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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화 (144/200)

144화

전투 중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남자.

자신들을 몰아붙이던 저들이 두려움에 떨며 물러났다.

그 모습에 지쳐 가던 조방과 진천이 서로 전음을 날렸다.

-헉헉. 저 자식들이 저리도 두려워하며 물러나다니. 저놈은 더한 괴물인가 보다.

-미치겠네. 헉헉. 아무래도 우리가 그동안 너무 자만한 것 같다. 오행체라고 너무 자만했어.

-나는 자만 안 했는데…….

-아, 너는 그렇지…….

조방의 전음에 진천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방이 자만을 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주변에 괴물 천진데.

둘이 그렇게 전음을 나누고 있을 때 천천히 걸어오던 남자가 말했다.

“숨 고를 시간을 주지. 지친 놈들 상대해 봐야 재미가 없으니.”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조방과 진천 역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헉헉, 안 된다고 하고 싶지만…….”

“그러게. 좀 쉬고 보자.”

그러더니 정말로 편하게 대자로 누워서 쉬는 것이다.

그 모습에 남자가 몸이 넘어가라 웃었다.

“크하하하하하! 이거 봐라? 하하하하! 정말 재밌다! 재밌어! 크하하하!”

예상외의 행동에 남자가 정말로 즐거워했다.

지금까지 이런 자들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크크크크. 그래, 푹 쉬어라. 이승에서 마지막 휴식이니.”

남자의 말에도 대꾸 없이 쉬기 바쁜 두 사람이었다.

그 상황을 바라보던 주변인들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아무리 상대방이 쉬라고 했다고 저리 맘 놓고 쉰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말리거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남자가 일어섰다.

“이쯤 줬으면 된 거 같은데?”

그러자 조방과 진천도 주섬주섬 일어났다.

“조금만 더 주지.”

“그러게.”

투덜거리면서 일어서는 두 사람.

“크크크. 너희들 정말 맘에 든다. 어떠냐? 내 밑으로 오지 않겠냐?”

자신의 부하가 되기를 종용하는 남자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밑으로 들어가라고?”

“먼저 자기소개부터 하고 들어오라고 해야 정상 아닌가?”

둘의 말에 기분이 상할 법도 한데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답했다.

“크크크. 갈수록 맘에 든다. 그 배짱 크크. 좋다! 내가 누군지 말해 주지!”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말해 주겠다고 하자, 조방과 진천 뿐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혈천교의 사령마군 중 하나인 멸령마군(滅靈魔君) 백황(伯荒)이라고 한다. 크크크.”

그의 말에 모든 사람이 경악했다.

“혀, 혈천교! 저, 정말이란 말인가?”

“마, 맙소사! 혈천교라니!”

그런데 웬걸?

조방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혈천교 사대호법. 전에 염화마제라는 자를 만났었지. 내 손에 저 세상 갔지만.”

조방의 말에 옆에 있던 진천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진천의 말에 조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백황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 다 늙어서 겔겔거리는 노인네를 잡고 그리 기세등등한 것이냐? 그래도 칭찬은 해 줄 일이군. 크크크. 늙었어도 나름 강했을 텐데.”

백황이 즐거워하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렇군. 화룡이었지. 그 노인네 재수도 없지. 하필 자신의 상위호환인 자를 만났으니. 그러나 나는 다르다. 그러니 긴장을 늦추어서 방심하는 불상사는 벌이지 말아라.”

백황의 말에 조방이 자신의 창을 움켜쥐며 말했다.

“절대 그럴 일 없다. 이제 그만 시작하지?”

조방의 말에 백황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래. 이제 그만 시작해 보자. 크크.”

조방이 달려 나가며 외쳤다.

“하앗! 천패광폭창(天覇狂爆槍)!”

콰콰쾅-!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할 것 같은 위력의 섬광이 백황을 덮쳤다.

촤아악-!

백황이 휘두른 검이 섬광을 반으로 갈랐다.

반으로 가르고 날아오는 검강.

조방이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콰콰쾅-!

진천이 백황을 향해 무당의 자랑인 선천태을장(先天太乙掌)을 날렸다.

진천의 손에서 거대한 손바닥 모양의 강기가 백황을 향해 날아갔다.

백황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선천태을장 역시 반으로 갈라 버렸다.

쭈아악-!

콰콰쾅-!

조방과 진천은 끊임없이 백황을 향해 힘을 합쳐 공격했다.

