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아들의 모습에 모용승이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이? 일하기 싫어서 아비에게 계속 맡기려 하는 것이냐?”
“그, 그것이 아니옵고…….”
“껄껄껄, 되었다. 네 마음은 이 아비가 아주 잘 알았다. 자! 한 잔 더 받거라.”
술잔이 오거니 받거니 몇 차례 돌고 나서야 모용승이 본론을 꺼냈다.
“그 의선께서 데려온 청년 중에 제갈군이라는 청년이 있지 않으냐.”
“네. 아버지.”
“우리 혜와 엮어 주는 게 어떠냐?”
모용승의 말에 모용천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네? 아, 아버지. 혜에게는 조방이라는 정인이 있습니다. 정인이 있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쯧쯧, 이 녀석아. 정인이라고 다 결혼한다더냐? 어차피 결혼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다. 이왕이면 더 좋은 가문으로 동생을 보낼 생각을 해야지!”
모용승의 말에 모용천은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웠다.
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심지어 자신은 이미 조방과 절친이 되어 있는 상태였고, 이미 마음속으로 모용혜의 신랑으로 인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에 거역하는 것은 할 수 없었기에 이리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조, 조방하고 제갈군은 둘도 없는 절친입니다. 저, 절대로 친구의 여인을 탐하는 짓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 부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모용천의 말에 모용승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더냐? 에잉. 천하의 제갈세가가 어찌 그런…….”
뒷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대번에 갔다.
‘미안하다. 친구야. 내가 이렇게 마음속으로나마 사과한다.’
마음으로 깊은 사과를 하는 모용천이었다.
“그것뿐 아닙니다. 지금 모용혜에게 그런 소릴 했다간…… 아시죠? 그 녀석 성격…….”
“끄응…….”
그랬다.
지금 모용혜에게 저 얘길 꺼냈다간 모르긴 몰라도 당장 조방을 꼬셔서 아이부터 가지고 올 수도 있었다.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그 조방이라는 청년.”
모용승의 물음에 모용천이 자기 생각을 말했다.
“긴 시간을 보진 않았지만, 누구보다 의가 넘치고 강합니다. 머지않아 강호에 크게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님, 조방을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네놈도 한통속이구나. 모르겠다. 알아서들 하거라.”
“감사합니다.”
소가주까지 조방의 편을 드니 결국 두 손을 든 모용승이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비상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땡땡땡땡-!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는 두 부자였다.
“이, 이게 무슨 소리냐!”
“비상 종소리입니다! 서, 설마?”
“왜?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느냐?”
“마영문! 호시탐탐 저희를 노리고 있는 놈들이 그놈들밖에 더 있습니까?”
“그, 그놈들이?”
“아버님이 병상에 누운 지금이 적기라 생각하고 쳐들어온 것 같습니다!”
“이놈들! 때를 잘못 골랐구나! 세상에 나의 건재함을 보이겠다!”
“아, 아버님! 아직은 요양을…….”
“조용히 하거라! 세가에 위기가 왔는데 지금 나더러 숨으라는 것이냐!”
“소자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가시죠! 소자가 모시겠습니다!”
“오냐! 오랜만에 부자가 힘을 합쳐서 위기를 넘겨보자꾸나!”
“네!”
한편 밖에서는 수많은 모용세가의 무사들이 쳐들어온 침입자들을 상대로 방어를 하고 있었다.
채채챙-! 차차창-!
“이놈들! 누구냐!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온 것이냐!”
무사들이 그들과 싸우면서 계속 외치고 있었다.
모용세가의 장로들까지 합세하여 쳐들어온 무리들과 싸웠다.
세가의 장로들은 기세등등하게 적들을 해치워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캉-!
“인제 그만. 우리 애들 좀 그만 죽여.”
“크크크크, 야, 그리 말하니까 우리가 꼭 착한 놈들 같다.”
장로들의 공격을 막은 자들이 웃으며 자기들의 수하들을 그만 죽이라 말했다.
그 모습에 세가의 장로들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우리? 알 텐데?”
“그걸 우리가 어찌 아느냐!”
“크크크, 뭘 모른 척해? 이제 요녕성의 패자 자리는 우리에게 넘기셔야지.”
“마, 마영문! 마영문 놈들이더냐?”
“잘 아네.”
“최선을 다해서 덤벼. 어차피 오늘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을 치우라 명받아서 말이야. 살려 둘 생각 없으니까 죽을 각오로 덤비라고.”
남자들의 말에 장로들은 더는 못 참겠는지 검을 휘둘렀다.
