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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화 (170/200)

170화

대답 없는 백금만.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 모습에 깜짝 놀란 천룡이 다급하게 활인기를 불어넣었다.

그 기운에 다시 정신이 든 백금만.

자신의 눈앞에 괜찮냐고 묻는 천룡이 보였다.

그 모습이 너무도 찬란하여 백금만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네! 괘, 괜찮습니다.”

대답을 하며 부르르 떠는 백금만을 뒤로한 채 천룡이 제갈군에게 말했다.

“너도 가자. 가서 네가 직접 봐 봐. 괜찮은 건지.”

“네!”

“가서 애들한테도 얘기하고, 먼 길 가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제갈군이 나가고 백금만은 연신 천룡에게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며 나갔다.

***

천룡은 제자들과 함께 자신이 기거했던 선유동으로 향했다.

많은 짐을 실어 와야 했기에 천룡표국의 짐수레도 대량으로 끌고 나섰다.

조방과 진천, 그리고 장천과 여월까지 합세했다.

“드디어 가 보는군요. 아버지를 꼭꼭 숨겨 두었던 그 빌어먹을 곳을.”

원수를 만나러 가는 표정으로 길을 나서는 무광.

그런 무광의 심정을 격하게 공감한다는 천명과 태성.

천룡은 그런 제자들을 보며 웃었다.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제자들도 겉으로는 투덜거리지만,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예전에 자신들이 수련했던 장소도 지나간다니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지으며 행복해했다.

가는 길에도 천룡과 제자들은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밤만 되면 천룡과 제자들은 대련을 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조방, 진천, 여월, 장천까지 가세했다.

그럼에도 천룡을 어쩌지 못했다.

그래도 매일같이 이런 수련을 한 덕에 모든 이들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늘고 있었다.

천룡 역시 자신 안에 숨겨진 힘을 꺼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마진강을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선 그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보름 동안 이렇게 이동하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저기다.”

천룡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그냥 절벽이 보였다.

“저기요? 저긴 아무리 봐도 천 길 낭떠러지인데요?”

“그러니까요. 바닥이 아예 안 보이는데요? 설마…… 저 아래입니까?”

제갈군만 신기한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다.

“우와! 이런 미친! 세상에!”

호들갑을 떠는 제갈군.

“뭐냐? 뭐라도 발견했냐?”

무광의 물음에 제갈군이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엄청난 진법이라니요! 이건 절벽이 아닙니다! 우와! 만약 제 경지가 조금이라도 낮았다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겠어요.”

“뭔 소리야? 너보다 높은 우리도 모르겠는데. 진법이 어디 있어?”

“당연히 모르시죠. 진법에 대해 모르시니. 이건 평범한 자연의 기운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의 기운이 이곳에 모여 있습니다.”

제갈군의 말에 다들 집중해서 절벽을 살폈다.

무언가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딱히 그렇다고 이상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 제자들과 제갈군을 본 천룡이 웃으며 말했다.

“녀석들. 일단 들어가자.”

“어디를요?”

그 말에 천룡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눈앞에 있던 절벽이 울렁거리더니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헉! 저, 저게 뭐야!”

“저, 절벽이 아니고 환상이었어?”

“이상하네? 아까 분명히 절벽이 맞았는데? 돌도 떨어뜨려 봤잖아.”

다들 신기해하는데 제갈군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연신 진법을 살피고 있었다.

“주군! 저 이거 세상에 가져가도 됩니까?”

제갈군의 물음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맘대로 하거라.”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정말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군!”

기뻐하는 제갈군을 뒤로하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나왔다.

“이곳이 내가 살던 곳이다.”

천룡의 말에 제자들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곳에서 천룡이 몇백 년을 살았다니.

제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 긴 시간을 이런 곳에서 외롭게 지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왜, 왜 그러냐?”

제자들의 눈물에 천룡이 당황하며 물었다.

그러자 제자들이 다가와 천룡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 앞으로 더 잘 모실게요.”

“사부님, 항상 곁에서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사부! 흑흑.”

제자들의 말에 그 뜻을 눈치챈 천룡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제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 역시 무언가를 결심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

광동성(廣東省) 심천(深圳).

