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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화 (148/200)

148화

천룡이 눈물을 흘리며 점차 희미해져 가는 사부를 바라보았다.

-사부님, 부디 선계에서 편안한 삶을 사시길 바라겠습니다.

-껄껄껄. 오냐. 우리 이쁜 제자 믿고 이 사부는 올라가서 편히 쉬마.

그 후로도 끊임없이 전환되는 장면들.

마교와의 일전. 유가연과 천의 관홍과의 만남.

그리고 기억의 끝에 그가 등장했다.

-크하하하, 있었구나! 내가 살아갈 이유가!

자신을 바라보며 해맑게 웃으며 서 있는 마진강.

바로 그였다.

그의 등장과 동시에 극심한 고통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크윽!”

눈을 뜨고 보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기억이 났다.

그와의 첫 만남이.

“만난 적이 있었구나……. 그랬군……. 나에게도 사부님이 계셨어. 그리고…… 나는 영웅문의 문주였구나.”

오랜 시간의 명상 끝에 돌아온 기억들은 꽤 많은 양이었다.

그래도 아직 드문드문 채워지지 않은 기억들.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머지않아 모든 기억이 돌아오겠군.”

나름대로 성과를 보았다고 생각을 했는지 천룡의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밖으로 나오니 제자들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

“사부님!”

“사부!”

그리고 다른 쪽에는 자신의 수하들이 역시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군!”

그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천룡.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모두들…… 고맙다.”

천룡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고 바라보았다.

“나에게 와 줘서…….”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천룡을 제자들이 달려들어 안았고, 수하들은 감동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화산파 장문인실에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장문인인 천검 선우진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우정아, 너에게 큰 임무를 맡겨야겠다.”

“말씀하십시오. 사부님!”

칠왕십제 아래 중원 백 대 고수가 있다.

언제든 칠왕십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자들.

천화검(千化劍) 조우정.

세상에 악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자.

가장 증오하는 건 사파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혈천교였다.

“운가장이라는 곳에 구룡방의 무인들로 보이는 자들이 눈에 띄었다는구나.”

“운가장이 어딥니까?”

“섬서 상락 지방에 있는 장원이라는데…….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니 네가 가서 알아봐 주겠느냐?”

“알겠습니다! 감히 화산 아래에 사파 무리가 돌아다닌다니요. 제자가 가서 모조리 도륙을 내고 오겠습니다.”

“아니…… 아직 확실치 않으니 일단 조사만 해 오너라.”

“……네. 사부님.”

제자가 살짝 뜸을 들이고 대답을 한 것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천성이 나쁜 아이가 아니니 믿고 맡기기로 했다.

“혹시 모르니 화산구검(華山九劍)을 데리고 가거라.”

“아니, 그 아이들까지 말입니까?”

“만약을 대비하는 것이다. 정말로 그곳이 구룡방의 지부라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냐며 반발을 할 법도 한데, 그저 묵묵히 따르는 조우정이었다.

그런 제자에게 흐뭇한 미소를 보이며 선우진이 말했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너는 우리 화산의 미래니라. 알겠느냐?”

자신의 스승이자 장문인이 그리 말하니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는 조우정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사부님.”

“허허, 녀석. 그럼 가서 준비하거라.”

조우정이 나가고 선우진은 차를 마시며 고민에 빠졌다.

‘정말로 그곳이 구룡방이면…… 한바탕 폭풍이 불어오겠군. 장로들의 의견도 맞아. 대화산의 발밑에 그런 수상한 자들을 가만히 놔둘 순 없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꽉 쥐는 선우진이었다.

***

장원으로 돌아온 천룡은 그동안의 일들을 보고 받고 있었다.

“장원에 설치된 진법이 어설픕니다. 저에게 맡겨 주시면 최고의 진법으로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들겠습니다.”

의욕 가득한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며 말하는 제갈군.

“진법? 그런 게 설치되어 있었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오히려 물어보는 천룡.

그러자 옆에 무광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하하, 급하게 설치한다고 했는데…… 많이 어설프냐?”

무광의 말에 제갈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나름 고급 진법을 사용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있는데 이건…… 쓰레기입니다. 전혀 쓸모가 없어요.”

제갈군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그래. 너의 실력을 한번 발휘해 봐라. 우리 군사.”

천룡의 말에 제갈군의 표정이 변했다.

“네?”

“뭘 그리 놀라? 내가 말했잖아. 기회를 봐서 신분 올려 주겠다고.”

