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말을 들어 보니 운가장에 갔던 애들이 돌아와서 하는 행동들이 이상했다.
어떻게든 운가장에 관한 정보를 숨기려 했다.
혼을 내고 고함을 질러도 절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들 생각엔 그것이 화산을 지키는 길이라 여긴 게지요. 우리 현진이도 처음에는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것을 누가 믿겠습니까? 저도 믿지를 못하고 쳐들어갔다가…….”
당벽의 말에 현허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헉! 그곳을 쳐들어가셨다고요? 정말요?”
“그렇습니다. 심지어 거기에 독까지 뿌렸습니다.”
“허어…… 그러고도 살아남으셨다니……. 다른 의미로 대단하시군요.”
“허허, 우리 장주님께서 저를 살려 내셨지요. 그분께는 갚을 은혜가 아직도 한참입니다. 제가 죽을 때까지 다 갚을 수 있을지…….”
그렇게 말을 하며 내비치는 눈빛이 마치 사모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눈빛이었다.
선우진은 아직도 이들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이게 믿으라고 해서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
왜 당가주가 직접 쳐들어갔는지 누구보다도 깊이 공감하는 선우진이었다.
그렇게 셋이 운가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이 시끌시끌했다.
“무슨 일이 있는가 보오.”
당벽이 문을 열자 사람들이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그중에 다급하게 지나가는 무인을 붙잡아 물었다.
“무슨 일이냐?”
“네! 저, 저기 성문 앞에 무, 무황성의 무인들이 와 있다고 합니다!”
“뭐? 무슨 무인?”
“무, 무황성의 무인들요. 그뿐 아니라…… 궈, 권왕께서 직접 이끌고 오셨다고 합니다.”
“궈, 권왕이? 그게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다들 이 난리입니다.”
무사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니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비상종이 울리고 무림맹의 무인들이 너도나도 가릴 것 없이 정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말인가 봅니다.”
“무황성이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우리도 가 보죠!”
당벽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도착해 보니 정말로 권왕이 무황성의 무인들을 이끌고 와 있었다.
무림맹 앞인데도 마치 무황성의 앞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권왕이 있었다.
권왕의 뒤에 서 있는 무황성의 무인들은 역시 보기만 해도 엄청난 고수들인 것이 느껴졌다.
다들 자부심 가득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다들 감탄하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과, 과연 명불허전이구려.”
“왜 사람들이 무황성, 무황성 하는지 이제야 알겠소.”
그때 무림맹주인 팽강과 군사인 제갈현이 다급하게 달려 나왔다.
그리고 사방에서 각 문파의 장문인과 장로들이 뛰어나왔다.
개방의 방주 역시 그곳에 나타났다.
개방 방주는 권왕을 보자마자 내공을 실어 외쳤다.
“이것이 무슨 짓이오! 무림맹과 한판 해 보겠다는 것이오? 무황성은 이리도 경우가 없는 것이오?”
권왕이 아직 적으로 온 것인지 아군으로 온 것인지 확실치도 않은데 개방 방주가 저리 말할 줄이야.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개방 방주로 인해 제갈현이 당황을 했다.
가득이나 혈천교 문제로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무황성과 갈등까지 만들고 있었다.
제갈현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개방 방주를 바라보았다.
저자가 다른 장문인들을 어떤 감언이설로 꼬드겨 혈천교를 치자고 했는지 자신이 아무리 말려도 요지부동들이었다.
그래서 개방 방주에 대한 감정이 안 좋아진 상태였는데 또 이런 사고를 쳤다.
‘으드득! 이 사태를 해결하면 반드시 저놈의 주둥아리에 개뼈다귀를 쑤셔 넣고 말겠다.’
속으로 분을 삭이며 겉으로는 웃는 얼굴로 포권을 하며 권왕에게 다가가는 제갈현이었다.
일단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 저자의 말은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권왕께서 이곳에 온 연유가 무엇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저기…… 정예로 보이는 무인들까지 대동하신 이유도 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권왕은 제갈현의 질문에 미소 지으며 개방 방주를 바라보았다.
“미친 거지 새끼 패러 왔소.”
“네?”
“저기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대는 거지 새끼 잡아 족치러 왔다고 말했소.”
입은 웃고 있으나 눈빛은 그렇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개방 방주를 찢어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개방 방주가 입에 거품을 물고 지랄 지랄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런 와중에 권왕의 답변은 그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 자신이 직접 잡아다가 대령해 주고 싶었다.