조방이 창을 날리면 진천이 후방을 공격하고, 진천이 장력을 날리면 조방이 머리 위를 공격했다.

하지만 백황은 여유롭게 그 모든 것을 다 피하고 쳐 냈다.

“크크크크. 정말로 즐겁구나! 더더! 더 해 봐라!”

백황의 말에 조방과 진천이 각각 화룡과 무신을 불러냈다.

“염화폭열창(炎火爆熱槍)!”

자신이 할 수 있는 최후 초식에 화룡의 기운까지 집어넣어 날렸다.

쿠르르르릉-!

“천강복마권(天?伏魔拳)!”

진천 역시 무신의 기운을 불어넣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후 초식을 날렸다.

쿠콰콰콰콰-!

“크크크. 좋구나! 멸살천참(滅殺天斬)!”

그 순간 백황의 검에서 거대한 크기의 검강이 형성되었다.

백황은 거대하게 변한 자신의 검을 세로로 휘둘렀다.

거대한 검강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두 무공을 가차 없이 소멸시키며 조방과 진천을 향해 나아갔다.

“피, 피해!”

퍼억-!

진천이 조방에게 장력을 날려 튕겨 나가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검강에 말려들었다.

콰콰콰쾅-!

검강이 지나간 자리에 모용세가의 전각들이 일렬로 무너지며 박살이 났다.

“진천!”

자신에게 장력을 날려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고 크게 다친 것이다.

“이 친구야! 왜 그랬어!”

“쿨럭! 하하. 하, 한 명이라도 살아야지.”

피를 한 움큼 토하는 진천.

진천은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처참했다.

온몸에 난 자상과 연이어 각혈하는 모습은 더는 그가 살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 안 되네. 이렇게 보낼 수 없네! 의선! 의선 어디 계십니까!”

애타게 의선을 찾았다.

관천이 재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 진천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늦었네…….”

진천을 안고 서글프게 우는 조방과 슬픈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백황.

그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짜증 나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신파극은 그만하지? 어차피 다 죽일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그러고는 자신의 검에 다시 기운을 불어넣었다.

“일단 질질 짜는 병신 것들부터 지우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방과 관천, 진천이 있는 곳으로 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슬픔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강조차 느끼지 못하는 조방.

쩡-!

푸하학-!

백황이 날린 검강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사방으로 분산되었다.

그 충격으로 멀찌감치 날아간 백황.

경악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갑자기 등장한 네 명의 남자가 있었다.

세 사람은 백황을 죽일 듯이 쳐다보고 있었고, 한 사람은 진천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런…… 꽤나 고전을 했구나.”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방이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곳에는 빛이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구원해 주던 빛.

그 빛이 진천을 향해 스며들어 갔다.

진천의 몸이 순식간에 치유되어 갔다.

“걱정하지 말거라. 이 녀석은 아주 많이 장수할 것이니.”

“주, 주군…… 이, 이게 꿈이 아닌지요.”

조방의 말에 천룡은 빙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관천 역시 놀란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자, 장주님, 여, 여긴 어떻게?”

“아, 볼일이 있어서 오는 중이었는데 조방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서 서둘러 왔다.”

관천의 말에 답을 해 주고는 백황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것 같군.”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무광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러기엔 여기 피해가 너무 크다.”

그리 말을 하고는 백황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너를 어찌해야 할까?”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

백황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내가 두려움을 느낀다고? 이 내가?’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두려움을 느낀다고?”

이번엔 큰 소리를 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강하다! 하앗! 멸살천참!”

다시 한번 진천을 사경으로 몰아넣은 초식을 전개했다.

거대해진 검강.

그것이 정확하게 천룡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쩡-!

천룡은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으로 막았다.

“소, 손으로? 매, 맨손으로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펼친 검강이다.

그것도 최후 초식이었다.

그것을 피한 것도 아니고, 같은 검강을 씌운 검으로 막은 것도 아니고 손바닥으로 막았다.

그것도 별다른 힘을 쓴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머리로 날아오는 나뭇잎을 쳐 내는 듯한 모습.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자신의 검을 쳐 냈다.

슈팍-!

퍼억-!

놀라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복통.

놀라서 배 쪽을 바라보니 주먹 모양으로 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크어억!”

푸학-!

쿠다다당탕탕-!

볼품없게 한참을 구르고 굴러 거대한 바위와 부딪혔다.

콰쾅-!

자욱하게 피어오른 먼지.

그것을 보고 경악을 하다못해 턱이 빠지려 하는 사람들.

