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6화 (156/200)

156화

적들이 모인 곳은 피해가 일절 없이 멀쩡했다.

거대한 보호막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구양진의 공격이 시작되자 하늘에 있는 강기 구름에 주입하던 내공을 자신들의 보호 강기에 모두 전환한 것이다.

구양진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천의 무인들이 하나가 되어 내공을 쓰고 있었다.

“미친놈들…….”

이길 수가 없었다.

이기려면 저것을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해야 하는데 자신에겐 그런 힘이 없었다.

그것보다 어디서 저렇게 끊임없이 내력이 샘솟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구양진의 눈에 저들이 품속에서 빨간 단약을 꺼내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보였다.

“저, 저것이었군…….”

영약 같은 것으로 끊임없이 내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천하에서 천룡을 제외하고는 자신을 상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 자부했었는데, 그것이 지금 여기서 막힌 것이다.

솔직히 이런 전투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 많은 사람의 내공을 공유해서 싸운다니.

“크하하하하! 어떠냐? 이제야 우리의 무서움을 알겠느냐?”

구양진의 표정을 본 남자가 허리를 젖혀 가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품속에서 빨간 단약을 꺼내 입으로 가져가며 친절하게 말했다.

“이건 혈사신단이라 부르는 단약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소림의 소환단 정도 효능이 있다고 보면 되지. 두 당 열 알씩 소지하고 있고, 이제 두 알 사용했다.”

그 말에 구양진은 좌절했다.

자신의 내력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다지만, 지금 같은 위력의 신공을 계속 출수할 순 없었다.

그러나 저들은 아니다.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조금 전 공격을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오시기 전에 끝내려고 했건만……. 내가 먼저 끝나겠군.”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저들은 모를 것이다.

지금 이곳으로 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즐거운 상상이 펼쳐졌다.

저들이 신을 상대로 과연 지금처럼 여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영혼까지 탈탈 털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잠시나마 행복해졌다.

구양진이 미소를 지으며 웃자,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웃어?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되나 보지? 그나마 다행으로 알아라. 죽이지 말고 제압해 놓으라는 지시여서 죽이진 않을 테니.”

“크크크크, 그것참 듣던 중 좋은 소식이구나.”

살아서 저들이 털리는 꼴을 볼 수 있다니 더 행복해졌다.

남자는 구양진이 살아날 희망이 생겨서 저리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도 좋은가? 크크크. 좋다! 인심 썼다! 무릎을 꿇어라. 그러면 더 이상의 공격은 없을 것이고, 그대를 우리 교의 호법급으로 대우해 주겠다.”

남자의 말에 구양진이 크게 웃었다.

“크하하하하하. 너희들 크게 오해를 하고 있구나. 나는 그것 때문에 웃은 것이 아니다.”

“그럼?”

“이곳으로 그분이 오신다. 그분이! 너희들에게 오히려 충고하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망가라.”

“하하하하, 미쳤구나? 아무래도 좋게 말해서는 안 되겠군.”

남자가 구양진을 향해 다시 공격하려고 자세를 잡는 그 순간, 하늘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말하는 그분이 혹시 나인가?”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구양진의 표정은 환해졌다.

혈천의 무인들은 하늘에서 천천히 자신들을 향해 하강하는 남자를 보며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넌 누구냐?”

남자가 천룡에게 물었다.

전혀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데, 저런 고급 수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앞에 있는 구양진보다 더 강한 고수라는 소리였다.

“나? 저놈이 말한 그분.”

그리고는 환하게 웃는 남자.

바로 운천룡이었다.

천룡은 바닥에 착지한 후에 구양진의 곁으로 다가갔다.

“괜찮냐? 초대받아서 왔더니 이 난리네? 아주 환영회가 거창해.”

“그러게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손님을 모셔 놓고 이리 어수선하게 해 놔서.”

“됐어. 농담한 건데,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여. 네 탓이겠냐? 저놈들 탓이지.”

천룡은 혈천교 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큰 피해를 준 것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봐주겠다.”

나직하지만 모두의 귀에 뚜렷하게 들린 말이었다.

남자가 주먹을 꼭 쥐고 말했다.

“우리 혈사신대에게 투항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뭣들 하느냐! 준비해라!”

“예! 대주님!”

