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사방팔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
사마중달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커다란 뒷다리로 보이는 고기를 강하게 물어뜯으며 크게 웃었다.
“으적으적! 크하하하! 맛있구나!”
크게 웃으며 계속 고기를 무식하게 뜯어 먹는 사마중달이었다.
“많이들 먹어라! 조만간에 크게 한바탕해야 할 것 같으니.”
“뭐가 느껴지셨습니까?”
“아니, 감이다.”
그가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바로 저 동물적인 감각을 넘어선 신적인 감이었다.
그가 느끼는 감은 항상 맞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가 이상한 말을 했다.
“크크크크. 오늘은 왠지 오금이 저려서 편히 쉴 수가 없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섭다! 너무도 무서워! 나의 온몸이 그리 경고하고 있다. 어서 도망가라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말이야.”
“그,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 그러면 어서 철수 명령을…….”
수하의 말에 사마중달의 표정이 차갑게 굳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나더러 도망을 가라는 것이냐? 이 사마중달에게?”
“하오나, 대장. 대장의 감은 언제나 맞지 않았습니까? 대장에게 공포를 줄 정도의 상대라면 일단 피하심이…….”
“크크크크. 한 세상 살면서 어찌 쉬운 길만 가겠느냐! 어려운 길도 나오고 그래야 발전을 하지. 이번은 이 감이 아니라 내 힘을 믿어 보겠다.”
그러면서 다시 고기를 힘차게 입으로 뜯어내는 사마중달이었다.
우지직-!
으적으적-!
“먹어라! 오늘이 최후의 만찬인 것처럼! 하하하하!”
사마중달은 미친놈처럼 웃었다.
그리고 수하들도 같이 미친놈들처럼 웃어 젖혔다.
***
천마신교를 수호하는 여섯 개의 가문.
육대마군.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
신교에 존귀한 분이 오시니, 소란이 일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접근하는 무리를 정리하라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출진했다.
“다들 들었지? 그분이 오시기 전에 불청객들을 모두 청소해야 한다! 알겠느냐!”
“충!”
뒤를 따르는 수하들을 뒤로하고 육대마군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 커다란 도를 든 도마군이 투덜거렸다.
“아니, 이런 첩첩산중에 뭘 주워 먹겠다고 오는 거야?”
도마군의 말에 붉은색 창을 들고 있는 창마군이 대꾸했다.
“뻔하지. 우리를 찾는 거야.”
“우리를 왜?”
그 말에 창마군이 두 손을 올리면서 자기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성을 얻기 위해?”
“아니,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존재하는지도 모를걸?”
둘의 대화에 끼어든 환마군이었다.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가 말했다.
“지금 오는 자들이 그래서 수상한 거다. 누가 봐도 우리를 찾는 모양새가 아니냐.”
“하필 그분이 오실 때 이런 상황이 벌어지나?”
“그러니 빨리 처리해야지. 그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선 안 되네.”
다들 환마군의 말에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리고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이동했다.
***
신교를 향해 가는 길목에 거대한 마애불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월의 풍파에 여기저기 무너지고 닳았지만, 그 웅장함은 보는 사람에게 감탄사가 나오게 했다.
“우와! 정말 웅장한데요? 이걸 누가 깎아 냈을까요?”
“절로 경건하게 만들어 주는구나.”
무광은 자신도 모르게 합장을 하며 마애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이들도 잠시 그 웅장함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룡은 아니었다.
‘저 마애불 낯설지가 않아. 뭐지?’
처음 보는 마애불인데도 왠지 어디서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라진 절반까지 있었으면 더 웅장했겠어요.”
‘더 웅장? 웅장…….’ 태성의 말에 천룡의 동공 크게 확장되었다.
기억이 났다. 바로 이곳이 어딘지.
“아버지, 이제 이동하시죠.”
마애불을 보며 멍하니 서 있는 천룡에게 무광이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자세히 보니 천룡의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무광이 다급하게 일행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이런! 아버지께서 또 과거 기억이 돌아오나 보다. 모두 주변 경계 철저히 해!
-네!
무광의 말에 모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명과 태성은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제갈군은 재빨리 주변의 물건들로 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천룡은 어느새 가부좌를 튼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마교 놈들 괜찮겠지?