천룡의 말에 제갈군은 아무 말 못 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 소리에 제갈군은 재빠르게 부복을 하며 말했다.

“신! 제갈군! 앞으로 충심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기뻤다.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그런 마음은 바뀌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다른 사람들이 천룡에게 인정받고, 그의 곁에서 칭찬을 받고, 그의 격려를 듣는 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제갈군의 꿈이 바뀌었다.

바로 천룡에게 인정받는 것.

천룡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오늘 이루어졌다.

그런 제갈군의 등을 토닥이며 말하는 천룡.

“고맙다. 나에게 와 줘서.”

감동해서 들썩이는 제갈군을 잠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제갈군을 뒤로하고 여월이 보고하였다.

“최근에 장원 주변으로 거지들이 많이 보입니다. 저희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지?”

“네. 소신이 보기엔 개방도로 보였습니다. 허리에 매듭이 있는 것을 보아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들이 왜?”

“최근에 저희 장원이 급격하게 커지는 것을 보고 정보를 캐기 위해 모여든 것 같습니다.”

“그래?”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천룡과 달리 무광과 태성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것을 본 천룡이 물었다.

“왜? 저들이 장원을 감시하면 안 되는 거야?”

천룡의 물음에 태성이 답했다.

“그런 것은 아닌데…… 개방이면 저희 광룡대를 알 겁니다. 그리고…… 광룡대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봤겠지요. 그래서 저리 몰려온 것 같습니다.”

“아…… 맞다. 저들과 적이라고 했던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구나.”

천룡의 말에 다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아, 기억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내가 누구인지.”

순식간에 관심도가 이쪽으로 쏠렸다.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사, 사부가 누구였는데요?”

다들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해서 천룡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거지 얘기하다 말고?”

“지금 거지들이 중요합니까? 말씀해 주세요.”

다들 무광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해 줬다.

“나는 영웅문이라는 곳의 문주다. 후계자를 따로 만들지 않았으니 지금도 문주인 것은 변함없지.”

“영웅문요?”

“첨 들어 보는데…….”

“그런 문파가 있어요? 아니…… 사부처럼 엄청난 분이 문주로 있는 문파인데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다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룡이 문주로 있었다면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중원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야 맞았다.

지금의 무황성처럼 말이다.

“영웅문은 일인 전승이다. 문주는 나 하나. 문도는 없다.”

“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영웅문은 음지에서 중원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문파다. 중원이 멸망할 일이 생기면 영웅문이 나서서 정리하는 것이지. 이를 테면…… 그래. 힘의 균형을 맞춘다고 해야 하나?”

천룡의 말에 무광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아, 그래서 마교를…….”

천룡은 고개를 저었다.

“마교 같은 경우는 애들이 너무 과해서 막은 것이고, 실질적으로 무림이 정말로 멸망할 뻔한 적은 딱 한 번 있었지.”

천룡의 말에 다들 놀랐다.

“전에 말했었지. 나와 동급인 남자를 만났다고.”

“네!”

“그자다. 그자가 바로 무림을 멸할 뻔했지.”

“……!”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 기억이 다시 끊겼어.”

다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침을 꿀꺽 삼켰다.

천룡과 비슷한 무력을 지닌 남자라니.

천룡의 제자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세, 세상에 주, 주군과 동급의 무인이라니…….’

‘정말로 그런 자가 있다면…… 멸망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구나.’

‘주군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저마다 각기 천룡의 존재에 감사했다.

“일단 내가 있기에 그 남자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다들 항상 긴장하고 수련에 박차를 가해.”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지들은 그냥 놔둬. 뭐 큰일이야 있겠어?”

“네. 알겠습니다.”

이미 개방에 대한 기억은 저 멀리 사라진 사람들이었다.

***

천산에 위치한 천마신교.

천마와 군사가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이제 교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지?”

“그렇습니다. 하하. 천형에서 벗어나니 다들 의욕도 높아져서 무공의 경지 또한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하하하하, 그것참 즐거운 소식이구나. 그럼 이제 슬슬 은인을 모셔야지?”

“흐흐흐흐. 그래야지요.”

“그런데 순순히 오실까?”

“오시게 만들어야지요.”

“어떻게? 군사는 좋은 방법이 있는가?”

“흐흐흐,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교주님은 그저 옆에서 지켜만 보시면 됩니다.”

군사가 호언장담하며 웃자, 교주는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무언가? 답답하네. 말 좀 해 주게.”

