러운 무광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는 사람들.
그 모습이 기괴했다.
중요한 부위만 천으로 가린 옷차림에 목에는 거대한 묵주를 두르고 있었다.
눈은 검은자가 전혀 없었고, 머리는 면으로 둘둘 말아 덮고 있었다.
“어, 어찌 여길 알았지?”
“겨, 결계가 쳐져 있어 우리를 느낄 수 없을 텐데!”
그랬다.
이들은 강시를 조종하는 사람들이었고, 어느 한 곳에 결계를 치고 자리를 잡아 강시를 조종했다.
이들이 친 결계 역시 특수한 결계라 자신들의 기척을 완전히 가려 주었다.
그런데 그것을 무광이 발견하고 나타난 것이다.
사실 전의 무광이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천룡과 함께 천의문에서 약초를 캐며 기감을 훈련했던 것이 여기서 빛을 발한 것이다.
“크크, 미세한 기만 있으면 찾아낼 수 있다. 이놈들아! 보아하니 천축(天竺) 놈들 같은데. 중원에서 뭘 주워 먹겠다고 기어 들어왔니.”
무광의 말에 대꾸도 없이 남자들은 재빠르게 자신들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고 손바닥에 알 수 없는 문자를 적었다.
그리고 무광을 향해 동시에 내밀며 외쳤다.
“사바하(娑婆訶)!”
외침과 함께 손바닥에서 핏빛 용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그것을 보며 무광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파앙-!
푸학-!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혈룡이 순식간에 공중분해 되며 동굴 벽면 전체를 피로 뒤덮었다.
“주술을 쓰는 것을 보니, 천축의 밀교 놈들이구나!”
무광의 담담한 모습에 놀란 남자들이었다.
“헉! 어찌 저리 쉽게!”
“혈염룡이 저리 쉽게 사라지다니! 믿을 수 없다!”
당황하며 다시 뒷걸음질 치는 그들이었다.
“일단 네놈들을 죽이면 저 마물들을 어찌할 수 없으니 살려는 둔다.”
무광의 말에 남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중원인가? 미안하지만 그건 당신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오.”
어설픈 중원 말로 자기 뜻을 말하고는 바닥에 무언가를 새기는 남자들이었다.
“훗날에 다시 봅시다. 크크크.”
“뭐?”
무광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그들을 잡기 위해 몸을 날렸다.
“사바하!”
펑-!
“크윽!”
갑작스러운 폭발에 깜짝 놀라 팔로 얼굴을 가린 무광.
하얀 연기가 동굴 전체를 덮었다.
팡-!
기의 파동으로 연기를 모두 몰아내고 남자들이 있던 장소를 다시 보았다.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 알 수 없는 도형만이 그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뭐, 뭐야! 사, 사람이 이렇게 쉽게 사라진다고? 아니…… 내가 꿈을 꾼 건가?”
무광은 허탈한 표정으로 방금 남자들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한편 바깥에서 강시들과 혈투를 벌이던 천명과 태성은 갑자기 멈춘 강시들에 의아함을 보였다.
“뭐, 뭐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어요.”
“우리의 공격이 먹힌 건가?”
“그, 글쎄요?”
어리둥절하며 강시들을 지켜보는 천명과 태성이었다.
그때 무광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닥에 착지하며 말했다.
“역시 내 생각대로 저것을 조종하는 놈들이 있었다.”
“잡았습니까?”
“잡았으니 저들이 멈춘 거 아닐까요?”
둘의 물음에 무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못 잡았다.”
“네? 아니……. 대사형의 손을 피해 달아날 정도의 고수란 말입니까?”
“아니. 밀교 놈들이다. 주술을 썼는지 순식간에 사라지더구나.”
“네? 어디요?”
“밀교요? 아니, 걔들이 왜 여기서 나옵니까?”
“나도 모르지. 아무튼, 놓쳤다.”
“그래서 저놈들이 움직임을 멈췄군요.”
“어찌합니까? 저거 저대로 둡니까?”
