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천룡의 걱정 어린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짐작은 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나 역시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더욱 정진할 것이다.”
천룡이 수련하는데 자신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희도 죽어라 수련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천룡이 안심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당분간은 운가장에 못 갈 것 같으니 이곳에서 야영하면서 좀 쉬자.”
“좋습니다! 애들아! 준비하자!”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는 천룡이었다.
***
한편, 혈천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에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남녀로 이루어진 모임.
그들은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로 마진강의 진정한 힘.
군자회였다.
군자회(君子會).
사군자를 따온 이름이었다.
그 이름답게 그들을 지칭하는 것 역시 사군자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매난국죽(梅蘭菊竹).
매(梅)를 상징하는 사람은 여인이었다.
세상에는 사라졌다고 알려진 이화궁(移花宫) 궁주 옥영(玉英).
난(蘭)을 상징하는 사람은 단목세가(端木世家) 가주 단목천(端木天)이었다.
국(菊)은 태양궁(太陽宮) 궁주 곽정(郭貞).
마지막으로 죽(竹)은 중원 상권을 음지에서 좌지우지하고 있는 황금천(黃金天)의 천주 만금충(萬金充)이었다.
이들은 마진강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 받은 비공식적인 제자들이었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이들을 더욱더 강하게 만드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마진강에게 받은 특이한 능력들.
그것이 이들의 진정한 무서움이었다.
“주군께서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나요?”
옥영이 듣는 사람이 황홀경에 빠지게 만드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없었다.”
곽정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끌끌끌. 주군께서는 세상사에 관심이 없으시다.”
만금충이 웃으며 말했다.
“주군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오로지 두 개뿐이지. 바로 운천룡이라는 자와 오행체.”
단목천이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 단목천의 얼굴을 홍조가 어린 얼굴로 연신 바라보는 옥영이었다.
“끌끌. 운천룡이라는 자는 정말로 강한가 보군. 그러니 주군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인가?”
“모를 일이지.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으시겠는가.”
“흥! 아무리 강해도 주군을 상대할 사람은 없어요! 천 오라버니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시나요? 주군께서 왜 관심을 가지시는지?”
옥영이 감미로운 목소리로 단목천에게 묻자 단목천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도 모르지. 주군께서 말을 해 주지 않으셨으니. 그저 찾아라. 명하셨을 뿐.”
“일단 운천룡이라는 자는 대놓고 세상에 나왔으니 딱히 찾고 자시고 할 필요는 없어졌고……. 이제 남은 건 오행체인가?”
곽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찾아낸 오행체는 총 세 명이에요.”
“금방 찾겠군. 벌써 세 명이나 찾았지 않은가.”
곽정의 말에 다들 정색을 하며 말했다.
“벌써라니. 그들을 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들인 공을 생각하게.”
“끌끌. 거기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금액도 생각해 주시게.”
옥영은 그런 그들의 말을 제지하며 말했다.
“문제는 그중 둘이 운천룡 밑에 있어요. 하나는 소림에 있고요.”
“운가장에 둘? 하나는 무당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운가장에서 지내고 있더군. 거의 뭐 운가장 소속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네.”
“해서 그들을 빼내려면 운가장과 충돌은 불가피해요. 저희가 끌어내려 해도 끌려 나올 자들도 아니고요.”
옥영의 말에 다들 심각해졌다.
혈천교의 멸문, 그리고 그에 따른 소문을 종합하면 운천룡과 거기에 관련된 사람들을 보면 절대 만만한 세력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뭘 그리 고민하나? 쉬웠다면 우리에게 맡기지도 않으셨겠지.”
“끌끌. 나름대로 재미가 있겠는데 뭘 그리 심각들 하신가?”
옥영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나타난 애들은 잠시 신경을 꺼 두죠. 그들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나타낸 애들한테 신경은 끄고 나머지를 찾죠.”
옥영의 말에 만금충이 입을 열었다.
