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머리를 박은 모든 사람들이 그 말에 경악했다.
구룡방주도 아닌 자가 구룡방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구룡방의 행사에 다른 이가 나선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 재앙의 시작이었다.
이제 저자는 큰일이 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웬걸?
구룡방의 무인들이 쩔쩔매며 모두 물러서는 것이다.
어찌나 말을 잘 듣는지 순간 저자가 구룡방주인 줄 착각했다.
혈호방주 역시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천하에 구룡방의 정예 무인들에게 명령하고, 또 구룡방의 무인들이 그것을 벌벌 떨면서 받아들인다고? 그것도 구룡방주가 눈앞에 있는데? 이게 지금 현실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자신에게 보고되었던 말도 안 되는 소식이 생각났다.
-이제 중원 제일인은 운가장의 장주다! 삼황이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라며 보고서채로 찢어 버린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서, 설마. 지, 진짜?’
물어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괜한 호기심에 목숨을 걸기는 싫었으니까.
잠시 후.
사람인지 걸레인지 구별되지 않는 사연문주를 질질 끌고 오는 태성.
어찌나 맞았는지 얼굴 형태가 변해 있었다.
태성은 개운한 얼굴로 사연문주를 대가리 박고 있는 사연문도들에게 던져 줬다.
“야! 그만 일어나서 데려가.”
자신들이 잘못 들었는가 싶어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자 태성이 큰 소리로 말했다.
“어라? 지금 내 말 씹은 거냐? 너희도 면담할래?”
벌떡- 벌떡-!
사방에서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는 사연문도들.
“저, 정말로 가도 됩니까?”
“응, 깨어나면 말해. 조만간에 다시 방문하겠다고. 그때 보이는 정성에 따라 용서를 할지 말지 결정한다고.”
“네! 아, 알겠습니다.”
“꼭 전해야 한다. 정성이다, 정성.”
“네! 꼬, 꼭 전달하겠습니다!”
“도망가면 중원 끝까지 쫓아간다고도 전하고.”
“아, 알겠습니다.”
태성이 손을 휘젓자 고개를 숙이고는 걸레가 된 자신들의 문주를 둘러업고 정신없이 도망갔다.
혈호방주는 슬그머니 일어나 그 행렬에 따라가려 했다.
“지금 움직였냐? 이야, 내가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움직이네?”
태성이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혈호방주가 목청껏 소리쳤다.
“아, 아닙니다!”
“아니야? 조기서 요기로 왔는데…… 움직인 게 아니라고?”
“마, 맞습니다. 우, 움직였습니다. 사, 사황께서 오시기 번거로우실까 봐 제가 이동한 겁니다!”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혈호방주였다.
걸레가 되어 업혀 가는 사연문주를 보니 과거의 악몽이 떠오른 것이다.
“온 김에 수레 끄는 것 좀 도와라.”
“네?”
“허허, 말대꾸하네?”
그러더니 눈빛으로 방금 사연문주를 걸레로 만든 방향을 가리켰다.
“너도 면담을 원해? 갔다 올까?”
태성의 말에 격하게 도리도리를 하는 혈호방주였다.
그리고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성심성의껏 목적지까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그렇지, 그 자세야. 도착할 때까지 그 자세를 쭉 유지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이다. 전에 네놈 아들이 내 아들한테 시비 걸 때도 참았어.”
“네? 누, 누가 가, 감히 소방주님께 시, 시비를 걸었답니까?”
“네 아들. 네놈 아들. 너네 소방주!”
“제, 제 아들요?”
고개를 끄덕이는 태성을 보며 속으로 자기 자식 욕을 했다.
‘이, 이런 우라질 놈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돌아가면 확실하게 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혈호방주였다.
“제, 제가 가서 확실하게 교육을 시켜 놓겠습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나 말고 저기 저분 보이지?”
“네? 저, 저기 저분요?”
그곳을 보니 방금 전에 구룡방의 무인들에게 명령을 내린 청년이 보였다.
“응. 저기 저분. 넌 이제부터 저분 곁에서 보필을 한다. 알겠냐?”
“바, 방주님이 아니고요?”
“응! 저분을 보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 심기 거스르지 말고 잘해라. 알았냐?”