움직임을 멈춘 채로 그륵거리는 강시들을 보며 난감해했다.
“잠깐! 저들은 죽은 자들이잖아.”
“그렇죠.”
“혹시…… 기다려 봐!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무엇을요?”
사제들의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강시들에게 다가가는 무광이었다.
그리고 주먹에 하얀 기운을 불어넣은 뒤에 강시를 가격했다.
퍼억-!
키에에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는 강시.
“마, 맙소사. 대사형! 무엇을 한 겁니까? 무엇을 했길래 저 마물들이 고통스러워합니까?”
천명의 물음에 무광이 말했다.
“활인기.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운용은 가능하다.”
“활인기…… 그, 그렇군요! 저들은 죽은 자들이니 생명을 살리는 활인기에 상극이겠군요!”
천명의 말에 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방법은 찾았다.
이제 저들이 세상에 나온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자신들이 누구인가?
삼황이다.
천룡에게 배운 활인검의 묘리가 여기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천명이 검에 활인기를 불어넣은 뒤에 천령강시를 베었다.
슈악-!
크에에엑!
푸학-!
천령강시가 순식간에 터져 나갔다.
그리고 검은 연기가 강시의 파편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전설의 마물이라는 천령강시가 이렇게 쉽게 잡히다니…….”
“발상의 전환이지. 사람을 해하는 무공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무공. 그런데 그런 무공을 누가 배우겠는가? 그래서 천령강시가 무서운 거지.”
무광의 말에 사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공이란 본디 사람을 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자, 일단 빨리 여기를 정리하고 나가자. 밀교까지 중원에 들어온 것을 보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다.”
“네!”
무광과 사제들은 다시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편, 무광을 피해 달아난 남자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여, 연결이 끊겼다.”
“주, 죽었어. 천령강시가 죽었다고…….”
“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다들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이동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주술로 잠시 무광을 현혹한 것이었다.
그들로서는 모험이었다.
통할지 안 통할지 몰랐지만 그래도 손 놓고 당하는 것보단 나았으니.
다행히 통해서 무사히 넘어갔는데 이번엔 강시들과 교감이 끊어진 것이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자. 알려야 한다. 중원의 위험성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는 남자들이었다.
***
요녕성을 다스리는 도지휘사사.
그곳에 천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멈추어라! 이곳은 일반인이 오는 곳이 아니다! 썩 꺼져라!”
경비들이 걸어오는 천룡을 보며 외쳤다.
“이곳이 도지휘사가 있는 곳인가?”
천룡의 물음에 경비들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도지휘사를 자기 친구처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친 게냐? 아니면 죽고 싶은 게냐?”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으르렁거리는 경비들이었다.
그 모습에 천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를 좀 만나고 싶다. 안내해 주겠느냐?”
천룡의 말에 경비가 코웃음을 치며 천룡에게 달려들었다.
“미친놈이군. 혼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후웅-!
천룡의 다리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헛소리를 지껄인 대가로 몇 대 맞자. 맞고 정신 차려서 돌아가거라.”
팍-!
다리를 노리고 들어간 창이 허공을 가르며 땅에 박혔다.
“억?”
자신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공격부터 하다니…… 말로 해선 안 될 놈들이군.”
“뭐, 뭐냐!”
퍼억-!
“크억!”
쿠당탕탕-!
가볍게 휘두른 주먹에 저 멀리 날아간 경비였다.
게거품을 물고 기절한 경비.
그 모습에 뒤에 있던 다른 경비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비상! 비상! 습격이다!”
경비의 외침에 사방에서 중무장한 군병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철갑옷을 입은 자가 전면에 나서며 말했다.
“뭐냐! 습격이라니! 적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네! 저, 저기 저자입니다!”
경비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웬 젊은 놈이 뒷짐을 진 채로 생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뭐? 설마, 네가 말한 적이 지금 저 기생오라비 같은 놈을 말하는 거냐?”
“겉으로 판단하시면 안 됩니다! 고수인 것 같습니다.”
“고수?”