“우리 애들에게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광동(廣東) 쪽에 특이한 능력을 갖춘 아이가 나타났다더군.”
“특이한 능력?”
“끌끌.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화타(華佗)의 재림이라며 난리가 났지.”
“치료를 한다고? 그렇다면 설마, 천용지체(天用之體)?”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확률이 높지.”
“정말로 오행체가 이렇게 세상에 전부 나오고 있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단목천이 놀란 목소리로 말하자 곽정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답했다.
“주군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지.”
“끌끌. 세상에 어떤 혼돈이 오려고 그러는 것인지. 나는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된다네.”
“호호, 주군께서 계시는데 왜 저희가 그런 걱정을 하나요? 저 중원 놈들이 걱정해야지.”
“옥영 말이 맞다. 단목천 너는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 그저 주군을 믿어라.”
곽정의 말에 옥영이 발끈했다.
“곽정 오라버니! 왜 천 오라버니한테 뭐라 하세요? 걱정돼서 그러실 수도 있죠!”
“아, 아니, 난 그저…….”
계속 무뚝뚝하게 말을 하던 곽정의 음성이 처음으로 당황해했다.
“그만. 광동 쪽은 내가 가까우니 내가 찾아보지.”
단목천의 말에 다들 단목천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주군께 보고하러 다녀오지.”
“좋네! 이제 그만 일어나지.”
“네! 천 오라버니 다음에 봬요.”
“끌끌. 이제 우리가 나설 차례가 오는 것인가? 끌끌끌.”
단목천이 물었다.
“은마성은 완전히 사라졌는가?”
“그렇다는군. 크크크. 형편없는 자식. 어딘가에서 질질 짜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마지막으로 은마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오지 않았다.
***
혈천교가 사라지고 무광에게 패한 은마성은 갈 곳이 없었다.
마진강에게 가려 했지만, 그의 성격상 실패를 한 수하를 살려 둘 것 같진 않았다.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몸을 피한 곳이 천축이었다.
그나마 시선을 피할 수 있고, 이곳에 있는 밀교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밀교에선 은마성을 열렬히 환영했다.
자신들과 함께한 세월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밀교에 온 뒤로 은마성은 방 안에서 그동안의 나날들을 정리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을 때 한 승려가 조용히 찾아왔다.
“압도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면 하시겠습니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은마성에게 밀교의 승려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해왔다.
순간, 절대 떠지지 않을 것 같던 은마성의 눈이 떠졌다.
그의 눈은 격정에 차 있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말이 아니던가.
압도적인 힘.
그 누구보다 갈구하고 원했다.
은마성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아니, 그런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대들이 얻었어야지 왜 나에게 권하시오?”
그러자 승려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안 됩니다. 그 힘을 감당할 수 있는 마기도 없고요.”
“그게 무슨 말이오?”
“신의 힘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지요. 교주께서 저희 제안을 받아들이신다면 저희는 소환술을 시도해 볼 수 있으니 좋고, 교주께서는 절대적인 힘을 얻으실 수 있으니 좋겠지요.”
“하하, 그 말을 지금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오?”
“물론, 실패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여쭙는 것입니다.”
승려의 말에 은마성의 표정이 굳었다.
“실패를 하면 어찌 되오?”
“몸이 터져서 죽습니다.”
“…….”
너무도 솔직했다.
그런데 그 솔직함이 은마성의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가 되었다.
무광에게 지고 혈천교가 사라진 마당에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었다.
무엇보다 마진강에게 받아 보지 못한 애정이 너무도 사무쳤다.
군자회 일원들에게 언제나 나긋나긋했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게 하인 취급을 당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마진강으로 하여금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었다.
“얼마나 강해지오.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성공을 해 본 것이 아니어서. 준비는 딱히 할 것이 없습니다. 그저 몸만 있으면 됩니다.”
은마성의 미간이 좁혀졌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천천히 생각을 하고 알려 주십시오. 딱히 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으니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은마성에게 말을 하고 합장을 하며 나가려는 찰나, 은마성이 그를 잡았다.
