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마진강이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주먹에 엄청난 마기를 불어넣어 천룡에게 날렸다.
“진마신권(眞魔神拳)!”
세상의 빛을 모두 집어삼킨 듯한 어둠이 온 세상을 덮었다.
그 어둠이 순식간에 마진강의 주먹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엄청난 기세로 발산되었다.
쿠아아아-!
세상의 모든 빛을 깨부술 것 같은 진한 어둠의 권강이 천룡을 향해 날아갔다.
천룡은 손을 태극 모양으로 휘저었다.
“음양금강벽(陰陽金剛壁).”
천룡을 향해 날아오던 주먹 모양의 검은 권강이 회오리치며 천룡이 휘두른 태극 모양의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에 마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 더 진지하게 해도 되겠군. 크크크.”
“언제든지 진지해도 되네.”
둘은 웃었다.
그리고 다시 맞붙었고 천지가 뒤집힐 정도로 엄청난 공세가 오갔다.
투콰콰콰-!
쩌정-!
콰콰쾅-!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저 멀리서 싸우고 있던 혈천교와 운가장의 무인들에게도 전해졌다.
“미친! 이게 뭐야!”
“저, 정말로 이것이 사람이 내는 힘이라고?”
“맙소사! 정말로 사부와 비교하면 뒤처지지 않는 기운이 맞네요.”
일순간에 전투가 정지되었다.
연달아 날아오는 충격파가 그들이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크으윽!”
단지 충격파일 뿐인데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타격을 받았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정말로 사부가 없었다면 중원은 그 마진강이라는 자에게 먹혔을지도 모르겠네요.”
태성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저쪽에 신경을 쓸 수는 없기에 고개를 돌려 혈천교를 바라보는 무광.
그런데 다들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주화입마로군.”
조금 전에 날아온 충격파에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혈천의 무인들이 주화입마에 빠진 것이다.
그때 저쪽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를 외쳤다.
“모두 집중해라! 다들 단약을 먹어!”
그 소리에 혈천의 무인들이 일제히 품에서 빨간 단약을 꺼내어 입에 가져갔다.
“젠장! 골치 아프게 됐네.”
“간만에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날뛰어 보죠.”
운가장의 무인들은 일제히 혈천교를 향해 달려갔다.
한편, 천룡과 마진강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마진강과 달리 천룡은 살짝 지친 기색이 엿보였다.
그 모습에 마진강이 말했다.
“아직 완벽한 상태가 아니로군. 하긴, 사실 이 정도도 기대를 안 했는데 기대 이상이긴 했네.”
“미안하군.”
천룡이 사과했다.
마진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크크크. 아닐세. 오늘은 너와 진정한 결투를 하러 온 것이 아니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둘 필요 없네.”
“그럼 나를 붙잡기 위해 온 것인가?”
천룡의 물음에 마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뭐, 그것도 있고 혹시나 나랑 맞붙으면 충격에 기억이 돌아올까 하는 기대도 있었지. 그래도 오길 잘했어. 자네와 수백 년 만에 이렇게 손을 섞으니 기분이 정말 좋군.”
그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네.”
호흡을 고른 천룡이 다시 공세를 취할 준비를 하자 마진강이 자세를 풀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세. 더 했다간 내가 참지 못할 것 같으니.”
사실 지금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개방하여 천룡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참아야 했다.
그것은 승리를 주겠지만, 자신의 갈증은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천룡 역시 지금 붙어 봐야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세를 풀며 말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 보려 하네. 어쩌겠는가?”
천룡의 물음에 마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맘대로 하시게.”
“저 아이들을 구하러 가지 않는 것인가?”
천룡의 물음에 마진강이 답했다.
“저들은 자네를 찾기 위해 만든 단체일 뿐. 자네를 찾았으니 이제 필요 없네.”
천룡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을 그저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마진강에게 분노한 것이다.
그런 천룡의 마음을 읽은 마진강이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자네는 여전하군. 이래서 나와 통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하니.”
천룡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데 마진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아! 하지 말게. 잔소리는 사양일세.”
