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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화 (146/200)

146화

아까부터 계속 똑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가뜩이나 엄청난 손해를 입은 모용세가의 입장에서는 억울해 죽을 판이었다.

그렇다고 이들과 척을 지고 다툼이 일어났다가는 더 많은 군대가 몰려올 것이었다.

아무리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 해도 수백만에 달하는 군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어찌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직접 들어가 조사를 하겠다. 협조해라!”

가뜩이나 지금 세가를 정비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이들까지 가세해서 뒤엎는다면 어느 세월에 세가를 정비한단 말인가.

그래도 다른 수가 없었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들어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들어올 기세였으니.

“하아, 알겠소. 내 그대들 뜻에 따르리다.”

모용승이 결국 장수의 말에 수긍하자, 장수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철저하게 수색하라! 수상한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 빠짐없이 수색하라!”

“네!”

장수의 말에 병사들이 이동하려고 할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춰라.”

나직한 목소리.

하지만 모든 병사의 귀에 아주 정확하게 들렸다.

장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모용승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천룡이 서 있었다.

모용승이 기겁을 했다.

천룡이 이들을 잘 몰라서 한 행동이라 생각하며 다급하게 말렸다.

“으, 은인!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들과 척을 지어서는 안 됩니다.”

천룡이 곤란한 지경에 빠질까 봐 재빨리 장수를 말리려고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장수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야 하나?”

천룡의 말에 장수가 부복하며 말했다.

“아, 아니옵니다! 전하!”

장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용승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내가 한 거다.”

“네?”

천룡의 말에 장수가 고개를 들며 되물었다.

“그 폭음 내가 한 거라고.”

천룡의 말에 장수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 알겠사옵니다! 전하!”

“이왕 온 김에 좀 돕거라.”

“충!”

그리고 재빨리 일어나 병사들에게 말했다.

“뭣들 하느냐! 전하의 말씀 못 들었느냐! 당장 이곳 정리를 도와라!”

“충!”

장수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이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가세하자 순식간에 정리가 되어 가기 시작했다.

모용승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세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건물 잔해들을 합심해서 치워 주는 병사들과 천룡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여 자신을 압박하던 장수는 순한 강아지가 되어 천룡의 옆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전하?’

분명 그랬다.

장수가 천룡을 보며 외친 그것.

그런 모용승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룡이 장수에게 말했다.

“도지휘사더러 여기 지원 좀 보내 달라고 해.”

“충!”

천룡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빠르게 사라지는 장수였다.

그제야 모용승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었다.

“으, 은인. 저, 저기 제가 방금 들은 것이 사실인지요?”

“무엇이 말입니까?”

“도, 도지휘사를 말씀하셨는데…… 그 도지휘사가 요녕성을 총괄하는 그 도지휘사를 말씀하시는 건지…….”

“맞습니다.”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텅 비었다.

어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청난 무공을 보여 주더니 오늘은 도지휘사를 동네 꼬마 부르듯이 부르는 천룡.

차마 무서워서 정체가 무엇이냐고는 묻지 못하는 모용승이었다.

“자, 자, 이만 들어갑시다. 조금이라도 더 치워야지 않겠습니까?”

천룡이 팔을 걷어붙이며 도우려 하자, 모용승이 기겁을 하며 말렸다.

“아, 아닙니다! 은인! 은인은 그저 편히 쉬십시오! 그것이 저를 돕는 일입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 명이라도 더 붙어서 빨리 정리를 해야지요.”

“그,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이런 일은 여럿이 하면 금방 끝나니 걱정하지 마시고 가주께선 어서 가서 다른 이들을 지휘하시지요.”

그리 말하고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천룡이었다.

그 뒤로 제자들이 따라 들어갔다.

모용승은 감동한 얼굴로 천룡의 등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분이시지 않은가!”

재빠르게 천룡의 뒤를 따라가는 모용승이었다.

***

며칠 뒤.

모용세가 앞에 또다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모용승이 다시 달려 나왔다.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모용승의 물음에 딱 봐도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공손하게 다가왔다.

“이, 이곳이 상국전하께서 계시는 모용세가 맞는지요?”