“닥쳐라!”
후웅-!
카카깡-!
“노친네 힘도 좋네.”
쓰앙-!
“커헉!”
“그런데 그게 끝이야. 힘만 좋은 거. 잘 가.”
“이, 이놈들…….”
푸하학-!
장로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다른 쪽에서도 이미 다 처리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요녕성의 패자라길래 기대를 잔뜩 하고 왔는데?”
“잔챙이들밖에 없는데? 장로라는 것들도 영 부실하고.”
“가주는?”
“골골거리고 있다더라. 퉤! 그건 줘도 안 먹어.”
“그럼 소가주!”
“그놈은 내 거!”
“내 거!”
서로 다음 먹이를 가지고 다투고 있었다.
한편 바깥으로 나온 모용승과 모용천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악했다.
종이 울리자마자 뛰어나왔음에도 이미 수많은 세가의 무인들이 희생을 당한 것이다.
일단은 사태를 파악해야 했기에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주변을 탐색했다.
그 결과 세가의 무사들을 도륙하는 자들 외에 세가의 지붕 위에서 이것을 유유자적하게 구경하는 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발견한 모용승과 모용천은 소름이 돋았다.
누가 봐도 저들이 정예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직 진짜들은 참전도 하지 않았는데 세가가 도륙이 나고 있었다.
둘은 다급하게 검을 꺼내 들고 세가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을 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 하늘이 우리 세가를 이리 버리시는 것인가?”
검을 휘두르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용승이었다.
그때.
퍼퍼퍼퍼펑-!
콰콰콰쾅-!
세가를 침범한 무리들이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 날아갔다.
모용승이 그곳을 바라보자 세 사람이 보였다.
바로 조방과 제갈군, 그리고 진천이었다.
조방은 재빨리 모용승의 옆으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네. 자, 자네들 어찌?”
도망가지 않고 여기 왔냐고 묻는 거 같았다.
“어찌 이런 악을 보고 피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미약하나마 힘껏 돕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창을 전면으로 겨누며 말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저들은 이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후기지수의 수준을 넘어선 강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모용승이 어서 피하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거대한 불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점만변(一點萬變)!”
쿠아아아아앙-!
수십 개가 넘는 창 모양의 불길이 적들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적들을 재로 만들어 버리는 엄청난 무공.
모용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방은 뛰어나가 날뛰기 시작했다.
조방이 지나간 자리는 재만 남았다.
그 어떤 시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휘두르는 창술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퍼퍼펑-!
다른 쪽에서도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그곳을 바라보니 진천이라는 자 역시 적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제갈군과 관천까지 가세하여 돕고 있었다.
“아버지! 하늘이 아직 저희를 버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그렇구나! 우리도 힘을 내자! 은인들이 저리 도우시는데 주인이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네!”
다시 의욕이 샘솟은 모용승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장내가 정리되기 시작했고, 세가의 앞마당에 들어온 적들은 모두 처리가 되었다.
그러자 지붕에서 이것을 감상하던 자들이 내려왔다.
짝짝짝-!
손뼉을 치며 감탄한 어투로 말하고 있었다.
“이야! 별 볼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네.”
“그러게. 아까 장로들 상대할 때만 해도 흥미가 떨어졌었는데.”
그 말에 모용승이 다급하게 물었다.
“자, 장로들이라니!”
“응. 힘겨워하길래. 우리가 먼저 올려 보내 줬어.”
그 말에 모용승이 비틀거렸다.
자신의 직계 가족들.
그들이 모두 죽은 것이다.
땅에 착지한 열 명의 무리.
그들은 재미난 먹잇감을 만난 표정이었다.
특히 조방과 진천을 향한 노골적인 눈빛.
누가 봐도 강렬하게 원하는 눈빛이었다.
“이거 참, 가장 맛있는 먹이는 정해졌는데 원하는 애들이 많네? 어찌하나?”
“크크크. 먼저 먹는 자가 임자지!”
한 명이 튀어 나가며 조방을 노렸다.
퍼펑-!
“크윽!”
조방의 반격에 재빨리 뒷걸음질 친 남자.
“크하하하하! 꼴좋다!”
뒤에서 비웃음이 들려왔다.
남자의 인상이 구겨졌다.
“이, 이 버러지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쿠우우우우-!
남자의 몸에서 붉은 혈기가 올라왔다.
“네놈은 특별히 혈사신(血死身)이 되어 상대해 주마.”
그 말에 조방이 말했다.
“그래? 그럼 나는 특별히 화룡이 되어 상대해 주지.”