그러고는 몸을 날려 저 멀리 사라지며 말했다.
“다음에 또 보세. 크하하하.”
마진강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던 천룡이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거 저 친구의 인내심이 떨어지기 전에 내 기억과 힘을 빨리 찾아야겠군.”
천룡은 느꼈다.
마진강이 지금 얼마나 초인적인 힘으로 참고 있는지를.
자신이 저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중원을 멸할 것이다.
그렇게 느껴졌다.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깊은 다짐과 함께 자신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천룡이었다.
***
은마성은 혈천교의 중심에 선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자가 오고 있었다.
과거 자신의 혈천교를 좌절하게 만든 장본인.
바로 무황 담무광이었다.
온몸에 피가 끓기 시작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은마성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느껴졌다.
정말로 강한 사람의 기운이.
눈을 뜬 은마성의 시야에 날아오는 무광이 보였다.
이윽고 은마성은 앞에 착지한 무광을 보며 웃었다.
그런 은마성을 보며 무광도 웃었다.
말하지 않아도 왜 은마성이 이러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오래 기다렸나?”
“크크크, 그렇지. 오래 기다렸지. 네놈을 내 손으로 죽이기 위해 말이야.”
은마성의 말에 무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하긴 나 때문에 너의 혈천교가 풍비박산이 났었지. 크크크.”
얄밉게 웃는 무광.
하지만 은마성은 동요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군. 호적수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뜻 모를 말에 무광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은마성이 웃으며 말했다.
“크크크. 신경 쓰지 말게. 친구.”
은마성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
은마성의 말이 사실이었다.
자신의 호적수라는 말.
무광 역시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보고 싶었다.
“그만 눈치 보고 재주껏 덤벼.”
은마성의 입에서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 더욱 진하게 웃음 짓는 무광이었다.
“내가 할 소리를 먼저 하는군.”
긴말은 필요 없었다.
은마성과 무광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내가 보여 줄 무공은 멸천마황공(滅天魔皇攻)이다! 크크크. 느껴 봐라!”
순식간에 은마성의 온몸을 짙은 마기가 감싸며 넘실거렸다.
“오냐! 나의 무공은 무극신공(無極神攻)이다.”
둘은 정말로 사생결단할 것처럼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수십 합.
수백 합.
수천 합.
전력을 다해 공격한 은마성.
그들의 공격으로 인해 주변의 지형이 변하고 있었다.
또한 공격으로 인한 진동이 사방을 뒤흔들고 있었다.
은마성이 먼저 내력이 고갈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광 역시 거친 숨을 내쉬며 은마성에게 말했다.
“헉헉! 중원 정복의 꿈은 버려라.”
“헉헉. 크크큭. 중원 정복이라…….”
“왜 웃는 것인가?”
은마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허탈하게 웃자, 무광이 물었다.
“나에게 내려진 명은 한 사람을 찾는 것이지 중원 정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때 그런 꿈을 꾼 적도 있었지. 중원을 통일하면 무슨 기분일까 하는……. 사실 눈앞에 있었다. 네 놈이 나타나기 전엔.”
“네가 찾는 그분은 나의 아버지다.”
무광의 말에 은마성의 두 눈이 커졌다가 이내 원상 복귀되면서 다시 웃었다.
“하하하. 어쩐지…… 평범하지 않더라니.”
은마성은 힘겹게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개운해 보였다.
“이제 우리의 마지막을 봐야겠지?”
은마성의 말에 무광이 허리를 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의 최후 초식일세. 이제 더 움직일 힘도 없네.”
“나 역시 마찬가지.”
무광의 무극무심권(無極無心拳)과 은마성의 혈신강림(血神降臨)이 충돌했다.
그 파괴력에 거대한 광구가 사방을 덮쳤다.
잠시 후, 바닥에 쓰러진 채 눈을 감고 있는 은마성.
그런 은마성의 귀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말이 들려왔다.
“가라.”
잘못 들은 것인가?
눈을 뜨고 무광을 바라보는 은마성.
“가라고.”
그 말에 은마성이 발끈하며 없는 기운을 모두 끌어모아 일어섰다.