대주라 불린 자의 명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혈사신대였다.

“조심하십시오! 저들은 자신들의 내공을 공유합니다!”

구양진의 말에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별 희한한 놈들이 다 있군. 그럼 공유를 못 하게 만들어야겠네.”

쾅-!

천룡이 진각을 밟았다.

“크크크, 아까 저놈이 한 행동이랑 똑같은 짓을 하는구나! 소용없다!”

천룡의 행동에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한껏 웃는 남자였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빠지지직-!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케케켁!”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수하들의 비명.

빠르게 뒤를 돌아보니 혈사신대의 대원들이 일제히 뇌기에 감전되어 눈을 까뒤집은 채 꿈틀거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진각을 밟고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땅이 갈라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땅 위로 어떠한 기운이 느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수하들이 고통스러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너무 놀라서 상황 파악을 하려 할 때 귀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앞에 집중해야지.”

“헉!”

너무 놀라 거리를 순식간에 벌리는 대주였다.

바로 옆에 천룡이 서 있었다.

“너도 혈천교냐? 이것들이 왜 자꾸 조금씩 기어 나와! 한꺼번에 나오라고 한꺼번에!”

‘너도라고? 그럼 그전에도 우리 애들을 만났다는 건가?’ 천룡이 한 말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대주였다.

“너는 혈천교 위치 알고 있냐?”

순간 대주의 동공이 흔들렸다.

“아는구나?”

그 순간의 찰나를 잡아낸 천룡이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주에게 다가가는 천룡.

그런 천룡에게서 거리를 벌리려고 뒷걸음질 치는 대주였다.

수하들의 내공이 없으면 자신은 그저 그런 무인이다.

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천룡에게 덤빌 정도는 아니었다.

털썩-! 털썩-!

사방에서 수하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있었다.

‘크윽! 이게 무슨 일이지? 저 녀석들은 내공을 공유하고 있어서 저리 쉽게 당할 리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룡의 저 이상한 기술이 적중되는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공급되던 내공 자체가 끊겼다.

“너무 머리 쓰려 하지 마. 머리 아프잖아. 그냥 편하게 혈천교 어디 있는지만 말해라.”

“내, 내가 말할 것 같으냐?”

“아니.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지.”

“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문을 당할 수도 있었다.

고문을 당하며 비참하게 죽을 바엔 장렬하게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대주였다.

고오오오-!

자신이 가진 모든 내공을 빠르게 모아 천룡에게 돌진했다.

“폭마굉천공(爆魔轟天功)!”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이었다.

대주의 온몸이 부풀어 올랐다.

“혈천천하(血天天下)!”

턱-!

혈천천하를 외치고 몸을 터트리려는 찰나, 천룡에게 머리를 잡혔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생을 마감하려고 했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오히려 몸이 편안해지며 심신이 안정되고 있었다.

‘이익! 터지란 말이야! 터져!’

이럴 리 없었다.

자신의 몸을 터트리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보낸 자신의 기운들 역시 잔잔한 호수처럼 평화로워졌다.

‘편안한 마음…….’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편안한 기분이었다.

이대로 잠이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정신을 차려야지.”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눈앞에 천룡이 웃으며 여전히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어디 은근슬쩍 저세상으로 도망가려고 해?”

자폭하려고 한 건데 그것을 그렇게 해석할 줄이야.

퍼억-!

평온했던 신체에 엄청난 고통이 몰려왔다.

“커헉!”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그렇게 막 굴리면 안 되지. 안 그래?”

퍼퍽-!

남의 귀한 집 아들을 패면서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았다.

“너희 부모님을 대신해 내가 혼을 내는 것이니 달게 받아라.”

퍼퍼퍽-!

어찌나 아픈지 숨도 쉴 수가 없었다.

하늘이 노래진다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빠지지직-!

“크아아아아!”

서서히 정신을 놓으려는 찰나, 갑작스러운 뇌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냥 깨우니까 애들이 정신을 못 차리더라고. 방금 내가 살짝 방향을 바꿔 봤어. 어때? 짜릿하니? 영광으로 알아. 네가 첫 대상이야.”

‘왜 하필 나부터입니까?’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할 순 없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천룡은 활인기와 뇌기를 결합했다.

지금처럼 치료하면서 고통도 줄 수 있게 변형을 시킨 것이다.