중원의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조직이 심천에 있었다.

황금천(黃金天).

황금천의 천주 만금충(萬金充)이 수하들과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느냐?”

“네! 운가장이 운영하는 상단은 머지않아 무너질 것입니다.”

“끌끌끌. 그러하냐? 더더욱 몰아붙여라.”

“그런데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운가장은 지금 중원에서 가장 명성이 자자한 곳입니다. 훗날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크크크크. 문제? 무슨 문제? 우리가 한 일인지를 어찌 증명할 건데? 또한, 망하는 것은 우리 탓이 아니지. 자신들의 상재(商材)가 부족한 탓을 해야지.”

“맞습니다.”

“이 바닥은 그런 곳이다. 무림과는 다른 세상이다. 금력과 상재에 졌다고 어디에 하소연을 할 수 있는 바닥이 아니야. 그런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할 일에 집중해.”

“알겠습니다.”

“단목세가에서 연락은 왔느냐?”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흠…… 예상외로 쉽게 찾지 못하는 것인가? 신의라고 소문까지 났으면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만금충이었다.

“우리도 그곳에 사람을 풀어 찾아보아라. 운가장보다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

“알겠습니다.”

“운가장 쪽은 뿌린 돈의 두 배를 더 준비해서 몰아붙여.”

“네? 지금까지 뿌린 돈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 컥!”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자신의 목을 움켜쥐는 수하.

“이놈들이 내가 그동안 설렁설렁했더니 아주 기어오르는구나.”

“요, 용서를…….”

“알고 있겠지? 두 번은 없다.”

수하를 풀어 주며 경고하는 만금천이었다.

수하들에게 엄한 경고를 한 뒤에 만금충은 나직하게 말했다.

“주군께서 명령을 내리셨다. 운가장의 장주 운천룡을 최대한 즐겁게 해 주라고.”

다들 입을 다물고 듣기만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괴롭혀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수하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만금충이었다.

“다른 쪽에서도 한창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그에 못지않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말을 하다가 잠시 뜸을 들이는 만금충.

“이제 세상에 우리도 당당히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주군께서 허락하셨다.”

“저, 정말입니까?”

“끌끌끌. 그렇다. 그러니 그것도 염두에 두고 잘 준비하거라.”

“충!”

“그렇게 알고 모두 나가 봐.”

만금충의 말에 다들 인사를 하고 나갔다.

홀로 남은 만금충은 탁자에 있는 차에 열양지기를 불어넣어 따뜻하게 만든 뒤 입에 가져갔다.

“끌끌끌. 이제 세상에 우리를 내세울 때가 왔구나. 정말 오랫동안 기다렸던 그 순간이…….”

***

천룡의 손짓에 안개진이 좌우로 갈라졌다.

마치 안개 폭포 사이로 길이 난 것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천룡이 먼저 들어가자 뒤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다들 신기한 현상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침만 꿀꺽 삼키고 있었다.

적막함 가운데 수레바퀴 돌아가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한참을 들어가니 밝은 세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형형색색 종류의 식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인세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

다들 입을 벌린 채 감탄하고 있었다.

그렇게 풍경을 감상하며 어느 정도 들어가자 천룡이 멈춰 섰다.

천룡의 앞에는 거대한 폭포수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앞의 물보라에 펼쳐진 찬란한 무지개가 어서 오라고 반기는 듯했다.

“이곳을 지나야 한다. 다들 조심해서 지나가도록 해.”

그러고는 천룡이 손을 들어 물줄기를 옆으로 비켜나게 해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주었다.

그 모습조차 신기했다.

신선이 자신의 집으로 지상의 사람들을 초대하는 모습이었다.

천룡의 도움으로 거대한 물줄기를 피해 무사히 동굴 속으로 들어간 일행들.

그 동굴 앞에는 선유동이라는 글자가 보일 듯 말 듯 새겨져 있었다.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저 자리를 지켜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선유동이라. 정말로 이곳은 신선들이 살던 곳이 아닐까요?”

무광의 물음에 천룡이 답했다.

“나도 그리 생각했는데, 수백 년 동안 코빼기도 안 비추는 걸 보면 아닌 것 같다.”

