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천룡이 일어서자 다급하게 말하는 남자였다.
“혈천교?”
“그, 그렇습니다! 저는 그곳을 장악해서 세금을 빼돌려 본교에 보내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현에 있는 사람들을 쥐어짠 거냐?”
“그,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은 왜 납치했냐?”
“네?”
“너희 맞잖아. 아이들 납치한 거. 아냐?”
“그, 그건…….”
퍼억-!
“덜 맞았네. 다시 시작하자.”
“커억! 아, 아닙니…….”
파팍-!
순식간에 남자를 점혈 하며 웃는 천룡이었다.
“아니야. 내가 너무 마음이 약해졌었던 거 같다. 역시 열 번 채웠어야 했는데.”
그 말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한편 도지휘사는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혈천교? 그런 단체도 있었나?’
무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궁금증만 커졌다.
그때 도지휘사 곁으로 대장군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이, 이게 지금 무, 무슨 상황이야? 저, 전하께선 또 왜 저리 화가 나신 거고?”
뒤늦게 나타나 상황 판단이 안 된 대장군이 혹여라도 천룡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까치발로 살금살금 도지휘사에게 다가가 물은 것이다.
“저, 저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일단 전하께서 말씀하실 때를 기다려야……. 그나저나 저, 저렇게 무서우신 분이었습니까?”
도지휘사의 말에 대장군이 사색이 된 얼굴로 답했다.
“이, 이를 말인가. 전하께서 정말로 분노하시면 세상이 무너지네.”
“무, 무림인이셨단 말입니까?”
“무림인? 내가 본 풍경은 수백 수천에 달하는 무림인들을 한 방에 정리하시는 모습이었지. 그런 자들과 비교를 하면 안 되네. 저분은…… 신이야.”
대장군의 말에 도지휘사는 정말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맞고 풀려난 남자는 묻지도 않았던 것까지 줄줄이 말하고 있었다.
“근골이 좋은 애들은 정예로 키우고, 그렇지 못한 애들은 천령강시의 제물로 보내진다고?”
“그렇습니다! 천령강시를 제조하기 위해선 한 구당 일천 명의 아이가 필요합니다. 그 아이들의 영혼을 강시에 주입을 해야 하지요.”
“그런 미친 짓을 서슴지 않고 한다고?”
남자의 말에 분노가 치솟는 천룡이었다.
당장이라도 가서 혈천교를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싶었다.
“너희 본단이 어디냐?”
“저도 그것은 잘 모릅니다! 저, 정말입니다! 정말로 모릅니다!”
또 때릴까 봐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변호하는 남자였다.
“그럼 누가 알아?”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마영문(魔靈門)! 거기 문주에게 물어보십시오! 그자라면 알지도 모릅니다!”
“마영문?”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납치하는 것도, 그 강시를 제조하는 것도 모두 그들이 하는 겁니다. 그들 역시 혈천과 관계가 있으니 그자들에게 물으면 더 확실할 겁니다!”
천룡이 턱을 쓰다듬으며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가 다시 말했다.
“저, 저는 정말로 현을 장악하고 세금을 빼돌려서 교로 보내라는 명만 이행했을 뿐입니다! 무, 물론 아이들이 납치되어도 입을 다물라는 명도…….”
퍼퍼퍽-!
“커헉!”
갑작스러운 천룡의 공격에 힘없이 무너지는 남자.
더는 들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천룡은 남자를 벌했다.
“너의 모든 내공은 폐했다. 또한, 혈도 역시 막아 놨으니 다시는 무공을 익히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도지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놈을 가두고 다시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하게 하여라!”
천룡의 명에 도지휘사가 재빨리 달려와 외쳤다.
“저, 전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여봐라! 당장 끌고 가라!”
병사들에 의해 힘없이 질질 끌려 나가는 남자를 보며 천룡이 한숨을 쉬었다.
이 세상에 저런 인간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걸?”
천룡의 말에 도지휘사가 조심히 다가와 말했다.
“저, 전하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시, 신에게도 알려 주실 수 있는지요.”
그런 도지휘사를 천룡이 바라보자 도지휘사는 벌벌 떨면서도 말했다.
“이, 이곳은 신의 과, 관할이옵니다. 신이 알고 있어야 후에 대책도 세우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비를 하지 않겠사옵니까.”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의 말을 다 하는 도지휘사였다.