아니, 같이 패도 되겠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하하하. 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 아닌데? 그나저나…….”
권왕의 시선이 제갈현에게 꽂혔다.
“그대들은 정말로 큰 실수를 저질렀소.”
뜬금없는 소리에 제갈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무슨 소리입니까?”
“그냥 친목 모임 정도로 끝냈어야 했거늘……. 너무 크게 일을 벌이셨소. 이 일로 인해 아버님께서 직접 오실 거요.”
“네? 그 무슨…….”
제갈현이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고 할 때 또다시 소란이 일었다.
“구, 구룡방!”
“구룡방의 깃발입니다!”
“전방에 구룡방의 무인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헉! 화룡대다!”
“미친 광룡대도 있어!”
“구룡방 정예가 전부 왔다!”
사람들의 소란에 제갈현이 화들짝 놀라며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랬더니 정말로 구룡방의 무인들이 당당하게 무림맹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무황성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구룡방까지 나타났다.
군사 인생에 있어 최악의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갈현의 시선에 전에 자신을 당황하게 했던 그 어린 소방주가 걸어오고 있었다.
제갈현을 발견한 소방주 용적풍은 그의 앞으로 달려와 포권을 하며 말했다.
“하하, 오랜만에 뵙습니다. 소생 용적풍! 무림맹 군사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그, 그래요. 바, 반갑소. 한데 여긴 어쩐 일로? 그리고 저 뒤에 병력은 또 무엇이고?”
“아, 저기 그건…….”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용적풍이었다.
일단 이쪽으로 정예들을 모두 끌고 오라는 말에 다 대동하고 오긴 했는데 정작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용적풍이 당황하자 그에 대한 대답은 옆에 있던 권왕이 답했다.
“나와 같은 목적.”
“네?”
제갈현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혀, 형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이분이 이해를 못 하시잖습니까.”
이곳에서 헤어진 후로 자주 만난 둘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편한 사이가 된 지 오래였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전에 또 누군가가 외쳤다.
“천검문이다!”
“맙소사! 천하 삼세가 전부 모였어.”
“미친, 제일 앞에 일섬검제다! 천검문의 문주가 직접 왔어!”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우, 우리 혈천교와 싸우는 거 아니었어? 천하삼세가 우리의 적인 거야? 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다들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통제하고 다스려야 할 간부들 역시 똑같이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말해 무엇하겠는가.
군사부터가 정신이 나가려 하고 있었다.
무림맹주인 팽강 역시 지금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무황성의 등장만으로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놀랐는데, 그것도 모자라 구룡방과 천검문까지 나타났다.
군사를 바라보며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눈으로 요구하는 팽강이었다.
그러나 군사라고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짐작조차 되지 않는데 설명은 고사하고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그때 뒤에서 개방 방주가 또 시끄럽게 떠들었다.
“거보시오! 내 뭐라 했소! 저들이 드디어 마각을 드러낸 것이오! 천하 삼세는 여러분들을 속이고 있었소! 저들은 무림맹을 치러 온 것이오! 자신들의 이문을 위해 우리를 치려 하는 것이란 말이오! 저 보시오! 오죽 급했으면 무황성과 천검문이 저 사특한 구룡방과 손을 잡았겠소!”
상황이 이리되자, 개방 방주의 말이 설득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귀가 얇은 사람들이 그 말에 홀라당 넘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내가 강력하게 주장을 한 것이오! 무림맹을 만들자고! 이제 아시겠소? 나의 선견지명을! 안 그랬다면 지금도 저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을 것이오!”
자화자찬이 한창이었다.
제갈현은 정말로 저 주둥아리를 누가 좀 꿰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퍼억-!
그런데 하늘이…… 아니, 권왕이 자신의 바람을 들었던가?
순식간에 개방 방주의 옆으로 이동한 그가 주먹질 한 방에 떠들어 대던 그의 주둥이를 짓이겨 놨다.
“커헉!”
콰당탕탕-!
“거지 새끼. 아까부터 계속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군. 너는 처음 볼 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이게 므슨 지시냐! 이러고도 네가 정파라 하수 이는냐! 비거파게 기스블!”
입술이 뭉개져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개방 방주였다.
그런 개방 방주의 말에 담선우가 그의 주둥이를 향해 다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두 번째 주먹은 막히고 말았다.
