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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화 (160/200)

160화

***

무림맹을 창설할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었다.

이제 자신들의 세상이 될 것 같았고, 혈천교에게 복수를 하면서 명실상부한 중원 제일의 단체가 되리라 여겼다.

그런데 지금 보니 허무한 꿈이었다.

삼황이 누구인가.

중원을 지배하는 절대자들이다.

그 강함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렇게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잘못된 정보 때문이다.

무황은 노망이 들었고, 검황은 방랑벽 때문에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남은 사황은 아직 젊고 세력도 단일 세력이나 다름없기에 충분히 비벼 볼 만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무황이 노망?

팔팔하다 못해 어려졌다.

검황이 방랑벽?

옷차림만 봐도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태가 보인다.

그보다 저 괴물들이 더 강해졌다는 게 문제다.

과거에도 눈치를 보며 살았는데 더 강해진 지금은 안 봐도 뻔했다.

다들 제갈현을 바라보았다.

군사니까 뭔가 해답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군사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제갈현은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엄청난 충격 덕에 머리가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정리를 해야 했기에 천천히 주변을 돌아봤다.

무황은 당황한 팽강을 데리고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검황과 사황은 자신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제갈현의 눈에 가문의 골칫덩이가 보였다.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반가웠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조카가 아닌가.

제갈현이 재빨리 제갈군에게 달려갔다.

“군아!”

제갈군은 이미 제갈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측은한 표정으로.

“숙부님, 그동안 별래무양하셨습니까.”

“지금 상태를 보면 모르겠느냐……. 날 좀 도와다오. 이 숙부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제갈현의 도움 요청에 제갈군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뭐라? 이놈아! 우리 가문의 위기다!”

“아닙니다. 주군께서 저희 가문을 함부로 하시진 않을 것이니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뭐라고?”

제갈현은 제갈군의 입에서 나온 단어가 이해되지 않았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놈이 아닌가.

다루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방목해 둔 천재 중의 천재.

그런데 그런 그의 입에서 주군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제갈군의 눈빛을 보았다.

누가 봐도 충직한 신하의 눈빛이었다.

“저, 정말이더냐? 누, 누구냐? 무황이더냐? 검황? 사, 사황은 아니지?”

설마 사황일까 봐 두려운 표정과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제갈현이었다.

제갈현의 물음에 제갈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부 아닙니다. 숙부님, 조카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 그러려무나.”

“그만 욕심을 버리십시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중원 제일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제 주군께서 곧 천하제일이고 고금 무적이시니 의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그분이 누구시길래…….”

제갈현의 말에 제갈군의 시선이 뒤편에 부채를 펼쳐 든 채 이 상황을 지켜보는 한 청년에게 꽂혔다.

“서, 설마, 저 청년?”

“그렇습니다. 저를 나태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주신 저의 주군이십니다.”

믿을 수 없었다.

천하 삼세도 아니고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청년이 제갈가의 천재가 모시는 주군이라니.

“천하무적(天下無敵)!”

제갈군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제갈현이 깜짝 놀랐다.

“운가장의 장주님이십니다.”

“운가장!”

“저분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지요. 숙부께서 보내신 세작들 역시 모두 장주님의 인품에 빠져 충심을 맹세한 수하가 되었습니다.”

제갈군의 말에 제갈현이 번뜩 눈을 떴다.

과거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말로 올라온 보고서들.

세작들은 잡아 두고 운가장에서 그들인 척 장난으로 보낸 보고서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그, 그런…….”

제갈현의 눈이 천룡에게 꽂혔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또다시 그를 경악하게 했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당가의 가주가 직각으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무당의 장문인 역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고, 화산의 장문인이 그 옆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천룡은 그런 그들의 반응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제갈현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저들은 알고 있었다.

운가장의 존재를.

그리고 장주의 진정한 능력을 말이다.

천룡의 뒤에 명왕 장천이 보였다.

눈을 부리부리 뜨고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충직한 수하였다.

