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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화 (152/200)

152화

천화검이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천화검의 물음에 무광이 답을 해 주었다.

“크큭, 그 안에 들어간 재료를 알면 까무러칠걸?”

“네?”

“그냥 마셔. 평생 가도 다른 곳에선 맛볼 수 없는 술이니까.”

천화검의 반응에 다들 앞다투어 자신 앞에 있는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커억!”

“크어어!”

사방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맛 끝내주지? 우리 아버지가 직접 담그신 술이다. 영광으로 알고 먹어라.”

무광의 말에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여, 역시 장주님! 대단하십니다.”

그중에서도 당벽은 감동이 지나쳐 울먹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당천군은 그런 자식을 보며 경악했다.

하는 짓이 영락없는 신하가 아닌가.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체통을 지켜라!

다급하게 전음으로 아들을 말려 보았지만, 아비의 전음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계속 천룡에게 아부를 떨고 있었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곳에 온 후로 제대로 된 상황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계속 은거나 할 것을 괜히 나왔다고 후회를 했다.

당천군의 타들어 가는 속마음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천룡이 만든 술로 인해 분위기가 한껏 풀어졌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오르자 그제야 천룡이 물었다.

“화산에서 오셨다고요?”

천룡의 물음에 천화검이 입안에 머금고 음미하던 술을 재빨리 삼키고 답했다.

“꿀꺽! 네, 네! 그, 그렇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요?”

“그, 그것이…….”

“아, 저희 운가장이 수상해서 오셨다고 하셨죠? 수상하면 조사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이곳을 수호하는 문파라고 하시는 것 같던데.”

무황과 칠왕십제가 버티는 곳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얼굴이 빨개졌다.

누가 누굴 지킨단 말인가?

“아, 아닙니다. 그, 그저 치안 유지 정도 하는 수준입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천화검이었다.

“하하, 겸손하시군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천룡의 말에 천화검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 모습이 웃긴지 나머지 사람들은 소리 없이 입을 막고 웃었다.

천화검이 왜 저러는지 너무도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현진과 무당검수는 천화검과 매화단이 왜 저러는지 매우 공감하고 있었다.

이미 경험한 바가 있지 않은가.

어찌 됐든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만찬은 마무리가 되었다.

장원을 조사하러 온 자신들에게 기분이 나쁠 법도 했는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융숭하게 대접을 받은 화산파 사람들이었다.

천화검과 매화단은 천룡에게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서둘러 돌아갔다.

돌아가는 그들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결연했다.

당천군도 돌아가려 했지만, 잡혔다.

조방을 막 대했던 소가주 당명은 대련 한번 하자며 사악하게 웃는 조방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무당 사람들과 장강수로채 사람들 역시 구경하겠다며 우르르 따라갔다.

“하, 할아버지! 아버지! 사, 살려 주……. 웁웁!”

“어허! 친구! 누가 보면 내가 자네를 죽이려 하는 줄 알겠네. 우리 친구 아닌가? 하하하. 자네가 나에게 했던 그 은혜를 오늘 꼭 갚아야겠네! 하하하.”

항상 당명이 조방에게 했던 말이다.

실컷 괴롭히고 마지막에 하던 말.

-우리는 친구지? 그러니 괜찮아.

“우리는 친구지? 그러니 괜찮네.”

그대로 말하며 되돌려 주는 조방이었다.

조방의 손에 잡혀 끌려가는 소가주의 절규를 뒤로하고 당천군과 당벽은 술자리에 남았다.

“천군이라고 했지?”

천룡의 물음에 당천군이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네! 그, 그렇습니다. 어르신.”

“우리 무광이와 어울려 줘서 고맙다. 나는 이 녀석이 혼자 험한 세상 돌아다닌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하하, 아버지도 참. 저 녀석이 성격은 지랄 같아도 의리는 끝내줍니다.”

“그래그래. 하하, 어쩐지 당가와는 인연이었구나. 그런데 왜 전에는 그 얘기를 안 했어. 그러면 당벽이도 그리 심하게 대하지 않았을 텐데.”

“아, 하도 소식이 없어서 저세상 간 줄 알았죠. 그 상황에서 내가 네 아비 친구라고 말해 봐야 저 녀석이 들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리고 당가가 원래 그래요.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버리는 그런…… 아, 미안.”

“아, 아닙니다. 사실 맞는 말씀이신데요.”

무광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을 하자 고개를 숙이는 당벽이었다.

당천군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무광과 당벽의 대화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 천룡이 들어왔다.

