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200)

167화

유가연은 넘어져 있는 천룡을 유심히 살폈다.

전혀 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이 엄청나게 지쳤다는 것이 와닿았다.

‘하아. 정말로 위험한 상태구나. 이런 일반인의 기척조차 감지를 못 한다니…….’

고개를 흔들던 그녀의 눈앞에 새하얀 주먹밥이 쓱 들어왔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새 다가온 천룡이 자신 앞에 주먹밥을 내민 것이다.

“아무리 배가 고프셔도 생고기는 몸에 좋지 않습니다. 이거라도 드세요.”

그리고 그녀를 여기저기 살피는 천룡.

나뭇짐을 내려놓고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내밀었다.

“이거 상처에 좋은 약입니다. 바르시고요.”

얼떨결에 천룡이 내미는 것을 모두 받아 든 그녀.

“너, 너는 내가 무섭지 않으냐?”

지금 그녀의 모습은 온몸에 피범벅에 예민한 상태라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전혀 거리낌 없이 다가온 이 남자.

천룡은 웃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는 말했다.

“전혀요. 제가 또 위기에 빠진 사람은 그냥 못 지나치거든요.”

남자의 말에 유가연은 어이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왠지 이 남자가 밉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산은 위험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 힘없는 나무꾼이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대로 이자를 보내면 자신을 추격하여 올라오는 저들이 살려 줄 것이냐였다.

아니었다.

‘하필이면…….’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과 함께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주먹밥과, 몸에 바르는 고약(膏藥)을 보았다.

“하아, 미안하구나. 나 때문에 너까지 위험에 빠지겠구나.”

유가연의 사과에 천룡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제 생각대로 착하신 분이군요.”

“뭐라?”

“알고 있습니다. 이 산에 올라오는 사람들. 진득한 살기를 머금고 올라오고 있는 것도.”

“그것을 어찌?”

“느껴지거든요. 그들의 기운이. 그리고 그들의 심성이.”

천룡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드시고 어서 상처에 약을 바르세요.”

무덤덤하게 말하는 천룡.

유가연은 지금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 너는 무인이더냐?”

자신이 지금 너무 지쳐서 저자의 기운을 못 느끼는 것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한 가지는.

‘나보다 고수?’

그럴 리 없었다.

중원에서 자신 위에 있는 고수는 없었으니까.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수백에 달하는 무리가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천룡에 신경을 집중하느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아차! 어, 어서 피하거라! 여긴 내가 맡겠다!”

그렇게 말하며 천룡이 준 주먹밥을 한입에 욱여넣는 그녀였다.

입이 터질 정도로 부푼 채 오물거리며 나타난 적들을 바라보는 그녀.

그 모습에 천룡이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크크! 검후, 고작 도망을 가신 곳이 여기였소?”

대답을 못 하는 유가연.

입안에 밥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대단하시군. 이 와중에도 밥을 먹다니. 과연 대제께서 끝까지 경계하는 이유가 있었소.”

꿀꺽-!

입안에 있던 것을 삼키고 난 뒤 입을 여는 유가연이었다.

“호호호, 너희 마교의 대가리는 내가 무서워서 네놈들 등 뒤에 숨어 있구나. 사내놈 망신은 다 시키고 다니고 있구나.”

유가연의 말에 그곳에 나타난 무인들이 일제히 부들거렸다.

“크큭. 그래그래. 그렇게 계속 떠들거라. 너는 모르겠지만 네년의 몸에 난 상처들은 그냥 상처들이 아니다.”

선두에 있는 남자의 말에 유가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독이라면 그녀의 내력이 바로 반응했을 것이다.

“네년을 잡기 위해 특별한 독을 발라 두었다.”

남자의 말에 유가연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그런 말로 나를 흔들려 하다니. 미안하지만 내 몸은 아무 이상이 없구나. 너희들은 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그리 말하며 뒤를 자꾸 신경을 쓰는 그녀.

그런데 웬걸.

천룡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이들의 신경이 모두 자신에게 쏠렸을 때 도망가게 하려 한 건데 멀뚱멀뚱 서 있었다.