“시주, 일단 진정하시지요. 오해가 있다면 대화로 풀어 봅시다.”
소림사 방장인 천명대사였다.
그가 권왕의 주먹을 막은 것이다.
“땡중, 저리 비켜. 당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차갑게 식은 담선우의 시선.
당장이라도 천명대사를 오체 분시할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에 주변에 있는 모든 무림맹의 무인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무황성이면 다인 줄 아는가! 더는 우리 무림맹을 우습게 보는 행위는 용서치 않겠다!”
점창, 공동, 아미, 종남의 장문인들 역시 언제든지 출수를 하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었다.
무림맹주 팽강 역시 분노한 얼굴로 담선우의 앞에 나섰다.
“권왕 애송이!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냐! 무황성의 성주라고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분노한 팽강의 포효를 듣고는 귀를 후비적거리는 담선우였다.
“노인네 목청도 좋네. 덤비겠다면 상대해 주지.”
그리 말을 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환하게 웃는 담선우였다.
그 말에 팽강이 주먹을 움켜쥐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그에 무유성이 말리기 위해 나서다가 멈칫했다.
담선우 역시 환하게 웃다가 표정이 점차 굳어 갔다.
“에이씨…… 빨리 좀 덤비지…….”
“뭐, 뭐라?”
“당신들은 느껴지지 않는 거야?”
“무엇을 말이냐?”
“하하하하하하, 무엇이냐고?”
쾅-!
대화하고 있을 때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로 떨어졌다.
어찌나 강하게 떨어졌는지 바닥이 깊게 패이고 먼지가 수북하게 올라왔다.
파앙-!
짜증이 난 팽강이 내공으로 먼지를 날려 버렸다.
먼지가 사라진 그곳에는 한 젊은 청년이 서 있었다.
그리고 팽강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있었냐? 찌질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세상천지에서 자신을 찌질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서, 설마…….”
이리 가까이 올 때까지 느끼지 못한 기운.
거기에 땅에 착지할 때 느껴진 엄청난 내공.
“아, 아닐 거야.”
현실을 부정하는 팽강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거기에 저 어린 모습.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그가 맞고, 저 모습이 경지를 넘어서서 저리된 것이라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승산은 없었다.
거기에 무황성, 천검문, 구룡방까지.
팽강의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어질어질해지는 그때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안 되지 안 돼. 정신을 잃으면 안 되지. 이제 진짜가 시작할 예정인데.”
팽강이 화들짝 놀라며 옆을 봤다.
어느새 다가온 남자.
바로 무광이었다.
팽강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자신이 아는 그자의 젊었을 때 모습이었다.
“무……황? 다, 담무광?”
힘겹게 입을 열어 물었다.
제발 아니라며 고개를 흔들길 바라면서.
“젊어져서 못 알아볼 줄 알았는데 의외네.”
하지만 하늘은 자신의 바람을 저버렸다.
무광의 입에서 나온 말에 팽가뿐 아니라 옆에 있던 군사를 포함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경악하며 놀랐다.
천하 삼세가 이 자리에 온 것만으로도 이미 무림맹 창단 이래 가장 큰 위기인데, 무황까지 등장했다.
그것보다 무황의 모습을 보라.
누가 봐도 저 모습은 반로환동을 한 모습이었다.
소문은 틀렸다.
무황은 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다.
그전에도 적이 없어서 유아독존이나 다름이 없었는데, 그전보다 경지가 더 올라간 것이다.
‘내내 찝찝했던 것이 이것이었나? 애초에 그따위 소문을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바, 반로환동이라니. 미친 저 괴물이 더 강해졌다는 소리잖아!’
자책했지만 이미 늦었다.
하지만 놀람은 끝나지 않았다.
무광의 뒤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천검문의 무사들과 구룡방의 무인들이 일제히 부복하며 외쳤다.
“태상문주님을 뵈옵니다!”
“구룡천하! 방주님을 뵈옵니다!”
천검문의 태상문주라면 검황이다.
그리고 구룡방의 방주라면…….
“사……황?”
***
제갈현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팽강은 초점 잃은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섬검제가 가서 인사를 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정말이었다.
검황도 젊어졌다.
용적풍이 다른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했다.
“오셨어요? 아버지.”
역시나 사황이 맞았다.
구룡방의 소방주가 아버지라고 부를 사람이 한 명밖에 더 있던가?
무림맹의 모든 사람이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