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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화 (166/200)

166화

이런 이들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가연은 깨진 바닥 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무사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국주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나 보다! 모두 사방 경계 철저히 해라!”

운가장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그녀의 주변을 에워싸고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환한 빛이 그녀의 몸에서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의 몸은 공중에 높이 떠올랐고, 사방으로 퍼졌던 빛들이 다시 그녀의 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심상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억의 홍수 속에 있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이어진 깨달음.

엄청난 기의 폭풍이 운가장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으윽! 대단하다! 이런 기운이라니!”

“유 국주님이 정말 맞으신 건가?”

경악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유가연의 신형이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눈을 감은 채 땅에 착지한 그녀가 눈을 떴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전의 유가연과는 많이 달랐다.

유약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했던 그녀.

하지만 지금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절대자의 모습이었다.

엄청난 위압감이 그녀의 몸에서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았다.

왠지 모를 위압감에 주변의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보았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고운 아미가 여러 번 찡그렸다가 펴졌다가를 반복하더니 이내 눈을 떴다.

“그랬군. 가가께서 나를 잊지 않고 찾아주셨구나.”

여전히 곱지만, 힘 있는 목소리.

“모든 것이 기억났어.”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대법은 대성공이었군. 그리고 나의 낭군을 무사히 만났다.”

유가연의 눈이 주변의 수하에게 가자, 수하가 재빨리 달려와 포권을 하며 말했다.

“국주님! 대공을 축하드립니다!”

“대공을 축하드립니다!”

운가장에 울려 퍼지는 축하의 목소리.

그들의 말에 유가연이 웃으며 말했다.

“고맙군.”

너무도 자연스러운 하대.

지금까지의 유가연과는 너무도 달랐다.

원래 하대를 하긴 했지만, 전에는 무언가 눈치를 보며 하대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가가께선 아직 소식이 없으신가?”

유가연의 물음에 수하가 말했다.

“지금 오고 계신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수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유가연.

“나중에 다시 오겠다.”

그리 말하고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유가연이었다.

그 모습에 남아 있던 운가장의 무사들이 경악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 맙소사! 봤어? 그 엄청난 위압감?”

“우와! 성주님이 보여 준 위압감과 같은 느낌이었어.”

“예전의 국주님이 더 좋았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국주님도 놀라서 그러신 것이 아닐까?”

다들 복잡 미묘하고 슬픈 눈으로 유가연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

운가장을 찾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겨우 돌아온 천룡은 많은 보고를 받았다.

천룡이 보이지 않자, 수많은 문파에서는 축전들과 선물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찌나 많이 보냈는지 연무장이 선물들로 가득 찰 정도였다.

그리고 자잘한 보고들이 이어졌다.

천룡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모든 보고를 다 듣고는 천룡이 물었다.

“우리 가연이는 무공 수련 열심히 하더냐?”

천룡의 물음에 보고하던 수하가 화들짝 놀라고 말했다.

“저, 그게…….”

말을 못 하고 쭈뼛거리는 수하.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려는 그때 문이 열리며 유가연이 들어왔다.

“가가!”

여전히 환하게 웃는 그녀.

그리고 천룡에게 달려와 안겼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그녀를 토닥이며 웃는 천룡.

“가연아, 잘 있었어?”

그러면서 수하에게 이만 나가 보라는 손짓을 했다.

“하하, 국주님도 참! 저희는 안 보이시나 봅니다.”

무광이 웃으며 말했지만 유가연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윽고 그녀는 천룡의 품 안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작은 흐느낌은 점점 커졌다.

이윽고 품속에서 대성통곡을 하는 그녀.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천룡과 사람들이었다.

그중에 천룡이 가장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지만, 너무도 서럽게 울고 있기에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지금은 그녀의 등을 토닥일 뿐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나온 그녀의 말.

“가가!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니, 자신이 나갔다 온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이리 말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것도 마치 몇십 년을 못 보다가 만난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녀가 이상했다.