“지금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그 모습에 무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팔팔하네. 한 판 더 할까?”
무광의 말에 은마성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이내 피식 웃었다.
“이런 거였군. 왜 그분이 그토록 오랫동안 한 사람을 기다렸는지 알 것 같군.”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 강해져서 와라.”
“크크크. 내가 두렵지 않은가? 나는 중원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혈천교의 교주다.”
“두렵지 않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중원의 아이들을. 그러니 보내 주는 것이다.”
무광의 눈빛은 굳건했다.
그 모습에 은마성이 바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그동안 키워 왔던 혈천교가 몰락하고 있었다.
수하 대부분은 이미 전투 불능이 되어 있었고, 군사는 젊은 것들에게 포위되어 공격당하고 있었다.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은마성이었다.
사실 오래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혈천교의 역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은마성의 시선을 같이 바라보던 무광이 말했다.
“쟤들이 중원의 미래다. 너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쳤어도 안 됐을 거다. 그리고 네가 살아 있으므로 저들은 더욱더 정진할 것이다. 중원을 지키기 위해.”
무광의 말에 은마성이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나를 저들의 자극제로 삼겠다는 것이군. 좋다. 되어 주지. 그리고 기억해라. 오늘의 빚은 반드시 갚아 줄 테니.”
은마성의 말에 무광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제든지!”
그런 무광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며 저 멀리 아직 싸움이 한창인 혈천교 무리를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은마성이었다.
쓰러져 가는 혈천교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훌훌 털어 버리고 어디론가를 향해 경공을 펼치며 날아가는 은마성이었다.
잠시 은마성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조방과 진천이 힘을 합쳐 혈천교의 군사를 공격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들! 내가 바로 천마대제다! 건방진 것들아!”
군사가 천마신공을 뿌리며 조방과 진천을 공격했다.
조방과 진천은 오랜 시간 동안 둘이 함께 수련해서인지 합격술이 예술의 경지까지 올라 있었다.
조방의 화룡현신과 진천의 무신현상이 결합하며 힘이 중첩되었다.
중첩된 힘은 군사를 향했고 군사는 그것을 막지 못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군사가 있던 곳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곳의 먼지가 서서히 걷히며, 각혈을 하며 천천히 쓰러져 가는 혈천교의 군사가 보였다.
이로써 남은 한 사람까지 모두 쓰러지며 오랫동안 중원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혈천교가 그 역사를 마무리하였다.
***
-혈천교가 운가장의 힘에 무너졌다!
-이제 세상의 중심은 무황성이 아닌 운가장이다!
운가장에 관한 엄청난 폭풍이 다 지나가기도 전에 다시 터진 엄청난 소식.
혈천교의 멸문이 온 세상에 전해진 것이다.
사방에서 운가장에 사람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운가장 주변은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 찼고, 연일 천룡을 찾는 함성이 이어졌다.
하지만 운가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삼세의 무인들만이 그곳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천룡은 혈천교의 무인들을 나누어 무황성, 구룡방, 마교 등에 보냈다.
그곳에서 이들을 관리하게 한 후 다시 길을 떠난 것이다.
제갈군의 조언이 있었다.
“주군, 지금 가면 아마 난리가 날 겁니다. 당분간은 장원 쪽은 안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갈군의 설명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아, 나는 정말로 조용히 살려고 나온 건데.”
그 말에 다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 조용히 사신다고요? 그게 정말로 가능할 거라 생각하신 건 아니죠?”
“왜? 안 되는 거였냐?”
“당연하죠! 여기 보세요. 여기에 있는 애 중 평범한 애가 있나.”
무광의 말에 둘러보니 정말로 평범한 이가 없었다.
삼황과 칠왕십제, 화룡지체와 천무지체. 그리고 천하삼세의 무인들.
천룡은 인정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이루어질 수 없는 거였군.”
빠른 포기를 하는 천룡이었다.
천룡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 이제 시작이다. 혈천교는 마진강 그 친구의 일개 조직이었어. 앞으로 어떤 세력이 또 나타날지 모르니 너무 마음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