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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174/200)

174화

자신의 타격에도 죽지 않고 오히려 기운을 차리는 곽정을 보며 호기심이 생긴 은마성(?).

곽정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은마성(?)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세상에! 이곳에서 권능을 가진 자를 보다니! 크크크. 그 힘은 어디서 났느냐?”

“말……해 줄 것 같으냐?”

곽정이 힘겹게 일어서며 말하자 은마성(?)이 웃으며 말했다.

“됐다. 어차피 이 세상 구경도 해야 하니. 크크크. 내가 직접 찾아보지. 날 즐겁게 해 준 대가로 살려 주고 싶다만……. 이 몸의 원주인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구나. 크크.”

그리 말을 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푸하학-!

곽정의 몸이 터져 나가며 사방에 곽정의 피가 흩뿌려졌다.

무덤덤한 눈으로 그것을 보다가 입술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크크크. 여기 생각보다 재미난 곳이잖아? 좋아! 좋아! 크하하하.”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남쪽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

운가장 앞에 서성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한참을 서성이다가 용기 내어 다가오는 남자가 있었다.

옷차림을 보았을 때 신분이 심상치 않은 자로 보였다.

그동안 이런 일은 하도 많이 봐 왔던 터라 무덤덤하게 그 남자에게 포권을 하며 질문을 하는 수문위사였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수문위사가 질문을 하자 당황하는 남자.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그, 저, 뭐라고 해야 하나?”

자신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남자가 앞에서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서 있자 뒤에 나이가 제법 있는 남자가 고개를 흔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정중하게 위사에게 말했다.

“황궁에서 사람이 왔다고 장주님께 전해 주시겠습니까?”

수문위사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화, 황궁에서 오셨다고요? 아,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그리 말하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는 위사였다.

그런 위사를 뒤로하고 나이가 있는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귓속말했다.

“폐하, 궁이 아니라고 그리 주눅이 들어 계시면 어찌합니까.”

“그, 그게 이곳에 상국이 있다고 생각하니 벅차서 말이네.”

그들의 정체는 바로 황제와 조천생이었다.

나랏일은 모두 대신들에게 맡기고 암행을 핑계로 천룡을 만나러 온 것이다.

천룡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서 차마 말을 못 했던 것이다.

“하하, 폐하도 참. 꼭 동경하는 사람을 만나러 온 것 같지 않습니까. 폐하께선 만인의 어버이십니다.”

“만인의 어버이기 전에 한 사람을 동경하는 청년이다.”

단호하게 말하는 황제.

그러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조천생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주군을 만나는구나. 허허허.’

조천생 역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겉과 다르게 조천생 역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천룡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천룡의 모습이 사라지나 싶더니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절을 하려고 자세를 잡는 천룡을 재빨리 잡는 황제였다.

“그러지 마시오. 내 누누이 말하지 않았소. 상국께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오나 폐하…….”

뒤따라온 제자들과 수하들이 일제히 엎드리며 인사를 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그들의 모습에 황제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들의 인사로 충분하오. 그러니 그대는 하지 않아도 되오.”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그런데 어찌 이곳에?”

천룡의 물음에 황제가 쑥스러운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 상국이 보고 싶어서 이리 왔소.”

“폐, 폐하.”

“아니, 보고 싶은 것을 어찌한단 말이오. 그러니 궁에 좀 자주자주 오시오!”

“아, 알겠습니다.”

천룡이 고개를 안으로 집어넣으며 대답을 하자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룡의 등을 토닥이는 황제였다.

“하하. 농이요. 농. 자! 집 구경은 언제 시켜 줄 요량이오?”

“소신이 지금 안내하겠습니다.”

그러면서 뒤에 있는 조천생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느라 고생하시었소. 내 폐하 때문에 제대로 반겨 주지 못해 미안하오.

전음을 받은 조천생은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감격하는 표정을 숨기느라 바빴다.

그런 조천생을 보며 미소 짓는 천룡이었다.

한편 운가장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엄청난 손님이 방문한 탓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바로 황제의 방문이었다.

천룡은 직접 운가장의 곳곳을 안내하며 소개했다.

