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방에서 원각이 나간 후에 또 다른 스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밖이 시끄럽던데요.”
“다 들렸느냐?”
“네. 얼추 들었습니다.”
“저놈을 어찌해야 하면 좋겠느냐?”
“방장 스님도 참. 어쩌겠습니까? 저게 금강지체의 성격인 것을요.”
“그나저나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하늘이 내린다는 오행체가 셋이나 나타났네.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 건지.”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오행체가 셋이나 있고, 또한 지금 무림에 삼세뿐 아니라 무림맹까지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런가? 그저 이 늙은 중의 기우였으면 좋겠건만. 아미타불.”
연신 불호를 외치며 눈을 감는 천명대사였다.
그러다가 다시 눈을 뜨고는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아, 맞다! 무림맹에서 소집령이 내려졌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소집령?”
“네! 혈천교 본단의 위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찌할 것인지 의논을 하자고 연통이 왔습니다.”
“혈천교라……. 그런 이유라면 가 봐야지.”
“그럼 애들에게 준비하라 전하겠습니다.”
“그러게나.”
스님이 나간 뒤에 천명대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혈천교라……. 너무 서두르는 것은 아닌지……. 애초에 무림맹 창설을 말렸어야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다시 눈을 감으며 불호를 외쳤다.
***
운가장으로 돌아온 천룡의 하루는 단조로웠다.
유가연에게 무공을 가르치고, 남는 시간은 명상하며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장천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자, 장주님!”
“무슨 일이야?”
“무, 무림맹에서 이번에 크게 사고를 칠 모양입니다.”
“사고? 무슨 사고?”
“무림맹에서 혈천교를 치기 위해 대대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뭐?”
천룡이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무림맹의 전력으로 혈천교를 상대할 확률은?”
“희박합니다. 그동안 봐 온 전력이 그들의 일부라면……. 더더욱 말려야 합니다. 전멸당할 수도 있습니다.”
“애들 모이라 그래.”
“네!”
천룡의 부름에 사람들이 순식간에 회의실로 모였다.
장천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왔는지, 다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무림맹의 전력은 어때? 혈천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천룡의 물음에 제갈군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다시피 무림맹은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 숙부님께서 최선을 다해 키우고 계시지만, 아직 완벽하게 융합이 된 상태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혈천교를 치려는 거야?”
“다급함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무림맹을 중원 최고의 단체로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
“그렇군. 자신들이 혈천교를 쳐서 이긴다면…….”
“무황성의 그늘에서 벗어나 중원 최강의 칭호를 가져갈 수 있겠죠.”
천룡이 구석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뇌령마군, 빙백마군, 그리고 혈마신대의 대주가 그곳에 앉아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너희들 생각은 어때?”
“네?”
갑작스러운 질문에 셋이 동시에 대답을 했다.
그들에게 제갈군이 무림맹의 전력을 설명해 주고 물었다.
“지금 이런 상황입니다. 만약 저들이 혈천교과 붙는다면 승산이 어느 정도입니까?”
제갈군의 질문에 그나마 가장 많이 알고 있는 혈마신대의 대주가 답했다.
“일단은 저 말고도 네 개의 마신대가 있습니다. 장주님께서 보았다시피 마신대 하나가 삼황급 무인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입니다. 그런 전력이 네 개나 남아 있고, 무엇보다 과거에 명성을 날리던 호법들이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 있습니다.”
“호법들? 사혈마제는 저번에 내가 다 처리했고……. 누가 또 있더라? 남아 있어도 걔들이 도움이 되겠어?”
“아닙니다. 대부분 예전의 무공 수위를 그대로 지니고 계십니다. 아, 몇 분께선 부상 때문에 약해지신 것이 맞습니다. 암튼 약해지셨다 해도 칠왕십제급 무인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래? 끄응. 은퇴들 안 하고 뭐 했대? 그리고 다른 전력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군사와 교주입니다. 군사는 최근에 유마회혼대법을 성공하여 천마대제의 힘을 얻었습니다. 그 힘을 얻고 순식간에 교에서 무력으로도 두 번째가 되었습니다.”