‘하아, 미친. 삼황의 사부라니……. 내가 미쳤지. 왜 아들 말을 안 들었을까.’

후회해 보지만 이미 늦었다.

천룡이 따라 주는 술을 공손히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는 당천군.

‘그래. 진탕 마시고 취해 버리자. 그리고 잊자.’

그리 생각하고 천룡이 준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역시 맛있었다.

방금 전까지 머릿속을 괴롭히던 모든 고민이 일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천룡이 술병을 내밀자 다시 번개 같은 속도로 잔을 내미는 당천군이었다.

“이렇게 맘에 들어 하다니, 갈 때 몇 동이 챙겨 주마.”

지금까지 살면서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감동적인 말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이 술 한 잔으로 인해 당천군의 긴장은 완전히 풀렸다.

어느새 당천군의 머릿속엔 온통 술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당천군의 표정을 보며 흐뭇하게 바라보는 천룡과 당벽이었다.

***

쾅-!

“뭐라고? 또 연락 두절이라고?”

“그렇습니다.”

개방 방주 철심개왕(鐵心?王) 주영생(周永生)이 수하의 보고에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 앞의 탁자를 내리쳤다.

“벌써 몇 명째냐?”

“벌써 스무 명째입니다.”

“운가장……. 운가장……. 역시 수상해. 화산에는 얘기했느냐?”

“네! 안 그래도 오늘 중으로 사람들을 보내 조사를 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으음……”

그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주영생.

어느 날 분타에서 올라온 지원 요청.

운가장이라는 곳에서 광룡대를 본 것 같다는 서신.

서신을 받자마자 방주는 그곳으로 정보원들을 보냈다.

그리고 연락 두절.

또다시 보냈다.

다시 연락 두절.

그것이 벌써 스무 명째였다.

고심을 하던 주영생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아니다!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

“네? 방주님께서 직접 가신다고요?”

“그래!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방주였다.

‘저 성격에 사고나 치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방주를 뒤따라 나서는 수하였다.

***

오늘도 하루가 시작된 운가장.

“안 간다고? 왜?”

천룡이 당천군에게 묻고 있었다.

그에 머뭇거리는 당천군을 대신해 당벽이 대답을 했다.

“사실 말 못 할 사정이 있는데요……. 저희 당가가 후계자라고 정해 놓은 녀석이 바로 저 녀석입니다.”

그러면서 저 멀리 조방과 수련을 함께하고 있는 당명을 가리켰다.

“그런데?”

“사실 후계자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무공도 형편없고, 독공도 형편없습니다. 그저 장자 승계의 원칙에 따라 소가주에 앉았을 뿐이죠.”

천룡은 묵묵히 당벽의 말을 들었다.

“혼도 내 보고, 달래도 보고, 강제로 감금시켜서 무공을 익히게도 해 보았지만……. 정말로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다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는 당벽이었다.

천룡 역시 같이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환하게 웃으며 무공을 수련하는 당명이 있었다.

“처음 봤습니다. 저 녀석이 저리도 환하게 웃으며…… 무공을 수련하는 것을 말입니다. 장주님, 부탁입니다. 저 녀석이 적응하는 동안만이라도 이곳에 머물게 해 주십시오.”

당벽의 말에 천룡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장주님.”

“그런데 너희가 여기 다 있으면 당가는 괜찮아? 태상가주, 가주, 소가주가 다 여기 와 있잖아.”

“아, 저희 당가에 아주 뛰어난 녀석이 있습니다. 하하, 여자라서 소가주에 못 올라갔을 뿐이지 능력으로 치자면 저희 당가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재입니다. 현재 그 녀석이 가문을 지키고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너희만 괜찮다면야, 뭐. 언제까지 있을 건데? 나 당분간 나가 봐야 하는데.”

“네? 어딜 또 가십니까?”

“그러게. 아무래도 집에서 편히 있을 팔자는 아닌가 봐.”

“어디 멀리 가시는 겁니까?”

당벽의 물음에 천룡은 말을 해 줄까 말까 하다가 말았다.

마교에 간다고 하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으응. 초대를 받아서 말이지. 암튼 내가 없어도 푹 쉬다가 가도록 해.”

천룡은 당가 사람들과 잠시 더 이야기를 하고는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이동했다.

천룡이 사라지자 당천군이 당벽에게 말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맞습니다. 정말 곁에서 모시고 싶은 분입니다.”

“그나저나…… 무림맹은 이제 있으나 마나 한 거 아닌가?”