혈호방주가 태성을 보필하기 위해 옆에 서자 태성이 한 청년을 가리키며 저분을 보필하라고 전했다.
방주는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겉으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천룡에게 달려갔다.
그 후로 혈호방주는 정말로 열심히 천룡을 보필했다.
어찌나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혈호방주 인생에 있어 가장 큰 패착이었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된다.
***
혈호방의 영역이 끝나는 지점.
그곳에 사도방의 무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 언제 와!”
제일 선두에 있는 방주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뒤에 따르던 수하가 재빨리 다가와 대답했다.
“저, 저기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오! 드디어 오는 건가?”
방주가 안력을 높여 수하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정말로 사연문의 무사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들이었다.
“뭐야? 황금이 안 보이는데? 수레는?”
“정말입니까? 아니, 그럼 저희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 거잖습니까.”
“맞습니다. 그냥 가시죠.”
다들 방주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회군을 요청했다.
정말로 오기 싫었나 보다.
“이 자식들이? 뭐야? 너희들 겁먹었냐? 응? 지금 사연문따위한테? 응?”
방주의 심기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지자 다들 손사래를 치며 극구 부인했다.
“무, 무슨 말씀입니까? 아, 아닙니다! 사연문따위는 식후 운동 거리도 안 됩니다!”
“맞습니다! 방주님! 방금 그 말씀은 저희를 너무 무시하시는 발언입니다.”
발끈하는 수하들을 보며 그제야 인상을 풀고 웃는 방주였다.
“그렇지? 그나저나 저놈들 무언가에 쫓기는 모양새인데? 뭔가 다급해.”
점점 가까워지는 사연문의 문도들.
드디어 서로가 마주쳤다.
“크크크,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시나?”
사연문도들은 화들짝 놀랐다.
뜬금없이 자신들과 앙숙 지간인 사도방이 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어, 어찌 이곳에?”
“너희들 기다렸지. 너네 문주 어디 있느냐?”
사도방주의 말에 사연문도들이 일제히 경계하며 주춤거렸다.
그때 사도방주의 눈에 업혀 있는 문주가 보였다.
처음엔 누더긴 줄 알았다.
가만 보니 사람이었고, 더 자세히 보니 사연문주였다.
“뭐야? 왜 사람이 걸레가 되어 있어?”
사도방주가 더 놀랐다.
사연문주의 경지는 자신과 비슷했다.
앙숙이긴 해도 속으론 호적수라 여겼기에 지금의 모습은 충격이었다.
“누구한테 당했냐? 그 황금을 가지고 이동한다는 무리냐?”
사도방주의 말에 사연문도들이 놀랬다.
“그, 그걸 어찌 아셨습니까?”
사도방주가 사연문도의 말에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크크크. 말이 건방지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너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가 다 지켜보고 있다.”
사도방주의 말에 사연문도들은 두려운 모습으로 자꾸 뒤를 돌아봤다.
“우, 우리를 어찌하려는 겁니까? 보, 볼일이 없다면 이만 비켜 주십시오! 저, 저희가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다급했다.
누가 봐도 저들의 지금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식은땀을 연신 흘려 대며 계속 뒤를 돌아봤다.
궁금했다.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말해 주면 비켜 주지?”
“빠,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느, 늦었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납니다!”
“하아, 좀 알아듣게 설명해 줄래?”
“구, 구룡방주님이 뒤, 뒤에 오고 계십니다. 그, 그러니 어서 비켜 주십시오. 더 늦었다가는 큰일 납니다.”
사연문도의 말에 사도방주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잠시 지었다가 크게 웃었다.
“뭐? 하하하하하, 지금 그거 나 겁먹으라고 한 소리냐? 내가 그딴 소리에 겁먹을 것 같아?”
“지, 진짜입니다! 저희 말을 믿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하하하, 거짓도 믿을 만한 내용을 말해야 통하는 법. 무언가를 숨기고 있구나. 크크크.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을 미리 눈치를 챈 것이냐? 그래서 그렇게 연기를 하는 것이냐? 그래. 어디에 두었느냐? 황금은?”
사연문도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이렇게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한 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저, 정말입니다. 그러니 제발 비켜 주십시오! 저희 문주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빨리 가서 치료하셔야 합니다.”