천룡은 도지휘사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풀렸다.
“하하, 그대는 정말로 제대로 된 관리로군.”
“마, 망극하옵니다.”
천룡은 자신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도지휘사에게 말해 주었다.
“그, 그런 천인공노할 놈들이 정말 이 세상에 있단 말이옵니까?”
천룡의 말을 다 듣고 격분하는 도지휘사를 보며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대장군을 보며 말했다.
“그때 역모를 꾸민 자들도 아마 이놈들이지 않을까 싶은데.”
“네?”
“기운이 비슷해. 나에게 도끼를 던졌던 놈이나, 그곳에 있던 수많은 무인. 그들과 내가 만난 혈천교 놈들의 기운이 전부 비슷하다.”
“세, 세상에. 하마터면 그자들에게 나라가 통째로 먹힐 뻔한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은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그냥 무림 세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치밀하고 무서운 집단이었다.
“일단 대략적인 내용은 알았으니 이곳은 그대에게 맡기겠다. 그리고 대장군.”
“네! 저, 전하!”
“너는 국경 지역으로 가서 실태를 조사해라. 확실하게 해야 한다. 나중에 혹시라도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꿀꺽-!
“알지? 열 번이다.”
“히익!”
열 번.
그 말에 기겁하며 경기를 일으키는 대장군이었다.
대장군뿐 아니라 도지휘사를 포함한 그곳에 있는 모든 지현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시, 신! 대장군 하후패! 저, 전하의 명을 따라 철저하게 진상 조사를 하겠사옵니다!”
“그대를 믿는다.”
“충!”
그리고 두려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현들에게 한마디 했다.
“너희들도 돌아가서 제대로 해라. 내가 불시 암행 갔는데 백성들 불만이 있다……. 아까 봐서 알지?”
천룡의 말에 다들 격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말로 해야지?”
“아, 알겠사옵니다!”
“좋아! 뭐 해? 빨리 가서 일해.”
“추, 충!”
어찌나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곳에는 천룡과 대장군, 도지휘사만 남아 있었다.
‘왜 이분을 상국의 자리에 앉혔는지 이제는 알겠구나. 누구보다 나라에 충성하는 분이다. 이분이 존재하는 한 황실의 권위는 누구도 넘볼 수 없겠구나.’
이제는 확실하게 상국의 정체를 알게 된 도지휘사였다.
그리고 천룡의 말에서 나온 나라에 대한 걱정과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 감동한 도지휘사였다.
***
요녕성 모용세가.
가주 모용승이 관천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허허, 이제 거의 치료가 다 되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는지요.”
“언제나 건강하게 사시는 것이 곧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러니 항상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예전의 체력으로 돌아온 모용승.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생각하며 좌절했던 나날들.
그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건강해졌다.
“이제 다시 건강해지셨으니 모용세가도 훨훨 날아오르겠습니다. 허허.”
“하하하, 그렇게 만들어야지요. 그나저나 저기…….”
무언가 관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모용승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아, 아닙니다. 저, 저기…… 제가 뭐 좀 여쭤보아도 될까요?”
“아, 네. 물론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 딸 때문에 그렇습니다. 듣자 하니 이번에 같이 온 청년 중에 자신의 정인이 있다고 하더군요.”
“아! 조방 말씀이시군요. 하하.”
“네! 맞습니다. 그 청년. 의선께서 보시기엔 어떠한 청년인지……. 같이 오셨으니 잘 알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보아하니 모용혜가 데려온 조방이 자꾸 걸렸나 보다.
“왜요? 맘에 차지 않으십니까?”
관천의 말에 모용승이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몸이 나아지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전에는 그저 딸이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하기만을 바랐다면, 지금은 그래도 좋은 집안으로 가서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커진 것이다.
그 모습에 관천의 표정이 굳으며 말했다.
“조방이라는 청년은 지금의 모습만 보고 판단하시면 크게 후회하십니다. 제가 당사자가 아니니 더 얘기는 못 해 드리지만……. 잘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갑자기 싸늘하게 답변을 하는 관천을 보며 모용승은 그제야 자신이 실수한 것을 깨닫고 사과를 했다.