모용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상국전하? 그, 그래서 어제 장수가 그리도 쩔쩔매었구나.’

소문은 들었다.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자.

아니, 황제조차도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있었다.

“네. 네! 맞습니다. 안에 계십니다.”

“역시! 맞군요. 하하, 도움을 주기 위해 사람들을 좀 데려왔습니다.”

“저, 그런데 누구신지…….”

“아! 이런 인사가 늦었군요. 저는 요녕성을 맡은 도지휘사 원상이라고 합니다.”

“헉! 그, 그게 정말입니까? 이, 이거 소생이 크나큰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읍을 하는 모용승이었다.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는 자가 아니던가.

그런 모용승의 모습에 도지휘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저, 전하께서 아시면 제가 큰일이 납니다. 그저 전하께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네! 아, 알겠습니다. 소, 소생을 따라오시지요.”

모용승이 앞장서자 도지휘사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잠시 대기하라고 말하고 뒤따라갔다.

그나마 멀쩡한 전각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던 천룡.

갑작스럽게 온 도지휘사를 보며 놀랐다.

“아니? 여긴 어쩐 일인가?”

“전하! 신 도지휘사 원상 인사 올리나이다! 천세! 천세! 천천세!”

천룡을 보자마자 달려가 엎드려 절을 올리는 도지휘사였다.

그 모습에 모용승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매우 놀랐다.

‘저, 정말이었구나.’

“일어나거라.”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래. 여기는 어쩐 일이냐?”

“전하께서 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셔서 모든 것은 제치고 이리 달려왔나이다.”

“아니,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나랏일도 바쁜 사람을 내가 괜히 오라 가라 한 것 같군.”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각 현의 지현들을 단속해 주신 덕에 그 어떤 때보다 훨씬 편하게 업무를 보고 있사옵니다. 이 모든 것이 전부 전하의 덕이요, 소신에겐 큰 은혜이옵니다.”

모든 지현들을 불러 모아 놓고 한 천룡의 한마디.

‘두고 보겠다.’

그 한마디로 인해 각 현의 지현들은 정말 최선을 다해 백성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그로 인해 불평불만이 사라져 그 어떤 민원도 들어오지 않아 도지휘사는 그 어떤 때보다 편하고 행복하게 업무를 하고 있었다.

“소신이 요녕성에서 장인으로 알아주는 목공들과 일꾼들을 모조리 데려왔습니다. 저들이라면 한 달 안에 세가를 원상 복구시킬 것이옵니다.”

“고맙다. 그럼 신세를 좀 지겠네.”

“신세라니요! 전하! 신이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어찌 그리 말하는가. 그대의 도움이 정말 큰 힘이 되었네. 고맙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도지휘사는 엎드린 채로 감동했는지 들썩였다.

도지휘사는 천룡에게 인사를 마저 하고 나가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세가를 원상 복구시켜 놓으라고.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각자 자신들이 맡은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모용세가는 빠른 속도로 재건이 시작되었다.

***

며칠 후.

천룡 일행이 떠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모용세가를 나서고 있었다.

“어디를 가려 하십니까?”

“하하, 이제 가야지요. 해야 할 일도 있고.”

“아니 됩니다. 은인! 제가 아직 제대로 대접도 못 해 드렸는데…….”

“지금 세가의 상황이 이런데 어찌 저희만 편히 앉아서 대접을 받겠습니까. 가주님의 마음은 잘 알고 있으니 다음에 다시 초대해 주십시오.”

“그, 그런…….”

모용승은 이대로 천룡을 보내기가 너무도 미안했다.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어디 보통 은혜인가.

무려 세가의 멸문에서 구해 주었다.

그것뿐인가?

지금 세가의 재건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 또한 천룡이었다.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다.

거기에 천룡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참이었다.

고금제일인.

모용승이 보았을 때 천룡은 바로 고금제일인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함께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모용승이었다.

“가주, 저희가 있으면 방해만 됩니다. 그리고 저희를 신경 쓰신다고 지금도 이렇게 와 계시지 않습니까?”

“모용 가주, 다음에 다시 오겠소. 그러니 아쉬움은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합시다.”