“그건 들었지. 어찌 생각하냐?”
천룡의 물음에 제갈군이 답했다.
“과거 천마대제의 진짜 힘은 화룡의 기운이었으니 과거처럼 극강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칠왕십제보단 강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제갈군의 보충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천룡과 제자들이었다.
“교주는 그런 군사도 꼼짝하지 못하는 무력을 지녔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천마보다 위급의 고수입니다.”
그 말에 무광이 신음을 냈다.
천마 구양진은 순수 무력으로 치면 자신과 거의 엇비슷한 경지였다.
반로환동만 안 했을 뿐이지 내재(內在)되어 있는 힘은 엄청났다.
그런 천마보다 강하다니.
“과연 대단하군. 하긴 그 정도는 돼야 과거 중원을 공포로 몰아넣은 집단의 수장답지.”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는 무광이었다.
과거에 그가 무림에 출두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마 자신은 이곳에 없었을 확률도 있었다.
그런 무광의 마음을 읽었는지 천룡이 그의 주먹을 잡아 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지 않으냐.”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말이었다.
무광은 손에 힘을 풀며 웃었다.
무광의 웃음을 본 천룡은 다시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게 전부야? 더는 없고?”
“혈천교의 정예부대라 불리는 혈마단(血魔團)이 있지만, 그들은 저도 본 적이 없어서…….”
“혈마단?”
“네!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습니다. 과거에 혈천교가 무황에게 당해 철수를 할 때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집단입니다.”
“소문에 들리는 그들의 무력은?”
“다른 건 모르겠고……. 전에 군사가 심통이 난 채로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는데.”
“교주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는 무력 단체가 있다고……. 군사도 그 실체를 본 적이 없다면서 웃었습니다. 그런 무력 단체가 정말로 있다면 자기가 이렇게 생고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 말에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혈천교 교주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무력 단체라니.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만을 속으로 바랐다.
“일단 저건 소문이니 제쳐 두고……. 한마디로 지금 무림맹의 전력으로는 어림없다는 소리네?”
“제 생각엔 그렇습니다. 거기에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가는 것이라면…… 확률은 더 떨어지겠지요. 혈천교 본단이 있는 곳은 침입에 대비해 엄청난 함정과 진법 들이 곳곳에 깔려 있으니까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는데, 저들은 혈천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무리해서 침공하려 하는 것이다.
“이상합니다. 아무리 숙부께서 경황이 없다고 하셔도 이런 결정을 쉽게 하실 분이 아닌데.”
“흥! 공에 눈이 먼 것이겠지.”
무광의 말에 제갈군이 말했다.
“아닙니다. 야망이 있으신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밀어붙이는 분은 아닙니다. 뭔가 이상합니다.”
“무림맹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말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무림맹에 가 봐야 하나? 그들이 언제 출정을 한다던가?”
“중원에 있는 무림맹 소속 문파들이 모여야 하고 또한 이런저런 준비도 해야 하니 당장은 무리일 겁니다.”
“그전에 혈천교가 본단을 옮기거나 하지 않을까?”
무림맹이 혈천교를 친다는 사실을 하오문의 세작이 알 정도면 이미 혈천교에도 이 사실이 전달되었다고 봐야 했다.
과연 혈천교가 가만히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철저하게 방비를 하고 기다릴 것이다.
“혈천교에선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굳이 중원까지 오지 않아도 자신들이 알아서 오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지요.”
“그럼 혈천교에서 파놓은 함정인가?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하고 오게 하는 전략?”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저희 숙부님께서 어찌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제갈군의 말에 천룡이 잠시 생각을 했다.
“일단 무림맹이 멀지 않으니 가 보자. 직접 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결정을 하자.”
“직접요?”
