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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화 (168/200)

168화

***

유가연이 처음 천룡을 만났던 이야기를 끝냈다.

천룡은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유가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정말 기가 막힌 만남이었네요? 그런데 정말로 환생하신 건가요?”

“맞아요. 유 국주님이 전생에 검후였다는 겁니까?”

사람들의 질문에 유가연이 답했다.

“가가께서 사라지고 누군가가 찾아왔어요. 그는 저에게 말했죠.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처음 보는 사내였지만 믿음이 갔어요.”

유가연의 말에 천룡이 말했다.

“마진강. 그가 널 찾아갔었나 보구나.”

“마진강? 맞아요! 그런 이름이었어요. 가가께서 혹시 저를 찾아오시지 않았나 하고 물었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가가를 찾게 되면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해 달라며.”

유가연의 말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떻게 환생을 하신 겁니까?”

“유마회혼대법이라고 아세요?”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법은 성공률이 정말로 희박하다고…….”

“맞아요. 그 대법은 성공할 확률이 정말로 극악하죠. 하지만 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가가를 만날 유일한 길이었으니. 마진강, 그가 그러더군요. 가가께선 불사에 가까운 몸을 얻으셨다고.”

나왔다.

불사.

“그가 말했어요. 자신이 치료했고 불사의 능력을 만들어주었다고. 그러니 확실하다고.”

천룡이 나이를 먹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된 사람들.

모두가 경악했다.

마진강이라는 자가 정말로 천룡의 몸을 불사로 만들었다면 그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천룡의 말을 들어 보니 그 역시 수백 년을 살아온 괴물이었다.

거기에 세상에 적수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천룡의 맞수였다.

“아무튼, 세상 어딘가에 가가께서 불사의 몸으로 살아 계신다면 저 역시 그 비슷한 상태가 되어야 했죠.”

유가연의 말에 제갈군이 물었다.

“제가 알기로는 그 대법은 혼을 불러올 수만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제갈군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혼을 이승에 머물게 하는 방법 역시 존재해요. 저의 경우는 이승에 남은 혼을 빙의시키는 방법이에요. 다만 제 기억은 모두 상실이 된 상태로 빙의가 되는 거죠.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다시 혼이 나와 다른 태아의 몸으로 들어가 빙의를 해요.”

“그건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닙니까?”

“그렇죠. 어디서 누군가로 태어날지를 모르는 것이니. 그리고 가가를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었고.”

“정말로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모든 것을 거셨군요.”

유가연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천룡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이렇게…… 가가를 다시 보게 된다니…….”

다시 눈물을 글썽이는 유가연이었다.

“그럼 검각은 어찌 된 겁니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그 질문에 유가연은 슬픈 얼굴이 되었다.

“검각은…… 멸문했어요.”

“천마신교인가요?”

“아니요. 이화궁.”

“이화궁? 그 천축이화신궁?”

고개를 끄덕이는 유가연.

“아니, 그들이 갑자기 왜?”

“천마신교와 싸움으로 엉망이 된 중원을 먹겠다며 쳐들어왔죠. 이화궁, 태양궁, 그리고 대라밀교까지.”

새외무림의 침공이었다.

겨우겨우 천마신교에서 벗어났더니 이번엔 새외에서 쳐들어온 것이다.

“저는 가가와 만난 후에 검각을 떠났어요. 검각은 여자들로 구성된 문파. 혼인하면 문을 떠나야 하죠. 그래서 전 떠났어요.”

“아니, 그래도 검각이 공격을 당할 때 가서 도와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광의 물음에 유가연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그 당시엔 운 가가께서 많이 아프셨어요. 그래서 중원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었죠. 그래서 소식을 늦게 접했어요.”

“네? 아버지께서 그렇게 상태가 심각했었습니까?”

“네!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매우 아프셨어요. 운 가가를 치료하기 위해 온 중원을 돌아다니던 때에요.”

그 말에 천룡 역시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점점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자신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가족들을 잃은 것이다.

“소식을 듣고 검각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멸문하고 난 뒤였죠.”

유가연의 말에 다들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복수는 했어요. 이화궁을 세상에서 지워 버렸으니.”

