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00)

153화

당벽의 말에 주영생은 황당했다.

자신은 칠왕십제의 일인이다.

그에 당벽은 아니다.

그것의 격차는 컸다.

그런데도 지금 당벽은 자신에게 맞자는 소리를 한 것이다.

어이가 없는 주영생.

“너 지금 나한테 한 소리냐?”

“그래!”

“네가 지금 미쳤구나?”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당천군과 장천, 여월과 울지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왜 이리 시끄러워?”

“누가 내 아들 괴롭히냐?”

울지랑과 당천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주영생?”

장천의 목소리도 들렸다.

주영생은 그제야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헉! 마, 만독암제? 명왕? 그리고 저자는…… 패천부왕? 당신들이 거기서 왜 나와?”

너무 놀랐는지 뒷걸음질을 치는 주영생이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여긴 웬일이야?”

장천의 말에 주영생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나, 나는 사라진 우리 애들 찾으러 왔지.”

“아, 여기 담 넘던 놈들이 너희 애들이었구나? 난 또 좀도둑놈인 줄 알고 다 잡아 가뒀지.”

이미 개방 사람인 거 알고 있었다.

괘씸해서 가둬 둔 것일 뿐이었다.

“뭐라고? 아니, 누가 봐도 우리 애들인 거 표가 날 텐데? 가뒀다고?”

“왜? 그러면 안 되냐? 그리고 요새 거지들은 도둑질도 하나 보다? 개방 사정이 어렵냐?”

개방과 하오문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금 네 입에서 나온 발언은 우리 개방의 명예를 모욕되게 하는 거다. 좋게 말할 때 당장 취소해라.”

“못 하겠는데? 사실이잖아? 빌어먹나, 훔쳐 먹나 똑같은 거.”

“이, 이! 좀도둑 소굴 대장 새끼가! 말이면 단 줄 알아!”

“뭐 도둑? 소굴? 이 더러운 거지새끼가 한판 해볼래?”

둘의 기세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네놈을 무서워할 거라 착각하면 오산이다.”

“뭐 이미 표정에서 무서워하고 있구먼. 걱정하지 마. 살살 해 줄게.”

“으드득! 못 본 사이에 입담이 늘었구나.”

“너야말로 언제까지 말로만 싸울 건데? 안 덤벼?”

살기 가득한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조금 전에 당벽과 한판 붙으려고 한 것은 이미 까맣게 잊었다.

당벽이 가세했다.

“나랑 말하다 말고 거기로 가면 안 되지.”

당벽의 말에 주영생과 장천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으드득! 네놈도 날 무시하는 것이냐?”

주영생의 눈에서 살기가 더 짙어졌다.

“어? 네가 먼저 맡은 거였어? 미안, 미안.”

장천이 두 손을 들고 물러났다.

그 모습에 주영생의 얼굴은 벌겋게 변하여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도 섣불리 덤비지는 못했다.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당벽과 명왕이 한편인 것이 분명했다.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거기에 자신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 만독암제까지.

‘여긴 뭐야? 대체?’

그저 애들을 운가장에만 보내면 자꾸 사라지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서 직접 와 본 것인데.

일단 수하들이 사라진 이유는 알았다.

명왕이 말해 줬으니.

그다음 궁금증을 풀 때다.

“도대체 왜 다들 여기에 있는 것이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물었다.

주영생의 기세가 누그러들자 장천이 말했다.

“흥! 네까짓 게 알아서 뭐 하려고?”

화가 났지만 참았다.

여기서 화내 봐야 자신만 손해였다.

일단 최대한 말로 끝내고 물러나서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우리 당가는 운가장의 손님이다.”

만독암제가 대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명왕이랑 패천부왕, 그리고 저기…….”

만독암제가 바라보는 곳.

그곳에는 여월이 있었다.

“암혼살왕은 이곳 장주님의 수하고.”

주영생이 자신의 귀를 마구 마구 파 젖혔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뭔가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머릿속에서 거부했다.

주인의 심신을 보호하려는 머리의 노력이었다.

주영생이 그러든지 말든지 만독암제가 계속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주영생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곳 장주의 수하고……. 이곳 장주의 수하고……. 이곳 장주의 수하고…….’

계속 저 말만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주영생.

“허헉! 뭐, 무슨 소리야, 그게! 칠왕십제나 되는 놈들이 왜 남의 밑에 있어!”

주영생의 말에 장천과 여월, 울지랑이 발끈했다.

“남이라니! 주군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주군이라지 않는가.

“미친 거야? 다들? 아니면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단체로 나를 놀리는 건가?”

이 상황이 정리가 안 되는 주영생은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서 생각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뒤돌아 가려 했다.

