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
천룡은 저 멀리서 쭈뼛거리는 제자들을 불렀다.
“많이 놀랐느냐?”
“아, 아버지. 지금까지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셔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사부님…… 아까는 정말로 무서웠습니다.”
“…….”
제자들의 모습에 천룡이 사과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들은 살려 두기 힘들었다. 그 마음이 나도 모르게 표출이 된 것 같다.”
천룡의 말에 제자들은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경험하지 않았는가.
저들이 얼마나 잔혹한 짓을 했는지 말이다.
솔직히 천룡이 아니었어도 자신들이 나서서 처리했을 것이다.
저들은 살리는 것보다 세상에서 지우는 것이 이득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천룡이 이리 말해 주니 안심이 되었다.
천룡 역시 자신들과 같이 분노하고 슬퍼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더욱 와닿았다.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죄송합니다. 괜히 아버지 마음만 속상하게 만들었네요.”
“사부님. 저희는 그냥 살짝 놀란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두 사람과 다르게 태성은 천룡을 안았다.
“사부!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저희랑 꼭! 상의해 주세요. 아셨죠?”
태성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아는 천룡이었다.
천룡은 자신의 품속에 있는 태성을 토닥여 주었다.
“이 자식이 또 혼자서 독차지하려고 하네?”
무광이 태성을 노려보며 말했다.
“놔두세요. 한창 응석 부릴 막내 아닙니까.”
천하의 사황이 응석 부리는 막내로 전락했다.
그래도 좋았다.
사부의 품이.
어수선한 장내를 뒤로하고 모용승의 안내를 따라 그나마 멀쩡한 전각으로 이동했다.
“은인! 제가 지금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대접을 못 해 드릴 것 같습니다.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어서 가 보세요.”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모용승은 문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 계속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사람 운명이라는 게 정말 모를 일이구나. 황제의 명으로 이곳에 오질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자신의 소중한 이들을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하루라도 빨리 혈천교를 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천룡이었다.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그놈들에 대한 정보가 아직도 부족했다.
마지막에 백황의 머릿속에서 기억을 뽑아냈다.
다른 이의 모든 기억을 본다는 것은 그다지 좋은 기분이 아니었기에 다시는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해야겠다고.
백황의 기억에는 혈천교 본단에 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광기만이 남아 있었다.
다행히 마영문에 대한 정보는 있어서 그것을 토대로 차근차근 되짚어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마영문에 먼저 가야 했다.
“일단 마영문이라는 곳을 먼저 다녀와야겠다. 그곳에 가면 그래도 단서가 있지 않을까?”
천룡의 말에 제자들이 물었다.
“거기가 어딘지 알고 찾습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몇 놈 살려 둘 걸 그랬나 봐요.”
“백황이라는 녀석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가 어딘지 알아.”
“네? 사, 사람의 기억을 끄집어내요?”
다들 깜짝 놀라며 묻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니다. 그래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 기술이지.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을 생각이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천룡의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조금 방관하고 흘러가는 대로 놔두었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이곳에 있어 봐야 방해만 될 것이고, 일단 그곳에 다녀오자.”
“네!”
***
망망대해(茫茫大海).
끝이 없이 펼쳐진 바다 위로 천룡과 제자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물 위를 달리는 데도 땅 위를 달리는 것처럼 평온했다.
한참을 달리던 그들 눈에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저기입니까?”
무광의 물음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기억에 의하면 저기가 맞다.”
“이런 외진 곳도 모자라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니 못 찾는 것도 이유가 있었네요.”
“사람들이 문파라고 하면 전부 육지에 있을 거로 생각하니 찾기 힘들었겠죠.”
“혈천교도 이런 식으로 섬에 있는 거 아닐까요?”
“그건 아닌 것 같다. 주로 북쪽에서 내려온 것을 보면…….”
“하긴 미친놈들이라도 굳이 빙 돌아서 내려오진 않겠지요.”
한편 섬에서 경계를 펼치던 자들은 바다 위를 달려오는 사람을 보고 경악을 했다.
“바, 바다 위로 사람이 달려온다!”
“무슨 개소리야!”
“저, 저길 봐!”
무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정말로 바다 위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네 사람이 보였다.
“미친! 얼마나 엄청난 고수길래…… 뭐 해! 비상종 때려!”
땡땡땡땡땡-!
“하필 본 문의 정예 무사들이 모두 자리를 비웠을 때 이런 고수들이 오다니.”
“우리가 막을 수 있을까?”
“천령강시가 있잖아. 그거면 돼!”
“맞다! 어서 그들에게 가서 말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무사는 다급하게 어디론가 향했다.