“뭐?”
잔뜩 기세를 올리던 남자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조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거대한 화룡.
그것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 맙소사! 화, 화룡?”
혈사신을 전개하던 남자가 깜짝 놀라며 다시 뒷걸음질 쳤다.
뒤에 있던 모용승과 모용천 역시 입이 쩍 벌어진 채로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을 보고 있었다.
“화, 화룡…… 화룡지체라고? 우리 혜아가 데려온 정인이…… 화룡지체였어?”
“세, 세상에…… 화, 화룡이라니. 그, 그런 사람이 장원의 무사라고?”
경악을 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조방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 조방을 향해 크게 웃는 남자.
“크하하하하! 애들아! 너희들도 같이해야겠다. 이건 내가 감당이 안 되겠는데? 크크크크.”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웃으며 말하는 남자.
아니나 다를까 남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 있던 남자들 역시 일제히 핏빛 혈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게. 크크크, 재밌겠네.”
“오래간만에 맘껏 힘을 써도 되겠군.”
“하하하하하! 재밌다! 재밌어!”
열 명이 일제히 혈기를 드러내자 조방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청난 기운이 조방을 덮쳐 왔다.
그 모습에 조방이 경악을 했다.
“이, 이럴 수가! 아무리 힘을 합쳤다지만 화, 화룡을 능가한다고?”
누가 봐도 조방이 불리했다.
“친구, 내가 돕지.”
진천이 옆으로 와 나란히 섰다.
그 모습에 혈기를 내뿜던 남자들이 비웃었다.
“크크크, 객기를 부리는 놈이 나타났군.”
“미안하지만 너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후우우우웅웅-!
푸른빛의 거대한 무신이 진천의 몸에서 피어올랐다.
“관심 가져 줘. 나도 오행체 중에 하나거든.”
진천의 말에 모용승과 모용천이 다시 경악하며 외쳤다.
“무신현상! 처, 천무지체!”
“처, 천무지체까지?”
혈사신들 역시 놀람을 드러냈다.
“오호! 천무지체였어?”
“반씩 나눠야겠다. 전력을 다해라! 훗날 교에 큰 걸림돌이 될 놈들이다.”
“알았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달려드는 열 명의 혈사신과 두 오행체가 격돌했다.
콰콰쾅-!
퍼퍼퍼펑-!
쿠쿠쿠쿠쿵-!
사방이 진동하고 전각들이 무너져 내렸다.
엄청난 위력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재빨리 뒤로 후퇴했다.
모용승과 모용천 역시 뒤로 거리를 벌린 뒤 그 모습을 지켜봤다.
쿠아아아아아-!
화룡이 춤을 추는 듯한 광경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이미 밤이 깊어져 어두워진 모용세가를 환하게 비추는 화룡.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용승은 정신을 차리고 명했다.
“당장 살아남은 사람들을 대피시켜라! 한 명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가주의 명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기 아들이자 소가주를 보며 말했다.
“너는 살아남은 세가 사람들을 챙기거라. 부디 살아남아야 한다.”
“아,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자는 못 갑니다!”
“닥치거라! 너라도 살아남아야 세가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 아니냐! 어서! 아비로서가 아니라 가주로서 명이다!”
“아, 아버지…….”
아들이라도 살리기 위해 내린 명령.
그런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다 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젊은 남자가 이곳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오늘 기분이 좋다. 전부 살려 줄게. 다 가라.”
“그, 그대는 누구요?”
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모용승이 경계를 하며 물었다.
“나?”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는 남자.
모용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마영문의 문주.”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소개하면서 입술을 핥는데 살기가 진하게 모용승의 뇌리에 파고든 것이다.
“이제 알겠지? 너희들을 살려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남자인지.”
그리고 조방과 진천을 바라보며 웃었다.
“저런 재미가 있는데 네놈들 같은 버러지들 피를 묻혀서 기분 잡치면 안 되지. 그러니 빨리 가. 보고만 있어도 짜증이 나려고 하니까.”
그러면서 손을 휘휘 젓는 남자였다.
반박하고 싶었다.
아니라고 말하며 공격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이미 남자가 뿌린 살기에 온몸이 굳은 상태였다.
남자가 한창 조방과 진천의 싸움을 보더니 일어섰다.
“이것참, 크크크. 피가 끓어서 더는 못 지켜보겠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 물러서라.”
남자가 천천히 걸어가며 말하자, 정신없이 조방과 진천을 공격하던 열 명의 혈사신이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렸다.
남자의 한마디에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