그때마다 황제는 감탄사를 내비치며 웃었다.

그저 천룡의 집에 왔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한 것 같았다.

그리고 답답했던 황궁을 벗어난 것도 황제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장원 소개를 다 끝낸 천룡은 황제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폐하, 이곳이 소신이 거주하는 전각입니다.”

“오! 우리 상국께서 거하시는 곳이군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들어가시지요.”

들어가니 가운데 원탁에 수많은 음식과 술이 올라와 있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많이 부족합니다. 내일은 제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오늘은 너그러이 용서를 바라옵니다.”

“하하하, 상국. 나는 괜찮습니다. 그리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상국과 이렇게 편히 술 한잔할 여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안에서는 그렇게 듣기 싫었는데 이곳에서 그 소리를 들으니 색다르고 좋구려. 자, 자. 앉읍시다. 저 술병에서 나는 주향이 사람 미치게 만드는구려.”

그러면서 황제가 자리에 앉았다.

천룡 역시 그 옆에 앉았다.

그런데 다른 이들이 앉지 않고 멀뚱멀뚱 서 있는 것이었다.

“뭣들 해? 어서 앉아.”

천룡의 말에 다들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폐하께서 아버지를 뵈러 오신 것 같은데 오늘은 두 분이 대작하시지요. 저희는 내일 또 뵈면 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사부님. 오늘은 폐하와 단둘이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다들 그리 말하며 우르르 나갔다.

단둘이 남은 황제와 천룡.

“하하하하, 짐의 마음을 아주 잘 아는 충직한 신하들이로다. 내 돌아가는 즉시 진급을 시켜 줘야겠소. 하하하.”

“폐하, 지금도 과분합니다. 그 말은 거두어 주십시오.”

“도대체 왜 이리 관직을 싫어하시는 게요. 남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까지 하는 마당에.”

“그러니 싫은 거지요. 그것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해서 얻으려고 하겠습니까. 어차피 지나면 다 부질없는 일인데.”

천룡의 말에 황제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조정의 모든 대신이 그대와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살았으면 원이 없겠소.”

“감사합니다. 폐하.”

쪼르륵-!

천룡은 공손하게 황제의 잔에 자신이 직접 담근 술을 따랐다.

“폐하, 소신이 직접 담근 술이옵니다.”

“오! 그래요? 하하하. 기대됩니다.”

황제는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단숨에 잔을 비웠다.

그러고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 없이 있었다.

“폐하?”

천룡의 부름에 황제가 그제야 숨을 내쉬며 말을 했다.

“푸하! 세상에! 이게 무슨?”

그러면서 빈 술잔과 천룡을 계속 번갈아 가며 봤다.

“이, 입맛에 좀 맞으십니까?”

“맞다니요? 이건 그런 표현으로 부족한 술입니다. 상국. 도대체 못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하하하. 내 궁에서 온갖 산해진미와 명주를 전부 먹어 보았지만, 이것을 능가하는 것은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망극하신 말씀이옵니다.”

“정말입니다. 상국! 이 술을 궁으로 좀 보내 주실 수 있겠소?”

“폐하께서 이리 맛있게 드셔 주시니 소신이 어찌 거부하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담근 후에 진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 정말 고맙소! 하하하. 태어나서 지금까지 받은 선물 중에 이것만큼 기쁜 선물은 없었던 것 같소!”

황제는 연신 싱글벙글하며 계속 술을 마셨다.

“폐하, 술이 너무 과하십니다.”

“하하하. 오늘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짐이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황제와 천룡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대작하며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을 나눴다.

“전에 국경의 일은 정말 잘해 주었소. 하하하. 대장군이 어찌나 상국의 칭찬을 하는지 아주 귀에 딱지가 앉았소.”

“과찬이십니다.”

“내 그대를 만난 것은 정말 하늘이 돕고 아버님이 도운 것이오.”

“그런데 어찌 세상에 나오신 것입니까?”

천룡의 물음에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암행이오.”

“암행요?”

