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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147/200)

147화

거지가 사라지고도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을 하던 선우진.

“직접 알아보아야겠구나. 여봐라! 거기 누구 있느냐?”

선우진의 부름에 한 청년이 재빨리 달려와 대답했다.

“네! 제자 황허 밖에 있습니다!”

“가서 장로들을 모셔 오거라.”

“네!”

‘일단은 장로들과 의논을 해서 정해야겠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식은 차를 입으로 가져가는 선우진이었다.

***

모용세가를 떠난 천룡은 대장군을 만나 국경을 모두 돌아봤다.

그곳을 담당하는 도지휘사를 전부 만나 주의를 주었고, 반항하는 놈들은 모두 철저하게 고통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서움을 보여 주라고 사주를 한 정천호들은 무광과 제자들의 방문을 받았다.

당연히 정천호들은 반항을 하며 자신들이 이끄는 군대로 공격을 했다.

수천에 달하는 군대의 공격.

하지만 상대는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삼황이었다.

군사들은 죄가 없으니 제압만 하느라고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모두 제압을 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리고 정천호들은 죽기 일보 직전까지 처맞고 황궁으로 보내졌다.

그들의 실상을 모두 안 황제는 분노하면 즉결 처분을 시킨다.

일벌백계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벌을 준 것이다.

군대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이다.

그랬기에 무엇보다 강력하게 벌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황제는 천룡이 직접 오지 않은 것을 슬퍼하며 몇 날 며칠을 술로 지냈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 무렵 천룡은 운가장에 도착해서 잠시 생각을 하겠다며 폐관에 들었다.

제자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떠오른 기억들을 정리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천룡이 폐관에 들어가고 운가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운 하루를 만끽하고 있었다.

제갈군은 장원의 진법을 강화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진천과 조방은 하루가 멀다 않고 대련을 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었다.

장천과 여월은 폐관을 마치고 나왔다.

이제 칠왕십제에선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처음엔 좋았는데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괜히 강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가 멀다 않고 비무를 하자며 조르는 삼황 때문에.

한편 지하 감옥에서 한 명이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북해빙궁에서 빙궁을 침입한 남자.

진호림이었다.

지하 감옥이라고는 하나 일반 객실처럼 꾸며져 있어서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식사가 나왔고, 식사의 질도 훌륭했다.

감옥 한 곳에는 여러 서책들이 꽂혀 있어 심심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신선한 감옥이었다.

진호림은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아보고 있었다.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 내게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후회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그 어떤 독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공이 금제되어 사용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편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름 잘 지내고 있나 보네?”

“무황이시군요.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루하진 않아?”

“딱히 지루함은 못 느끼겠군요. 덕분에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호, 잘됐네. 부탁 좀 하러 온건데……. 우리 좀 도울래?”

무광의 말에 진호림이 고개를 들어 무슨 뜻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이번에 너와 같은 사대호법 놈 중에 한 놈을 만났다. 널 제외하면 나머지 둘이 남았는데,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좀 알려 줘.”

“누굴 만났는지?”

“멸령? 뭐라던데.”

“아…… 그 미친놈.”

“그렇더라. 딱 봐도 미친놈이더라.”

“그놈은 죽었습니까?”

진호림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나갔어. 아버지가 분노해서 처단했다.”

“그렇군요. 하긴 그놈은 저희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뒤가 없는 놈이었죠. 그놈 수하 놈들도 제정신이 박힌 놈이 없었지요. 그분이 나섰다면 뭐 당연한 결과군요.”

“그래서 이젠 우리도 좀 진지하게 준비하려고 한다. 도와줄 수 있겠느냐?”

무광의 말에 진호림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절 믿을 수 있겠습니까?”

진호림의 질문에 무광이 답했다.

“널 믿는 게 아니다. 우리 아버지를 믿는 거지.”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대답.

진호림은 인정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맞는 말이니.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최대한 돕겠습니다.”

“좋아! 나와.”

그러면서 감옥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이곳에 온 지 백일 만에 보는 햇빛이었다.

눈이 부신지 인상을 찡그리며 태양을 바라보는 진호림.

왠지 웃음이 나왔다.

이런 사소한 것으로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왜 웃냐?”

무광의 질문에 진호림이 웃으며 말했다.

“그저 이렇게 밝은 세상을 보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한데, 무엇 때문에 그리 버둥거리면서 살았는지 모르겠군요.”

“미친놈. 그딴 소리는 무당이나 화산 말코들 앞에서나 해라.”

“하하, 그런데 장주님께선 어디 가셨습니까?”

“아버지? 폐관 수련.”