답답한 유가연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거야! 도망가라고 했잖아!”

유가연의 소리에 남자가 뒤를 보았다.

“하하하하. 이런, 이런, 불청객이 있었나? 잡아 죽여라.”

남자의 말에 천룡이 도망갈 수 있는 길목마저 막는 그들.

유가연이 이를 악다물며 말했다.

“일단 이놈들을 모두 처리하고 길을 터 주겠다. 그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거라.”

자신의 검을 세차게 움켜쥐고 그들을 상대하려고 내력을 집중하는 순간.

“쿨럭!”

후두둑-!

유가연이 피를 토했다.

“이, 이게 무슨?”

심지어 내력도 모이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대와 같은 절대 지경의 고수들을 상대하기 위해 교에서 만든 특별한 독이오. 조건이 여러 가지 독들을 그대의 몸에 쑤셔 넣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그제야 그들이 자신의 목숨 따위는 신경을 쓰지 않고 어떻게든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려 한 이유를 알았다.

“크크크, 그래도 우리 천마신교를 이렇게까지 괴롭히다니 그것은 인정하겠소. 훗날 역사에도 그대의 이름을 남겨 주지. 신교가 마지막까지 골치를 썩였던 절대 고수라고.”

남자의 말에 유가연이 입가에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거…… 정말 고맙군.”

검에 몸을 지탱한 채 천마신교의 무인들을 노려보는 유가연이었다.

“처리해라.”

남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일제히 유가연을 공격하는 그들이었다.

유가연이 다급하게 잘 모이지도 않는 내력을 억지로 끌어올려 대응하려 하려는 그 순간.

“그래도 우르르 몰려와서 여인을 괴롭히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나직하지만 모두에게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

약간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가 그곳에 울려 퍼졌다.

유가연에게 다가가던 무인들이 그 순간 멈췄다.

엄청난 기세가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가연 역시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천룡이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냥 단순한 은원 관계인가 싶었더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천마신교라.”

천룡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그대는 누구인가?”

남자가 물었다.

“나? 이 산에서 나무 하는 나무꾼.”

“그런 말을 믿으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느낀 남자의 얼굴이 붉어지고 있을 때 천룡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네놈을 혼내 줄 정의의 사도.”

그와 동시에 진각을 밟는 천룡.

쾅-!

땅을 타고 이동한 기파는 그곳에 있는 모든 무인의 자유를 뺏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압도적인 힘이었다.

이런 자가 있다니 그곳에 있는 마교 무리가 모두 충격을 받은 채 서 있었다.

“들리는 말에 천마대제라는 놈이 많이 나댄다지? 안 그래도 날 잡아서 찾아가 볼까 했는데……. 이렇게 명분을 주는구나?”

“그, 그대는 누구요?”

선두에 있는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말했잖아. 나무꾼이라고. 사람 말을 잘 안 듣는 부류구나? 일단 여기 있는 놈들부터 처리하고 천마인지 뭐시긴지를 잡으러 가야겠군.”

천룡이 자신의 내력을 풀었다.

쿠오오오오-!

천룡의 몸 주위로 기의 회오리가 피어올랐다.

“크윽!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내력이라니!”

남자가 경악하며 말했다.

유가연 역시 너무 놀라서 자신의 몸속에서 퍼지고 있는 독을 제어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런 유가연의 몸에 한줄기 상쾌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그 기운은 유가연의 몸 안에 있던 독들을 순식간에 몰아내고, 진탕되어 엉망이 된 유가연의 혈도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편안해진 것을 느낀 그녀였다.

화들짝 놀라며 앞을 바라보자 엄청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신을 쫓아오던 무인들이 일제히 공중에 떠오른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허, 허공섭물(虛空攝物)을 저리…….”

사람이면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 하나를 저렇게 들어 올리려면 얼마나 많은 내력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것을 한 명도 아니고 수백에 달하는 무인들에게 전개하고 있었다.

“세상에 네놈들에 대한 소문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한번 찾아가려는 참이었다. 일단 네놈에게 벌을 내린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

무슨 벌을 준단 말인가?