쓰러져 있던 수하들 역시 똑같은 충격을 받고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몸을 덮치는 엄청난 뇌기에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쳤다.

문제는 이제 이 뇌기에 활인기가 들어갔다는 점이다.

그게 왜 문제냐고?

죽지도 못하고 천룡이 풀어 줄 때까지 저 고통을 끊임없이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장면에 구양진은 소름이 돋았다.

전에 치료하기 위해 뇌전을 뿌린 것이 기억이 난 것이다.

‘세상에 누가 있어 저분을 이길 수 있을까?’

농담으로 신이라 했지만, 지금 보니 정말로 신이었다.

저절로 신앙심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황홀한 표정으로 천룡을 바라보는 구양진이었다.

어느덧 해가 산을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 시간까지 천룡의 손길을 받은 혈사신대.

그들은 어느덧 천룡의 충실한 개가 되어 있었다.

정말로 하라는 대로 다 했다.

기라면 기고, 짖으라면 짖었다.

“혈천교 위치.”

천룡의 말 한마디에 혈천교의 위치뿐 아니라 역사까지 줄줄이 말하는 대주였다.

어찌나 구구절절하게 말을 하는지 천룡은 그의 말을 끊고 일단 마교에 가서 마저 듣기로 하고 이동했다.

혈마신대는 일사불란하게 천룡의 명에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뒤따라가는 구양진이었다.

***

개방 방주가 누군가에게 간절하게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나 좀 도와주시오. 내가 그동안 대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왔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크흠, 미안하오. 우리 쪽 방침이 바뀌었소. 그래서 도울 수 없소.”

“당신들이 하라는 대로 다 했소. 그런데 인제 와서 도울 수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제발 이러지 마시오.”

“미안하오. 우리도 상부의 지시에 따라야 해서 어쩔 수 없소.”

낯선 남자는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조아렸다.

“당신들이 먼저 나에게 접근을 해 놓고 인제 와서 안 된다니……. 어찌 이럴 수 있소…….”

개방 방주가 허탈한 말투로 낯선 남자를 원망하듯 쳐다보았다.

“세상 사람들을 현혹해서 무림맹을 만들라 해서 겨우겨우 혈천교 핑계를 대고 만들었소. 삼황을 견제하고자 노력도 했소이다. 나는 당신들의 요청을 충실히 행했는데 그 대가가 겨우 이것이오?”

“우리의 주인께서 당분간 무림에서 손을 떼라 하셨소. 우리도 어찌할 수 없소이다.”

“이보시오, 독고수 대협! 내가 언제 무림을 치라고 하였소. 그저 작은 장원 하나 손 좀 봐달라는 것이오. 그것도 어렵소?”

개방 방주의 말에 독고수라 불린 사람이 연신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되오. 그 어떤 충돌도 하지 말라 하셨소.”

“내가 오죽하면 이렇게 부탁을 하겠소이까. 독고 대협! 그대의 무력은 삼황에 견줄 만큼 강하다고 알고 있소. 그러니 제발 한 번만 부탁하겠소. 내 이렇게 빌겠소.”

“끄응.”

연신 계속되는 개방 방주의 부탁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독고수였다.

“하아, 그 장원이 어디요.”

독고수의 입에서 긍정의 말이 나오자 표정이 환해진 개방 방주였다.

“우, 운가장이라는 곳이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곳이니 대협께서 처리한다고 하여도 소문조차 나지 않을 것이오.”

“운가장?”

“그렇소.”

들어 보니 자신도 처음 들어 보는 장원이었다.

턱을 긁으며 잠시 고민을 하는 독고수였다.

“아니, 그런 별 볼 일 없는 장원이면 방주 당신이 직접 처리해도 되잖소. 당신도 칠왕십제의 일인 아니오.”

“무슨 일인인지는 모르겠으나 무황이 차린 비밀 장원 같소. 나와 같은 칠왕십제급 무인들이 여럿 있었소.”

“그게 정말이오? 그건 정말로 중요한 정보군.”

독고수의 눈빛이 변했다.

“무황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인가?”

“내 말이 그 말이오. 어떻소? 이제 구미가 좀 당기시오?”

독고수는 연신 고민을 했다.

방주는 조용히 독고수가 생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 남자는 정말로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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