한편 바다 위를 달려오던 천룡은 섬 전체를 살펴보고 있었다.
“딱히 특별한 놈들은 없다. 모용세가에 쳐들어온 놈들이 주력이었나 보군.”
“그래요? 에이. 그래도 나름대로 기대하고 왔는데…….”
“잔챙이들만 정리하고 가겠네요.”
“그래도 여기저기 잘 살펴봐. 무언가 혈천교를 찾을 단서 같은 게 있는지.”
“네!”
이윽고 섬에 도착한 네 사람.
땅에 착지하자마자 무광이 섬 가운데 있는 성벽에 일권(一拳)을 날렸다.
콰콰쾅-!
순식간에 뻥 뚫린 벽.
그곳으로 여유롭게 들어가는 네 사람이었다.
“쏴!”
성안으로 들어오자 사방에서 날아오는 수백 개의 화살.
티티티티팅-!
하지만 투명한 강기에 막혀 튕겨 나갔다.
화살을 날리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는 네 사람.
“야, 신경 쓰이니까 좀 치워라.”
무광이 태성에게 말하자 태성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뇌화풍천!”
쿠콰콰콰쾅-!
“크아아악!”
“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화살을 날리던 무사들을 제압한 태성이었다.
땅에 착지하자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르르!”
혹시 하는 마음에 돌아보니 역시나였다.
“여기도 있네.”
“그러게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가 희생되었을까요?”
세 제자가 강시를 보며 얘기하자 천룡이 물었다.
“저, 저것이 무엇이냐?”
“아! 사부는 모르시겠구나. 저거 천령강시라고 천 명의 아이들을 희생시켜 만드는 마물이에요.”
천룡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뭘 희생해?”
“천 명의 아이들.”
“그, 그게 정말이냐?”
천룡의 물음에 제자들이 슬픈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한 눈빛으로 변한 천룡.
조용히 천령강시를 향해 걸어갔다.
천룡이 다가오자 천령강시가 달려들었다.
“크아아아악!”
강기를 머금은 기다란 손톱이 천룡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쩡-!
하지만 무형의 기운에 막혀 더 전진하지 못했다.
천룡은 슬픈 눈으로 천령강시를 바라보았다.
“불쌍한…… 녀석들. 영혼들이 울고 있다.”
천룡은 강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너희들의 복수는 꼭 해 주마. 편히 쉬거라.”
그리 말하고 천령강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령강시의 입가에 미소가 고이며 천천히 눈을 감는 것이다.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천령강시.
털썩-!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영문의 무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 시작했다.
“미, 미친! 천령강시를 저리 쉽게 처리한다고! 도, 도망가! 괴물이다!”
“천 번을 죽여야 쓰러진다는 천령강시를 한 방에 쓰러뜨리다니! 도망가! 빨리!”
그런 그들을 천룡이 분노한 얼굴로 외쳤다.
“금수만도 못한 놈들! 네놈들에게 진정한 천벌을 내려 주지.”
천룡이 손을 들었다.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만뢰.”
구르르릉-!
번쩍-!
빠지지지직-!
“크아아아악!”
“끄아아아아!”
“사, 살려…….”
지금까지 천룡이 사용했던 만뢰와는 위력 자체가 달랐다.
모든 것을 지워 버릴 위력의 뇌전이 섬 전체를 덮었다.
온 섬 전체에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천룡의 뇌전.
순식간에 섬 안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다.
작지 않은 섬이었다.
그런데도 천룡은 너무도 쉽게 섬 전체를 뇌전으로 덮었다.
“대, 대단…….”
“사부님을 보면 우리는 정말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보세요. 힘든 기색이 전혀 없으세요.”
천룡은 숨소리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천룡이 어딘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슈아아앙-!
그러자 저 멀리서 무언가 인간 형태를 한 물건이 날아왔다.
순식간에 천룡의 손아귀에 잡힌 정체 모를 물체.
“끄으윽!”
사람이었다.
“억! 저놈 저거. 그때 도망갔던 그놈이잖냐!”
자세히 보니 저번에 절벽에서 무광의 손을 피해 도망간 자들 중 한 명이었다.
“밀교(密敎)?”
천룡이 보자마자 말했다.
천룡의 말에 남자의 동공이 커졌다.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술법도 아직 펼치지 않았는데 대번에 자신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아버지, 어찌 그렇게 쉽게?”
알았냐는 뜻이다.
“모르겠다. 보자마자 느껴졌다. 밀교라는 것이.”
천룡의 손아귀에서 버둥거리던 남자가 이내 몸부림을 멈추고 물었다.