“정말로 궁금하십니까?”

군사의 말에 천마의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사실 별거 아닙니다. 이런 서찰을 보내면 되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품속에서 두루마기를 꺼냈다.

“아니, 벌써 준비를 다 해 놓았던가?”

“그렇습니다. 이건 처음부터 준비하기 시작했죠.”

“크하하하하! 역시 우리 군사군. 대단해! 하하하.”

크게 웃으며 군사가 내미는 서찰을 받아 든 교주.

그리고 서찰을 펼쳐 천천히 읽어 보았다.

잠시 후.

“크크크크. 정말로 오지 않고는 못 배기시겠군. 군사 자네는 정말 천잴세.”

“하하, 감사합니다.”

“좋아! 이대로 보내게. 그리고 성대하게 환영할 준비를 하시게.”

“알겠습니다.”

그들의 음모가 담긴 서찰은 그렇게 천마신교를 떠나 운가장으로 향했다.

***

“장주님! 서찰이 왔습니다.”

나른한 오후, 낮잠을 즐기려고 막 침상에 누우려는 찰나에 들려오는 하인의 목소리.

“들어오너라.”

하인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와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장주님. 낮잠 시간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급한 서찰이라고 신신당부를 하여서…….”

“하하, 괜찮다. 그게 어찌 너의 잘못이더냐. 가서 일 보아라.”

천룡의 말에 하인이 서찰을 천룡의 손에 쥐여 주고 인사를 하며 나갔다.

천룡은 서찰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어디서 온 것인지 확인하려 했다.

“뭐지? 어떤 표식도 없는데?”

궁금증에 서찰을 풀어 읽기 시작했다.

“…….”

서찰을 다 읽은 천룡은 서찰을 놓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닥을 뒹구는 서찰.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읽은 것이 정말인지 다시 확인하는 천룡.

다시 봐도 내용은 자신이 방금 읽은 그 내용이었다.

-운가장주님 친전(親展)

-장주님, 아니 은인이라고 불러 드려야 더 맞는 표현일까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교의 군사 백무위입니다. 이렇게 서찰로 인사를 드려 정말로 죄송합니다. 은인께서 저희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도 하늘 같아서 그것을 조금이나마 갚고자 초대를 하옵니다. 부디 다시 찾아 주셔서 저희가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시옵소서.

여기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아래 내용이 문제였다.

-은인께서 오시지 않는다면 저희도 부득이하게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때마침 은인께서 계시는 장원 주변이 저희가 가도 될 정도로 광활하고 넓더군요.

하여 오시지 않는다면 저희 신교가 직접 그곳으로 자리를 옮겨 은인을 모시려고 합니다. 부디 저희의 정성을 보아서 방문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는 은인을 맞을 준비를 하며 겸허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방문 부탁드립니다.

“미친!”

천룡이 벌떡 일어났다.

비상사태다.

지금까지 자신을 따르겠다며 따라온 자들과 격이 다른 규모다.

당장 제자들을 만나기 위해 방을 나서는 천룡이었다.

제자들은 뜰에서 한가로이 사색을 즐기고 있었다.

“애들아! 비상! 비상!”

갑작스럽게 달려오며 소리치는 천룡을 보며 다들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비, 비상요? 무, 무슨 일입니까?”

“그 남자가 쳐들어왔습니까?”

“사, 사부 얼굴이 사색입니다. 그 정도로 위급한 일입니까?”

제자들의 말에 천룡이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중대한 사안이다. 다들 모여!”

순식간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며 모인 제자들.

그 제자들에게 천룡이 서찰을 건넸다.

여섯 개의 눈이 일제히 서찰에 꽂히고 잠시간의 시간이 지났다.

“미친놈들이네!”

“와! 이건 생각 못 했는데요?”

“우리도 제갈군이 불러서 대책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다들 경악을 금치 못하며 한마디씩 했다.

“어쩌냐? 이거? 응?”

천룡이 왜 사색이 됐는지 이유를 알게 된 제자들이었다.

왜냐고? 자신들의 얼굴도 사색이 되었으니까.

“아, 아버지. 일단은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은혜를 갚겠다고 초청하는 건데 무슨 일 있겠습니까?”

“그래요. 그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사부님께 해코지하지는 않을 테니…….”

제자들의 말에 천룡이 정색하며 말했다.

“갔다 왔는데 영 아니라면서 정말로 여기로 온다고 하면?”

그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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