모두가 똑똑히 보았다.

조금 전 백황의 무서움을, 그리고 그의 엄청난 강함을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백황이 단 한 방에 저리된 것이다.

천룡은 조용히 제자들에게 말했다.

“저기 혈기 뿌리는 놈들. 전부 정리해라. 사람의 피를 흡수해서 얻은 기운이다. 모조리…… 없애라.”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차가운 목소리.

제자들은 차마 되묻지 못하고 대답했다.

“네!”

제자들의 대답을 들은 천룡은 천천히 다시 백황이 쓰러진 곳을 향해 걸어갔다.

“웬만하면 사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쩌적-! 쩌저적-!

천룡의 걸음, 걸음마다 바닥에 금이 가고 있었다.

“갱생이 가능한 자들은 될 수 있음 살려서 죄를 뉘우치게 만들어 좀 더 밝은 세상을 만들려고도 했다.”

푸학-!

자신을 덮었던 바위를 사방으로 쳐 내며 일어나는 백황.

그의 몸은 엉망이었다.

기혈이 사방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가 품속에서 단약을 꺼내어 입속에 집어넣었다.

“제길. 이건 정말로 먹고 싶지 않았는데.”

꿀꺽-!

단약이 몸 안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기운이 그의 온몸에 퍼졌다.

백황은 자신의 몸 안에 넘치는 힘을 느끼며 몸을 풀었다.

뿌드득-!

“이봐! 아직 안 끝났어!”

백황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천룡에게 돌진했다.

“천살마광(天殺魔狂)!”

시뻘건 기운을 온몸에 두르고 달려드는 백황.

빠악-!

“커억!”

통하지 않았다.

천룡의 발차기가 백황의 턱을 갈겼다.

퍼억-!

천룡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꽂혔다.

그리고.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백황에게 주먹을 날리는 천룡.

그의 눈에는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특이하게 저리 때리는데도 백황의 몸이 날아가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에 잡힌 채로 얻어맞는 모양새였다.

순식간의 그의 온몸은 흐물흐물해졌다.

털썩-!

천룡의 주먹질이 멈추자, 백황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백황이 쓰러지자 그의 머리를 잡았다.

“이건 될 수 있음 쓰지 않으려 했는데…….”

빠지지직-!

뇌기가 백황의 머리를 감쌌다.

잠시 후.

백황이 하얗게 변한 눈동자를 보이며 천룡의 손에서 떨어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백황의 시체를 잠시 바라보던 천룡이 한숨을 쉬고는 뒤를 돌아봤다.

자신의 제자들 역시 혈기를 내뿜는 자들을 모두 처리한 상태였다.

다들 경악, 공포, 경이 이 모든 것이 담긴 눈빛으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제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던 천룡의 모습이었다.

그런 제자들을 보며 천룡이 말했다.

“녀석들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일단 이곳을 정리하고 보자.”

천룡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모용세가의 전각들은 멀쩡한 곳이 없었고, 사방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들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용승은 정신을 차리고 천룡에게로 다가와 몸을 숙이며 인사를 했다.

“겨, 경황이 없어서 이제야 인사를 올립니다. 은인! 세가를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용승의 인사에 천룡이 포권을 하며 답했다.

“하하, 아닙니다. 인연이 있는 집안인데 어찌 돕지 않을 수 있습니까?”

천룡의 말에 모용승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네? 죄송하지만…… 저희는 은인을 오늘 처음 뵙습니다.”

모용승은 자신이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기억에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세가를 위해 달려와 준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저기 저 녀석이 제 가족입니다.”

천룡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조방이 서 있었다.

조방은 자신을 가리키며 가족이라 말해 주는 천룡을 보며 울고 있었다.

“저 녀석이 좋아하는 여자가 바로 가주님 따님입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천룡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에 모용승이 기겁을 하며 인사를 받았다.

“아, 아닙니다! 저,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 내 딸이 물어온 게 화룡지체에…… 무신이었구나! 이런 복덩이 같으니…….’ 세가가 무너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딸이 너무 대견했다.

“세가가 재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천룡의 말에 모용승의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처음에 조방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너무도 미안했다.

또한,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천룡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은 것에 감격했다.

천룡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깨달은 모용승이었다.

‘누군가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이 이리도 포근한 것이었구나.’

지금까지 오랑캐 가문이라며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룡의 품 안이라면 떳떳하게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천룡.

이분과 함께라면 말이다.

존경하는 눈빛으로 천룡을 바라보는 모용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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