“하겠소.”
“네?”
은마성의 대답에 승려가 오히려 놀랐다.
이렇게 금방 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겠소! 어차피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오. 그러니 내 인생 마지막 도박을 해 볼 참이오.”
“저,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실패할 확률이 구 할에 가깝고 몸이 터져서 죽는다니까요?”
오히려 승려가 말리는 말투로 말했다.
“말하지 않았소. 이대로 있다가 내가 먼저 자진할 판이오. 해 주시오.”
소환에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강력한 마기였다.
마계의 힘을 소환하는 일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마기였다.
적당한 마기를 지닌 자는 안 되었다.
적어도 천마급의 마기를 지닌 자여야 했다.
그렇다고 천마를 잡아 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포기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러던 중에 은마성이 찾아왔고 이렇게 넌지시 권해 본 것인데 그가 허락한 것이다.
승려는 일단 계시라고 말을 하고는 재빨리 보고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은마성은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심신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사람이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서서히 숨소리가 조용해지며 깊은 명상 속으로 빠져드는 은마성이었다.
한편, 은마성의 허락을 받은 승려는 밀교의 교주 활불(活佛)을 찾았다.
“활불 님! 은마성 대협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뭐라? 정말인가?”
“네! 지금 확답을 듣고 오는 길입니다.”
“허허, 하늘이 돕는구나. 이리 술술 풀리는 것을 보니 이번엔 성공할 수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하하하하, 우리의 염원이 풀리는 것인가? 어서 준비를 하거라! 어서!”
“네!”
“하하하, 마계의 문이 열리면 그분이 내려오신다 하였다. 우리를 구원해 주기 위해서 제석천 그분이 말이야.”
환희에 찬 얼굴로 중얼거리는 활불.
세상의 구원자가 강림하려면 먼저 세상에 재앙이 닥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얼굴이 광기로 뒤덮혀 갔다.
***
파앙-!
슝-!
파팡-!
운가장의 연무장에선 연신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가연이 그곳에서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열심히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처음 천룡이 무공을 가르쳐 준다고 했을 때는 그저 호신 무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천룡이 전수해 준 무공은 상승 무공이었다.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천룡이 알려 주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 익혔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무공을 수련하면 할수록 무언가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동작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였다.
지금도 그랬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파팡- 파파팡-!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움직이는 손과 발.
누가 보면 평생을 무공만 수련한 사람으로 착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무공을 정식으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천룡이 그녀에게 전해 준 무공은 월하천무신공(月下天武神功).
과거 그녀와 이름이 똑같았던 천룡의 기억 속의 유가연의 무공이었다.
천룡이 이 무공을 전해 준 이유는 그녀의 무공 수련에도 있었지만, 그녀가 환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어 전해 준 것이다.
혹시라도 이 무공으로 인해 전생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천룡의 바람이 닿았을까?
그녀는 최근 경지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천룡이 준 천령신단의 효과와 천룡의 추궁과혈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의 깨달음의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마치 알고 있는 무공이라는 것처럼.
지금도 그녀는 무아지경에 수련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움직이는 그녀의 몸과 달리 그녀의 머릿속은 다른 기억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콰쾅-!
잠시 후 연무장의 절반이 날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원의 무사들은 경악하고 있었다.
“저, 저게 정말 유 국주님이라고?”
“미쳤네. 와…… 아니, 어찌 인간이 저리 빨리 강해질 수 있지?”
“정말로 국주님이 엄청난 무공 천재 이런 거였나?”
“그보다 저 넘실거리는 기운을 봐. 강기잖아! 말도 안 돼!”
“저 경지가 단 몇 달 만에 가능한 건가?”
그 말에 다른 무사들이 고개를 격하게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절대로 사람이면 저게 가능할 리가 없네.”
경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유가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알고 있는 유가연은 무공은커녕 여리디여린 정말 일반 여자였다.
그런데 지금 보라.
저 단단한 청강석이 깨지다 못해 터져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