무광의 말에 모용승은 침울한 얼굴로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꼭 이른 시일 내에 세가를 재건하고 은인을 모시겠습니다. 그땐 소생이 직접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하진 않아도…….”

“아닙니다! 이게 제가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입니다.”

결의가 느껴지는 눈빛까지 내보이는 모용승이었다.

“그,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조방에게로 다가가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사위! 다음에 또 보세. 그때까지 건강히 잘 계시게. 그리고 저분을 잘 모시게.”

갑작스러운 모용승의 말에 조방이 당황하며 말했다.

“네? 네! 아, 알겠습니다!”

허둥지둥하며 다급하게 말하는 조방이었다.

“허허, 이 사람. 장인 앞에서 그리 당황하고 그러나.”

“그, 그리 불러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 자! 불러 보게.”

“자, 장인어른.”

“그렇지! 하하하하.”

조방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조방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는 모용승이었다.

그런 모용승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으로 실실 웃는 조방이었다.

가장 큰 난관이라 생각했던 모용승에게 인정을 받은 것이다.

모용승은 관천과 진천, 그리고 제갈군에게도 감사 인사를 하였다.

“가가, 빠른 시일 내에 가가 곁으로 갈게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조방에게 말하는 모용혜까지.

모용세가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천룡은 운가장을 향해 길을 떠났다.

***

섬서성 화음현.

그곳에 화산이 존재했다.

화산의 서쪽으로 가다 보면 연화봉이 나오는데, 그곳의 정상에 고즈넉한 전각들이 아름다운 산의 풍경과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었다.

바로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파(華山派)였다.

무당과 같은 도가 계열의 문파이지만 무당과 다르게 속세와의 인연을 중시했다.

그래서 중원 곳곳에 화산의 문하가 넘쳐흘렀다.

그것이 화산파의 가장 큰 힘이었다.

화산에 위기가 닥치면 바로 이 속가제자들이 주저 없이 달려올 테니.

그런 화산파에 손님이 찾아왔다.

“허어, 이게 사실인가?”

화산파 장문인 천검(天劍) 선우진(鮮宇震)이 무언가를 보며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장문인. 이것은 저희 개방에서 특별 감시를 한 결과입니다.”

“아니……. 일개 장원이 이리도 강한 무인들을 다룬다고? 거기에…… 명왕이 들락거린다고?”

“무언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곳은 화산의 영역이니, 알아 두시라는 뜻으로 전하라 하셨습니다.”

서찰을 보며 고심에 빠진 선우진이었다.

서찰의 내용은 이랬다.

운가장이라는 곳이 수상하여 감시하였는데, 그곳에 있는 자들의 동태가 수상하다는 것.

특히나 운가장에 명왕이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명왕이라…….”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거지였다.

“말해 보게.”

“저희 예상입니다만, 현재 명왕이 이끄는 하오문은 정사 어디에도 붙지 않은 상태입니다. 거기에 그 운가장이라는 곳에 있는 무인들을 조사해 보았는데…….”

“보았는데?”

“대부분이 사파에 살수 출신들이었습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저희 생각으로는 구룡방과 손을 잡고 섬서를 장악할 목적으로 장원을 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그, 그럴 리 없다.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무황성과 천검문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무림맹에서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친목을. 아마 그들은 구룡방을 앞세워 분란을 일으키려 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화산이고?”

“개방에서는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하의 개방이다.

정보로는 하오문과 쌍벽을 이루는 집단.

그러한 집단에서 가져온 정보였다.

신빙성이 매우 높은 정보라는 소리다.

선우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이 있는 영역이 여기서 제법 멀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다.

고수들이 마음먹고 달려오면 하루면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였다.

‘끄응, 왜 하필 그런 정보를 들고 와서…….’

지금까지 너무나도 평온하게 지내 왔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바로 발밑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어찌 편히 쉰단 말인가.

“잘 알았네. 방주께 감사하다고 전해 주시게.”

“네! 그럼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시게. 고생하시었네.”

거지는 포권을 하고는 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하아, 저놈 말이 사실일까? 알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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