“응. 거기에 무당이랑 당가도 있을 거 아냐. 걔들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자.”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제갈군이 서둘러 나가자 천룡이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들을 말리려면 제대로 한바탕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식으로요?”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줘야겠지.”
“알겠습니다. 무황성에 연통을 넣어 놓겠습니다.”
“응? 왜?”
“압도적인 힘이라면서요. 저들에게 무황성의 진정한 힘을 보여 줘야죠.”
무광의 말에 태성 역시 말했다.
“구룡방에도 연통을 넣겠습니다.”
“너도? 너는 사파라고 몸을 사렸잖아.”
“어차피 이제 다 알게 될 텐데 굳이 감출 필요 있나요.”
그 말에 천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역시 무림맹으로 모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보여 줘야죠! 저들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하고 있는 지를.”
“그냥 무당이랑 당가 애들한테 우리에 대해 말해 주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믿을걸요? 오히려 우리에게 넘어갔다며 몰아붙일 겁니다.”
“그, 그런가?”
“네! 이번은 저희에게 맡기세요. 강호의 섭리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사형 말이 맞습니다! 약육강식! 그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줘야 말을 잘 듣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한 식구라는 것을 세상에 공표하긴 해야 했는데 잘되었네요. 이 기회에 아예 못을 박아 두죠.”
“그래! 이 기회에 확실하게 알려 주고, 까불지 못하게 못을 박아 놓자!”
다들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의지를 다졌다.
천룡은 불안해하면서도 제자들을 믿어 보기로 했다.
***
무림맹으로 수많은 문파에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몰려오는 이들.
어떤 이는 잔뜩 흥분된 표정을 지어 보였고, 어떤 이는 불안함에 연신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응은 바로 기대를 한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하여 온 무림이었기에 자신들의 힘을 발산할 기회가 없었다.
그랬기에 상기된 표정으로 잔뜩 기대하며 몰려드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전부가 그런 마음으로 무림맹에 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어, 이것 참……. 그렇게 말렸는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하아, 어찌해야 할지…….”
“하긴 과거의 저였다면 저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오히려 앞장서서 나대고 있었겠죠.”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당가의 가주 당벽과 무당의 장문인인 현허가 들어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저 멀리 화산파 장문인 천검(天劍) 선우진이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여기들 계셨소? 한참 찾았소이다.”
“무슨 일이오?”
“그대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소이다.”
선우진의 진지한 표정에 둘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오?”
“혹시 운가장이라는 곳을 아시오?”
선우진의 물음에 둘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아시오?”
재차 묻는 소리에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물론, 잘 알고 있소. 그런데 어찌 물으시는 것이오?”
“얼마 전에 그곳에 우리 아이들을 보낸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그곳 얘기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오. 아이들 말로는 당가주 그대와 무당의 현진이 그곳에 있었다는데 사실이오?”
선우진의 질문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그곳은 어떤 곳이오? 어떤 곳이기에 아이들이 그리 겁에 질린 상태로 돌아온단 말이오? 내가 당장 애들을 데리고 진상을 규명하러 가겠다니까 기겁을 하고 말리더이다. 절대로 안 된다며.”
선우진의 말에 둘은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것참 화산을 누구보다 생각하는 아이들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자기네 문파를 살리겠다고 엄청나게 노력을 했군요.”
둘의 대화에 선우진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지금 나를 두고 농을 하시는 것이오?”
선우진의 음성이 심상치 않게 변하자, 둘이 동시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오! 오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여기서 할 대화는 아닌 것 같으니.”
무당 장문인인 현허가 선우진을 달래며 안으로 들어갔다.
차를 마시며 한참 동안을 운가장에 대해 설명하는 그들.
운가장에 대한 모든 것을 들은 선우진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가 재빨리 입을 다물고 입가에 침을 닦은 뒤에 경악스런 음성으로 말했다.
“뭐, 뭐라고요? 그, 그게 사실이란 말입니까? 아니……. 그런데 왜 애들은 그런 얘기를 나에게 안 하고 계속 숨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