‘명왕마저 그의 수하였던가.’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진정한 하늘이 있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헛된 꿈에 부풀어 살아왔다.

얼마나 우스웠을까.

무림맹을 창설했을 때 저들은 얼마나 우리를 우습게 생각했을까.

털썩-!

자리에 힘이 빠진 제갈현이 주저앉았다.

“숙부!”

깜짝 놀란 제갈군이 부축하려고 다가왔다.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

“너무 놀라서 그런다. 잠시만…… 잠시만 놔두거라.”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최후의 한 방이 날아왔다.

“삼세의 세력들은 모두 장주님께 인사 올리거라!”

무광이 큰 소리로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차게 합창을 하며 천룡을 향해 일제히 부복하는 삼세의 무인들이었다.

“천! 하! 무! 적! 운! 가! 장! 장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절대 삼황.

천하 삼세.

중원의 진정한 힘.

그들이 단 한 명에게 일제히 부복하고 있었다.

단 한 명에게 충성의 맹세를 외치고 있었다.

삼황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천하의 삼황이 단 한 사람에게 충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부복을 하고 있었다.

강호가 생겨난 이래로 이렇게 커다란 충격을 주는 장면은 다시없을 것이다.

무림맹의 모든 이들이 이 모습에 놀라 주저앉고, 정신을 잃는 사람이 속출했다.

화산과 무당을 제외한 구파의 장문인들 역시 손에 들려 있던 무기를 놓치며 경악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지금입니다.

무광의 전음에 천룡이 입을 열었다.

“모두 일어나라.”

“충!”

천룡의 한마디에 한마음이 되어 한목소리로 충을 외치며 벌떡 일어나는 삼세의 무인들이었다.

거기엔 당연하다는 듯이 당가의 가주가 끼어 있었고, 장천과 제갈군이 있었다.

세상에 운가장의 진정한 힘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전 중원에 운가장의 존재가 퍼질 것이다.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면서 더욱더 과장이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서 있는 무림맹 사람들.

그런 그들을 향해 무광이 입을 열었다.

“우리 진지한 대화를 좀 해 볼까?”

그러고는 사악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의 동공에 각인되었다.

***

혈천교 군사 천뇌마제 방염.

젊어져서 주름이 사라진 그의 이마에 천(川)자가 새겨졌다.

연달아 들어오는 비보 때문이었다.

“뇌령마군, 멸령마군, 빙령마군이 연락 두절이다?”

“그렇습니다. 항상 오던 연락이 전부 끊겼습니다.”

“뇌령마군과 빙령이야 내가 임무를 맡겼으니 그것 때문에 연락이 늦는다고 해도, 멸령마군이 연락 두절이라…….”

“사람을 보내어 확인한 결과, 섬 전체가 시체로 뒤덮여 있다고 합니다.”

“혼령을 이용해서 만든 활강시들이 전부 당했단 말이냐? 그게 가능하다고? 아니, 그전에 그곳엔 천령강시도 있지 않으냐? 천령강시가 당했다고?”

“천령강시로 보이는 물체도 있던 것으로 보아 당한 것 같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정보망에 있는 문파들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는데?”

계속 탁자를 두드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수하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안 좋은 소식은 오늘 다 몰아서 오는 것 같았다.

“또 뭔가?”

짜증이 난 목소리로 물었다.

“북해빙궁이 본교를 생사 대적으로 공표했다고 합니다!”

“뭐? 가만, 그렇다는 얘기는 빙령마군이 당했다는 소리 아니냐!”

“그, 그런 것 같습니다.”

“당했다고? 그놈이? 그럴 리가 없는데? 뭐지? 사령마군 중 둘이 당했다고? 지금 이걸 믿으라고?”

현실 부정을 하면 계속 중얼거리는 방염.

젊어졌으니 머리가 더 잘 돌아가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고 있었다.

모든 생각이 일시에 정지된 기분이었다.

머리가 아파 오는데 또다시 누군가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듣기 싫었다.

하지만 수하는 그런 군사의 마음도 모른 채 자신이 가져온 정보를 고했다.