“그럼 누가 이런 공간을 만들었을까요?”

“글쎄다. 나도 그것을 알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 뒤졌는데 찾지 못했다. 이곳에서 살아온 세월이 수백 년인데 그 시간 동안 못 찾았음 뭐. 없는 거지.”

천룡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액체들이 모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헉! 저, 저건 서, 설마!”

“사, 사부님! 저거 진짜입니까?”

제자들과 일행들이 경악하며 바라본 그곳엔 공청 석유가 가득 모여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왜? 좀 마실래? 목말라?”

마치 뒷산에 가서 약수(藥水) 권하듯이 권하는 천룡.

그곳의 모든 사람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천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되는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 알아서들 적당히 마셔라.”

“네!”

무광이 선두에 서서 말했다.

“줄을 서라! 내가 직접 배급하겠다!”

무광의 말에 다들 일사불란하게 줄을 섰다.

무광은 내공으로 공청 석유를 각각 열 방울씩 입안으로 넣어 주었다.

공청 석유가 입안으로 들어가자 다들 서둘러 가부좌를 틀고 최대한 흡수하기 위해 노력했다.

가부좌를 튼 모든 이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삼황과 칠왕십제급 무인들을 제외하고 난 모든 무인들의 내공이 비약적으로 늘었다.

눈을 뜬 수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천룡을 연호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고 다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분지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와! 여, 여기는 기운의 농도가 엄청나네요.”

“여기서 수련을 하면 엄청나겠어요.”

“이곳에 있는 기운만 제대로 흡수해도 엄청난 내공을 얻겠는데요?”

그 말에 천룡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오! 좋은 생각이구나! 그래. 여기 있는 물건 다 옮기고 여기를 수련 장소로 정하자.”

“좋은 생각입니다!”

“우와!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이런 곳에서 수백 년을 수련하면 사부처럼 될까요?”

“가능할지도?”

천룡의 말에 다들 의지가 불탔다.

천룡을 따라갈 방법을 찾은 것이다.

천룡도 이곳에서 수련을 해서 강해졌을 것이라 확신을 하는 제자들과 수하들이었다.

제자들과 수하들이 의지에 불타자 귀엽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는 천룡이었다.

그 후로 계속 울려 퍼지는 환호와 감탄사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우와! 세상에 여기 천년 산삼 천지야.”

“저긴 어떻고! 음양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

“여긴 어떻고요. 사부! 이 풀들이 그거죠?”

태성의 물음에 천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 풀이 바로 천령초다.”

“와! 천년산삼은 상대도 안 되네. 천령초에 비하면 천년 산삼은 그냥 잡뿌린데?”

“이걸 팔겠다고요? 이거 하나만 나가도 온 무림이 뒤집힐 텐데요?”

“뒤집히면 자기들이 어찌할 건데? 우리를 상대로 해보겠다는 거야?”

“하긴 그렇겠네요. 우와, 진짜 여긴 다른 세상이네요.”

엄청난 풍경에 경악하며 계속 이동하는 그들.

이윽고 도착한 곳은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바닥에 희미하게 그려진 팔괘(八卦)의 문양.

그 문양의 방향대로 지어진 거대한 전각들.

자세히 보니 기둥과 기와가 금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각에 있는 금만 떼어다가 가져가도 중원 제일의 부자였다.

한 채 한 채가 거대한 궁궐 같았다.

어찌나 크고 넓은지 다들 믿지 못하는 눈으로 전각들을 바라보았다.

“세, 세상에. 저렇게 엄청난 건물들을 이런 오지에 지었다고? 그게 가능해?”

“정말 궁금하네요. 이곳을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

금으로 새겨진 현판에는 각각 숫자가 적혀 있었다.

천룡이 하나하나 문을 열며 설명했다.

“이곳은 제일관. 무공서적이 있지. 주로 정파 쪽 서적이야.”

열린 문으로 들여다보니 어마어마한 넓이에 가득 찬 책들.

신기하게도 보관 상태가 너무도 좋았다.

“대략 오만 권? 그쯤 될 거야. 그런데 다 상고시대 무공들이라 요새도 통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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