애절하게 애원하자 사도방주의 표정도 살짝 풀어졌다.
상황이나 저들의 행동을 보아하니 정말인 것 같았다.
대충 정리를 해 보니 그 황금은 구룡방의 물건인 듯싶었다.
‘하긴, 그런 엄청난 물건을 옮기는 곳이 평범한 곳일 리가 없지. 쯧쯧. 이놈들 재수도 없었군.’
사도방주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선심 쓰는 척 말했다.
“흠, 정말인가? 아니, 구룡방주 그 자식은 왜 약한 애들 노는 곳에 끼어서 난리야. 거참. 안되었네. 자, 자! 어서 지나가게.”
사도방주가 선의를 베풀고 있을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하군. 눈치 없는 구룡방주 자식이 애들 노는데 끼어서.”
사도방주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고수라는 소리였다.
“허헉!”
다급하게 하늘을 보니 그곳에 붉은 머리를 한 청년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요 앞에서 많은 무인들이 서성거리자 또 어떤 놈들인가 싶어 태성이 나서서 정찰을 온 것이다.
천천히 하강하는 태성.
그 모습에 사연문도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용서를 빌었다.
“저, 저희는 정말 최선을 다해 가고 있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저, 저들이 막은 겁니다. 저희는 정말로 이곳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제발! 부디 자비를!”
처절했다.
울먹거리며 태성에게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구원의 말이 들려왔다.
“알지, 알아. 다 지켜봤어. 너희들은 그냥 가라. 한눈팔지 말고 열심히 가야 한다.”
“가, 감사합니다! 방주님!”
“앞으로도 저희 사연문은 방주님께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구룡방 만세! 방주님 만세!”
태성의 말에 사연문도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다시 정신없이 자신의 문파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사연문도들을 사도방은 잡지 못했다.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엄청난 살기가 이곳 전체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 크윽!”
어찌나 강렬한지 살기만으로도 죽을 것 같았다.
정말이었다.
정말로 저자는 구룡방주, 사황이 맞았다.
간신히 입을 열어 용서를 빌었다.
지금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제, 제가 말실수를 해, 했습니다. 부디 요, 용서를…….”
“말실수? 나 안 보이는 데서 내 욕 엄청나게 하고 다니는 건 아니고?”
“아, 아닙니다…….”
그런 사도방주를 보며 태성이 말했다.
“하아, 내가 그동안 관리를 하지 않았더니 이 사달이 난 거 같군. 기대해도 좋아. 오늘부터 내가 아주 제대로 관리를 할 예정이거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하는 태성.
관리 알아서 잘하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내보내진 않았다.
그랬다간 한 대 맞을 거 두 대, 아니 수십 대 맞을 것 같아서.
열심히 몸을 풀며 다가오는 태성을 보며 사도방주와 방도들은 울상이 되었다.
그리고 들어간 관리.
태성의 정성 어린 관리를 맛본 사도방의 방주와 방도들의 행복한 비명이 저 멀리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사연문도에게도, 그리고 천룡에게까지 울려 퍼졌다.
***
중원에 엄청난 소식이 퍼졌다.
공청석유를 섞은 술이 있다는 소문.
사람들은 그 소문을 듣자마자 무시해 버렸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낭설이 판치는 중원에서도 낭설 중에서 낭설로 취급되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전설상의 영약이라는 공청석유를 술에 섞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누가 믿을까.
그리고 그런 엄청난 영약을 술에 섞어서 파는 미친 짓을 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판매하는 상단이 운가장 소속인 것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삼세를 휘하에 거느렸다고 알려진 진정한 천하제일의 장원.
거기에 의술이 하늘에 닿았다는 천공의선이 보증하고 삼황이 인정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술을 제조한 자가 운가장의 장주, 운천룡이라는 사실이었다.
명실상부한 천하제일인이 바로 그였다.
그런 그가 만든 명주.
거기에 극소량이지만 공청석유가 들어갔단다.
이건 믿을 수밖에 없었다.
온 무림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그 술을 구매하였다.
천상객잔(天上客棧).
만보상회 앞에 새로이 문을 연 객잔이었다.
이곳에서도 그 술을 맛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