“네? 폐, 폐관 수련요? 아니……. 거기서 더 강해질 것이 있답니까?”

“나야 모르지. 그 경지까지 가 보질 않았으니. 암튼 정리할 것이 있다면서 들어가셨다.”

진호림의 표정에 놀라움이 어렸다.

자신이 아는 한 현 중원에서 그를 이길 자는 없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수련을 하다니.

다시금 반성하는 진호림이었다.

‘이런 최강자도 자신을 채찍질하며 수련을 하는데……. 호림아, 너는 병신이었구나.’

남은 생을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면 그땐 정말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는 진호림이었다.

진호림을 사제들이 있는 방으로 데려간 무광.

그곳에는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진호림을 자리에 앉히고 술을 따라 주는 무광.

“자! 일단 마셔라. 그동안 감옥에 있느라고 술 생각 간절했을 텐데.”

자신의 눈앞에서 찰랑거리는 맑은 액체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진호림.

자신은 엄청난 술꾼이었다.

하루라도 마시지 않으면 난리가 났었다.

이곳에 와서 강제 금주를 했지만, 그가 술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먹어 봐. 깜짝 놀랄 거다.”

무광의 말에 궁금증이 더욱 커졌다.

조심스럽게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한 모금.

단 한 모금만 마셨을 뿐인데 눈이 번쩍 떠졌다.

“커헉! 이, 이게 무슨!”

너무 놀라 하마터면 귀중한 술잔을 놓칠 뻔했다.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술잔을 지켜 낸 진호림.

놀란 눈으로 술잔과 무광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때? 죽이지?”

죽이냐고? 죽인다.

진호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도움만 잘 주면 몇 병이고 마시게 해 주지.”

무광의 말에 진호림이 침을 꿀꺽 삼키며 술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입으로 가져가 마셨다.

꿀꺽- 꿀꺽-!

“크으으으!”

온몸이 짜릿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쾌감과 몸 안 구석구석이 정화되는 기분.

정신 차려 보니 이미 술잔이 비어 있었다.

아껴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진호림의 눈에 다시 생기가 어렸다.

목표가 생겼다.

진호림의 눈에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술병이 들어왔다.

더욱더 의지가 불타올랐다.

-야, 이거 생각보다 더 의욕적인데?

진호림의 표정이 열정적으로 바뀌자 오히려 당황한 무광이었다.

-크크크. 대사형. 이게 보통 술입니까? 남궁세가 가주도 각성시킨 술입니다. 그런 술을 내공까지 금제된 놈이 마셨으니 환장하지요.

전음을 주고받고 있는데 진호림이 말했다.

“무엇이든 물어봐 주십시오! 저는 모든 것을 말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렁찬 대답과 함께 눈은 계속 술병에 가 있었다.

“그, 그래…….”

“무엇부터 말씀드릴까요? 아! 사대호법에 관해 물으셨죠?”

“어? 그, 그렇지.”

“멸령은 만나 보셨으니 아실 테고, 이제 남은 건 번개랑 불이네요.”

“그놈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냐?”

“수련 때만 같이 지내서 지금은 어떤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일단 저 중에 가장 강한 놈은 뇌령입니다. 그 미친놈은 뇌기를 늘리겠다고 벼락까지 맞은 놈이니까요. 근데 그걸 정말로 성공한 놈입니다. 저희 중에서 가장 강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뇌기를 늘리기 위해 벼락을 맞았단다.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그다음은 화령마군인데. 그놈이랑은 별로 안 친해서.”

“왜? 상극이라?”

진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강합니다. 과거 염화마제와 비무에서 압도적으로 이긴 놈이니까요.”

“뭐? 염화마제와 비무를 했다고?”

무광이 놀라 묻자 진호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것이 최종 시험입니다. 각 마제와 비무에서 이길 것. 저희야 어느 정도 손속을 봐주며 상대했지만……. 그놈은 정말로 가차 없이 공격하더군요. 또 그놈 특징이 다른 이의 화기를 흡수합니다. 그러니 더욱더 상대가 안 되었겠지요.”

무광은 천의문에서 왜 염화마제가 그리 약해졌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염화마제는 자신의 기운을 빼앗긴 것이다.

“그놈도 미친놈입니다. 불이라면 환장을 하거든요. 열양지기를 익힌 무인이라면 더 환장합니다. 마치 맛있는 먹이를 발견한 그런 모습?”

“왜? 그 양기를 흡수하려고?”

진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 네 말대로라면 그놈은 유인하기 편하겠네.”

“네?”

“그렇게 양기를 좋아하는 놈이라면…… 화룡을 보면 환장하겠네?”