독기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그녀.

“그때 조금 더 고통을 주면서 멸문을 시켰어야 했는데……. 아직도 억울하죠.”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고 분한지 술을 마시는 유가연.

“사부님의 병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사부님은 어찌 사라지신 겁니까?”

천명의 물음에 유가연이 답했다.

“운 가가의 병명은 몰라요. 아무도 알아내질 못했어요. 천의라고 불리는 운 가가의 친구분도요. 운 가가께서 사라진 이유는…….”

잠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천룡을 바라보는 유가연.

“어떤 분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가셨어요.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그런 유가연의 말에 천룡이 입을 열었다.

“마진강.”

“네?”

“그와 대결을 위해 갔었다.”

“네? 그분이랑 싸우셨다면 왜 그분은 가가의 행방을 모르시는 거죠?”

유가연의 물음에 천룡이 눈을 감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에 무광이 말했다.

“기억이 돌아오고 계시나 봐요. 요즘 자주 저러십니다.”

무광의 말에 유가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뜬 천룡.

“그래. 나는 마진강과 마지막 전투를 했지.”

“마진강이라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무광의 질문에 천룡이 말했다.

“나도 모른다.”

“네? 친구분이라면서 모르신다고요?”

사람들의 반응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말했지? 마애불상 앞에서 대결했다고. 그게 첫 만남이었어. 그의 정체는 나도 모른다. 어느 문파 사람인지, 심지어 중원 사람인지도 잘 모르겠다.”

천룡이 술잔을 비운 후에 다시 말했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서신을 보냈다. 자신의 무공을 완성했다고. 다시 붙어 보자고. 나는 허락했지. 비록 죽어 가고 있었지만……. 가연이에겐 미안하지만, 나의 마지막은 그와 대결을 하며 죽고 싶었다.”

“가가!”

“내 느낌이었다. 그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중원에 정말 큰 재앙이 닥치리라는 것을.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가 만족한다면 거기서 멈추리라 생각했지. 그만큼 그는 위험했다.”

천룡의 말에 다들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고금 무적인 천룡의 입에서 위험하다는 소리가 나왔기 때문에.

“그것이 모두를 지키는 길이라 생각했다. 내 한목숨을 던져 모두를 구하는 방법. 그래서 갔다. 그것이 내 운명이고 사명이었으니까.”

“이기셨습니까?”

무광의 질문에 천룡이 고개를 저었다.

“졌다.”

천룡의 말에 다들 침묵했다.

천하의 천룡이 졌다고 말했다.

천룡불패라 생각했는데 졌었단다.

그것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침울하게 만들었다.

“녀석들. 사람이 살다 보면 질 때도 있는 거지. 나는 뭐 사람 아니냐?”

“그래도 저희는 아버지가 진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충격입니다.”

무광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했다.

“사부! 사부는 그때 몸 상태가 좋지 않으셨잖아요! 그러니 패한 것이 아닙니다!”

“하하, 녀석……. 실전에서 그런 것이 통하겠느냐? 적이 네가 아프다고 봐주겠느냐? 그것은 핑계다. 나는 당당하게 싸웠다. 그러니 그런 말은 나를 욕하는 것이다.”

천룡의 말에 태성이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죄, 죄송합니다, 사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괜찮다. 아무튼, 그가 말했다. 이것은 제대로 된 싸움이 아니라고.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다고.”

일승일패.

“마지막 싸움으로 모든 것을 가려 보자고 했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이 없었지. 그를 만족시킬 시간이……. 그와의 싸움으로 내 생기는 급격하게 빠져나갔다.”

천룡의 생기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마진강은 그를 점혈해서 재웠다.

“그가 나를 점혈하며 재우더구나.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다시 만나자고. 너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그동안 궁금했던 모든 것이 풀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너희들을 만나기 전까지 살던 그곳이더구나. 아무런 기억도 없이 그곳에서 수백 년을 살았다. 그러다가 너희를 만났고, 이렇게 세상에 나와 내 집과 가족을 만들었구나.”

천룡의 말에 다들 침울했던 표정이 풀렸다.

마지막 말.

내 집과 가족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기억이 다 돌아오신 겁니까?”