보아하니 딱히 자신이 간다고 해도 막을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아, 내가 지금 이 상황이 정리가 안 되니 일단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네.”

이렇게 물러나는 자신이 한심해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고 뒤돌아섰는데 자신의 앞에 그림자가 졌다.

뭔가 하고 고개를 들어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인간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누구? 헉! 권왕!”

무황성주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거지, 네가 여기 왜 있어.”

평소 주영생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던 권왕 담선우는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자신보다 어린 담선우의 반말에 기분이 상했지만, 그래도 배분상 자신의 아래가 아니기에 참으며 말했다.

“보, 볼일이 있어서 왔다. 그러는 너는 이곳에 무슨 일이냐?”

주영생의 말에 담선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아버지 뵈러 왔지.”

“뭐?”

담선우의 대답에 주영생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런 주영생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장천과 여월.

“여어! 동생 왔는가!”

“하하, 네! 형님! 만독암제 어르신도 와 계셨군요.”

담선우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정답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버지 안에 계십니까?”

“하하, 장주님과 멀리 가셨다네.”

“아, 그러시는군요. 미리 연통을 넣고 올 걸 그랬나 봅니다.”

“여기가 자네 집이나 마찬가진데, 편히 쉬다 가면 되지. 뭘 그러나.”

“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이놈은 여기 무슨 일입니까?”

“이곳이 수상하다고 조사를 하러 왔다는데?”

장천의 말에 담선우의 인상이 급격하게 차가워졌다.

“야, 거지. 이곳은 너 따위가 조사하고 말고 할 곳이 아니다.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꺼져라.”

엄청난 기세를 주영생에게 뿜어내는 담선우였다.

‘크으윽! 이렇게 강하다니.’

직접 기세를 맞아 보니 새삼 담선우가 얼마나 강한 무인인지를 깨닫게 된 주영생이었다.

“아, 알았네. 내…… 이만 물러가겠네.”

자존심이 상하고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권왕이 자신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주영생이었기 때문이다.

명분만 생기면 바로 자신의 목을 칠 인간이었다.

그러니 최대한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흥! 빨리 꺼져. 멀리 안 나간다.”

그리 말을 하고는 휑하고 몸을 돌려 운가장으로 걸어가는 담선우였다.

주영생은 재빨리 몸을 빼내 돌아가면서 이를 갈았다.

‘으드득! 일단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을 한 후에 이 수모를 반드시 갚아 주겠다.’

그 복수가 무사히 이루어질지는 두고 보면 알 테지만.

***

십만대산 깊숙한 곳에 있는 천마신교.

천마 구양진은 군사와 함께 차를 마시며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분들이 출발하셨다고?”

“네.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신다고 합니다.”

“허허허, 역시 군사야. 오지 않고는 못 배기게 수를 썼구먼.”

“그분이라면 반드시 곤란해하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천룡이 오면 어찌 대접할 것인지부터 앞으로 천룡을 어찌 대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수하가 급히 들어와 보고했다.

“교주님! 특급 서신입니다!”

“특급?”

“네!”

수하가 내민 서신을 펼쳐 보는 구양진.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리가 교를 향해 진군 중. 수는 적게 잡아도 수천.

구양진은 서신을 군사에게 전달해 주며 말했다.

“그분이 오신다니 이렇게 커다란 행사가 생기는군.”

전달받은 서신을 읽은 군사는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몰라도 날을 잘못 잡았군요. 아니면…… 우리를 너무 우습게 알았던가요.”

그리 말하며 차갑게 표정이 변하는 군사였다.

구양진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수하에게 말했다.

“천급 비상령을 내려라.”

“충!”

수하가 나가고 구양진이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오는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들에게 알려 주어라. 우리 신교의 무서움을.”

교주의 말에 군사가 부복하며 외쳤다.

“충! 반드시 후회하게 해 주겠습니다.”

대답하고 벌떡 일어나 서둘러 밖으로 나가는 군사였다.

“어차피 중원 땅은 밟아 보지도 못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하늘이 보내 준 선물인가? 마음껏 힘을 발산하라고? 아니면…… 하늘이 내리는 벌일까.”

심각한 말을 하면서 미소 짓는 구양진이었다.

***

양털 가죽으로 대충 만든 옷을 입은 수천의 무리들이 줄지어 산을 넘고 있었다.

“제기랄, 이딴 곳에 숨어 사냐? 찾기 힘들게.”

“찾는 데 시간 다 가고 있습니다. 뭔 놈의 산은 또 이리 많은지.”

“그러게 말이다. 이러니 그 오랜 시간 동안 멸문을 안 당하고 살아남았지. 야, 아무리 원한이 깊어도 이 많은 산을 보면 그냥 돌아가겠다.”