“기, 기분을 상하게 해 드렸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딸자식 일이라 제가 예민했었나 봅니다.”
“조방 역시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소생이 말실수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따님을 믿으십시오. 따님 덕에 건강도 되찾지 않으셨습니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조방의 집안이 자꾸 맘에 걸렸다.
거기다가 지금은 세가도 아니고 어느 한 장원의 수하라고 하지 않던가.
심지어 직급도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 오는 동안 조방이라는 청년과 정이 든 모양인 거고. 더 물어보기는 힘들겠어.’
모용성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관천을 달랬다.
관천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는 나갔다.
그 모습에 모용승이 한숨을 쉬었다.
“하아, 괜히 말을 꺼냈군. 여봐라!”
“네!”
“가서 소가주를 불러오거라.”
“네!”
하인이 소가주를 부르러 간 사이에 모용승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야. 그 사람은 아니야.”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요녕성 앞바다 부근.
그곳에 이름 없는 섬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다.
제법 먼 거리를 나와야 보이는 섬이어서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았다.
섬 앞에는 거대한 배들이 줄지어 떠 있었다.
섬 안쪽에는 작은 성이 존재했고, 그 안에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한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가운데에 있는 붉은 기와를 얹은 전각.
그 안에서 고성이 흘러나왔다.
“뭐라고? 뭐가 어찌 돼?”
붉은 경장을 입은 남자가 엎드린 채로 보고를 하는 수하를 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사, 사망곡(死亡谷)이 무, 무너졌습니다.”
“그걸 지금 보고라고 하고 자빠졌냐? 어찌 무너졌는지! 누가 무너뜨렸는지! 그것을 말하란 말이다!”
“그, 그것은 소, 소신도 잘…….”
퍼억-!
쿠당탕탕-!
분노한 남자의 발길질에 사정없이 나가떨어지는 수하였다.
수하는 재빨리 일어나 기어서 다시 남자의 앞으로 와 엎드렸다.
“병신 새끼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요, 용서를…….”
“용서? 용서? 병신 새끼야! 용서? 지금 본문이 모든 역량을 기울여 만든 회심의 한 수가 무너졌는데! 용서?”
남자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잠시 밖으로 나가 크게 소리를 지르고 들어왔다.
“천령강시는? 찾았나?”
“차, 찾지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절벽이 무너지면서 같이 매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염병! 제길! 그거 한 구 만든다고 별 개지랄을 다 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었다고?”
“그, 그곳은 절대로 사람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불가능한 곳입니다.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수하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 말에 남자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말하라고. 무조건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나로 하여금 이해가 가게끔 보고를 하라고.”
“아, 알겠습니다.”
“네 말이 맞아. 거길 사람의 힘으로 무너뜨릴 순 없지. 재수도 없군. 하필이면 다 끝나 가는 판에…….”
남자는 결국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이대로 있을 순 없지. 뭐 천령강시랑 무인 충원을 위해 키우던 아이들이랑 잃은 것은 어쩔 수 없고. 일단 하던 일은 마저 해야겠지.”
그리고 수하에게 말했다.
“요녕성을 정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은 한 곳. 모용세가를 짓밟고 이 짜증을 풀어야겠다. 모두 준비시켜.”
“충!”
***
모용성 가주실에서 소가주 모용천이 모용승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아버님! 축하드립니다.”
“허허, 녀석. 다 너희들 덕분이다. 내가 자식들을 정말 잘 두었어. 허허허.”
자식들이라 함은 자기와 모용혜를 말하는 것이기에 모용천의 표정은 밝았다.
“그동안은 내가 몸이 좋지 않아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 해 보려 한다. 자, 한 잔 받으려무나.”
“아, 아버지. 아직은…….”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과 대작을 하려 하는 모용승을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용천이었다.
“괜찮다. 의선께서도 허락하셨다.”
안 했다.
“그, 그럼 소자, 감사히 받겠습니다.”
모용천이 공손하게 두 손으로 술잔은 받아 들었다.
쪼르륵-!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그동안 아비 대신에 세가를 이끈다고 고생했다. 녀석. 이제 다 컸구나.”
“아, 아닙니다. 소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겸손할 줄도 알고 하하하. 이제 물려줘도 되겠구나.”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정말로 소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거기에 아버님이 이리 정정하신데 어찌 제가…….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