“네! 저길 보십시오!”
또다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있는 경비가 보였다.
“겨우 저걸로 이 난리를 친 것이냐? 병신들이 맞았다고 그 난리를 친 것이야?”
어이가 없어 하는 장수였다.
“아닙니다! 어찌 공격했는지 눈에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 이…….”
긴장하고 출동을 하였는데 막상 와 보니 별거 아니어서 허탈함에 분노가 치솟는 장수였다.
앞의 경비 놈을 어찌할까 고민을 하는데.
“도지휘사에게 안내해 달라니까 시커먼 놈들만 잔뜩 나왔구나.”
순간 장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도지휘사가 뉘 집 개 이름인가?
한 성을 총괄하고 그 성에서는 황제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이곳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자가 바로 도지휘사였다.
바짝 엎드린 채로 제발 만나 뵙게만 해 달라고 빌어도 두들겨 패서 쫓아낼 판에 저리 당당하게 말하니 어이가 없었다.
“지금 뭐라 했느냐?”
“그놈들 귓구멍이 단체로 막혔나. 몇 번을 말하게 하는지……. 도지휘사에게 안내하라고.”
“미친놈인 게로군. 뭣들 하느냐! 잡아라!”
장수의 명에 군병들이 우르르 천룡을 향해 달려 나갔다.
천룡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병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너희들이 무슨 잘못이겠냐.”
그래도 일단 저들의 공격을 막고 진정을 시켜야 했다.
쿵-!
가볍게 바닥을 발로 찬 천룡.
빠지지지직-!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으그그그극!”
수백에 달하는 군병들이 일제히 천룡의 뇌기에 감전되어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경악하며 뒷걸음질 치는 장수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뭐, 뭐지? 지, 지금 이게 무슨 일이야?”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현실.
장수는 바닥에 쓰러진 채 앓는 소리만 내는 자신의 부하들을 바라보며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을 전부 상하게 할 순 없어서 고민하던 천룡이었다.
순간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생각났다.
황제가 자신에게 준 신패를 말이다.
곧바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어 보이는 천룡.
바로 황룡금패였다.
황제가 혹시라도 잘 가지고 다니냐고 확인할까 싶어 챙겨왔던 것인데 이리 써먹게 될 줄은 몰랐다.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금패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렸다.
“도지휘사에게 가서 전해라. 황룡금패의 주인이 찾아왔다고.”
천룡의 말에 쓰러져서 신음을 내던 사람도, 당황하며 주춤하던 사람도,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던 사람도 모두가 경악했다.
황룡금패(黃龍金牌).
황제가 모든 성에게 내린 황명.
황룡 금패를 지닌 자가 나타나거든 자신을 대하듯 대하라는 황명.
황룡 금패의 주인의 심기를 거스른 자는 황제를 능멸한 것으로 간주하고 구족을 멸하겠다는 황명.
모든 사람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내용이었다.
공지가 내려오자마자 성안의 모든 대신과 군졸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신신당부한 내용.
그리고 그것을 지닌 자가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소문의 주인공.
모든 권력의 최고봉.
황제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는 자.
바로 상국이었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모든 이들이 다급하게 엎드려 절하며 외쳤다.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다.
현 황제 다음의 권력자가 이 성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세! 천세! 천천세!”
“상국 전하를 뵈옵니다!”
모든 사람이 천룡을 중심으로 동그랗게 퍼져 나가며 절을 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이제 도지휘사 좀 데려오지?”
누가 들어도 심기가 불편한 듯한 천룡의 목소리.
사람들은 다급해졌다.
장수는 벌떡 일어나 군사들에게 말했다.
“뭐, 뭣들 하느냐! 당장 모셔 와라!”
“충!”
군사들이 다급하게 도지휘사를 찾으러 들어갔다.
천룡은 방금 명한 장수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장수는 자신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서 달려갔다.
그리고 엎드려 말했다.
“소신 정천호(正千戶) 가광! 상국 전하의 부르심에 왔습니다!”
“도지휘사에 대해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