빠지지직-!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유가연이 천룡을 바라보자 그의 몸에서 뇌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헉! 뇌, 뇌기! 마, 말도 안 돼! 인간이 저렇게 강한 뇌기를 품고 있다고?”

천하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기운.

그렇지만 그것을 다루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기운.

심지어 천룡의 몸에서 나오는 뇌기는 일반적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아는 한 저렇게 강력한 뇌기는 낼 수 없었다.

공중에선 당황한 얼굴로 천룡을 바라보던 무사들이 뇌전을 보며 기겁을 했다.

“천뢰(天雷).”

빠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아악!”

“아아아악!”

“끄아악!”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강력한 뇌전이 하늘에 그냥 떠 있는 것도 아니고 둥글게 공처럼 모인 사람들 사이로 끊임없이 뿌려지고 있었다.

극한의 고통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단 한 사람.

선두에 있던 남자만 바닥에서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넌 아는 게 많을 것 같아서 일부러 남겨 뒀다. 아는 것이 정말로 많아야 할 거야.”

천룡의 나지막한 말에 혼자 남은 남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의 모든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발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질문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유가연은 경악을 하며 그 장면을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몸 상태가 최상이었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절대 고수.

그런 자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그녀의 눈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천마신교에 의해 대부분이 점령당한 무림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이.

그런 유가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룡은 여전히 벌을 내리고 있었다.

죽지 않은 정도로 벌을 준 뒤에 땅 위에 내려온 무인들.

그 누구도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무던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천룡이 남은 한 남자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이제 우리 대화를 해야지?”

천룡의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너도 살짝 맛은 봐야겠지?”

천룡의 말에 남자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맛 안 봐도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아냐, 아냐. 무엇이든 경험은 좋은 거라 그랬어. 울 사부가.”

속으로 그런 말을 한 사부를 욕하는 남자.

그러든지 말든지 남자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는 천룡이었다.

두려운 눈으로 천룡을 바라보는 남자.

그런 남자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뇌전을 뿌리는 천룡이었다.

“끄어어어억!”

남자의 눈이 뒤집혀 흰자위만 보였다.

“엄살이 심하네.”

천룡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세기를 살짝 더 올렸다.

“끄가가가각-!”

뇌전이 그의 턱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어라? 벌써? 이러면 곤란한데…….”

천룡은 쓰러진 남자를 바라보다가 유가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깨어나려면 좀 기다려야 하니 치료해 줄게요.”

“네? 깨어나요?”

“하하, 몇 번 더 해야죠.”

“뭐, 뭘요?”

“방금 그거.”

“…….”

유가연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정말로 이 남자가 천마대제보다 나은 것인지 생각했다.

잠시 후.

그 후로도 몇 번을 기절하면서 뇌기의 맛을 제대로 본 남자는 천룡의 질문에 재깍재깍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맘에 안 들면 모두 불태운다고?”

“그, 그렇습니다.”

“왜?”

“중원인들로 인해 저희 마교가 오해를 받았고, 그로 인해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천마대제께서는 저희의 복수를 하신다고…….”

천마대제에 대해 상세하게 말을 하는 남자였다.

그것을 들은 천룡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남자에게 신교의 위치를 물어본 천룡은 남자를 기절시킨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가연에게 다가가 괜찮냐고 묻는 천룡.

그런 천룡을 보며 유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모르는 절대 고수.

지금까지 천마대제가 가장 강한 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생각이 전면 수정되었다.

‘이 남자다!’

압도적인 강함에 마음을 뺏겨 버린 유가연이었다.

‘독이 아직 남아 있나? 왜 이리 맥박이 진정이 안 되지?’

문제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인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평생 남자라는 동물에 감정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일단 저는 저들이 말한 천마신교를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네요.”

“저도 같이 가겠어요.”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말하는 유가연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요. 여기서 저들을 감시하며 기다려요.”

천룡의 말에 여기저기 쓰러진 채 앓는 소리를 내는 마교의 무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내공을 금제했으니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은공!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하대를 하던 그녀.

지금은 천룡을 대하는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런 유가연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천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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