“가, 가연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당황한 천룡이 그녀를 달래 주며 물었다.

그러자 유가연이 고개를 들어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았다.

눈에 각인할 것처럼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보는 그녀.

“가가…… 고마워요. 살아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이렇게 제 앞에 다시 와 주셔서 고마워요.”

유가연의 말에 천룡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지금 유가연의 말은 일반적인 대답이 아니었다.

“서, 설마?”

천룡의 반응에 유가연이 눈치를 챈 듯이 바로 대답을 했다.

“맞아요! 저예요. 가연이! 검각(劍閣)의 각주.”

천룡표국의 국주가 아니라 검각의 각주라고 답하는 그녀.

“저, 정말로…… 환생을 한 거야?”

천룡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환생이라기보단 대법을 사용했어요. 이승에서 계속 머물도록.”

“유마회혼대법?”

천룡의 말에 유가연의 눈이 커졌다.

“가가께서 어찌 그걸…….”

오히려 유가연이 놀랐다.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천룡이 사라진 후였기 때문에 천룡이 알 리가 없었다.

한편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지금 유가연의 모습은 너무도 낯설었다.

평소 자신들이 알고 지내던 유가연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유가연의 입에서 나온 특정 단어를 들었다.

검각(劍閣).

세상에서 사라진 문파.

여인들로 이루어진 문파로 과거 천마대제가 유일하게 진땀을 흘리며 상대했다는 여인.

제갈군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알기론 중원 역사에 존재하는 수많은 절대자 중에 여인의 몸으로 그 당시 중원 제일인이었던 자. 그분의 성함이 유가연이었는데…….”

제갈군의 말에 다들 놀란 얼굴로 다시 유가연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을 본 유가연은 천룡의 품에서 나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래요. 나는 검각의 각주. 사람들이 나를 검후(劍后)라 불렀죠. 그리고 대법을 이용해서 혼을 이승에 붙잡아 두었죠. 도박이긴 했지만……. 이렇게 가가를 만났고 이제 모든 기억도 돌아왔으니 성공인 셈이네요.”

철혈검후(鐵血劍后) 유가연.

천마신교에게 짓밟히고 있던 중원에 유일한 희망.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여인.

어느 날인가 그녀는 검각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자취를 감췄다.

그녀가 사라진 시기가 공교롭게도 천마대제와 천마신교가 봉문을 한 후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천마신교를 무찌른 것이 그녀가 아니냐는 생각을 했다.

천마대제와의 싸움에서 크게 다친 그녀가 재빨리 검각에 후계를 넘기고 은거를 했다는 둥, 너무 심하게 다쳐 세상을 떠났을 거라는 둥 여러 가지 소문이 퍼졌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다른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말도 안 된다며 믿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운가장이다.

장주부터가 말이 안 되는 존재였기에 왠지 믿음이 갔다.

기억이 돌아온 그녀.

당황하던 사람들은 이내 환한 표정으로 변하며 축하했다.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국주님!”

하지만 천룡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가가?”

그런 천룡에게 유가연이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다가가 물었다.

“가가, 왜 그러세요?”

그러자 천룡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 나는 아직 너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 않아.”

정말로 슬픈 표정으로 말하는 천룡.

그 모습에 유가연이 웃으며 말했다.

“절 기억 못 하셔도 좋아요. 이렇게 옆에 계신걸요. 그리고 여전히 제 낭군이시고요. 전 그거면 만족해요.”

그러고는 천룡을 꼭 안아 주는 그녀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로 고마워요. 이렇게 살아 계셔 줘서.”

천룡은 그녀의 품속에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다들 따뜻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분위기가 안정되자 무광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정말로 검각의 각주셨어요? 검후예요? 아버지는 어찌 만나셨어요?”

궁금증이 폭발했다.

무광의 질문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이었기에 다들 초집중하며 유가연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도 잘 기억이 안 나서…… 네 얘기를 들으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니 들려줘.”