무광의 말에 진호림이 깜짝 놀라 물었다.

“화, 화룡이라니요?”

“있어. 그런 놈이. 그럼 화룡이 있다는 소문을 그놈 귀에 들어가게 하면 찾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 그렇습니다. 전설의 화룡지체라면…… 교고 나발이고 미쳐서 달려올 겁니다.”

“그놈이 대충 어디에 있냐? 그래야 그쪽에 소문을 내지.”

“제가 듣기론…… 남만에 위치한 봉황산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봉황산?”

“네. 화산입니다. 중원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지요.”

진호림의 말에 천명이 곁들였다.

“아직도 용암이 흘러내리는 산입니다. 봉황이 살고 있다고 해서 봉황산이지요. 그곳 사람들에겐 신성시되는 산이기도 합니다.”

“가 봤냐?”

무광의 물음에 천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아버지 찾으러 안 다닌 곳이 없구나?”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천명.

“고생했네.”

해맑게 웃으며 계속 말을 이어 갔다.

“가뜩이나 더운 동네인데 화산의 영향까지 있어서 사람이 살기는 힘든 동네입니다.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니…….”

천명의 설명에 무광이 진호림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근데 왜 사방팔방에 퍼져 있냐? 니네가 무슨 사방신이냐?”

무광의 말에 진호림이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어? 어찌 알았습니까? 교에서도 저희한테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본교의 사방신이라고.”

농담으로 던진 거였는데 사실이었다.

“……그, 그러냐…….”

“네! 그리고 사방에서 일시에 중원을 공략한다는 방침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북쪽, 멸령은 동쪽, 화령은 남쪽, 뇌령은 서쪽 이렇게 나뉘어 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가지 정보를 끊임없이 떠드는 진호림이었다.

말하다 보니 점점 신이 났는지 자신의 과거 이야기부터 어릴 적 이야기까지 풀어놓았다.

“그, 그래. 마,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찰랑-!

“자, 이제 이건 네 것이다.”

무광의 손에 들려 있는 술병.

진호림의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거기에 성실하게 대답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한 병 더!”

찰랑-!

진호림의 눈이 황홀하게 변했다.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소생을 꼭 찾아 주시길 바랍니다!”

술 몇 병 더 주면 아주 완벽히 받들어 모실 기세였다.

“그, 그래.”

“저 인제 그만 감옥으로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술병을 소중하게 안은 채 묻는 진호림.

“어…… 그럴래?”

“감사합니다! 저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옥으로 다시 가는데 감사하다며 달려 나가는 진호림이었다.

“저거도 제정신 아니네.”

“그러게요. 그래도 저놈은 혈천교 같지 않네요.”

“여기 와서 심경이 변한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 조금 더 지켜보자.”

“네.”

***

어두운 동굴 안.

천룡이 눈을 감고 그동안 떠오른 과거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되짚어 가며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조금씩 맞춰지며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오른 사부의 기억.

천룡은 깊은 명상에 빠지며 과거 속으로 들어갔다.

-천룡아, 네가 가야 할 길은 험난하고 외로운 길이다. 수호자의 길은 그런 것이지.

희미하게 떠오르는 사부의 기억.

인자하고 포근한 인상을 한 도인 같은 모습이었다.

천룡의 사부는 어린 천룡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이제 우리 영웅문의 후계자다. 일인 전승이니 너의 곁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겨 내고 중원을 수호해야 한다.

-스승님, 이제 제 정체를 숨겨야 하겠지요.

-그렇다. 너는 음지에 살며 양지에 사는 사람들을 지켜 주어야 한다. 간혹 중원인들이 막지 못하는 큰 화가 닥치면 네가 지켜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영웅문이 해야 하는 역할이다. 할 수 있겠느냐?

어린 천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껄껄껄. 나한테 무슨 복이 있어 이리도 이쁜 놈이 왔을꼬. 허허허.

장면은 전환되며 청년의 천룡이 보였다.

-사부님! 정말로 가시는 겁니까?

-이 녀석이? 언제까지 사부를 부려먹을 셈이냐! 이제 네놈이 이어받아서 지켜야지!

-하지만…….

-천룡아, 이 사부도 이제 좀 쉬자. 사부의 소원이다.

-사, 사부님…… 제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허허, 겸손도 과하면 독이니라. 넌 이미 나를 한참 전에 능가했다. 우리 영웅문 역사 중에서도 너만큼 강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사부님…….

-너라면 이 사부가 믿고 선계로 갈 수 있겠구나. 천룡아, 부디 중원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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