“그런 거 같다. 군데군데 끊기긴 했지만 웬만한 과거는 다 기억이 난다.”

“가가, 다행이에요.”

유가연이 옆으로 다가와 안겼다.

“고맙다, 가연아. 그런 위험한 대법까지 시행하면서까지 날…….”

“이렇게 만났잖아요. 그걸로 전 행복해요. 이제 절대로 제 곁을 떠나지 마세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절대로 떠나시면 안 됩니다!”

다들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알았다. 그리고 고맙다.”

천룡의 기억, 유가연의 기억이 모두 돌아온 날.

모두가 행복한 날이었다.

***

알 수 없는 문장으로 둘러싸인 동그란 원 안에 별 모양의 도형이 그려져 있었다.

사방에는 역한 냄새를 풍기는 향들이 피어 있었고, 양의 머리가 제단에 올려져 있었다.

원과 도형을 이루는 것은 양의 피로 보였으며, 그 주변에 밀교의 승려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원 가운데에는 은마성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되었소.”

승려가 조심스럽게 헝겊에 겹겹이 쌓인 무언가를 들고 은마성 앞으로 갔다.

헝겊을 풀자 기형적인 모양의 작은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으로 은 대협의 피를 바닥에 뿌리셔야 합니다.”

승려의 말에 은마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덤덤하게 칼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팔뚝이 꽂아 넣었다.

푸욱-!

촤하하학-!

꽂힘과 동시에 엄청난 기세로 치솟는 피.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팔을 휘둘러 바닥에 자신의 피를 뿌렸다.

눈으로 승려에게 물었다.

더 뿌려야 하는지.

승려가 그 눈빛을 알아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은마성은 피가 철철 나는 팔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승려가 조심스럽게 팔의 상처를 헝겊으로 감아 주었다.

그러면서 이 의식을 하는 이유를 알려 주었다.

“이 의식이 성공을 하게 된다면 대협께선 마계의 힘을 얻으실 겁니다. 저희는 그 힘을 이용해 한 분을 세상에 모셔 오면 됩니다.”

“그게 누구요?”

“저희들이 모시는 분, 바로 제석천 님이시지요.”

“그렇군. 나는 단지 제물일 뿐이군.”

승려는 아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훗, 내가 그 제석천이라는 자보다 강해지면 어찌 되오?”

“그러면 저희들이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그리 쉽게 모시는 분을 바꾸어도 되는 것이오?”

“강자숭배. 그것이 저희 교의 교리입니다.”

“마교와 비슷하군.”

“그럴 수밖에요. 저희에게서 떨어져 나간 종파가 변한 것이 마교니까요.”

“그건 몰랐던 사실이군요. 그런데 제석천은 언제 온답니까?”

“그대가 세상에 나타나면 그분께서 누군가의 몸에 강림하실 것이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면 되는 것이오.”

은마성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뒤에서 한 승려가 말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대법을 시행하겠습니다.”

젊은 승려의 말에 은마성 앞에 있던 승려가 은마성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원을 빙 둘러싸고 알 수 없는 언어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는 그들.

그러자 원에 새겨진 이상한 글자들에서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더 강해져 갔고, 원 안에 글자들을 채우고 있던 피들이 끓기 시작했다.

피들은 순식간에 증발하면서 수증기가 되었고, 그 수증기는 서서히 사람의 형태로 변해 갔다.

사람 형상을 한 수증기는 입으로 보이는 곳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 언어가 아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 모양의 형상이었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자 수증기 형상이 턱을 긁는 모습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은마성을 바라보는 모양으로 바뀌었다.

손뼉을 치는 모양으로 변하더니 은마성의 콧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붉은 수증기가 은마성의 몸으로 모두 흡수되었다.

이윽고 은마성의 몸이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을 본 승려들이 한탄했다.

“제길! 또 실패인가? 다들 피해! 곧 폭발한다!”

경험이 있기에 그들은 서둘러서 그곳을 피해 달아났다.

은마성 혼자 남아 끊임없이 부풀었다가 쪼그라들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은마성의 몸이 터져 나갔다.

콰콰쾅-!

우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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