“긴급입니다!”

“또 긴급인가? 뭐냐, 왜 중원에서 우리를 치기라도 한다더냐.”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래야 보고를 받아도 최악은 아니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니.

하지만 방염의 착각이었다.

“어, 어찌 아셨습니까? 미리 알고 계셨던 것입니까?”

오히려 놀라며 반문하는 수하였다.

“뭐?”

군사 역시 되물었다.

“방금 들어온 급보인데 군사님께서 미리 알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역시 천기를 읽으신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봅니다.”

수하의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방염이었다.

“주, 중원에서 우리를 친다고? 정말로?”

“네! 무림맹에서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고, 총공격을 준비하고 있다 합니다!”

벌떡-!

“우리의 위치를 안다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는 없다!”

“구, 군사님.”

방염의 동공이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까 봐 일부러 대막에 자리를 잡았고, 온갖 진법을 주변에 다 깔아 두었다.

거기에 이곳이 보이지 않도록 신기루를 만드는 진법까지 이중 삼중으로 깔아 두었고, 이곳을 지키는 친위대와 정보원들은 제외한 나머지 부대들은 외부에 두어 운영하고 있었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이곳의 위치를 알고 온다는 것이다.

최근에 임무를 보낸 놈 중에 이곳의 위치를 아는 놈은 한 놈뿐이었다.

“혈마신대……. 그놈들이 배신을…….”

이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린 군사가 총동원력을 내렸다.

“남은 오마신대를 전부 소집하고, 원로들, 그리고 화령마군에게 이곳 위치를 알려 주고 당장 병력을 이끌고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너는 지금 당장 후방에 있는 교를 정비해라. 왠지 그곳으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알겠습니다.”

수하들에게 모두 명령을 내린 방염은 서둘러 교주 은마성을 만나러 뛰어나갔다.

***

무림맹 대(大) 회의실.

그곳에 무림맹의 모든 이들이 숨죽인 채 앉아 있었다.

개방 방주는 담선우에게 먼지가 나게 맞은 뒤에 질질 끌려 나갔다.

처음에 사람들이 말렸지만 이내 개방 방주가 삼세와 이간질을 하려 한 사실을 알고는 욕을 했다.

그것을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개방 방주 때문에 지금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여기저기 눈치만 보고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제갈군이 조용히 일어나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아무도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소생이 먼저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제갈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라도 이 고요함을 깨 주길 바라고 있던 참이었다.

“저는 제갈세가의 제갈군이라고 합니다. 저기 군사로 계시는 제갈현 숙부님의 조카이기도 하지요.”

“소와룡!”

제갈군의 명성은 이곳에서도 유명했다.

이유는 제갈현이 하도 자랑을 하고 다녀서다.

“누가 먼저 혈천교를 치자고 꼬드겼습니까?”

제갈군의 질문에 제갈현이 답을 했다.

“개방 방주다.”

역시나 짐작대로 그였다.

생긴 것부터 맘에 안 들더라니.

“하아, 그럼 위치를 알려 준 것도 그였습니까?”

“맞다. 개방은 정보를 다루는 조직. 그러니 믿을 수밖에.”

제갈현의 말에 수긍이 갔다.

무림맹에서 정보 수집과 정찰을 담당하고 있는 집단이 개방이었다.

온 중원에 퍼져 있는 수십만의 거지들을 이용한 정보망.

그것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랬기에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개방 방주의 말에 의심을 한 사람이 없었다.

“혈천교는 대막에 있습니다. 하지만! 진법에 가려져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곳을 찾았다고요? 삼세와 이간질을 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무림맹 창설을 하자고 꼬드기고 이번은 혈천교를 치자고 선동했지요. 아무래도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제갈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한! 혈천교의 전력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무림맹의 전력으로 그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제갈군의 신랄한 말에 제갈현이 발끈하며 일어섰다.

“말이 심하구나! 이 숙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또 기울여서 키웠다! 그런데 어찌 네가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느냐!”

제갈군은 저리 말하는 제갈현의 심정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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