-전에 붙어 보니 그 정도 전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하긴 교주 놈 보니 나와 무력이 비슷했으니.
-사부님께서 언제 눈을 뜨실까요?
-글쎄. 최근 들어 기억들이 급격하게 돌아오시는 것 같다.
무광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것이 사방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야?
사방의 풍경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제가 설치한 진법입니다. 제대로 설치가 됐으니 밖에서 이 안을 볼 수 없을 겁니다.
-우와! 그런 것도 되냐? 대단한데?
그 말에 제갈군이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갈가의 희망! 천재라고요.
-네 입으로 그런 말하면 창피하지 않냐?
-왜요? 사실을 말하는 건데?
뭐가 문제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제갈군.
-아니다.
더 상대해 봐야 나만 피곤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무광이 고개를 저었다.
한편 천룡은 심상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항상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내면.
마진강에 대한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
심상으로 들어간 천룡.
자신이 오해하고 마교를 공격했다는 것을 안 천룡.
마교도 잘못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는 걸 알았다.
미안한 마음에 성화라도 다시 돌려주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마교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거대한 마애불.
천룡은 마애불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고 다시 길을 떠나려 하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빠르게 오는 것이 느껴졌다.
심상치 않은 기운에 잔뜩 경계하고 있을 때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남자.
남자는 천룡을 보자마자 말했다.
“너 누구냐? 이곳에서 너처럼 강한 기운의 인간은 처음 본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시 미소를 지으며 천룡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남자.
천룡 역시 남자의 강함을 대번에 알아보았다.
세상에 자신의 상대가 없을 거라던 사부.
그의 말이 틀렸다.
천룡 역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알 수 없는 호승심과 즐거움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남자 역시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크. 너도 날 느끼고 있구나. 이름이 뭐냐?”
“운천룡.”
“크크. 나는 마진강이라 한다.”
남자의 이름은 마진강이었다.
“내 목마름을 해결해 줄 자가 이런 곳에 있었다니. 크크크. 세상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마진강은 연신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천룡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주먹을 말아 쥐며 말했다.
“긴말은 나중에 하고…….”
서서히 기세를 끌어 올리는 마진강.
“크크. 내가 먼저 가겠다.”
마진강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룡을 향해 돌진했다.
갑작스럽게 공격하는 그를 보며 처음엔 당황했다.
몇 번의 공세가 오간 뒤, 천룡은 깨달았다.
자신의 호적수라는 것을 말이다.
천룡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지금까지 자신의 힘을 이렇게까지 끌어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맘 놓고 자신의 무공을 사용할 상대를 만난 것이다.
천룡 역시 신난 얼굴로 마진강을 향해 자신의 무공을 양껏 발산했다.
콰콰콰쾅-!
쩌저정-!
둘이 충돌을 하자 그 충격파로 인해 주변의 지형이 변했다.
옆에 있던 마애불의 절반이 날아갔다.
쿠르르르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거대 마애불.
하지만 둘에겐 마애불의 파괴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권격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렇게 무려 일(一) 주야(晝夜)를 쉬지 않고 싸운 둘.
“헉헉. 제, 제길……. 내가 졌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연신 거친 호흡을 뿜어내는 마진강.
그가 패배를 인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상처 입고 지쳤으나, 천룡은 지친 기색만 있을 뿐 몸은 멀쩡했다.
그런 천룡을 감탄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마진강이었다.
“크크. 무공이라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한계인가 보군. 그래도 재밌었다.”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웃는 그였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천룡을 바라보며 진지한 모습으로 말했다.
“내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가?”
뜬금없는 마진강의 말이었지만, 천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룡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한 것이다.
“크하하하하! 좋다! 좋아! 나 마진강이 인정한 진정한 친구는 오직 너뿐이다. 다음에 보자, 친구. 그때는 이 무공을 완성시켜서 돌아오겠다.”
“무슨?”
“크크크. 그것은 훗날 재회했을 때 알려 주지. 친구.”
파앙-!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졌다.
천룡은 마진강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 참, 도통 모를 사람이군. 그래. 또 보세. 친구.”
***
번쩍 눈을 뜬 천룡.