“그렇소. 전에 국경으로 암행을 하러 못 간 것이 너무도 마음에 남아 이 기회에 아주 나와 버렸소. 세상을 돌아보며 백성들의 삶을 직접 보려 하오. 상국, 그대가 같이 다녀 주겠소?”

황제가 천룡의 손은 잡으며 말했다.

그런 황제의 말에 천룡이 웃으며 답했다.

“명 받드옵니다. 폐하.”

“하하하하, 명이 아니오. 부탁이거늘.”

“그저 명만 내리시면 됩니다. 폐하.”

“그럼 황궁에도 같이?”

“폐, 폐하, 그, 그건…….”

“끄응. 겉으로만 충신이었구려.”

“폐, 폐하. 소, 소신은 그, 그저…….”

엄청나게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천룡을 보며 황제는 즐거운 듯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상국.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무서운 상국의 이런 모습이 나는 정말 좋소. 그리고 고맙소.”

“폐하.”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는 그 모습. 그대야말로 이 중원에 유일한 나의 충신이오.”

황제의 칭찬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러다가 본론을 이야기했다.

“중원을 한 바퀴 돌아보려 하오. 내정은 대신들에게 맡겼고, 급한 경우엔 파발을 띄우라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

“그러다가 궁 안에서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천룡의 말에 황제가 지그시 쳐다보더니 말했다.

“그대 이름 석 자를 대신들에게 말했소.”

“네?”

“모르는군. 그대 이름 석 자면 다 통하오. 무엇이든.”

황제에 뜻에 반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대신에게 상국을 불러오라고 외치면 바로 엎드려 잘못을 빈단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천룡은 웃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런 천룡을 보며 웃고는 앞으로의 일정을 말하는 황제였다.

“일단 장강을 구경할 생각이오. 그 후에 한왕이 머물렀던 항주를 가 볼 생각이오. 그곳이 그렇게 경치가 좋다지요?”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복건을 거쳐 광동, 광서, 운남, 사천을 지나 복귀할 예정이오.”

전부였다.

중원 전부를 돌아보겠다는 소리였다.

정말로 작정을 하고 나온 것 같았다.

놀란 얼굴을 하는 천룡을 보며 연신 즐거운 미소를 보이는 황제였다.

“상국의 그 얼굴은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는구려. 하하하.”

황제의 웃음과 달리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민에 빠진 천룡이었다.

***

백금만은 천룡의 도움으로 기사회생을 한 뒤에 열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하오문과 연합하여 전 중원에 천상객잔을 운영하기 위해 준비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고급 기루를 운영하기 위해 준비도 하고 있었다.

또한, 천룡이 준 쓸 만한 비급과 무기들을 팔기 위한 고급상점 역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상단의 견제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견제가 들어왔다.

백금만은 다시 제갈군을 찾았다.

“흠, 그러니까 만보상회에 관련된 상행은 유달리 검문검색이 심하다 이겁니까?”

“그렇소. 다른 상단과 달리 이상하게 우리 상회에만 엄격한 잣대로 검문검색을 하고 있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오.”

백금만의 말에 제갈군이 우선으로 입을 가리며 생각에 빠졌다.

“제가 생각해도 이상하군요. 관부가 개입을 한 것 같습니다.”

“관부요? 저희는 관부와 척을 진 일이 없습니다.”

“최근에 만보상회의 기세가 무서웠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것을 경계하는 무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나…… 전 중원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그만한 금력을 가진 거대 세력이 개입했다는 소린데.”

“네? 그, 그러니까 저 모든 성에 있는 자들을 매수한 세력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게 가능할 리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회주님의 전 상회가 어려움에 빠진 이유가 바로 그 의문의 세력일 수도 있겠군요.”

“그만한 금력을 지닌 세력을 제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장담은 금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장주님 같은 분이 계실 것이라 생각했겠습니까? 회주님은 생각하셨습니까?”

제갈군의 말에 백금만은 아차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거 보십시오. 무엇이든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확신은 금물입니다. 어찌 됐든 지금 회주님 말씀을 들어 보면 확실하게 관부가 개입을 한 것 같습니다.”

“어, 어찌해야 합니까? 저, 저도 뿌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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