천룡까지 나서자 유가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들려드릴게요. 그런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말을 하다 말고 탁자를 바라보는 그녀였다.

“상 위에 아무것도 없네요? 목도 마르고 할 텐데?”

그리고 넌지시 무언의 압박을 하는 그녀.

“뭐, 뭐 해? 빨, 빨리 한 상 차려!”

무광이 다급하게 외쳤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룡의 과거, 그리고 유가연의 과거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후, 탁자 위에는 산해진미와 명주들이 줄지어 올라와 있었다.

“정말이었네요.”

“뭐가?”

“저희가 알던 국주님이었다면 술을 절대 마시지 않으셨을 텐데.”

“그렇지. 그런데 뭐가 정말이라는 거냐?”

“아! 제가 읽은 내용 중에 과거 검후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엄청난 애주가셨다고…….”

그리 말하며 유가연의 눈치를 살피는 제갈군이었다.

제갈군의 말에 유가연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어휴, 기억이 없을 때는 이 좋은 것을 왜 마시지 않고 산 거야!”

그러면서 모든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가가! 저희의 재회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잔해요.”

유가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하자 천룡이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다들 따라서 잔을 들고 순식간에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우아! 이거 무슨 술이에요? 엄청나네.”

“내가 직접 담근 술이야. 가연이 넌 술을 못 하니 그동안 안 내줬는데…….”

“정말요? 와! 억울하네. 왜 기억을 늦게 찾아서…….”

진심 억울한 표정으로 술병을 노려보는 유가연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술과 눈싸움을 한 유가연.

“이제 말씀해 주세요. 사부와 처음에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태성이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유가연을 재촉했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가가를 처음 만난 것은…….”

유가연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철혈검후(鐵血劍后) 유가연.

그녀는 중원에서 유일하게 천마신교의 교주 천마대제에 대항할 수 있는 무인이었다.

천마대제가 이기지 못한 단 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고, 그런 그녀를 중심으로 무림은 똘똘 뭉치고 있었다.

당연히 천마신교는 그런 그녀를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그 결과 유가연은 함정에 빠졌고, 그들을 피해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헉헉! 젠장! 독한 것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기저기에 난 상처들을 바라보는 그녀.

치료할 시간조차 없었다.

검에는 적들을 베어 넘기고 남은 피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문제는 지쳐 가고 있다는 것.

피도 많이 흘렸고 내공 또한 대부분 소진한 상태였다.

적들은 유가연을 잡기 위해 한 번에 공격하지 않았다.

야금야금 유가연의 내공을 깎아 내기 위한 공격을 하고 있었다.

깊은 산으로 도망을 온 유가연은 잠시 한숨 돌리기 위해 근처의 바위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언제 적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앉아서 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해야 했다.

유가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의 눈에 지나가는 뱀이 눈에 들어왔다.

파악-!

순식간에 움직여 뱀을 잡은 그녀는 그대로 뱀의 머리를 쳐 내고 꿈틀거리는 몸째로 입안에 욱여넣고 베어 물었다.

우적우적-!

뱀의 뼈까지 씹으며 배를 채우는 그녀.

그녀의 눈은 여전히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내력 소진이 심해 기감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펼칠 수 있다고 하여도 참아야 했다.

조금의 내력이라도 아껴야 했기에.

우적우적-! 꿀꺽-!

비록 생고기지만 음식이 들어가자 조금 힘이 나는 듯했다.

입으로 흘러내리는 뱀의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고는 다시 뱀의 몸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려는 찰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화들짝 놀란 그녀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어이쿠!”

그곳을 보니 등 뒤에 나무집을 한가득 메고 있던 남자가 놀라며 바닥에 넘어지고 있었다.

“넌 누구냐!”

유가연의 물음에 남자가 대답했다.

“저, 전 여기서 나무 베어 파는 운천룡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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