서서히 시야가 천룡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로 자신의 제자들이었다.
“미안하구나. 또 갑작스럽게 기억이 찾아와서.”
“하하, 아닙니다. 그래도 이번은 생각보다 빨리 눈을 뜨셨네요. 반나절도 안 되었습니다.”
“사부! 이번은 어떤 과거입니까?”
태성의 물음에 천룡이 반쪽짜리 마애불을 보며 말했다.
“저 마애불의 절반은 내가 부쉈다는 거?”
“네?”
“전에 내가 말한 자 있지? 나와 같은 무력을 지닌 무인이 있다고.”
“네, 설마. 그자와 싸웠던 곳이 여깁니까?”
태성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를 오해했다는 사실에 다시 찾아가던 중에 만났다. 그는 정말 강했어. 내가 이기긴 했지만, 그의 무공은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우와, 아버지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로 강하다는 소리네요. 거기에 무공도 완성이 안 되었음에도 아버지와 막상막하였다니.”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의 무공은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었어. 가끔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더구나. 중원 말이 조금 어눌했다고 해야 하나?”
“그럼 중원인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렇겠지. 나중에 다시 만나면 알은척을 할 수 있겠구나.”
천룡은 반쪽짜리 마애불을 바라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일단 마교 애들부터 도와주고 다시 이야기하자. 이러다가 정말로 늦겠다.”
“네!”
일행들을 데리고 서둘러 마교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천룡이었다.
“내가 기억을 되찾는 동안에 털리진 않았겠지?”
“설마요. 저번에 저희랑 한판 했을 때 보니 강하던데요. 거기에 아버지가 치료까지 해 줘서 더 강해졌을걸요?”
“그런가?”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맞아요. 걔들이 괜히 공포의 대명사겠어요?”
무광의 말은 사실이었다.
육마군과 산 중턱에서 마주친 뇌령마군.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뭐, 뭐여? 이렇게 강하다고?”
“그러니까 말입니다! 과연 전설 속에 나오는 단체답습니다.”
“우리 애들이 밀리다니. 나 참 나. 이런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맛이 있어야 싸우는 것 같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만…… 너무 심하게 털리고 있는데?”
뇌령마군의 말대로 육마군과 마교의 정예에 의해 자신의 수하들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너희들도 각자 맡아서 도와!”
“알겠습니다!”
“여기서 더 밀리면 나한테 죽는다 생각하고 집중해라.”
자신의 수족들에게 육마군을 맡아 상대하라고 으름장을 내린 뒤에 자신도 육마군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크크크. 이제야 대장이 나서시는구먼.”
“어디에서 온 놈들이냐? 살기가 지저분한 것을 보니 착한 놈들은 아닌 것 같고.”
도마군과 창마군이었다.
그 둘을 보며 뇌령마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너희들을 우습게 본 것은 사실이긴 한데. 내 실수다. 이렇게 강할 줄이야.”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그였다.
“남자다운 놈이군.”
도마군이 뇌령마군을 좋게 보았다.
“도마군! 그렇다고 방심하지 마라.”
창마군이 도마군에게 경고를 한 뒤, 자신의 창을 움켜쥐고 뇌령마군을 향해 겨누었다.
그런 도마군과 창마군을 보며 뇌령마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너희들이 마교의 정예들인가 보지?”
“그렇다고 봐야겠지? 영광으로 알아라.”
“그렇군. 어쩌나? 우리 말고 또 한 무리가 반대쪽에서 너희를 치기 위해 오고 있을 건데?”
“뭐?”
“왜 우리만 왔다고 생각하지? 그건 큰 실수 아닌가?”
“그, 그건.”
“우리는 너희를 최대한 이곳에 묶어 두면 역할이 끝날 것 같은데?”
“이익! 모두 서둘러라! 이놈들 말고 또 다른 무리가 있단다!”
그렇게 외치고 창마군이 자신의 창에 검은색 마기를 불어넣어 뇌령마군을 향해 내질렀다.
우우우웅-!
“신속마창(神速魔槍)!”
빠지지직-! 쩌쩡-!
내질러진 창은 뇌령마군 몸 주변에 펼쳐진 강한 뇌기에 의해 튕겨 나갔다.
“뇌, 뇌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