“저희도 그냥 돌아가면 안 됩니까? 벌써 이게 며칠째입니까?”

“뭐? 미쳤냐? 우리 교주가 알면 무사할 것 같아? 군사가 가만두겠어? 당장 달려가서 교주한테 꼰지를걸? 그러니 잔말 말고 찾아! 우리 교주 말고 그놈들 교주나 족치면서 분 풀게.”

“에이씨! 빌어먹을 마인 놈들! 살아도 이딴 데서 살아 가지고.”

투덜거리며 다시 산을 수색할 준비를 하는 무인들.

“뇌령마군 님, 수하들이 많이 지쳤습니다. 조금 쉬었다 가시는 것이…….”

“그래? 하긴…… 몇 날 며칠을 쉬지도 못 하고 이 산, 저 산을 헤매고 다녔으니……. 에라, 모르겠다! 야! 구워 먹을 수 있는 건 다 잡아 와! 오늘 고기나 실컷 먹고 푹 쉬자!”

“와아아아아!”

이들은 뇌령마군 사마중달이 이끄는 혈천교의 무인들이었다.

빙백마군 진호림이 이끌던 세뇌당한 무인들과 달리 이들은 순수 뇌령마군이 키운 정예들이었다.

사마중달에게 있어서 이들은 단순한 부하들이 아닌 한 가족이었다.

사마중달은 산의 풍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은 뒤에 풍경을 감상했다.

그때.

파앗-!

순식간에 몸을 날려 무언가를 향해 돌진하는 사마중달.

그가 지나간 곳은 작은 뇌전이 일었다.

퍼억-!

“잡았다! 크크크.”

나무 위에서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이었다.

사마중달은 재빨리 떨어지는 사람을 낚아챘다.

그리고 느꼈다.

“크크, 마기다! 역시 이곳에 마교가 있구나.”

기절한 채로 축 처진 남자를 들쳐 메고 다시 야영지로 돌아가는 사마중달이었다.

“길 안내해 줄 놈도 잡았겠다. 오늘은 푹 쉴 수 있겠군. 하하하.”

***

천룡은 자신의 일행과 열심히 십만대산을 오르고 있었다.

“흠…….”

천룡이 갑자기 멈칫하면서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행은 무슨 일인가 싶어 조용히 지켜보았다.

잠시 후, 천룡이 눈을 뜨며 말했다.

“마교는 아닌데…….”

그러고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데리고 온 진호림을 바라보았다.

“왜…… 절 그런 눈으로 보시는지…….”

진호림이 반성을 하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는 것을 눈치챈 천룡은 그가 다시 무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전보다 더 강해진 기운을 온몸으로 받은 진호림은 그날부터 천룡을 대할 때 매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전에 널 봤을 때 기분인데……. 찝찝한 기분.”

천룡의 말에 무광이 말했다.

“아, 그때 오색극광 보러 갔을 때 말입니까? 이번에도 그런 기운이 느껴지십니까?”

“응!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진을 치고 있어.”

천룡의 말에 무언가가 떠오른 진호림이 말했다.

“혹, 혹시 기운도 느껴지십니까?”

“응. 뇌기를 머금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에 진호림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뇌, 뇌령마군!”

“뇌령마군?”

천룡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진호림이 설명해 주었다.

“그럼 저놈이 세 번째군.”

이미 사대마군 중 두 명이 당했다.

자신도 모르게 혈천교의 주력을 차근차근 파괴해 나가는 천룡이었다.

“암튼 이동하는 방향을 보니 우리와 같은 방향이다.”

그 말은 바로 저들의 목표가 마교라는 소리였다.

“어째 아버지와 다니면 사건이 끊임없이 터지네요.”

“왜? 겁나냐?”

천룡의 말에 무광이 발끈하며 말했다.

“거, 겁나다니요! 아버지! 저 무황입니다! 무황! 야! 말씀드려! 너희 혈천교가 나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그게…… 무황 어르신은 지금 노망이 났다고 교에 소문이 나 있는 상태라…….”

“뭐?”

“푸하하하하!”

“크크크크크.”

진호림의 말에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씨! 누구야! 그딴 소문을 낸 것이! 잡히면 내 손으로 벽에 똥칠하게 해 준다!”

무광이 노발대발하며 날뛰자 천룡이 말렸다.

무광이 좀 진정을 하자,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됐다. 일단 저놈들 목표가 마교인 것 같으니, 가서 도와줘야겠다. 어찌 도와줘야 하나?”

“미리 가서 칠까요?”

어찌할지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천룡의 기감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마교에서도 출진을 했다. 서두르자. 조만간에 둘이 붙을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서둘러 이동하는 천룡의 뒤를 따르는 일행, 그리고 거기에 낀 진호림의 표정은 복잡해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