“그렇죠. 일단 기회를 봐서 탈퇴할 생각입니다. 무당과 화산하고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잘 생각했다. 괜히 장주님께 밉보이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

다음 날.

천룡은 제자들과 제갈군만 데리고 십만대산을 향해 길을 떠났다.

천룡이 길을 떠난 그날, 한 무리의 거지들이 운가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저곳이냐?”

“그렇습니다.”

수하의 말에 성큼성큼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거지.

바로 개방의 방주 주영생이었다.

주영생은 다짜고짜 문 앞으로 가서 소리를 질렀다.

“내 수하들을 내놓아라!”

온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외치는 주영생이었다.

정문의 수문위사들은 한숨을 쉬었다.

한바탕 폭풍이 얼마 전에 지나갔는데, 또 하나 온 것이다.

이번에 온 무리는 누가 봐도 개방이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수문위사는 주영생에게 다가가 포권을 하며 얘기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 운가장의…….”

한창 소개를 하고 있는데, 주영생이 수문위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기소개 말고 내 수하들 데려오라니까?”

주영생의 말에 수문위사의 이마에 핏줄이 솟았다.

“하하, 저희에게 수하를 맡기신 것도 아닌데 이리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뭐? 곤란? 지금 너 곤란이라고 했냐?”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개방에서 방구 좀 뀌시는 분 같은데 이러시면 아주 크게 후회하십니다.”

“후회?”

“네!”

수문위사의 대답에 주영생은 손에 들려 있던 타구봉을 휘둘렀다.

후웅-!

수문위사의 머리를 쥐어박기 위해 휘둘렀는데, 타격음은 들리지 않고 공기를 가르는 소리만 들려왔다.

수문위사가 타구봉을 재빨리 피하고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자꾸 이러시면 정말 화냅니다!”

타구봉을 휘두를 때 살기가 전혀 없었기에 수문위사는 이정도만 하고 마는 것이었다.

“호오, 그걸 피해? 큰소리 칠 만하구나?”

주영생의 말에 우쭐해진 수문위사.

그러나 그것도 잠시.

빡-!

“커헉!”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날아온 타구봉에 결국 머리를 내주고 만 수문위사였다.

“요건 못 피하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 너야말로 무슨 짓이냐? 내가 분명 말하지 않았느냐? 내 수하들 데리고 오라고.”

“우리 장원에 거지는 없소!”

“하아, 듣는 거지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퉤-!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다시 타구봉을 잡는 주영생.

창-!

그 모습에 검을 뽑아 든 수문위사였다.

“더 이상 장난은 용서치 않겠소. 그러니 그만 물러나시오.”

“장난? 넌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여?”

그리 말을 하고는 기세를 올려 수문위사를 압박하기 시작한 주영생이었다.

“크윽! 고, 고수!”

거지에게서 엄청난 기세가 느껴지자 당황하는 수문위사였다.

주영생은 수문위사를 압박하는 한편, 운가장 안쪽을 향해 내공을 실어 크게 외쳤다.

“이놈들! 내 수하를 내놓아라!”

주영생의 기세와 내공을 실은 음성에 사람들이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반응이 좀 있다 생각을 하며 뛰쳐나온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기 시작하는데.

“뭐, 뭐야! 네가 여기 왜 있어?”

주영생은 당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는 너는 왜 여기 있냐? 그것보다 방금 소란 피운 게 너였냐?”

당벽은 주영생을 보며 반문했다.

“소, 소란이라니. 혹시 여기가 너희 당가 별채냐?”

주영생의 말에 당벽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손님이다. 그것보다 어서 돌아가라. 여기 장주님 아주 무서운 분이다.”

“뭐?”

당벽의 말에 주영생은 귀를 후비고 물었다.

“여기 장주님 아주 무서운 분이시라고.”

“하하하, 지금 네 말은 그러니까…… 여기는 무서운 곳이니 빨리 도망가라는 소리 같은데…….”

“응, 맞다.”

주영생은 당벽의 말에 기세를 올리며 분노했다.

“독쟁이 놈이 지금 나를 놀려?”

“뭐? 독쟁이? 너 지금 나한테 독쟁이라고 했냐?”

“그래! 무공도 약한 게 독만 믿고 나대니 독쟁이지!”

“무공이 약해?”

당벽은 그 말에 자신의 기세를 풀었다.

고오오오-!

사방에 기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엄청난 기세.

그 모습에 주영생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 뭐냐! 너, 너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냐?”

“크크크, 궁금하냐? 그전에 일단 좀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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