“그, 그대는 누구요?”
어설픈 중원 말로 물어오는 승려.
천룡이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문득 기억이 난 것을 말해 줬다.
“제석천(帝釋天).”
천룡의 입에서 나온 말에 승려는 경악했다.
“무, 무슨!”
경악하는 승려를 뒤로하고 머릿속에서 밀교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너희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더군. 제석천의 강림(降臨)이라고.”
“마, 말도 안 된다. 그, 그분의 가, 강림이라니!”
“네가 믿고 안 믿고는 중요하지 않아. 내 기억에 그것이 떠올랐을 뿐이지.”
어렴풋하게 나는 기억 속에 있는 천룡은 중원을 쳐들어온 밀교와 싸우는 모습이었다.
오로지 홀로 나서서 그들을 막았기에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몰랐다.
중원이 밀교라는 단체에 정복을 당할 뻔했다는 것을.
천룡이 이들을 막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너무도 잔인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을 벌했다.
경천동지할 위력의 무공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그를 보고 밀교인들은 제석천이 노해서 지상으로 내려왔다며 혼비백산했다.
그리고 엎드려 경배하며 다시는 중원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
겨우겨우 용서를 받고 자신의 땅으로 돌아간 그들이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밀교의 승려는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을 기억해 냈다.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지에 뇌전이 가득하면 무조건 엎드려 경배하라. 천(天)께서 지상에 강림하신 것이니 그분을 경배하라.
승려는 떨리는 눈으로 아까 자신이 본 풍경을 기억해 냈다.
“그것이 모두 사, 사실이었다니!”
경악, 감동, 격정.
이 모든 것이 담긴 눈빛이었다.
천룡은 그를 놔주었다.
털썩-!
“제석천 님을 뵈옵니다!”
자신은 제석천이 아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정정해 줄 마음은 들지 않았다.
“네가 아는 것을 모두 말해라.”
천룡의 말에 승려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줄줄이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용서를 구하며 자진했다.
“부, 부디 요, 용서를…….”
쓰러진 승려를 뒤로하고 천룡이 슬픈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아, 이게 맞는 것인지…….”
천룡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은 제자들이 달려가 위로했다.
“아버지,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하나를 죽여 열을 살릴 수 있다면 저는 그럴 겁니다.”
“맞습니다! 사부님. 저 역시 그리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위로에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고맙다.”
그 모습에 제자들 역시 안심을 하고 웃었다.
“일단 이자가 말한 대로라면 천령강시는 조금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여기 마영문은 백황이라는 녀석이 교주에게 잘 보이려고 밀교와 손을 잡고 일을 진행한 것이군.”
“각자에게 맡기고 세력을 키우게 하다니. 만약 아버지랑 이렇게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새로운 세력이 창궐해서 중원에 쳐들어온 것으로 착각하고 방심했을 것 같네요.”
“정말로 치밀합니다.”
“사령마군 중 둘이 사라졌으니 저쪽에서도 무언가 행동을 해 올 겁니다.”
“나머지 둘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들을 보니 혈천교에서 정말로 심혈을 기울여 키운 것 같습니다. 칠왕급은 상대가 되질 않겠더군요.”
“그것도 그렇고 밀교와도 손을 잡았을 줄이야. 모르고 있었다면 정말로 크게 당할 뻔했습니다.”
저마다 각자 이야기를 하자 천룡이 말했다.
“일단은 모용세가로 다시 돌아가자.”
“네!”
천룡과 제자들이 다시 바다 위를 달려가며 점차 섬에서 멀어져 갔다.
***
요녕성 모용세가.
모용세가 앞에 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세가를 둘러싸고 압박을 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왜 군대가 세가를 둘러싸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궁금함에 청력을 극대화해서 모용승과 앞에 있는 장수와의 대화를 들었다.
“아니,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했다고 이러십니까!”
“이곳에서 밤새 폭음이 들려왔다는 신고가 빗발쳤다! 바른대로 말하라! 화약은 어디에 숨겼는가!”
“아니, 정말로 없다니까요! 저희는 그냥 무림세가일 뿐입니다. 그리고 화약이라니요. 그것을 소지했다가는 어떤 꼴을 당하는지 뻔히 아는데 저희가 그것을 왜 숨기겠습니까!”
“그럼, 사람들이 들었다는 폭음은 무엇이냐! 많은 사람이 전쟁이 난 줄 알았다며 피난길에 오른 자들도 수두룩했다! 그 정도 폭음이 일어나려면 벽력탄(霹靂彈)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모용승은 답답했다.
사실을 말해 줘도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냐며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